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63화 (663/1,303)

663화 군의관 김인수 (1)

태화 봉사단은 그렇게 몽골 초원에서 노닥거리다가, 병원에 복귀한 후 울란바토르 초원으로 향했다.

봉사가 생각 외로 진짜 힘들기는 했는데, 다 끝난 마당이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좋았다.

특히 전에 한번 백강혁에게 데인 적이 있던 이현종, 신현태, 김승규는 더더욱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백강혁이 수혁하고만 있으면 자리를 자꾸 피해서 원래도 수혁 바라기라 늘 같이 있고 싶은 이현종, 신현태는 진짜 편하게 지낸 덕이었다.

그렇게 한번 성질이 꺾여서 그랬을까?

김승규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좋구만.”

“좋아.”

“아주 좋았어.”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벌어진 현상에 관한 분석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셋이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수혁 덕분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셋은 연신 수혁을 바라보며 엄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김승규도 합세했군요.]

‘좋은 일이지. 같은 편일 땐 제일 든든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그렇죠. 분석 결과 태화에서 물리적인 힘은 제일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 그 백강혁 교수님은 머릿속에 칩은 없는 것 같아?’

[아닌 거 같습니다. 저랑 패턴이 달라요. 그리고 저 사람이 명의로 이름 높인 게 굉장히 오래전인데…… 그때부터 우수한 인공 지능이 있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군. 그럼 그냥 천재구나.’

[네.]

수혁은 셋을 바라보다가 또 백강혁을 떠올리다가 이내 비행기에 올랐다.

올 때 닥터 콜을 시원하게 해결해서 그랬을까?

가는 길도 일등석에 앉을 수 있었다.

“와, 저놈 혼자 가네.”

“야, 인마!”

“의리가 없네.”

그러자 방금까지 엄지를 휘두르던 세 교수가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참 얄팍해서 좋았다.

알기 쉬운 사람들 아닌가.

겉 다르고 속 다른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 긍정왕 이수혁의 평가였다.

그렇게 태화 봉사단이 몽골에서의 빡빡했던 일정을 마치고 이제 막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려는 찰나, 고뇌에 빠진 사람이 하나 있었다.

“돌겠네.”

군의관 김인수였다.

사실 어떻게 보면 군의관 중에서는 되게 잘 풀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몇몇 운 좋은 친구들이 간 공중 보건 의사만큼은 아니지만, 하여간 내과 전문의에게 공군 군의관이라는 자리는 썩 괜찮은 자리라서 그랬다.

가끔 육군 군의관으로 GOP 근무 뛰는 동기를 만나면 부럽다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해군으로 빠져서 청해 부대로 가는, 그러니까 소말리아 근해를 돌아다니는 배를 타게 된 동기랑은 아예 연락도 끊어진 지 오래였다.

듣자니 해적이 뜨면 고속 기동하느라 토하고, 어쩌다 기항하면 부리나케 밀린 연락하고 외장 하드 채우느라 바쁘다고 했다.

그러니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일단 예산 많은 공군에 배정된 것부터가 천운이었고, 동시에 그래도 산이나 오지가 아닌 진주라는 도시에 배정된 것은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좋은 일이라 여겨졌다.

“아이, 대체 뭐야. 이거.”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였다.

너무 화가 나는 일이 생겨서 그랬다.

“김 대위님. 왜 그러십니까?”

순진한 얼굴의 의무병이 하나 다가와 물었다.

나이가 꽤 많은 친구인데, 나중에 전역하면 의전원 가는 게 꿈이라 했다.

그래서 그런가, 말을 꽤 잘 듣는 편이었다.

관심도 많고.

하지만 관심이 많다고 해서 의학적인 지식이 많은 건 또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말이 안 되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야, 이거…… 아이고.”

김인수는 뭔가 화를 내려다 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대학 병원에 있었을 때라면 지금쯤 적절한 표정과 함께 고성을 질렀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김인수는 군의관이 된 지 꽤 오래된 참이었다.

하루하루 갈려 나가는 삶을 살다가,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근무 시간에 체력 단련 시간까지 주는 삶을 살게 된 마당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화가 많이 줄었다.

“일단 수액 있는 대로 다 들고 오라고 하고…… 간호 장교들도 다 오시라고 해.”

“아, 네.”

“그리고 밖에 서 있는 애들 중에 이런 소변 본 애들…… 그냥 기다리지 말고 다 들어오라고 해.”

“네!”

해서 일단 의무병을 보내고, 지금 자신을 무척 당황스럽게 하고 있는 장본인인 환자를 마주 보았다.

환자이면서 동시에 훈련병이었다.

김인수가 배치된 부대가 진주공군교육사령부라서 그랬다.

생전 처음 머리를 빡빡 밀게 된,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환경에 놓인 훈련병의 눈빛이 심각할 정도로 빠르게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어, 훈련병. 너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일단 편하게 있어.”

“아, 네! 감사합니다.”

“억지로 소리 지르지도 말고. 너 아퍼, 인마.”

“네!”

“어휴.”

김인수는 그런 훈련병을 편하게 해 줄 요량으로 따뜻하게 말을 걸었지만 별로 소용은 없었다.

아마 지금이 제일 군기가 빡세게 들고 있는 시기라 더 그럴 터였다.

김인수도 의사가 아니라 대위로만 보이지 않을까?

무리는 아니었다.

“하여간…… 너 그렇게 소변 나온 거 얼마나 됐다고?”

“어제부터 그랬습니다!”

“어제부터…… 어제 뭐 하고 나서 그렇게 됐어?”

“그…….”

훈련병은 저도 모르게 밖을 내다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것은 훈련병에게도, 김인수에게도 대충 칠한 하얀 벽뿐이었다.

