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화 군의관 김인수 (2)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산하 항공의무전대는 모처럼 정신없이 바빴다.
원래도 다른 곳에 위치한 의무전대에 비하면 바쁜 편이긴 했다.
훈련병은 다른 병사들이나 장교들에 비해 훨씬 많이, 또 자주 아플 수밖에 없기에 그랬다.
‘내가 여기 와서 진짜 많이 배웠지…….’
배치에서 군의관이 떴을 땐, 솔직히 그냥 싫었더랬다.
한창 커리어 쌓아야 할 나이에 3년 허송세월하게 된 느낌이었고.
물론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배우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배움이라고 한다면, 교과서적인 치료가 늘 답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처음 봤던 환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
다른 군의관들이 다 그러하듯 김인수도 처음 내과 진료실이랍시고 안내받은 곳에 들어섰을 땐 그저 충격과 공포에 빠졌더랬다.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 김인수는 더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화에 있다 와서 그랬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던 곳에 있다가 설압자와 청진기 그리고 이상한 책상만 있는 곳에 왔으니 기분이 어떻겠나.
거의 이계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학 병원에서 3년 차 치프로서 날고 기던 가락이 있고 또 자부심이 있어서 진료는 열심히 봤다.
‘아직 항생제 먹을 정도는 아냐. 소염제로 보자.’
‘기침? 너무 기침 억제하면 좋지 않아. 좀 더 지켜보자.’
‘일단 물 많이 먹고, 푹 쉬고. 그래야 나아.’
문제가 있다면 상대를 군인, 그것도 아무 자유도 주어지지 않은 훈련병이 아니라 사회인이라 취급했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약이 밀가루인가 했지.’
소염제를 줘서 보낸 친구는 어김없이 항생제가 진즉에 필요했을 지경이 되어 돌아왔다.
기침약 대신 다른 약으로 조절하고자 했던 친구는 거의 폐병쟁이처럼 기침을 하며 돌아왔다.
물 많이 먹으라고 했던 친구는 아예 들어오면서 김인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한 달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보내던 김인수는 마침내 이래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고, 대대장에게 부탁해서 훈련병들이 지내는 숙소를 둘러보게 되었다.
‘시벌…….’
김인수는 장교라 괴산에 있는 군사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거긴 선진 병영이라 개인 침대가 있고 관물대도 널찍했다.
태화 말고 다른 병원에서 온 사람 중에서는 병원 당직실보다 여기가 낫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괜찮았다.
하지만 훈련병들이 지내는 건물은 북한인가 싶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우선 어깨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만 했고, 침대 따위는 없이 이상한 깔개를 깔고 자야 했다.
무엇보다 딱 방에 들어가자마자 퀘퀘한 냄새가 났다.
‘아니, 사람을 제대로 씻게는 해 줘야 낫지.’
요약하면 잘 씻지도 못하고, 훈련받아 피곤한 상태의 아이들이 기침하는 환자 바로 옆에서 자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무슨 기침 연회장인가 싶을 정도로 각종 이상한 감염병이 창궐했다.
하여간 현실을 알게 된 김인수는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좀 과잉 진료를 하자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머리가 소염제를 처방하면 손은 항생제를 처방하는 식이었다.
“자자, 빨리빨리. 수액 줍시다. 시원찮으면 이뇨제 주고!”
그런 상황인데 감기보다 훨씬 심각한 횡문근융해증에 대해서는 대체 얼마나 심각하게 대응을 하겠는가.
김인수는 퇴근도 하지 않고 병실에 서서 이런저런 오더를 내리고 있었다.
상급자가 이러고 있으니 기껏해야 소위, 그러니까 올해 발령받아 온 간호 장교들 또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정도 했으면 다 좋아지겠지.’
다만 최선을 다하는 것에 비해 마음은 안일하게 먹고 있었다.
설마 애들이 아무리 증상이 저래도 20살, 21살짜린데 수액 주고 이뇨제 주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나빠질까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는 건 다시는 훈련병들에게 이런 가혹 행위에 가까운 훈련을 하지 말라는, 일종의 시위였다.
김인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늘은 비오큐로 돌아가는 대신, 그냥 빈 병실에서 냉동이나 때려 먹고 자야겠다 결심하고 있었다.
“김 대위님.”
아니, 결심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자고 있었다.
당직도 아닌 대위가 환자 보겠다고 병실 달라는데 안 줄 대대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오히려 갸륵한 마음에 감동한 나머지 냉동을 쏘고 돌아갔더랬다.
해서 TV 보면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밖을 내다보니 의무병 하나가 서 있었다.
아까 긴장감 하나 없이 나갔던, 전역하면 의전원 들어가는 게 목표인 그 녀석이었다.
‘근데 어째 저 새끼 얼굴이.’
의전원을 생각할 만큼 집에 돈도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늘 여유를 잃지 않는 놈이었는데, 오늘은 좀 핼쑥해 보였다.
“왜?”
해서 김인수는 서둘리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병사 하나가 좀 이상해서요.”
“이상해?”
김인수는 하마터면 그게 노티냐? 라고 할 뻔했다.
네가 보호자야? 의사 아냐? 뭐 이런 말들을 줄줄이 늘어놓을 뻔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앞에 선 애는 의료진이 아니라 그냥 이 보직에 얻어걸린 병사일 뿐이었다.
의료에 대해서는 개뿔도 몰랐다.
의료진이라면 모르는 게 죄가 될 수도 있는데, 아닌데 죄를 물을 수 있나?
“일단 가자.”
“네.”
