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56화 (656/1,303)

656화 전원 온 환자 (3)

외과에서는 정말이지 할 만큼 하고 넘겨준 참이었다.

이거 이상 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었다.

심지어 강혁은 수술실에서 멀쩡한 장의 단면도 보여 준 참이었다.

‘Clostridium difficile은 절대 아냐.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질환 하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었다.

Clostridium difficile이란 항생제 사용으로 인해 유산균을 비롯한 장내 세균총의 변화로 발생하는 균의 감염을 말하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하얀 막을 형성하는 것이었는데 환자에게서는 그게 관찰되지 않았다.

‘환자의 염증…… 구성 과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구성 과정이요?]

강혁은 그렇게 확인까지 시켜 주고 환자를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다시 옮겨 준 참이었다.

당연히 수혁과 대훈도 중환자실에 있었다.

수혁은 아예 의자를 끌어다 놓고, 환자 옆에 앉아 있었다.

대훈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했는데 이 녀석은 바루다 없으니 수혁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대화도 없이 높은 사람 바라보는 게 일반적으로는 참 고통스러운 일인데, 주교를 표방하고 있는 안대훈에게는 그저 은혜로운 일일 뿐이었다.

녀석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운 채 그저 수혁을 보고 있었다.

‘저봐, 저거. 귀신에게 홀렸지, 저거.’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혁은 어휴어휴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고는 더 멀찍이 떨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다른 데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데 또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이 70이 다 되어 가도록 여전히 환자만 보면 책임감이 미친 듯이 샘 솟는 사람이라 그랬다.

게다가 저 환자는 그냥 아무 환자가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손을 탄 환자가 된 마당 아닌가.

‘아……. 시발.’

해서 강혁은 심령 현상이 무서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두커니 서서 수혁과 대훈 그리고 인공호흡기에 기대 삶을 연명해 나가고 있는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환자는…… 5-fluorouracil과 leucovorin로 항암 치료를 받았어.’

[항암 치료와 지금 증상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정합니까?]

‘그게 제일 합리적이지 않냐? 보통 장염이 저렇게까지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동의합니다.]

그사이 수혁은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옆에서 중간중간 검사가 뜰 때마다 안대훈이 결과를 말해 줘서 더더욱 효과적으로 굴릴 수 있었다.

“기록을 보니 2차 항암 요법 후에 고빌리루빈혈증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 5-fluorouracil이 간독성이 있기는 하지. 근데…… 수치가 아주 높지는 않네.”

“네.”

“게다가 5-fluorouracil은 굉장히 잘 분해되는 녀석 중에 하나야. 간 기능 이상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그쪽 병원에서도 이거 때문에 약을 감량하거나 하지는 않았어. 이런 거 보면 아무렇게나 항암 하는 병원은 아닌데.”

항암을 아무렇게나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대한민국이야 워낙 의료 체계가 잘 잡혀 있고 또 원내 시스템이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어 거의 불가능해진 마당이지만.

여전히 간혹 정말 오래전에 쓰이던 용법을 쓰거나 자신만의 용법을 쓰는 의사들이 있기는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일단 이 환자가 입원해 있던 병원은 나름 제대로 하는 병원이었다.

‘잠깐. 잠깐만.’

수혁은 그렇게 안대훈을 통해 습득한 이전 병원 기록을 검토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추었다.

마침 바루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토론은 다시 물 흐르듯 이어질 수 있었다.

‘이거…… 호산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네, 첫 번째 사이클에서도 그랬고, 두 번째에도 그랬습니다. 마지막 사이클에서도 그랬군요.]

‘지금은 어떻지?’

[지금도…… 지금도 그렇네요. 응급실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를 보니 확실히 호산구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 환자 원발 병변이 뭐라고?’

[대장암입니다. 설마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바루다는 혹시 자신의 숙주에게 심대한 기억 장애가 발생했나 하는 얼굴로 물어 왔다.

막장 드라마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30대 의사가 갑자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혁도 그랬다.

‘알지, 알면서 물은 거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도 알면서 묻는 거지?’

[네. 확인하려고요.]

‘좋아. 이건 그냥 육성으로 할게. 안대훈밖에 없는 거 같긴 하지만…… 이 새끼 계속 이러고 있으면 심심할 거 아냐. 그리고 이 시간까지 나선 놈이 이놈뿐인데 뭐라도 가르쳐 주긴 해야지.’

[좋습니다. 대신 틀리면 안 됩니다.]

수혁은 그가 자랑하고자 할 때 짓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바루다는 이제 척하면 척이었기에 그런 수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럴 때의 수혁은 평소보다 훨씬 똑똑했다.

“대훈아.”

“네, 교주님.”

수혁은 바루다의 신뢰를 발판 삼아 입을 열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좀 그랬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간호사들은 대부분 현지인들이라 한국어는 못 알아들을 거라 여겼기에 그랬다.

저 뒤에, 벽 너머에 강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와……. 남들 없을 때는 교주라고 해도 그냥 멀쩡히 받아 주는구나. 나는 또 어? 본심은 다른 줄 알았지?’

괘씸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두려워하는 것인지 모를 청중 하나와 여느 때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청중 하나를 두고 수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기 봐. 여기 검사 결과들.”

“어, 네.”

“보면 뭐 이상한 거 안 느껴지니?”

“음.”

