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53화 (653/1,303)

653화 다시 병원에서 (2)

아쉽게도 계속 이 젊은 여자 환자만 볼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수혁과 신현태 그리고 이현종은 테트라사이클린을 쓰면서 다른 일에 끊임없이 동원되었다.

이곳의 원장 백강혁이 준비해 둔 일정이 만만치가 않았던 탓이었다.

어떤 날은 초원에 왕진을 가야 했고, 또 어떤 날은 울란바토르에 왕진을 가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매일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아지긴 했는데.”

“완전하지는 않아요.”

치료를 시작한 지 4일째 되는 날 밤이었다.

사실 벌써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시기상조일 수 있었다.

원래 마이코플라즈마는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니까.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최소 2주 정도는 치료해야 완치를 노려볼 수 있을 만큼 지지부진한 질환이었다.

의료진도 환자도 그 지리한 과정을 잘 견뎌야 했다.

하지만 예상하는 치료 커브가 있기는 한 법이었다.

수혁이 볼 때 이 환자는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확실히 임파선염은 좋아지고 있어.”

수혁의 불만 어린 눈을 보며, 신현태는 환자의 거의 온몸에 걸쳐 퍼져 있던 임파선 비대를 가리켰다.

지금 가리키고 있는 건 목이었다.

그의 말대로 임파선염은 호전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보다 눈에 띄는 임파선의 개수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줄어들어 있었다.

이건 분명히 좋은 사인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소견이 훨씬, 그야말로 훨씬 많았다.

“범혈구감소증, 간헐적 발열, 권태감은 지속 중이야.”

이현종이 잠시 환자와의 문진을 작성해 준 기록을 들여다보다 입을 열었다.

옆에는 검사 결과표가 떠 있었는데, 여전히 빨간색으로 표기된 수치가 너무 많았다.

혈구 수치는 거의 호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체중도 줄었어요. 식사 때문은 아닙니다.”

수혁은 간호 기록을 읽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온 상황이긴 했지만, 하여간 환자 상태는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이대로라면 천천히 죽어 갈 것이 뻔해 보인다고 할까?

놓친 부분이 있단 얘기였다.

“동시에 말초 주위 부종 및 혈관염 피부 변화가 지속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의 얼굴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이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간단한 일이었다.

“너…… 너 뭔가 알겠구나?”

“그래, 역시 우리 아들. 뭐냐?”

그간의 경험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수혁은 이미 실마리를 잡은 것이 분명했다.

신현태와 이현종은 하여간 괴물 같은 놈이라는 생각을 하며 반색했다.

그에 반해 으레 그러하듯 입원 병실에 있는 환자를 살피러 왔던 강혁은 몰래 눈을 피했다.

‘접신에 간격이 있나.’

속으로는 영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수혁은 남들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원래도 그런 편이지만, 자랑하고자 마음먹었을 때의 수혁은 불도저 같은 면모가 있었다.

“우선 환자에게 자가면역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모두 동의하셨을 겁니다. 그렇죠?”

“어, 그렇지. 검사 중이지.”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 같아.”

수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삼촌과 아버지 그리고 저 멀리고 귀를 쫑긋하고 있는 강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까이 있는 둘이야 켕기는 것이 없으니 그저 수혁의 시선을 담담히 받았지만.

강혁은 식은땀이 흘렀다.

어쩐지 저게 수혁이 아니라 다른 존재 같아서 그랬다.

괜히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제 슬슬 ACR 분류에 따른 5가지 기준을 언급하시죠.]

‘오케이, 좋아.’

ACR은 미국의 류머티즘 학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대개의 학회가 그러하듯 여기서도 까다로운 질환에 대해 진단 기준을 발표하고 있었다.

류머티즘 쪽은 원체 질환이 까다로워서 더더욱 이러한 활동이 많았다.

수혁은 그중 한 가지를 입에 담았다.