김인수는 빠르게 슬리퍼를 신고 병실로 향했다.
“어…….”
딱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인수는 병사가 이상하다고 했던 환자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으…….”
일단 변 냄새가 났다.
실금을 한 모양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다른 병사들은 그저 코를 싸쥐고 있었다.
말이 환자지, 사실 예방적으로 입원해 둔 녀석들이다 보니 당장 몸이 아픈 것보다는 냄새에 반응했다.
초짜 간호 장교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임관하고 바로 대학 병원, 그러니까 수도 병원이나 기타 병원급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저 이쪽으로 왔으니 실제 심각한 환자를 본 경험은 없다고 봐야 옳았다.
‘이상하다. 이거, 이상해.’
하지만 김인수는 열이 확 오를 정도로 당황한 상황이었다.
요독증이 심해지면 이런 식으로 설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김인수는 너무 급히 걷다가 슬리퍼가 벗겨졌으나 당장 자각하지 못한 채 환자에게 다가갔다.
소변줄을 통해 흘러나와 있는 양을 가늠하면서였다.
너무 적었다.
아니, 나온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름이…….’
이름표를 확인해 보니 윤종상이라는 이름이 딱 보였다.
해서 김인수는 일단 상대의 어깨를 치며 외쳤다.
“윤종상 환자분! 여기 어디예요?”
“어…….”
의식이 온전치가 못했다.
다행히 소리를 치니까 눈은 마주치는데 의미 있는 말은 단번에 내뱉지 못했다.
‘이거 너무 빠른데.’
횡문근융해증이 급성 신부전증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맞았다.
그래서 충분히 주의를 주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성 신부전증으로 진행해서 투석까지 하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했다.
만약 그런 케이스라면 김인수도 이렇게 당황하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여기, 여기 어디냐고!”
사람이 너무 안 좋은 말을 들으면 일단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지 않나.
김인수는 저도 모르게 아닐 거란 생각을 하면서.
아니, 그보다는 아니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외쳤다.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도 와 저 사람이 진짜 절박하구나.
사람 살리고 싶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진심이 통했던 걸까?
“어……. 벼, 병원 같습니다.”
환자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모든 징후가 요독증을 가리키고 있었고 또 급성 신부전증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 제일 중요한 소변이 나오고 있질 않았다.
‘호, 혹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수액이 안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은 채 옆을 돌아보았다.
야속하게도 물은 아주 콸콸 들어가고 있었다.
물은 들어가는데, 안 나오고 있는 상황.
달리 말하면 절망 그 자체라고 보면 되었다.
‘이 시발 훈련소 새끼들, 죽일 새끼들.’
이제 김인수는 화가 났다.
부정에서 분노로 단계가 이동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대상을 찾아 씩씩댔는데 양심을 다 어디로 팔아 버리셨는지, 단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자기들이 무리한 훈련을 아니, 가혹 행위를 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으면 한 명 정도는 자리를 지키는 게 도리 아닌가?
“으…….”
하지만 김인수는 계속 그렇게 분노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환자의 신음이 그를 분노에서 일깨우고 있었다.
병실을 두리번거려 보니, 새삼스럽게 김인수는 내과 의사였다.
그것도 이 병원에서 유일한 내과 의사였다.
‘오직 나만이 이 환자의 결말을 알고 있다…….’
김인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정신을 차렸다.
“군 병원 수배해요. 진해로 가야 되나?”
“아, 네. 연락해 보겟습니다.”
“아니, 잠깐만. 잠깐.”
일단 절차대로 진해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 환자를 돌아보니 상황이 너무 심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찜찜했다.
그저 횡문근 융해증으로 인한 증상이라기엔 너무 빠르고 또 너무 독했다.
‘이현종 교수님…….’
은사님의 가르침을 대입해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일단 군의관으로 살아온 지난 1년이 머리를 굳게 만든 탓이었다.
게다가 김인수는 애초에 이현종이나 이수혁급은 아니지 않나.
해서 이현종을 떠올렸더니 진단명 대신 다른 게 떠올랐다.
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니, 학회에서 만난 이현종이 무슨 불법 전단지 나눠 주든 해서 억지로 쥐여다 준 명함이 보였다.
앞에는 태화 통합진료센터 직통 번호가 있었고, 뒤에는 이현종이 친히 쓴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도통 모르겠는 환자가 있다면 연락할 것.]
무슨 제갈량의 지혜 주머니도 아니고.
이게 말이나 됩니까 하는 생각이 일단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한번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이현종이 받기를 기대했는데 수혁이 받았다.
그러니까 김인수 입장에서는 후배가 받았다는 얘기였다.
근데 생각해 보니 교수였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 저기 김인수…….”
애매할 때는 말끝을 흐리는 게 답이었다.
상대가 정해 주기도 한다는 걸 김인수는 이제 알았다.
“아, 치프 샘.”
“어어.”
다행히 수혁은 아직 권위주의에 머리가 녹지는 않았는지, 선배로 대해 주고 있었다.
김인수는 일단 운이 좋다는 생각으로 입을 놀렸다.
“저기, 여기 좀 어려운 환자가 있어서. 근데 너무 늦었는데…… 괜찮나.”
“좋아요. 어려운 환자라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그리고 좀 이상하단 생각도 들었다.
언제든지 좋다니?
뭔 개소리지 싶었다.
물론 이런 건 다 일반인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와서 별다른 환자가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됐군요. 김인수면 실력이 괜찮은 편이었으니…… 이렇게 전화까지 할 정도면 어려운 환자가 맞을 겁니다.]
‘좋아. 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