대훈은 그렇지 않아도 정말 세상에서 제일 집중한 얼굴로 환자의 검사 결과지와 의뢰서 등을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딱히 수혁이 가리키지 않았다 해도 다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이상한 거……?’

하지만 이상한 것을 딱 짚어 내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다.

‘범혈구 감소증……? 아닌데. 이건 5-fluorouracil의 특징인데.’

이상 소견이야 많았다.

환자는 처음 항암을 돌렸을 때부터 이미 설사도 있었고, 발열도 있었으며, 범혈구 감소증도 있었다.

또 탈모도 진행되어 있었다.

아주 전통적인 항암제를 쓴 것인 만큼 몸에도 수많은 손상이 이루어졌기에 그랬다.

이런 걸 설마 수혁이 이상한 것이라 생각하고 묻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교주님인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야 할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망할.’

의외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수혁이 대놓고 무언가를 물어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워낙 똑똑한 인간이다 보니 이 정도는 굳이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거니 하는 편이어서 그랬다.

심지어 노상 붙어 다니는 편인 안대훈조차 수혁의 질문은 퍽 오랜만이었다.

부응하고 싶었다.

“대훈아, 안 보여?”

“아니, 잠깐만요!”

그 바람에 하늘이 감동하기라도 한 것일까?

대훈은 항암 치료 후 진행된 검사가 나열된 결과지를 보다가, 돌연 깨달음을 얻었다.

다분히 외과 의사 같은 말이고 동시에 이현종과 같은 정통파 내과 의사에게는 사짜로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하여간 안대훈은 지금 이 순간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산구…… 이게 좀 오래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요?”

“오.”

“옳거니.”

“그래. 보면…… 범혈구 감소증을 비롯해 고빌리루빈 혈증도 약 들어가고 1주일 이내에 다 해결되었어. 근데 딱 하나, 호산구 감소증만…… 좀 오래갔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긴 했지만 이게 대체 뭔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산구가 줄었다. 호산구가 줄었어……. 이게 뭐지?’

호산구는 대개 알레르기 질환이나 기생충 감염 시에 관여하는 면역 세포였다.

이게 감소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기생충에 취약해지는 것?

아니면 알레르기 질환이 창궐하는 것?

‘둘 다 아닌 거 같은데.’

만약 전자였다면 아마 수술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간에 무언가 실마리가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확인된 것은 없었다.

알레르기 질환도 마찬가지였다.

“보면 마지막 사이클 이후에도 호산구가 낮았지?”

“네.”

“그리고 복통을 호소했어.”

“아……. 네. 이번에 다시 입원하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심각하다고 인식하지는 않았어, 그렇지?”

“네.”

“CT상 소견을 보면…… 약간의 복수가 있고, 장벽에 부종이 있지. 이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감염의 전조라고 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저 때 이 환자를 본 거라고 생각해 보자고, 어때?”

어떠냐고?

안대훈은 아무리 가정에 가정을 더해 봐야 수혁이 실수하거나 무언가를 놓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교주님은 감염인 줄 알았을 거 같은데요?”

“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문제는 수혁도 그렇다는 점이었다.

나르시시즘에 적잖이 빠져 있는 수혁으로서는, 자신의 실수를 도저히 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제 조건을 바꿨다.

“그래, 우리가 아니라 너라고 생각하자.”

“그럼 놓쳤겠죠. 아마 항암제로 인해 부종이 왔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여기도 그랬어. 그래서 이뇨제를 썼어. furosemide와 spironolactone을 썼지.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됐지?”

“잠시 증상의 호전이 있었습니다.”

환자는 당시 복통으로 응급실을 내원했고, CT 검사를 통해 복수와 부종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뇨제를 처방받았더랬다.

이뇨제는 부종의 원인까지는 몰라도 부종 자체는 해결을 해 주었다.

덕분에 대훈의 말대로 잠시 증상의 호전이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안 그랬을 텐데…… 이 환자 집이 멀지. 그래서 집에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증상이 다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병원에 오지 못했어. 일주일 후에 다시 응급실로 왔을 때는 어땠지?”

“복통 외에 발열과 설사 등, 감염성 장염을 시사하는 증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 네가 담당 의사라면 어땠을까?”

“놀랬죠. 큰일 났죠.”

“그래서?”

“항생제를 바로 때렸습니다.”

젠타마이신을 썼고, 이게 잘 안 들으니까 메트로니다졸도 썼다.

하지만 메트로니다졸도 듣지 않고 증상이 점점 심해지기만 하자 여기까지 왔다.

와서 봤더니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진행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빨리 괴사성 대장염이 생기는 경우…… 가 뭐라고 생각하니. 호산구 감소증과 연관 지어 봐.”

“음.”

수혁은 이 정도는 알지?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질문을 듣고 있는 안대훈으로서는 이걸 어떻게 알지? 싶을 뿐이었다.

심지어 벽 뒤에 있던 강혁조차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뭔데 새꺄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호중구 감소증은 당연히 장 내의 방어 능력 저하를 일으키겠지. 이게 비단 대장암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냐. 보통은 환성 호중구 감소증, 재생불량성 빈혈, 다발성 골수종 환자에게서도 잘 생겨.”

“아하.”

“하여간 이렇게 되면 장벽의 세균 침입이 발생하고…… 후속적인 균혈증, 괴사 및 출혈과 함께 박테리아 내독소의 생성이 뒤따르게 되지. 이런걸 호중구 감소성 장염이라고 해. 들어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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