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1화 몽골이랑도 (4)
일단 정리가 필요한 것은 이랬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다가 나왔을 때, 무엇이 변했을까.
[가스 교환 하는 방식이 바뀌었죠.]
‘그래. 탯줄을 통해 산소가 포함된 엄마 피를 받다가 이제는 폐 호흡을 하게 됐지. 하지만 이건…….’
[호흡 변화로 인한 증상이었다면 바로 증상이 도드라졌을 겁니다.]
‘그렇지.’
호흡은 일단 아니었다.
대개 호흡기 이상에 의한 증상은 아주 즉각적이어서 그랬다.
그만큼 예후도 좋지 않았지만, 진단 자체는 빨리 되는 편이었다.
수혁과 바루다는 서로 간의 합의에 의해 호흡을 빠르게 배제하고 다른 것을 떠올렸다.
[다음은 먹는 거죠.]
‘그렇지. 탯줄을 통해 먹다가…… 이제는 모유나 분유를 먹어야 하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양분을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는 비슷합니다.]
‘그 길이 다르잖아. 이건 소화기를 통한 것이고, 배 속에서는 그냥 핏줄로 받으니까.’
[그렇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음.’
다음은 역시나 음식이었다.
태아는 양수만 먹고 싸기를 반복하지 않나.
그에 비해 일단 태어나면 모유가 되었건 분유가 되었건 하여간에 뭔가 다른 걸 먹어야 했다.
말하자면 에너지를 입으로 섭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때 뭐가 달라질까.
‘영양소 자체는…… 어차피 엄마한테 받던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양이야 좀 다를 수 있어도…….’
[네, 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소는 정해져 있죠.]
영양소는 아니었다.
이건 바루다의 말대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양소를 섭취하는 과정은 변했지. 소화기계의 문제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환아가 태어난 지 좀 되었습니다. 체중 증가도 정상적으로 보였고요. 즉 소화기관에서 무언가를 소화시키고 영양소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선천적인 이상은 없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것도 그렇네. 그럼…….’
[시간이 경과 되고 나서야 문제가 생겼다는 게 커다란 힌트 같은데요. 더 집중해 보시죠.]
‘나만 해? 너도 해.’
[저는 아까부터 집중 상태입니다.]
추론은 늘 그렇듯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나오는 것이 없었다.
아직은 그랬다.
“음.”
그동안 수혁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이게 다였다.
그런다고 안대훈이나 우하윤 그리고 김새롬 선생의 신앙심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안대훈은 주교였고, 우하윤은 바로 그 밑의 존재를 자처하고 있는 사람 아닌가.
김새롬은 신앙을 가진 지는 오래지 않았으나, 그 계기가 특별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수혁의 뒤로 아로새겨져 있던 몰타 십자가가 선명히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으음.”
“으으음.”
물론 민망한 시간이기는 했다.
뭔가 나올 거 같은데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혁의 신음을 따라 했다.
‘잠깐 시간이 걸렸다고 했지.’
[네.]
‘시간이 걸렸다는 건…… 지금 환아에게 문제를 일으킬 만한 무언가가 천천히 쌓였다는 걸 의미할 거야. 그렇지?’
[네. 문제는 그것이 외부 요인인지, 내부 요인인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아, 너는 조리원이 뭔지 모르는구나. 조리원은 이래. 알아듣겠냐?’
[아, 네. 각자 가정으로 가기 전에 먼저 단체 생활이 뭔지 배우는 곳이군요.]
바루다가 이해한 조리원의 개념은 좀 이상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생각에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요는 지금 저 아이가 있던 조리원에 저 아이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아닌가.
그것만 이해했으면 뭐 나머지는 상관없을 거라 여겼다.
[그렇다면 외부 요인일 가능성은 적겠습니다. 다 같은 자극을 받았다면 다들 비슷한 증상을 보였겠죠.]
‘그렇지.’
아마 조리원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혔을 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애들이 조리원에서 잘못되었다는 건 정말로 큰일이었으니까.
[그럼 내부 요인일 텐데…….]
‘내부 요인인데 시간이 걸렸어. 일단 독소나 기타 등등이라고 생각해 보자고. 이런 거 특징이 뭐지.’
[악영향을 나타내려면 일정 농도 이상이 되어야 하죠. 어?]
하여간 둘은 그러한 논리로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내부 요인일 거라 추론하기 시작했다.
워낙 이런 식의 추론에 익숙한 둘이다 보니 금세 가지를 뻗어 나갔다.
그리고 곧 유의미한 질문과 답이 조금씩이지만 튀어나왔다.
‘농도…… 그래, 농도가 쌓여야 해. 내부의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독소…… 일단 독소라고 하고. 독소가 농도가 쌓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하지만 내부 요인 중 독소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먹는 건 모유와 분유를 먹었다고 했어. 이 둘 중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분유라면 어찌 보면 외부 요인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분유는 조리원에 있는 아이들이 다 먹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모유가 남는데, 모유를 먹으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야만 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모유가 되었건 분유가 되었건…… 어찌 되었건 목표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것이지.’
[그건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아이의 체중은 수유 곤란이 발생하기 전까지 제대로 늘었어요.]
‘그래, 목표는 달성했어. 하지만.’
[하지만? 아……. 모유나 분유가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영양소가 되려면 분해 과정이 필요하죠.]
‘그렇지. 맞아.’
수혁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들뜬 얼굴이 되어 가고 있다, 이건데.
사실 변하고 있다고 해도 남들이 알아채기엔 어려울 정도로 경미한 변화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 중엔 안대훈과 우하윤이 있었다.
