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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66화 (666/1,303)

666화 군의관 김인수 (4)

바루다가 여태 쌓아 올린 데이터의 양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질적으로도 어마어마해진 지 오래였다.

그저 문서로 된 것들만 이리저리 쌓은 것이 아니어서 그랬다.

수혁의 몸을 빌어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토대로 나름의 정리를 계속해서 해 나가고 있었다.

그 결과, 의식이 혼탁해진 환자의 행동 양식이 대략 이러이러하다는 것까지 꿰고 있었다.

“저기, 치프 샘?”

“어.”

그냥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수혁은 이미 환자가 의식이 혼탁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 정말 의식 레벨이 떨어지는 거, 맞습니까?”

“응? 어……. 그런 거 같은데…… 왜?”

물론 수혁이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김인수는 그렇지가 못한 상황이었다.

설마하니 전문의를 땄고 또 아무리 군의관이라고 해도 전문의 따고 완전히 허송세월한 건 아닌데 의식 레벨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게다가 이의를 제기한 것이 후배였다.

아마 김진용 같은 놈이었으면 대번에 버럭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인수는 일단 인품이 그에 비하면 퍽 훌륭한 편이었고, 동시에 수혁의 우수성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시발……. 아닌가?’

벌써부터 마음속에서 의심의 싹이 움터 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불안해진 김인수를 향해 수혁이 말을 이었다.

“아까 보니까…… 다시 물었을 때 환자 반응이 너무 명료했어요. 숨이 차다는 증상을 아주 명확하게 호소했습니다.”

“으음. 그건 그렇네.”

“혹시 지금 의식 레벨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의 판단 근거가 뭔가요?”

“그…… 오베이가 안 돼.”

“오베이라.”

쉽게 말하면 그냥 환자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거 같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단서이기는 했다.

이걸 토대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환자에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대강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냐.’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괜히 외국인 노동자 진료가 어렵겠나.

이게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의식 수준의 문제인지 당장 알 방법이 많지 않아서 그랬다.

물론 상대는 훈련병이니만큼 당연히 국적이 대한민국일 터였다.

한국어가 모국어라는 얘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다 잘 알아들을까?

얼마든지 변수는 있을 수 있었다.

‘어때?’

[못 알아들었을 때와 알아들었을 때의 상황 분석을 해 보면…… 차이는 이렇습니다.]

‘결국, 더 알아듣기 좋게 말을 했네?’

[그렇습니다.]

수혁은 김인수의 성량, 발음 등이 확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한 채, 물었다.

“혹시 환자 청력 괜찮습니까?”

“청력……?”

수혁이야 바루다와 충분히 토론을 한 상황이었지만.

김인수는 토론은 개뿔, 그냥 달리는 차 안에 있지 않나.

아무리 혼자 머리를 굴린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일단 김인수의 자질이 수혁이 미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군의관 와서 머리가 많이 굳어 버리기도 한 탓이었다.

아마 3년 차 시절의 김인수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더 나았을 가능성이 무척 컸다.

지난 2년 동안 김인수의 머리는 텅텅 비어 가고 있었다.

“청력은 왜……?”

하여간 깡통 같은 머리를 쥐어짜 봤지만 나오는 건 텅 소리뿐이었다.

대체 청력은 왜 물었는지, 그것만 궁금했다.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비참한 와중이었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까보다 어쩐지 좀 더 똥내가 진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너 설마 하는 얼굴로 환자를 돌아봤더니, 환자가 슬쩍 눈을 피했다.

‘진짜 의식은 괜찮은 건가.’

요독증과는 별개로 창피함을 인식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력이 뭔 의미가 있나 싶었다.

하여간에 이 환자는 급성 신부전증이고 그로 인한 요독증이니까.

“일단 확인해 보시겠어요?”

“어, 어.”

하지만 이수혁은 누가 봐도 천재였다.

그리고 김인수는 머리를 굴려도 텅 소리만 나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딱히 이 달리는 차 안에서 할 것도 없었다.

“저기, 윤종상 훈련병?”

해서 김인수는 환자를 불렀다.

수혁이 이 상황을 잘 볼 수 있도록 동승한 간호 장교에게 핸드폰을 맡긴 후였다.

“네.”

“음.”

그렇게 훈련병과 눈을 마주친 김인수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청력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이 컴컴해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에 막막했다.

“저기, 수혁아.”

“네.”

“청력 어떻게 확인해?”

“아. 거기 지금 많이 시끄러워요?”

“어? 엄청 시끄럽지.”

신기한 일이었다.

그냥 군용차량이 아니라 다른 차량이라고 해도 일단 군에서 쓰면 시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사제보다 무조건 옵션이 후진 게 들어와서 그렇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다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김인수가 알기로 이 앰뷸런스 가격이 꽤 상당했기에 그랬다.

“그럼 간이로 하죠.”

“어어.”

수혁의 말을 듣다 보니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시끄럽지 않으면 간이가 아닌 다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려서 그랬다.

하여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원래 개뿔도 모를 땐 그저 그렇게 하는 게 맞았다.

“옆에 나이 비슷한 사람 있나요?”

“운전병……?”

“그럼 운전병 귀에 대고 바스락 소리 내 보세요. 운전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어……. 그럴게. 괜찮아?”

