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화 몽골이랑도 (3)
아무리 핸드폰이 요새는 참 잘 나와서 가볍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들고 있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수혁처럼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교주님.”
“아니, 음.”
그때 안대훈이 수혁을 불렀다.
사람도 많은데 교주라는 호칭을 써 가면서였다.
보통 이러면 화를 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안대훈이 부시럭거리면서 내민 것이 핸드폰 거치대여서 그랬다.
심지어 상황마다 딱딱 나누어서 쓸 수 있도록 삼각대와 부착하는 기기가 다 있었다.
“이런 미친.”
“칭찬이죠?”
“그래, 칭찬이지. 기특하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껄껄 웃음을 터트리고는 거치대에 핸드폰을 설치해서 내려놓았다.
안대훈도 껄껄 웃었다.
수혁이 칭찬하면서 정수리가 있던 부분을 쓰다듬어 주어서 그랬다.
보통 머리가 없는 사람 머리통 만지는 건 큰 실례가 되는 일이고, 안대훈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버럭 화가 날 텐데.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그저 기쁘기만 했다.
오히려 남은 머리도 죄 뽑아 버려서 까슬한 느낌이 전혀 없게 해 드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교수님.”
“어.”
그렇게 설치를 마치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다시 우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 소음이 살짝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동하는 중인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옆에는 방금 들은 대로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소아과 3년 차 김새롬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요.”
“말씀 낮추시죠, 교주님. 저는 십자가 영상 보고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 소린지.”
수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네놈 새끼라면 필경 알고 있으리란 확신을 갖고서였다.
진심이 잔뜩 담겨 있었기 때문에 안대훈은 바로 수혁이 지금 이 상황을 진짜로 언짢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진짜야?”
“네.”
그래서 모르쇠를 쳤다.
‘진짜야?’
[진짜 같아요.]
심지어 바루다도 속일 수 있을 만큼이나 대단한 능력이었다.
‘수상한데…… 십자가? 십자가는 대체 뭐지.’
[저라고 알겠습니까? 종교의 영역은 제겐 그냥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건 그렇지.’
[하여간 이제 신생아 중환자실이군요.]
뭔가 더 추궁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신생아 중환자실이었다.
안에 들어가는 절차가 꽤 복잡해서 화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보고 있다니 멀미가 생길 거 같아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평화로운 몽골 초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몽골이라고 하면 그저 칭기즈칸밖에 떠오르는 게 없는 사람이 수혁이었던지라 보면서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저기 어딘가를 칭기즈칸이 달렸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진짜 삭막한 인간입니다, 수혁도.]
‘넌 뭐 다르냐?’
[저랑 비교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문제 아닐까요?]
‘하긴 그것도 그래. 근데…… 난 도시가 좋아.’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대화도 그저 개소리의 연장일 뿐이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이제 들어왔어요.”
“아, 아냐.”
“풍경 진짜 이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모처럼 가셔서 오늘 딱 하루 쉬신다고 들었는데.”
“아니, 아냐.”
그걸 보면서 하윤은 연신 사과를 해 댔다.
하윤은 아무래도 수혁보다는 훨씬 감성적으로 발달한 사람이고, 그래서 내가 저기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알겠어서 그랬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이 풍경에 대한 감상은 옛날옛적에 끝낸 참이었다.
진짜로 아쉬움이 없었다.
그저 환자나 봤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하는데, 그게 하윤이나 소아과 김새롬 선생에게는 감동으로 다가갔다.
‘역시 교주님은…….’
‘진짜 은혜로우시다.’
둘은 제멋대로 착각한 채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사실 어린 나이에 발병하는 병일수록 외양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법이었다.
그런 견지에서 미루어 볼 때, 눈앞의 환아는 사실 그리 커다란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응애애애애애!”
하지만 울음소리부터가 좀 이상했다.
비단 현장에서 듣기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몽골의 밤하늘 아래서 듣기에도 그랬다.
“음량 살짝 낮출까.”
“네.”
“울음소리가 되게 날카롭네.”
“네. 애들이 원래 이렇게 울까요?”
“아니, 이렇게 울면 부모님들 다 우울증 걸리지 않겠냐.”
“하긴 그렇겠네요.”
날카롭기 그지없는 울음소리였다.
피치가 높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한번 들은 사람은 좀처럼 잊기 어려울 거 같은 그런 울음이었다.
문제는 수혁과 바루다마저 이런 울음을 들어 본 적은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데이터를 뒤져 봐도 이 비슷한 소리도 없었다.
[공부 좀 더 하지.]
‘책 본다고 소리가 들리냐?’
[그럼 유튜브라도 보든가.]
‘이 새끼가 진짜.’
둘은 서로를 탓하며 아이를 살펴보았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있지는 않았다.
우선 외양은 정상이거나 한없이 정상에 가까워서 그랬다.
뭐가 되었건 외양을 해칠 만한 유전자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일단 그제까지는 별문제 없었다고 합니다.”
김새롬이라 이름을 밝혔던 레지던트가 입을 열었다.
자연히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제부터는 문제가 생겼군요. 어떤 문제죠?”
“수유 곤란입니다.”
“수유 곤란이라…… 어떤 식으로요?”
수유 곤란이란 말 그대로 젖을 빨기 어렵다는 걸 뜻했다.
