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65화 (665/1,303)

665화 군의관 김인수 (3)

수혁은 기대감 어린 얼굴로 수화기에 귀를 들이밀었다.

몽골에서 돌아온 김에 모처럼 병원이 아니라 집에 들어온 상황이었음에도 그랬다.

병명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수혁은 진료 중독 증세가 있었다.

뭔가 할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논문을 읽고 있었다.

“어……. 일단 어제 우리 부대에서 훈련이 있었는데. 더운 날씨에 실내에서 창문 닫고, 선풍기 끄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킨 모양이야.”

“무슨 북파 공작원이 있는 부대인가 보죠?”

하여간 잘됐다 싶어서 들고 있던 논문을 내려놓고는, 듣고 있으려니 뭔가 이상했다.

훈련이 아니라 고문이지 않나.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수혁으로서는 군에서 고문 훈련을 받을 만한 사람은 공작원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꽤 진지한 얼굴로 되물은 참이었다.

하지만 김인수는 하마터면 실소를 흘릴 뻔한 상황이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상상력이 존나 풍부하네.’

김인수는 후하후하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아까까지 가슴을 저미어 오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있었는데 아직 그거까지는 자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니, 훈련병이야. 신분이 중요한 건 아니고…… 20살이고 남자.”

“네. 그러면…… 횡문근 융해증이 발생했나요?”

“응. 대량 발생해서 다 입원시켜서 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경과가 너무 빨라.”

“빨라요? 그럼 급성 신부전증 증세가 있나요?”

“어. 소변이 안 나와.”

“투석할 수 있는 병원인가요?”

김인수는 이번에도 심호흡을 했다.

세상에 그냥 ‘사령부에 있는 항의전대에 투석기가 있을 수가 있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기 위해서였다.

후배긴 하지만 돌아가면 윗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김인수는 이미 수혁이 1년 차였던 시절부터 이 자식은 아예 다른 놈이라고 인정했던 사람이었다.

“아, 아니.”

“그럼 어디로 가야 되는군요. 가까운 병원이 어디죠?”

“진해.”

“진해……? 거기는 어딘데요?”

“진주.”

“둘 다 모르겠네. 진주에서 여기랑 진주에서 진해랑 비교하면 얼마나 차이가 나죠?”

“안 막히니까 시간은 거의 뭐 한 3배? 근데 투석하기까지의 시간으로 비교하면 오히려 태화가 짧을 수도 있어.”

“그럼 일단 출발하세요. 제가 말해 놓을게요. 오면 바로 일단 투석을 해야죠. 들어 보니까…… 이미 횡문근 융해증이 있기 전부터 신장이 그리 좋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이번 에피소드로 확 트리거가 된 상황이라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어, 어어. 그럴게.”

진주에서 서울로 환자 끌고 오라는 말은 사실 그리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김인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서 고민을 했던 것이고.

하지만 수혁은 늘 그렇듯 명확한 답을 내려 주었다.

[이유 불문 투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죽어요. 혹은 돌이킬 수 없는 합병증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

바루다가 있어서이기도 했고.

수혁이 애초에 그런 인물이기도 해서 그랬다.

“네, 그러셔야죠. 투석 안 하면 죽을 거 같은데요?”

“어어. 그래. 알았어, 그럼 일단…… 올라가면서 연락할게.”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근데 지금 10신데. 괜찮아?”

“저 늦게 자요.”

“어어, 그래.”

덕분에 덩달아 명쾌해진 김인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지시를 내렸다.

지시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느껴질 텐데, 요약하면 그냥 빨리 앰뷸런스 수배해서 데리고 가자는 것이었다.

간호 장교 하나가 멈칫거리며 대꾸했다.

“네, 그런데 대대장님께는…….”

“죽게 생겼…… 아니, 아냐. 너 안 죽…… 아, 못 들었구나. 하씨 의식이 왜 이래.”

답답한 소리를 해서 다시 화가 난 김인수는 이렇게 말하다 말고 환자의 눈치를 보았다.

정신이 나간 나머지 환자 앞에서 부정적인 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한데 환자는 그저 눈을 끔뻑이고 있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

이것도 이것대로 또 환장할 노릇이었다.

환자 상태가 나쁘다는 뜻이어서 그랬다.

‘시발, 시발.’

아직 말년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3년 차에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이야.

가슴이 답답한 것이 고구마 한 바구니는 삼킨 거 같았다.

“하여간! 거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환자 빨리 옮겨요!”

“아, 네!”

김인수는 그렇게 일을 진행 시킨 후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열 시면 사회에서는 한창 놀 시간이지만 군대에서는 연등 아니고서야 잘 시간이라서인가, 목소리에 어딘지 모를 졸음이 묻어 있었다.

“음, 김 대위?”

“네, 오늘 낮에 입원한 환자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아…….”

하지만 환자라고 하니까 정신이 나는지 금세 또렷해졌다.

공군사관학교 출신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위탁 교육으로 의사가 된 사람이라 그랬다.

물론 정작 전문의 따고 군에 돌아온 이후에는 직접 진료하는 것보다는 대개 이런 식으로 의료진을 관리하는 일을 하긴 했지만.

하여간 의사소통이 일반 군인보다는 좀 더 수월했다.

군인의 시각이 아니라 의사의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봐 주어서 그랬다.

