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화 군의관 김인수 (5)
알포트 신드롬.
드문 질환이기는 하지만 내과 의사에게도 드문 질환이지는 않았다.
특히 온갖 드문 질환이 몰리는 태화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아.”
김인수도 몇 번이나 직접 해당하는 환자를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보지 않았다 해도 이건 알아야 했다.
족보였으니까.
‘이런 시벌.’
난청에 신질환은 알포트.
학생들도 알 거 같았다.
근데 난 모르다니.
정말 군대에 오면 머리가 썩는다는 말이 맞는 걸까?
하지만 그런 핑계를 대 보자니, 이수혁이 있었다.
이놈은 군대에 와도 머리가 썩기는커녕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거 같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영상 통화만으로 대강의 진단을 내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저 의심입니다. 난청은 우연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횡문근 융해증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급성 신부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에서 입증되었어요.”
“그건 그렇지…….”
“아무튼, 어디쯤이세요?”
당연히 지금 자괴감이라든가 아니면 놀라움이라든가 하여간 감정에 휩싸이게 된 것은 김인수뿐이었다.
수혁은 오히려 덤덤했다.
어려운 환자라더니, 수혁이 바라는 방향으로는 그렇게 어렵지가 않아서 그랬다.
다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상대가 김인수라서 그랬다.
알게 모르게 챙겨 주었던 것을 수혁은 잊지 않았다.
“아…… 어디쯤이니?”
“신갈 ic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신갈?”
“네.”
“우리 날아왔어?”
“거의 낮게 비행했습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시끄럽더라.”
김인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막힐 시간이 아니니까…… 30분이면 들어가겠는데?”
“아, 그래요? 그럼 슬슬 응급실로 가 봐야겠네.”
“어……. 근데 새벽인데 괜찮아?”
서둘러 출발했고 또 미친 듯이 밟았다고 해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수혁이 당직 레지던트라면 고맙긴 하겠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을 텐데.
수혁은 교수였다.
그것도 부센터장.
아마 어디 골프라도 나가면 백 들어 줄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끗발 날리는 사람이었다.
“네? 네. 환자 오고 있는데 괜찮고 말고 할 게 없죠.”
하지만 수혁은 여전히 그저 환자 보는 걸 좋아하고 있었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좀 더 자기애적인, 그러니까 자기 손을 탄 환자가 잘못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결과만 놓고 볼 때 수혁은 좋은 의사였다.
김인수는 돌아가면 후배고 나발이고 납작 엎드려서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네, 이따 뵐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김인수는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진주에 내려간 후로는 한 달에 한 번 올라올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멀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올라올 때마다 기묘한 감정에 빠져서 더 피하고 있었다.
새벽 1시면 도시 전체가 완전히 잠에 빠지는 진주와는 달리, 이곳은 아직 서울도 아닌데 여전히 차가 꽤 있었다.
막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텅텅 비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내 동기들은 벌써 임상 조교수…….’
이렇게 달리는 차를 볼 때면 이상하게 군대에 오지 않은 동기들이 생각났다.
면제를 받은 친구도 있었고, 여자 동기들도 있었다.
안에서 일할 땐 김인수가 제일 잘하는 거 같았는데 그들은 김인수가 군대에 있는 동안 계단 타듯 커리어를 쌓아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김인수는 올라가기는커녕 퇴보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퇴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학 병원에서 쌓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군 병원에서 따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랬다.
‘망할.’
잠시 수혁 생각도 들었지만, 그놈은 워낙 얼토당토않은 놈이다 보니 금세 마음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었다.
같이 있었으면 오히려 비교당해서 더 결과가 나쁠 것도 같았다.
“김 대위님.”
“응?”
“저 카드 좀.”
“아.”
그사이 차는 톨게이트를 지나 서울에 진입하고 있었다.
김인수는 카드를 건네 통행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커리어에서 뒤처지고 있는 의사긴 해도, 의사는 의사이지 않나.
어디에 있어도 환자 보는 데 있어서만큼은 최선을 다하라고, 이현종이 말했더랬다.
‘혹시 내일까지 있게 되면 인사나 드려야겠다.’
김인수는 스승을 마음에 새긴 채 환자를 확인했다.
다행히 출발했을 때에 급격히 나빠진 건 없었다.
다만 없었던 증상이 몇 생긴 참이었다.
“산소 조금 주지.”
“네.”
일단 숨이 찼다.
몸이 붓고 있는데 소변은 안 나오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몸 안에 남은 물은 이런저런 곳을 붓게 만들다 종래에는 폐에도 들이차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환자는 천천히 익사하는 중이라고 봐도 좋았다.
다행한 건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윤종상 훈련병.”
“네.”
그렇게 앰뷸런스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끝마친 김인수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훈련병을 힘주어 불렀다.
강요에 의해 빡빡 깎인 머리가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다.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집안이 그리 유복하지도 않을 터였다.
공군교육사령부 군의관은 진료 외에 훈련병 간이 신검도 시행하는데, 처음에는 이미 신검 다 하고 들어오는 애들을 왜 또 하나 싶었더랬다.
하지만 하다 보니 밖에서 이미 다 서류 떼서 훈련소 입소조차 안 해도 되었을 병사들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도 자신도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던 아이들이었다.
“태화 의료원은 좋은 병원이야. 가면 반드시 나을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감사합니다. 근데…….”