하지만 김인수는 지금 훈련병이 누굴 생각하며 눈치를 보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진료실이야. 너 훈련병으로 온 게 아니라 환자로 온 거야. 눈치 보지 말고 말해.”

아마 조교나 부사관들 눈치를 보고 있을 터였다.

그러다 일 친 게 하루 이틀인가.

김인수는 이제 겨우 2년째이지만, 그래도 도가 튼 마당이었다.

해서 다 안다는 얼굴로 말했다.

효과는 있었다.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무슨 얼차려?”

“저기 너 친구 보이지? 참고로 쟤가 이미 다 불었다. 너한테는 확인만 하는 거야.”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습니다.”

“얼마나?”

“그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날씨에…… 실내에서 선풍기도 끄고 그 짓을 했다 이거지?”

“어…….”

“됐어. 저기 누워. 수액 오면 일단 수액부터 놔 줄게. 그 전에 저기 물 있지.”

“네.”

“물 마시고 있어.”

김인수는 벌써 세 명째, 그렇게 넓지도 않은 내과 진료실에 눕히고 있었다.

이 친구들을 진료실에 오게 만든 증상은 다름 아닌 갈색 소변.

소변 검사도 할 겸, 직접 색도 볼 겸 해서 싸서 가져오라고 했더니만 갈색도 표현이 점잖은 것이었다.

콜라 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 녀석들이 있었다.

‘이런 망할.’

이제는 검사실로 옮겨 갔지만,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거 같았다.

‘훈련소에서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하더니…….’

훈련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상 가혹 행위인 셈이었다.

더운 날, 안에 가둬 놓고 선풍기도 안 틀어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다니.

이렇게 해 버리면 그저 힘들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근육이 녹아내릴 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아까 김인수가 보았던 소변이었다.

에이, 말이 좀 심하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근육이 녹으면서 발생한 마이오글로블린이라는 성분이 소변에 섞여 나와서 색이 그리된 것이었다.

‘신장 나가는 거 아냐? 아이씨, 개후달리네.’

김인수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튀어나오려는 찰나, 아까 김인수의 소변 색깔 변한 애 다 들어오라는 말을 듣고 한 무리의 훈련병이 더 들어왔다.

“아우, 시발. 아니, 니들 보고 하는 말 아니고.”

당황한 나머지 30대가 된 이래 남 앞에서 갑자기 욕설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 험악했던 대학 병원에서조차 하지 않았던 욕설이었거늘.

과연 군대가 무섭기는 한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네도 쟤랑 같은 소대?”

“네.”

“그럼 어제 기합받았겠네.”

“네, 그렇습니다.”

“그럼 다 같이 소변 보고 온 거지? 컵 주고…….”

“네.”

“물 먹자. 물…….”

마이오글로불린이 섞여 나온다는 게 그저 색이 변해서, 보기 싫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마이오글로불린이 지나치게 높은 농도로 신장을 지나치게 되면 신장이 틀어막혀서 망가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럼 급성 신부전증이 오는데, 투석을 해야 하는 아주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었다.

전투 상황에서 발생했다면야 그런갑다 하겠지만 고작해야 훈련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다니.

‘아니……. 훈련은 전투 능력 향상을 위해서 하는 거 아냐?’

훈련하다가 애들 골로 가면 훈련 체계를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김인수는 애들 앞에서 또 시발이라는 말을 할 수 없어 속으로 시불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까 일 시켰던 의무병이 간호 장교 한 무리와 함께 들어오고 있어서 그랬다.

뒤에 보니까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동료 군의관들도 보였다.

‘마음은 고맙지만…… 진짜 의사가 필요한 상황이란다, 얘들아.’

여기가 나름 사령부다 보니 군인 수도 많고 또 장교도 많아서 병원급은 아니더라도 과가 꽤 다양한 편이었다.

이비인후과, 안과, 치과, 피부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등등.

거기서 지금 김인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래도 김인수는 태화에서 인격자로 불리던 사람이니만큼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고,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일단…… bun하고 cr 농도 확인해 주시고요.”

“네.”

“애들 싹 수액 답시다. 다 입원해야 해. 쟤 봐. 쟤는 상태가…… 어이구.”

그러나 일은 간호 장교들이랑 시작했다.

솔직히 다른 과 의사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저는 뭐 할 거 없을까요?”

마음씨 착한 이비인후과 군의관이 나섰지만 걸리적거릴 뿐이었다.

그래도 저렇게 나서는데 아무것도 안 시키는 건 좀 뭐해서 물어는 봤다.

“수액 달 줄 알아?”

“아, 네.”

의외로 네라고 해서 좀 놀랐다.

“어, 그럼 좀 달자. 애들이 너무 많아서.”

“네.”

“아, 그리고 나머지.”

“네,”

“어.”

“응.”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군의관들도 할 일이 있기는 했다.

지금이야 어엿한 전문의지만 언젠가는 인턴이었던 놈들 아닌가.

그 말은 곧 여전히 인턴 잡을 시켜도 된다는 얘기였다.

“너네는 폴리 꽂아 줘.”

“어?”

물론 그게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대개 인턴이 하는 일이란, 병원에서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하는 일 중에 그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변량을 정확히 체크하는 것은 필수였다.

환자가 한둘이면 자세히 문진이라도 하겠는데 너무 대량이지 않나.

이렇게 되면 하나라도 놓치는 일이 없게 조금 과잉 대응을 하는 게 더 옳아 보였다.

‘이현종 교수님이 늘 그렇게 말씀하시지.’

의학에는 과한 것이 없다.

이게 이현종의 지론이지 않나.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르침은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자자, 그럼 빨리 움직이자. 여기서 죽는 사람 나오면 안 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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