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화 전원 온 환자 (1)
전화를 받았던 간호사는 좀 황당하다는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 병원에 있는 모든 외국인 의료진은 봉사차 온 사람들이었다.
원장 자리에 있는 강혁이 워낙에 발이 넓은 사람이다 보니 단체도 다양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도 오고, 유니세프에서도 오고.
심지어 그냥 대학 병원 파견을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들 훌륭한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환자 이만큼 보고 나면 다들 힘들어하긴 하던데…….’
환자를 본다는 건, 의료진에게는 그냥 직업인으로서의 일이긴 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생명 또는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이니까.
상당수의 의료인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란 얘기였다.
때문에 여기까지 부득부득 온 사람들조차 힘겨워할 때가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 그런 날이었는데, 눈앞의 젊은 의사 둘은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어떤 환자냐고요. 궁금한데.”
특히 지금 말하고 있는 이수혁이라는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라 흡사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 같았다.
기대감마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상하다고 하시더니만…….’
간호사는 불현듯 강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사람 좀 이상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지 마. 저주받거나…… 신자 된다.’
솔직히 제일 이상한 사람은 백강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참이었다.
그 실력에, 그 재력에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란 말인가.
그런 사람이 아무리 다른 사람보고 이상하다고 해 봐야 설득력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수혁을 보자, ‘아, 이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그…… 네, 65세 남자 환자로…… 대장암으로 치료 중인 환자인 모양입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서 질문을 씹을 수는 없었다.
보아하니 이 양반이 지금 오는 환자를 보게 될 공산이 크지 않나.
그럼 미리 어느 정도의 정보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그래야 우왕좌왕하는 일이 적으니까.
“대장암? 병기는요?”
“3기입니다. 수술 후 항암 치료까지 완료했다고 합니다.”
“어떤 수술을 받았죠?”
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기로 작정했다.
이상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질문은 상식적이었다.
조금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느낌도 있긴 했지만.
하여간 상세한 질문을 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
다행히 아까 전원 문의를 해 온 병원에서도 나름 깔끔하게 정리해서 노티를 했던 참이기도 했다.
안 그랬다가는 백강혁이 찾아갈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좌측 대장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하면서 근처 임파선도 일부 정리했다고 들었습니다.”
“임파선 전이가 영상으로 확인이 된 건가요? 아니면…….”
“그거까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전이는 확인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항암까지 갔구나.”
“네.”
“항암 종류는요?”
“그거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의뢰서에 적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군. 얼마나 걸린대요?”
수혁의 말에 간호사는 시계를 돌아보았다.
울란바토르가 몽골의 수도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 않나.
교통이 워낙 좋지 못하기도 하고 또 아직 앰뷸런스를 배려할 만큼 시민 의식이 발달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였다.
“한 20분?”
“20분…… 현재 상태는 어떻대요? 왜 전원 문의가 온 거죠?”
수혁은 순수한 의문에 빠져 있었다.
암은 무서운 병이긴 했다.
아무리 생존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해도, 암은 암이지 않나.
하지만 급하게 전원 문의를 할 만한 일은 말기가 아니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아니, 말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쯤 되면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본딩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자기 환자를 어디 보낸다는 생각 자체가 잘 들지 않았다.
“아……. 복통과 설사 그리고 발열이 지금 2주 넘게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2주요?”
“네.”
“아니……. 근데 왜 이제야 보낸대요?”
하지만 감염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졌다.
암과는 별개로 감염은 어떻게든 낫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병이지 않나.
근데 그걸 왜 2주나 깔아 뒀을까?
수혁은 약간 추궁하는 투가 되어 물었다.
다행히 간호사는 이런 분위기가 아주 익숙해진 사람이었다.
성질 더럽기로 따지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인간이 이곳 울란바토르 병원에 있어서였다.
“환자가 그쪽 병원을 아주 신뢰하는 모양이에요. 지금 오는 것도…… 설명을 아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부디 친절하게…….”
“환자한테야 친절하게 하죠.”
“네네.”
해서 여상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부탁도 해 가면서였다.
의사에게 환자를 친절하게 봐 달라고 하는 부탁이 필요한 경우가 드물긴 한데, 이곳에선 그래야만 했다.
듣자니 젊은 시절보다는 훨씬 친절해진 편이라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랬다.
왜애애앵.
그 후로는 의미 있는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어차피 간호사도 환자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랬다.
그렇다고 여유가 넘쳐 흐르는 일은 없었다.
“패혈증에 준해서 준비하죠.”
“네.”
환자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여, 처치실에 바로 환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뿐만 아니라 환자 상태가 아주 나쁠 경우라면 바로 삽관 및 중심 정맥관 삽입 등의 처치를 할 수 있도록 기구를 대기시켰다.
심지어 한쪽 구석에는 흉부 압박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여러 인력을 대기시키기까지 했다.
드르륵.
그사이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낡은 앰뷸런스였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일반 봉고를 뜯어다 개조한 모양새였다.
‘한국 차네.’
[그러게요. 스타렉스 아닙니까?]
‘그런 거 같은데.’