“지금 급성 신부전증으로 진행하고, 빠르게 요독 증상이 발생하고 있어서요.”

“아. 저 갈까요?”

환자가 안 좋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존대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고맙고 온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마취과 의사가 여기 와서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큰 일이랄까?

해서 김인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그보다는 지금 빨리 이송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 어어. 그렇죠.”

김인수는 지금껏 꽤 열심히 진료를 보아 온 편이었다.

태화 출신 전문의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아니면 인성이 원래 훌륭해서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리 훌륭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아님에도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대대장이 받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렇다 보니 김인수가 하는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태화로 가겠습니다.”

“네?”

하지만 태화는 좀 그랬다.

거긴 서울이지 않나.

“엄청 멀지 않나요?”

“바로 투석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합니다.”

“아……. 그게 되나요? 큰 병원인데.”

“네, 교수님 통해 연락을 해서요.”

“그거 고마운 일이군요.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하지만 대대장도 의사다 보니, 바로 뭐가 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대대장이 질척거렸다.

“아, 그런데…… 그.”

“네?”

“병사 부모님 연락을 어떻게 할까요?”

“아, 부모님. 소대에 맡기면 제대로 안 되겠죠?”

“일단 상황 설명이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 보통은 축소해서 말을 하죠.”

군에서 일어난 문제를 축소하는 건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지 않나.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어쩌네 하는 말들을 하는데, 그런 말을 자꾸 한다고 해서 지금 있는 문제들이 진짜로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안에 있는 이들은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국방부가 밖에다 대고 떠들어 대는 얘기만 믿고 있으면 안 되었다.

“그럼 우리 쪽에서 따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보호자에게 별거 아니고, 그냥 훈련 도중 좀 다친 거 같다는 말을 할 게 뻔했다.

그렇게 들은 보호자가 별 마음의 준비 없이 병실로 갔을 때 투석하고 있는 아들을 보면 어떻게 될까.

억장이 무너질 게 뻔했다.

그리고 비난의 화살은 엉뚱하게 항의전대로 날아올 공산이 컸다.

대대장은 이미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을 해본 바 있어서 절대로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김인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번호만 알아주시면…… 제가 앰뷸런스에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김 대위 감사합니다.”

“이거 잘되면 휴가나 좀 주세요.”

“그래요, 김 대위. 제가 책임지고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합의를 마친 김인수는 전화를 끊고 아래로 부리나케 달려 내려갔다.

병원 비슷한 시설이기는 해도 규모가 워낙 작아서 바로 앰뷸런스에 탈 수 있었다.

안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똥내가 풍겨 왔다.

이게 그냥 같이 가는 의료진만 맡을 수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환자도 냄새가 나는 모양이었다.

표정이 무척 좋지 못했는데 단순히 아파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윤종상 훈련병. 일단 좀만 참아요.”

해서 김인수는 곧장 이렇게 말을 했다.

한데 병사는 딱히 말이 없었다.

그저 김인수를 그대로 바라볼 뿐이었다.

말을 알아들은 거 같지 않았다.

‘좆됐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캄캄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 앰뷸런스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울려서 내려다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디쯤 오세요?>

수혁이었다.

한 줄기 빛을 바라본 느낌이었다.

희망이라는 말을 이제야 비로소 배우는 기분이었다.

“어, 수혁아.”

일단 전화부터 걸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을 거 같았다.

“네, 어디쯤이에요?”

“어…… 엄청 밟을 거거든? 그렇지?”

“네, 김 대위님. 3시간 찍어 보겠습니다.”

“어, 우리 앰뷸런스는 스타렉스라 나름 빨라. 3시간이래.”

“3시간…….”

수혁은 3시간이 빠른 거라는 말에 기가 찼다.

‘진주가 어디야, 대체.’

한국 지리에 서툴러서 더 그랬다.

하여간 김인수가 허튼소리 할 사람은 아니니만큼, 3시간이라고 하면 그쯤 오는 건 맞을 터였다.

‘그럼 그때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

[네, 투석실 연락했고…… 일단 이쪽으로 입원장 내고요.]

‘다 했어. 괜히 지금 왔나?’

[아뇨.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라 좋은데요?]

‘어, 나도 그래.’

수혁은 그렇게 해야 할 일을 계산하면서, 병원을 둘러보았다.

여기 오는 걸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수혁은 여기가 그렇게 좋았다.

“아, 근데. 수혁아.”

“네.”

“환자가 다른 것보다 의식 변화가 빠른 거 같아.”

“네? 의식 변화요? 그건 안 좋은데. 어떤 식으로요? 처져요?”

“아니, 오베이가 안 돼.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음, 별론데…… 혹시 지금 말 걸어 볼 수 있어요?”

“어? 어어.”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환자를 불렀다.

이번에도 역시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더 크게 불렀다.

“윤종상 훈련병! 괜찮냐고!”

“네, 조금 숨이 찹니다!”

그러고 나서야 답이 돌아왔다.

김인수는 역시나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수혁도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관점에서 이상하다고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숨이 차다는 말을 했다는 건…… 증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의식 레벨이 처지고 있다면…… 사실 그러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아까는 답이 없었어. 그렇다면 드라우지 한 상태일까?’

[그럼 바로 답이 나오는 것보다는 오히려…… 다시 되묻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겁니다. 데이터상 환자들은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렇네. 그럼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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