“미국 류마티스 학회에서는 5가지 기준을 통해 자가면역질환의 진단을 꾀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이 환자에게 대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 장막염.”

수혁이 손가락 하나를 올렸다.

그냥 의료진끼리 대화하는 중일 뿐, 학회 발표도 아닌데 제스처가 꽤 시기적절하게 들어갔다.

덕분에 원래 수혁의 말이라면 막무가내로 믿고 따르는 신현태, 이현종뿐만 아니라 백강혁조차 귀를 더 기울이게 되었다.

“이 환자의 경우 엑스레이를 보면 폐렴 소견은 호전되고 있지만, 흉막염은 지속되고 있죠, 그 때문에 약간의 삼출물이 있고요. 장막염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렇죠?”

“어, 그렇네. 그래.”

“확실히.”

“두 번째는 신장 장애입니다. 이거야 뭐 어려울 것도 없죠. 환자는 단백뇨를 보이고 있었어요.”

“응, 양이 많지 않지만…….”

“다행히 수치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수혁의 손가락이 하나 올라갈 때마다 소견도 어김없이 추가되었다. 혈액 장애에서는 빈혈과 백혈구 감소증 그리고 혈소판 감소증이 증거로 자리했다.

“네 번째로는 anti-double stranded DNA 및 antinuclear antibodies가 양성을 보였습니다. 이 각각의 지표들을 따로 떼어 놓고 볼 때는 그리 의미가 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 종합해서 보면 어떻죠? 한 가지 질환을 가리키게 됩니다.”

“설마 전신 루푸스인가? 본 지가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한데.”

“오, 역시 아빠. 맞아요. 그럼 치료는 뭘 해야 할까요.”

수혁은 방금 뜬 anti-double stranded DNA 및 antinuclear antibodies 소견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의심만 할 수 있을 정도였더랬다.

하지만 이 수치에 더해 이 환자는 보체 C3 및 C4도 유의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현종의 말대로 전신 루푸스가 가장 강력하게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스테로이드.”

이번엔 신현태가 답을 해 왔다.

“네, 그렇지만 아직 감염이 동반되어 있으니…… 아주 주의해서 써야 할 겁니다. 더 자주 환자 상태를 보기로 하죠.”

“좋아.”

“좋아.”

여기 모인 내과 의사들은 다들 뛰어난 이들이지 않나.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 보니 수혁의 물 흐르는 듯한 추론을 듣자마자 딱딱 알아듣고는 바로 행동에 돌입할 수 있었다.

얼어 있는 건 강혁뿐이었다.

‘루푸스 진단이 원래 이렇게 쉽지 않을 텐데?’

류머티즘 질환은 어려운 질환이라는 건 알고 있어서 그랬다.

저기에 한 명이라도 류머티즘내과가 끼어 있었다면 또 모를 일이긴 했다.

아니면 아예 주된 증상이 루푸스였다거나 하면 좀 더 유리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 환자는 열이 나서 왔고, 임파선이 부어서 왔고, 또 폐렴이 있어서 왔다.

심지어 생검에서는 마이코플라즈마가 나와서 거기에 맞춰 치료 중이었다.

이 와중에 자가면역질환이 기저에 있었을 거란 의심을 했다는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서 진단까지 했다, 이거지.’

미쳤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봐야 했다.

‘어휴. 엮이지 말자.’

강혁은 알아서 잘 봐달라는 말과 함께 실로 보기 힘든 미소까지 남긴 채 서둘러 병실에서 빠져나갔다.

병실에 남게 된 세 사람의 내과 의사는 그런 강혁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치료를 시작했다.

스테로이드가 투여되었다.

지이익.

스테로이드.

기적의 묘약이라는 묘사까지 있었던, 아주 강력한 약이었다.

한때 만병통치의 개념에 있어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약이기도 했다.

통증도 없어지고, 부었던 것도 없어지고.