통화는 영상 통화로 이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운전병도 충분히 이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록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운전대를 잡게 된 마당이기는 했으나, 평소 김인수는 나름 냉동도 사 주고 해서 병사들의 신임을 얻은 군의관이기도 했다.

아마 오늘도 병원까지만 급하게 가면 카드라도 내줄 터였다.

김인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김 대위님.”

“오케이. 그럼 뭐로 부스럭거리지.”

“보통 손가락으로 하는 게 좋아요. 강도를 본인이 기억하기가 좋아서요.”

“아하.”

갑자기 청력 검사가 시작되었다.

방식은 상당히 이상했다.

운전하고 있는 사람 귀에 대고 손가락을 비비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청력이란 상상 이상으로 좋아서 김인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손가락을 비벼야만 했다.

살짝, 아주 살짝 현타가 왔다.

‘어머니……. 아들이 전문의까지 따서 남의 귀에 대고 이러고 있습니다.’

만약 이 방법이 이비인후과 교과서에도 나오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면 현타가 덜 왔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나.

게다가 김인수는 수혁이 천재이면서 동시에 이현종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상당히 괴팍할 수 있다는 얘긴데, 실제로 들려오는 소문을 잘 살펴보면 이수혁은 좀 이상한 놈이었다.

‘놀리는 건 아니겠지.’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는 것을 넘어서 그냥 물리적으로도 긴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이런 의심도 들었다.

어쩌면 아무리 손가락을 살살 비벼도 다 들리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병사한테 그냥 비비고 있어요?”

그때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그랬기에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니……. 그건 ASMR이죠. 팅글 주시라는 게 아니라. 들리는지 확인해야죠. 한번 비빌 때마다. 무조건 강도 낮추면서요.”

“아.”

김인수는 귓불이 빨개진 채 다시 손가락을 비볐다.

같은 일을 두 번 하게 되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까처럼 막 현타가 덮쳐 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은 올바른 방법을 알아서 그랬다.

“들려?”

“네.”

“들려?”

“네.”

“들려?”

“네.”

“들려?”

“네?”

“오.”

그렇게 몇 번인가 비비다 보니 안 들리는 거 같은 지점을 찾았다.

생각보다 꽤 세게 비비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아까 했던 짓이 진짜 헛짓거리였다는 말이기도 했다.

해서 김인수는 낯빛이 더 붉어진 채로 훈련병에게로 향했다.

“들리면 말해.”

훈련병은 말이 없었다.

아픈 사람이 이러면 겁이 나는 법이었다.

“훈련병?”

“아, 네.”

혹시 그사이에 뭐가 어떻게 됐나 했던 김인수는 휴 하고 재차 입을 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목소리를 높인 채였다.

“들리면 말해. 손가락 비비면.”

“네.”

하여간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 때쯤, 김인수는 다시 손가락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앞에 운전석에 달라붙어서 비비는 것보다는 일단 자세부터가 편했다.

“들려?”

“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들리냐고.”

“어……. 지금 뭐 하셨어요?”

고문관이었을까?

아니면 못 들었을까.

자기도 모르게 간호 장교를 돌아보니, 귓가에 대고 얘기를 해 주었다.

“좀 많이 혼났던 모양이에요. 기합도 그래서 더 세게 받았고.”

“아하.”

이쪽은 그래도 간호사관학교 출신, 그러니까 진짜 군인이라 그런지 다른 군인들하고도 말을 하는 편이지 않나.

왔다 가는 군의관하고는 입장이 달랐다.

덕분에 정보를 파악한 김인수는 참을성 있게 다시 손가락을 비볐다.

“들려?”

“네?”

“치프 샘. 그러면 강도를 올려 봐요.”

“아.”

수혁의 조언까지 들어 가면서였다.

세상에 나는 손가락 비비는 것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원래 의대 교육받고 또 병원에서 수련까지 받다 보면 상당히 반항아 기질이 있던 사람도 이렇게 되는 법이었다.

김인수는 원래도 착한 어린이였기에 성심성의껏 비볐다.

“들려?”

“네?”

“들려?”

“네?”

“들려?”

“네.”

막판에 이르러서는 거의 손을 비비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튕겼는데, 그 바로 직전에 이르러서야 훈련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난청이 꽤 심한데요.”

“왜 군대 왔지? 이 정도면…… 안 걸리나?”

“저도 신검 기준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난청이 있군요.”

“응.”

수혁은 환자의 난청을 확인한 채 김인수의 얼굴을 살폈다.

그래도 한때 치프로 모셨던 사람이지 않나.

이쯤 되면 알아야 할 거 같아서 그랬다.

그러나 김인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손가락을 자기의 귀에 대고 부비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저것만 보면 도무지 쓸 데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엄마라든지, 아빠라든지 하여간에 정신 나간 것 같은 말을 하면 더 어울릴 거 같았다.

[많이 기다렸습니다.]

‘하긴, 그래.’

바루다까지 답답증을 호소할 때쯤, 수혁이 입을 열었다.

“환자는 기저에 난청이 있습니다. 남들과 같은 수준의 기합을 받았고 같은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장 기능이 급속하게 악화되었죠. 아마 기저에 이미 신장 질환이 있었을 거란 가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

“난청이 있으면서 신기능의 저하가 있는 질환. 알포트 신드롬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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