놀랄 일은 아니었다.
개발 도상국에서는 중고차가 신차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지 않는가.
일반 사용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택시, 버스 회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해 병원이나 정부 기관도 똑같았다.
“환자 상태는?”
“의식이 약간 흐릿합니다. 혈압도 떨어져 있고…… 발열이 너무 심해요.”
“약은 뭘 쓰고 있죠?”
“젠타마이신으로 치료하다가 도저히 듣질 않아서 메트로니다졸을 그제 추가했습니다.”
젠타마이신과 메트로니다졸이라.
장염을 떠올렸다면 뭐 무리는 없는 선택이었다.
몽골은 아무래도 항생제 내성이 좀 적지 않겠나 싶었는데, 그걸 감안하면 반응이 없는 게 좀 이상했다.
“항암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투여했습니까?”
“3주 되었습니다. 원래 같으면 4주기 요법을 시행했어야 했는데…….”
“음, 열 때문에 못하고 있군요.”
“네.”
암 환자에서 발열이 무서운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암과 항암제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진 상황이지 않나.
감염은 그 자체로도 위협이었다.
그러나 감염 때문에 항암 치료가 뒤로 밀리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위협 요소였다.
이러다 기껏 수술하고 3차 항암까지 잘 진행하던 치료가 꼬이게 되면, 감염이 아니라 암이 재발하는 수가 있었다.
“항암제는 뭘 썼죠?”
병원 입구에서 처치실까지의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당연히 환자를 옮기는 데 걸린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혁은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참으로 효율적으로 쓰고 있었다.
“아, 네. 5-fluorouracil과 levamisole을 쓰고 있습니다.”
“아하.”
조금 된 항암제였다.
최신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서부터는 잘 쓰지 않는 요법이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비난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의료는 경제 형편 및 국가 정책에 맞추어서 시행되는 편이지 않나.
당장 대한민국만 해도 경제 규모에 비해 최신 트렌드를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미국에서는 면역 항암제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시도 정도 해 보고 있었다.
‘수혁아…… 이번에는 수가 책정될 거 같냐?’
‘형…….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될 거라고 해 줘. 사람들이 너보고 의술의 신이래.’
‘아닌 거…… 아시잖아요. 아시죠? 아시는 거죠?’
오죽하면 조태진이 수혁을 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외친 적도 있었겠나.
“혈압……. 90에 60입니다. 원래 병원에서는 어땠죠?”
“오기 전에 실시한 건 95에 60이었습니다.”
“보통 입원했을 땐?”
“어, 그건 잠시만요.”
물론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환자 상태가 예상보다 좋지 않아서였다.
혈압이 90에 60이라는 게 당장 어떻게 될 만한 수치는 아니긴 했다.
하지만 환자를 봄에 있어서 현 상태도 당연히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경향성이었다.
“아……. 원래는 혈압 정상이었습니다.”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봐야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장염 증상인데…… 떨어지고 있다라.”
뭘까.
뭘 의심해야 할까?
‘젠타마이신을 거의 10일 가까이 썼네.’
[Clostridium difficile 가능성이 있겠군요.]
우선 항생제를 오래 썼다는 점이 중요할 터였다.
항생제가 뭔가.
우리 몸 안의 균을 죽이는 약이었다.
당연히 타깃은 나쁜 균이지만, 아쉽게도 항생제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았다.
장기간 사용하는 경우 우리 몸에 도움이 되는 균, 즉 유산균도 죽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Clostridium difficile이라는 균이 대장에서 자라게 되는데, 이건 좀 위험했다.
특히 면역이 억제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아주 치명적일 수 있었다.
‘5-fluorouracil도 설사를 일으킬 수 있어. 꽤 고용량으로 들어갔잖아?’
[초창기에는 그랬을 수 있죠. 하지만 지금은 발열과 함께 설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약이 중단된 약을 탓하는 건…… 비합리적인 추론입니다.]
‘그렇지. 그럼…… 음, 일단 혈압부터 잡자.’
[네, 환자 목숨을 이어 붙여 놔야 다른 추론이 의미를 갖게 될 겁니다.]
‘좋아.’
바루다와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을 잊은 건 아니었다.
도리어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컷.”
“네.”
이미 수혁은 환자의 경정맥에 중심 정맥관을 실수 하나 없이 박은 참이었다.
보조에 나섰던 안대훈은, 당연하겠지만 경외심 어린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술기까지 이렇게 잘하실까?’
사실 중심 정맥관 삽입은 수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긴 했다.
안대훈도 이젠 날아다니는 수준이니 말 다 한 셈.
하지만 수혁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할까?
아마 견줄 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게 안대훈의 결론이었다.
괜히 사람들이, 특히 안대훈이 의술의 신이라 추앙하는 게 아니었다.
“검사 나갔죠?”
“네.”
“빌리루빈 상태 좀 볼게요.”
“아, 네. 나오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안대훈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간호사들도 죄 놀란 상황이었다.
이들은 백강혁의 신들린 듯한 술기를 늘상 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남들은 놀라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덤덤한 것도 소름 돋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비슷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