하지만 그만큼 반작용이 심한 약이기도 했다.

“그래, 진짜 잘 보자.”

때문에 신현태는 약이 들어가는 걸 보면서 잘 보자는 말을 다시 한번 덧붙였다.

감염내과다 보니 스테로이드 함부로 썼다가 미궁으로 빠지게 된 케이스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어서 더 그랬다.

전반적인 면역 억제를 일으키는 약이다 보니 모두가 잊고 있던 해묵은 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결핵…… 아니면 진균.’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굳히고, 이 환자가 원래 지냈던 환경을 떠올렸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꿈꿨을 만한 곳이었다.

그야말로 목가적인 삶 아닌가.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

찬양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은 덤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못했다.

원래 현실은 환상과는 달리 꽤 비참한 구석이 있는 법 아닌가.

‘뭐라도 기회감염이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가 없어.’

심지어 나름 관리가 잘 되는 편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농가에서도 기상천외한 감염병이 돌기도 하는데 여기라면 어떨까.

‘하지만 이대로 두고 볼 수도 없어.’

아무래도 스테로이드는 찝찝한 약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감염내과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자가면역질환의 악화 인자 중 하나가 감염이라서 그랬다.

게다가 전신 홍반성 루푸스는 그 자체로도 환자를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겠네.’

신현태는 딱히 종교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수혁교 신자도 아니었다.

수혁을 조카처럼 이뻐하는 것과 신으로 추앙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지 않겠나.

하지만 의사로 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신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왔다.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약간 거북목이 있어서 아예 뒤로 젖히지는 못해서, 고개 자체는 애매하게 수혁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다 한통속이네.’

덕분에 밖에서 안쪽을 살피던 강혁이 볼 때는 그저 수혁을 향해 기도하는 것으로만 보였다.

‘어휴, 어휴. 빨리 가라. 빨리 가.’

덕분에 강혁은 태화 봉사단을 더 부릴 생각은 추호도 없게 되었다.

바람이 있다면 그저 여기 있는 동안 사고 치지 않고 그냥 사라져 주는 것뿐이었다.

“오……. 열 떨어졌어.”

“단백뇨도 개선되고 있어요.”

“검사는?”

“범혈구 감소증도 개선 중입니다.”

“역시 맞았군. 감염 징후도 괜찮아. 아직 주의해서 보기는 해야 하는데…… 일단 테트라사이클린 잘 들어.”

“다행입니다.”

그 바람과는 별개로 환자는 좋아지고 있었다.

속도도 무척 빨랐다.

스테로이드란 약이 워낙에 강력해서 그랬다.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 퇴원도 고려할 수 있을 터였다.

퇴원하고 나서 전신 홍반성 루푸스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질지는 울란바토르 병원의 숙제가 되기는 하겠지만.

하여간 이 치료에 관여했던 이들은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껄껄 웃음이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따르릉.

그때 전화가 울렸다.

응급실을 지키고 있던 김승규가 전화를 받아 옆에 있던 현지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처음엔 그저 일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차 심각해졌다.

“전원 문의네요.”

전화를 끊은 간호사는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상태가 좋아져서 대학 병원으로 전원 되는 환자는 없지 않은가.

울란바토르 태화 의료원이 실질적인 대학 병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런 문의가 왔다는 건 환자 상태가 별로란 것을 의미했다.

“어떻게 했어요?”

“저희는 병상 여유 있으면 무조건 받아요.”

“온다는 거로구만.”

밤이 깊어 가고 있어서 다들 자려는 찰나 예기치 못한 환자가 발행한 상황.

모두가 으음으음 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봉사도 좋지만 힘들어서 그랬다.

심지어 이현종,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오직 두 사람만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좋아. 어떤 환자지?’

[알 수 없죠.]

바루다 때문에 중증 명의 병에 걸린 수혁과 그런 수혁이 웃으면 덩달아 웃게 된 안대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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