이걸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은 너무 많아서 지금 당장은 나열할 이유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수유 곤란의 정도와 양상이었다.
“일단 조리원 기록을 보면 전혀 수유가 안 된다고 합니다. 아예 빨지를 않았다고 해요.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할까요?”
“갑자기?”
“네.”
“으음.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
멀쩡하다가 젖을 못 빨 정도로 기운이 없어지는 건 드문 일이지 않나.
아예 못 먹었다면 모를 일이나, 지금 봐선 그것도 아닌 듯했다.
탈수야 와서 개선이 되었다고 해도, 일단 체중이 거의 정상처럼 보여서였다.
만약 처음부터 수유에 문제가 있었는데 발견을 이틀 전에 했다면 저런 모양이 아닐 게 뻔했다.
아니, 죽었을 수도 있었다.
신생아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여서 그랬다.
“또?”
“보면…… 아이 근 긴장도가 살짝 증가해 있습니다.”
“아, 그렇네.”
아이는 본래 평상시에는 힘을 주지 않는 법이었다.
애초에 갓난아이는 자기 몸을 가눌 수 있을 만큼 근육도 없었고.
그런데 이 아이는 화면을 통해 봐도 어느 정도 힘을 꽉 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병원에 왔으니 긴장해서 그렇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면 수혁은 그 친구의 머리통을 한 대 정도 후려칠 용의도 있었다.
긴장도 뭘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해당 사항이 없었다.
“또?”
그리고 이것만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았다.
수혁은 속으로 갑자기 발생한 수유 곤란과 근 긴장도 증가를 문제 목록에 추가하면서 물었다.
김새롬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네, 교수님. 심부건 반사가 저하되어 있습니다.”
“어디 한번 볼까요?”
“네.”
소아과 레지던트 3년 차쯤 되면 이런 검사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는 법이었다.
태화에서 수련을 받았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은 그리 만만한 병원이 아니었다.
덕분에 수혁은 그야말로 정석에 가까운 검사와 그 결과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확실히 저하되어 있군.’
[정리하면 수유 곤란과 함께 근 긴장도 증가…… 음?]
‘왜.’
[지금은 근 긴장도가 사라졌는데요. 오히려…….]
‘어…….’
바루다와 함께 그 결과도 문제 목록에 추가하려는데, 바루다가 이변을 발견했다.
수혁은 그걸 자기 입으로 옮겼다.
“김새롬 선생?”
“네.”
“아이, 근 긴장도를 좀 봐줄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어.”
누가 봐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이상한 변화였다.
아까는 분명 힘을 꽉 주고 있던 아이의 몸에 힘이 풀려 있었다.
정상 수준으로 풀어졌다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터였다.
오히려 좋아했을 텐데, 이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근 긴장도가 저하되어 있습니다.”
“간호 기록 확인하거나, 담당 간호사와 소통하세요. 혹시 이게 반복되고 있는 문제인지, 물어보세요.”
“네, 교수님. 음.”
김새롬은 아직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또 뭘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수혁이 딱 지시를 내려 준 덕에 막막한 얼굴로 서 있는 대신,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음 하더니, 기록을 살피는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보면서 수혁은 딱히 기록된 것은 없겠구나 싶었다.
‘하긴 오늘 왔다고 했지.’
[네, 하지만 얼굴을 보면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응, 그런 거 같은데.’
[기다려 보죠.]
하지만 기대를 접기엔 좀 일러 보였다.
뭔가 아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렇게 축 처질 때가 있기는 했어요. 근 긴장도란 생각은 못 했고…… 못 먹어서 그런 거라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아녜요. 저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명색이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인데요.”
“아무튼, 교수님. 이렇다고 하는데요.”
과연 짚이는 게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혁은 바로 답을 해 주는 대신 고민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고민과 동시에 바루다와의 대화에 돌입했다.
‘다시 정리하면…… 갑자기 시작된 수유 곤란과 근 긴장도의 강화와 약화의 반복 그리고 심부건 반사의 저하를 보이고 있어.’
[지금 보이는 증상은 신경 증세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근육의 문제라면 근 긴장도가 올라가는 시점이 설명이 되지 않아.’
[그렇다고 수유 곤란의 원인을 구강 구조나 기도 또는 식도의 구조적 이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수유 노력이 없어진 것이니까요.]
‘그렇지.’
남들이 보기엔 이 추론도 너무 빠른 것이었다.
중간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건너뛴 느낌이 들지 않나.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실로 적절한 추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구조적 이상을 배제하고, 근 긴장도 변화를 단서로 잡아서 내린 결론이라서 그랬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이 신경 증상이 어디서 왔는가였다.
만약 날 때부터 그랬다면 지금 올 게 아니라, 조리원을 가기 전에 아이를 분만했던 병원에서 바로 보냈을 터였다.
APGAR 검사를 비롯해 태어나자마자 거치는 이런저런 검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
‘시간차를 두고…… 발생할 수 있는 이상이라.’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괜찮다가 나와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겠죠.]
엄마 배 속과 바깥의 환경 차이는 극심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거의 모든 것이 바뀐다고 보면 되었다.
그중에서 제일 극적이었던 변화는 대체 무엇일까.
수혁은 그걸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으음.”
“으으음.”
그리고 교주가 끙 하고 앓기 시작하자, 나머지 신도들도 다들 비슷한 얼굴이 되어 수혁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