마음이 안 좋아져서 일단 위로부터 건넸다.
생각해 보니 너무 당황한 나머지 병에만 집중하고 정작 환자는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아서 더 그랬다.
의사는 늘 병이 아니라 환자를 보고 있다는 걸 유념하라고, 정작 자신은 병 생각만 하던 이현종이 가르쳐 준 바 있지 않나.
불만이 생기기는커녕 저 정도로 병을 깊이 생각할 수 없다면 역시 환자 자체를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여간 그렇게 말을 했더니 병사가 말을 하다 말고 김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근데?”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훈련받다 아픈 건데 돈 걱정을 왜 해. 나라에서 대 주겠지.”
“그, 그렇습니까.”
엉뚱한 것을 묻길래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내심 생각해 보니 정말 돈을 대 주려나 싶었다.
상당히 독단적으로 군 병원이 아니라 태화로 가던 중이라서 그랬다.
부를 때는 나라의 아들, 다치면 남의 아들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군의관은 장교다 보니 그런 부조리를 직접 겪을 일은 거의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본 경험은 수없이 많았다.
분명히 복무하다 다쳤는데 뭐가 안 돼서 인정이 안 되고 뭐 이런 일이 많다는 얘기였다.
‘안 주면 어쩌지?’
그렇다 보니 김인수는 좀 불안해졌다.
하지만 눈앞에 환자가 있다 보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침착을 가장하는 거야 의사들 특기 아닌가.
그렇게 고른 숨을 내쉬고 있다 보니 몸의 영향을 받아 실제로 침착해졌다.
‘정 안 되면 내가 내주지, 뭐.’
생각해 보니 병원비 다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을 거 같았다.
본디 유복한 집안 출신인 김인수에게는 타격이 될 만한 돈은 아니란 얘기였다.
게다가 지금 입원 예정인 통합진료센터 교수들은 모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어쩌면 이현종이 사재를 털 수도 있었다.
“일단 걱정 말라고.”
“네.”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 김인수는,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온 병원을 보면서 재차 환자를 안심시켰다.
왜애애앵.
그렇게 사이렌 소리와 함께 병원으로 날아들려는데, 옆에 어디서 많이 본 모양의 앰뷸런스 하나가 따라붙었다.
“뭐냐, 이거.”
“그러게요. 육군 앰뷸런스입니다.”
군 앰뷸런스였다.
세상에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민간 병원에 군 앰뷸런스 두 대가 도착할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까.
아마 엄청 희박할 터였다.
그래서 김인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안에 탄 놈도 태화 출신일 거라고.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태화 출신들은 워낙에 자부심이 크다 보니 환자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면 다른 병원 말고 태화를 고집하기 마련이었다.
“김 대위님 도착했습니다.”
“어.”
하여간 병원에 서둘러 왔는데 와서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인수는 운전병 그리고 간호 장교와 함께 서둘러 환자를 내렸다.
도중에 삽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어쩌나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가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드르륵.
그렇게 뛰어내리듯 해서 환자를 내리고 있으려니 바로 옆에 주차한 앰뷸런스에서도 누군가 내렸다.
김인수와는 달리 느릿느릿 내렸다.
“에이 시발. 밤에 이게 뭔 지랄이냐.”
욕설을 해 가면서였다.
누가 이 지랄인가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다만 김인수는 환자를 막 같이 내려서 이동 중이었기에 아는 척은 저쪽이 먼저 했다.
“어? 인수? 너도 좆뺑이 치냐?”
“어, 어어. 잠깐만.”
“뭘 대위가 환자를 날러. 야, 조심해서 내려.”
김인수는 일단 상대를 뒤로하고 부리나케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미우나 고우나 동기이긴 했지만 그리 반가운 얼굴도 아니어서 더했다.
그렇게 들어선 응급실 안은, 그러니까 꽤 오랜만에 온 태화의 응급실은 혼잡스럽기 그지없었다.
새벽 1시 반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여겨질 만큼이나 환자가 많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의료진들도 많았다.
“와……. 이게 무슨.”
병원이라고는 항의전대밖에 가 보지 않은 병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간호 장교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꽤 놀란 상태였다.
아무래도 태화는 군 병원과 비교하자면, 그냥 비교하는 거 자체가 실례로 여겨질 만큼 바빴다.
“김인수 선생님.”
누가 부르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수혁이 서 있었다.
뒤에 레지던트인지 뭔지 모를 사람을 거느리고서였다.
‘후광? 아니면 대머리?’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는 그런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꽤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얘긴데, 김인수는 그보다 수혁을 보며 더 놀랐다.
교수가 되면서 관록이 붙은 건지 뭔지 사람이 커진 느낌이었다.
“어, 네.”
원래도 깍듯이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금은 그냥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가고 있었다.
“환자는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수혁은 그런 선배의 말투를 교정하는 대신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청진을 비롯해 몇 가지 신체 검진을 진행했다.
“초음파 보자.”
그러다 초음파 얘기를 하자, 대머리가 후다닥 달려가서 기기를 끌고 왔다.
수혁은 자연스레 환자의 신장을 보고는 눈에 띄게 부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인수가 보기에도 수신증이었다.
그냥은 낫지 않을 거 같았다.
“투석하셔야겠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인수 선생님 덕분에 너무 늦지 않게 오실 수 있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입원해서 몇 가지 검사를 더 하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