소설리스트

A.I 닥터-652화 (652/1,303)

652화 다시 병원에서 (1)

“아직 인공호흡기를 써야 할 정도는 아냐.”

같이 들어간 신현태는 환자 바이털을 보면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이의는 없었다.

산소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로 산소 요구량이 늘어난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 않나.

게다가 산소마스크를 씌운 이후 나간 동맥혈 검사에서는 산소 포화도가 눈에 띌 정도로 호전되었다.

여기서 더 상태가 나빠진다면, 그때는 지체하지 않고 삽관을 해야 할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삽관은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는 게 좋았다.

“좋아. 검사는 나갔나?”

“네. 혈액 검사는 다 나갔고…… 엑스레이는…… 오네요. 와, 좋다 여기. 포터블도 있네.”

이현종의 말에는 수혁이 답했다.

딱 도착하자마자 숙련된 간호사들이 환자의 라인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검사를 싹 나간 참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일반적인 감염에 대한 검사만 나가고 있기는 했다.

소위 말하는 루틴대로 일을 했다는 얘기였다.

수혁은 누군갈 진료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편이었기에 즉시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검사를 추가했다.

특히 젊은 여자에서 관찰되는 루푸스를 중점적으로 볼 수 있도록 주문했다.

드르륵.

잠시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포터블 엑스레이를 끌고 온 방사선사가 환자 체스트 사진을 찰칵하고 찍었다.

제일 좋은 건 역시 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PA 모드로 찍는 것이지만 환자 상태가 여의치가 않았다.

해서 AP 모드로 찍어야만 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진 뜹니다.”

“와……. 디지털이네?”

“네, 태화 SDS에서 설치해 줘 가지고요.”

“백 교수님 끗발이 진짜 장난 아니긴 하구나.”

이걸 보면서 어느 누가 봉사 현장에 위치한 병원을 떠올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여느 2차 병원은 되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안에서 일하는 인력들의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니라 숫제 대학 병원급이었다.

애초에 뽑기도 잘 뽑았을 테지만 안에서 훈련도 잘되고 있는 듯했다.

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잘 찍었네.’

[네. 이만하면 AP 체스트로는 훌륭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던데.’

[하여간…….]

AP는 꽝이 나오면 정말 알아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퀄리티가 퍽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폐 상태를 알아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폐렴이 있네요.”

“흡인성은 아냐. 양측에 골고루야.”

“바이러스보다는 세균성에 가까워 보이는데.”

그뿐만 아니라 폐렴의 형태 또한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약을 무엇을 쓸지가 중요해졌다.

바이러스성 폐렴이라면 대증적인 치료를 하면서 환자가 스스로 이겨 내기를 기다려야 할 테지만 세균성 폐렴이라면 맞는 항생제를 써야 하기에 그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현태였다.

“이런 형태의 세균성 페렴이라면…… 세팔로스포린계가 제일 먼저 떠오르긴 하는데.”

누가 감염내과 교수 아니랄까 봐 아주 정석적인 답을 내놓았다.

지역 획득성 폐렴에서 일차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약제가 아닌가.

하지만 신현태는 본인 말에 아주 자신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지역 획득성 폐렴이라고 하기엔, 다른 환자가 아예 관찰되지 않았다.

폐쇄적인 부족 사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인수공통감염병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좋을 거 같기도 하고. 인수공통감염병에서 이런 식의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이라고 하면 역시 마이코플라즈마인데.”

“그럼 테트라사이클린이…… 적합하려나?”

물론 거기서 추론이 뚝 끊기진 않았다.

마이코플라즈마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현종은 그 말을 받아 그게 합당한 항생제를 입에 담았다.

‘누가 아빠, 삼촌 아니랄까 봐…….’

[확실히 괜찮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일단은 검사를 기다려 봐도 좋겠지. 아직 상태 괜찮아.’

[네. 앞으로 1시간이면 나올 겁니다. 어차피 의료진이 옆을 지키고 있으니…… 보다 신중하게 선택해도 좋을 겁니다.]

‘좋아.’

저대로 따라도 좋기는 할 터였다.

통계를 토대로 나온 결론이기에 그랬다.

잘못될 확률이 있기야 하겠지만 드물 터였다.

현대 의학이 지금껏 쌓아 온 경험과 토론의 토대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좀 기다려 보죠. 혈액 검사 소견을 보면…… 보다 적합한 약제가 떠오를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수혁이 하는 말은 사실 말이 안 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개 개인의 의견이 근거 중심 의학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신현태도 이현종도 수혁을 일개 개인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둘에게 수혁은 근거를 새로 창출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럴까?”

“그러지, 뭐.”

해서 셋은 일단 대기 타기로 했다.

다행히 그사이 환자 바이털이 막 흔들리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다른 환자가 생겨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도 없었다.

특히 이 셋이 속한 조는 그랬다.

어제 하도 많은 환자를 봐서 그런가 왕진도 취소되었기에 그랬다.

“검사 나왔네요.”

“어디 봐 봐.”

덕분에 셋은 별 방해 없이 검사를 볼 수 있었다.

“음……. 범혈구 감소증이 보이는데요?”

“그래, 이건 확실히. 빈혈에 백혈구랑 혈색소 수도 적어.”

“이렇게 되면 세팔로스포린계열보다는…….”