“쉿.”
“수멘.”
벌써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한다는 것을 다 알아차렸다.
해서 안대훈은 몽골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수멘을 중얼거렸고.
우하윤은 입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나는 찬양을 하고, 다른 하나는 방해 요소를 제거했다, 이 말이었다.
‘분해 과정에서는 부산물이 발생하지.’
[그리고 우리 몸은 그 부산물을 제거합니다.]
‘만약 제거가 안 되는 부산물이 있다면?’
[문제를 일으키겠죠.]
‘그중에서 이런 식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부산물은 뭐가 있지?’
그사이 수혁은 계속 문답 형식을 띤 추론을 이어 나갔다.
마지막 질문은 정말로 순수한 질문이었다.
수혁이 제아무리 경험이 쌓였고 또 이런 식의 훈련을 통해 후천적 천재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해도, 너무 세세한 것까지는 다 기억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잠시 분석합니다. 어지러울 수 있어요.]
‘오케이. 옆에 대훈이 있어.’
[의지가 되는 후배로군요.]
‘어, 어…….’
[왜요.]
‘눈 감고 잡았더니 대머리 잡고 있는 것 같아.’
[뭐가 중요합니까. 안 넘어지면 됐지. 돌아갑니다.]
‘어.’
멀리 숨어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강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남의 머리를, 그것도 머리카락이 없어 손대는 것이 무척 실례가 된 머리를 부여잡다니.
근데 또 대머리 아저씨는 그게 좋은지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붉히고 있었다.
그야말로 또라이들의 향연 같은 광경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바루다는 맹렬하게 돌았다.
수혁의 뇌를 풀가동해서.
[세 가지 대사 결과물이 있습니다.]
‘으, 뭐지?’
[류신(Leucine), 아이소류신(Isoleucine), 발린(Valine)입니다. 이 셋 모두 근긴장 저하 및 신경학적인 증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셋 중 무엇이냐를 찾는 게 문제가 될까?’
[아뇨, 아닙니다. 이거 찾아 주면 대번에 맞힐 거라 생각했는데…… 하여간 이쪽으로는 참 약하군요. 대사 질환을 찾아다니기라도 해야 하나.]
‘뭐야. 뭔데.’
분석을 마친 바루다는 아주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의 껄껄 웃는 수준이었는데, 아주 당연하게도 그 얼굴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수혁은 기분이 그리 좋지 못했다.
명백히 비웃음이어서 그랬다.
게다가 의도도 뻔했다.
‘이 새끼 이거 오랜만에 건수 잡았네.’
[수혁도 그러지 않습니까? 아예 감도 못 잡았죠? 저는 건수 잡았는데. 손이 없나. 아닌데. 손이 없는 건 전데.]
‘후. 일단 말해. 너 잘난 거 인정이니까. 지금 애들 기다리고 있잖아.’
[오케이, 오케이. 알았습니다.]
바루다는 오케이라고 한 후에도 다시 한번 껄껄 웃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다시 열었다.
[이 세 개의 대사 부산물을 분해하는 건 디하이드로제네이즈 복합체입니다. 자세히 들어가면 디카복실레즈, 아실 트랜스퍼레이즈, 플라보단백질 리보아마이드디하이드로제네이즈가 있습니다. 설마 이제는 알겠지.]
‘더 모르겠는데? 이런 걸 그냥 듣고 어떻게 알어. 대사 질환 전문가도 몰라, 인마.’
[인정합니다.]
바루다도 사실 알고 있긴 했다.
지금 자신이 말하는 것은 생화학 레벨의 얘기고 사실상 임상 의사가 다 알아듣기란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수혁은 알아야죠. 저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건 반성한다.’
하지만 바루다는 일단 뭐라고 한 후에야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저 복합체에 문제가 생기면 류신(Leucine), 아이소류신(Isoleucine), 발린(Valine)이 증가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환아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 발생하죠.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소변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세 개의 대사 부산물이 혈중에서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요중에도 쌓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모르면 실망할 일이 아니라 혼나야 할 일입니다.]
‘소변?’
[혼낼까?]
‘아니, 잠깐. 소변. 소변. 아. 알겠다.’
[이제야 아셨군. 어? 왜 입을 열어?]
소변까지 듣고 나자 딱 알겠단 느낌이 왔다.
대사 질환이 수혁의 약점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화학적인 레벨에서의 얘기 아닌가.
“흐흐.”
너무 어려웠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바루다가 놀린 게 짜증이 나서 그랬을까.
입을 열자마자 수혁도 깜짝 놀랄 만큼 음산한 웃음소리가 튀어 나갔다.
그 순간 저 멀리 누군가가 도망치는 것이 보였는데 어두워서 얼굴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수혁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은 놀라기는커녕 그저 기대감 어린 눈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미 수혁의 기행에 놀라기엔 너무 많은 경험이 쌓여 있었다.
“김새롬 선생님?”
“네.”
“지금 바로 아이 소변 냄새 맡아 봐요.”
물론 다짜고짜 오줌 냄새 맡아 보라는 말에는 흠칫 놀라긴 했다.
특히 현장에 있던 우하윤과 김새롬은 그랬다.
“어허, 당장 맡지 못할까.”
하지만 안대훈은 확실히 비범한 구석이 있어 지엄한 얼굴로 둘을 꾸짖었다.
교주에 주교가 합세한 상황이니만큼 평신도로서는 도저히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해서 둘은 급히 환아의 기저귀를 뒤집어 까고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곤 눈이 동그래진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단풍 시럽 냄새가…….”
“설탕 타는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