마이코플라즈마에 의한 감염에서 주로 이런 식의 범혈구 감소증을 보이는 편이었다.

아직 혈액 도말 검사나 배양 검사에서 균체를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이 이쪽으로 기운다는 얘기였다.

“인수공통감염에 의한 범혈구 감소증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거 같습니다. 다만.”

“다만?”

“환자가 기저에 자가면역질환이 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면…….”

“아.”

“하지만 그거까지 고려하기엔 아직 단서가 부족해요. 더 검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무리가 있고. 일단 테트라사이클린을 쓰기로 하죠.”

“좋아. 그렇게 하자고.”

물론 아직 검사 결과가 다 나온 것도 아니었기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직 환자 상태가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계속 이러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테트라사이클린을 처방했다.

“어떻게 됐지?”

그렇게 첫 번째 투약이 이루어졌을 때쯤, 강혁이 올라왔다.

머리가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채였다.

‘망할. 나이도 많은 양반이 머리숱 많은 것 좀 봐라.”

‘그러니까 하얗게 탈색도 했지. 말이 돼?’

수혁은 별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슬슬 머리숱 걱정이 들기 시작한 두 장년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구시렁 소리가 나온다고 할까?

“아……. 음. 그렇군. 잘했네요.”

그사이 수혁은 어떠한 연유로 테트라사이클린을 처방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세상 어떤 의사가 듣더라도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강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강혁은 수혁이 신들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 아닌가.

뭔 말을 해도 근거가 있을 거라 여기고 있단 말이었다.

“그럼 생검을 해 볼까요?”

“네? 생검이요? 세침 흡인 검사를 해도…….”

“여기 딱 돌출되어 있는 건 어렵지 않아요. 5분이면 나올 거 같은데. 검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죠.”

“그건 그렇죠. 할 수 있다면…… 뭐 나쁠 건 없죠.”

거기에 더해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해 왔다.

환자가 지금 보이고 있는 증상 중 하나가 임파선 종대 아닌가.

그걸 하나 떼어 보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바늘로 찔러서 검사를 해 보고 싶던 참에 잘된 일이었다.

방금 들은 대로 할 수만 있다면 검체는 많이 얻는 편이 좋았다.

정확하면서도 신속하게 뭐가 원인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으니.

“여기서 바로 하지. 절개 배농 세트 줘 봐.”

“네.”

좋다고 해서 늘상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세침 흡인 검사에 비해 절제 생검은 훨씬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기에 그랬다.

일단 수술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으레 있는 일인지 간호사는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기구 세트를 들고 왔다.

강혁은 그동안 환자 목에 치덕치덕 베타딘을 발라 닦았다.

“장갑만 끼고 도와줘요. 손은 씻고.”

“아, 네.”

얼떨결에 수혁은 보조를 하고 있었다.

지이익.

도착한 날 본 것이 착각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깔끔하기 짝이 없는 절개였다.

‘진짜 피가 안 나네.’

[마취제에 혈관 수축제가 있다고 해도…….]

‘말이 안 돼.’

[그러니까요.]

반면 강혁은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수혁의 눈알을 보면서 남몰래 후회하고 있었다.

‘아. 자다 깨서 까먹었네.’

이현종이나 신현태한테 시킬걸.

왜 이 인간에게 시켰을까.

이러다 귀신이 나한테 관심을 보이면 어쩌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톡.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손이 굼떠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기엔 지금껏 너무 많은 수술을 해 왔더랬다.

게다가 이 수술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장담했던 5분도 채 지나기 전에 임파선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오.”

“검사해 보죠.”

“네.”

그렇게 튀어나온 임파선은 즉시 병리과로 보내졌다.

병리과에서는 임파선의 일부는 동결 절판 검사를 하기 위해 즉시 얼렸고, 나머지는 더 명확한 검사를 하기 위해 염색 절차를 밟았다.

후자는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암 진단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기다려야 하겠지만.

감염 질환에서는 얘기가 좀 달랐다.

기다리다 사람이 균에 잡아먹히는 수가 있었다.

해서 병리과까지 쫓아 내려간 네 사람은 동결 절편 검사를 수행하고 있는 병리과 의사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 거 진짜 부담되네.’

병리과 의사는 뒤에 서 있는 네 사람의 면면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나는 백강혁.

명실상부한 이 병원의 주인이었다.

그 외에 신현태는 태화의 원장이고, 이현종은 전임 원장이면서 동시에 통합 뭐시기 센터장이고 이수혁은 거기 부센터장이었다.

누구 하나 만만한 인간이 없는데, 그 인간들이 죄 자기만 보고 있다니.

‘아……. 오. 여기 이거.’

뭐가 안 나오면 어쩌나 싶은 순간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보시죠.”

그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고, 넷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가왔다.

그리곤 방금까지 병리과 의사가 눈을 대고 있던 현미경 렌즈에 자기 눈을 갖다 댔다.

둥근 무언가가 보였다.

솔직히 관련 과가 아닌 사람에게는 그렇게만 보였다.

부연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때맞춰 병리과 의사가 입을 열었다.

“직경 1-1.5µm의 원형 링 모양 구균이 보입니다.”

“구균이라. 역시 마이코플라즈마겠구만.”

“그렇네.”

“그럼 기다려 보면 되겠네요.”

예상과 빗나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환자의 기저 질환이 무엇이었는지만 찾으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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