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68화 (668/1,303)

668화 군의관 김진용 (1)

말은 몇 가지 검사라고 했지만, 수혁은 벌써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투석을 해서 급한 불부터 끄고, 청력 및 신장 조직 검사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게 할 참이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환자는 알포트 증후군일 가능성이 95% 이상에 수렴했기에 그랬다.

이게 무슨 수혁의 머릿속에서만 내린 결론, 그러니까 뇌피셜이 아니라 바루다도 십분 동의한 일이다 보니 정확도는 굉장하다고 보면 되었다.

드르륵.

하여간 이미 교수가, 그것도 부센터장급의 교수가 와서 준비를 해 둔 덕에 일은 물 흐르듯 죽죽 진행되었다.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투석을 돌릴 수 있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이 병원에 있었던 김인수가 제일 잘 알았다.

“와……. 대단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별말씀을. 진주에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이제 일단은 살았네요.”

“네, 일단은요.”

해서 김인수는 수혁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동시에 오늘 낮부터 난데없이 벌어진 대량 환자 발생에 더해 응급 환자에 대한 진료 그리고 그 환자의 이송 등으로 인한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태화라면 어떻게든 최적의 치료를 해 줄 거란 믿음도 있었다.

이건 비단 수혁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화가 얼마나 좋은 병원인지…… 내가 군인 돼서 알았지.’

태화 정도 급의 병원이면 갖추고 있는 시스템 때문에라도 잘못된 치료를 할 가능성이 적다는 걸, 그런 시스템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곳에 가고 보니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태화 안에 있을 땐 명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년배 의사 중에 제일 똑똑한 의사 집단에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거늘, 시스템이 없는 곳에 가니까 장점을 단 하나라도 발휘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처음엔 진주라서 그런가 했는데 수도 병원에 있는 애들에게 들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지을 때부터 수천억을 투입하고 매년 수십억 이상을 투입하는 병원과 군 병원을 비교하는 건 실례가 아니겠는가.

“어후.”

하여간 김인수는 곧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허물어졌다.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운전하느라 고생한 운전병에게 카드를 쥐어다 주는 건 잊지 않았다.

“부대에는 내가 연락할 테니까…… 너는 이걸로 야식이라도 먹고 앰뷸에서 자라.”

“아, 네. 감사합니다. 김 대위님. 근데 김 대위님은 식사 안 하십니까?”

“나? 이 나이 돼서 야식 이 시간에 먹으면 속 부대껴서 더 못 자.”

“근데 제가 거기서 자면…….”

“아, 너 모르겠구나. 나 이 병원 출신이야. 대충 당직방 들어가서 개기면 돼.”

“아, 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필승.”

“어, 그래. 필승.”

그렇게 대강 상황을 정리한 김인수는 당직방으로 도망갔다.

다시 한번 수혁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건 무산되었다.

병사와 대화 나누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그랬다.

‘하긴…… 교수님인데……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게 대단한 일이다.’

아마 연구실이나 집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대저 보통 사람의 생각이란 이러한 법이었다.

달칵.

하지만 수혁은 보통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런 수혁을 보좌하는 우하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안대훈의 포스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기는 했으나, 열망만은 대단했다.

“환자 하나 더 있다고?”

“네.”

“이건 어려운 환자이려나?”

“모르겠습니다. 군 병원에서 바로 보내는 경우가 드물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 모를 일이지.”

어지간하면 군 병원에서 처리하려고 드는 편이었다.

군의관의 뜻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위에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그랬다.

민간 병원으로 환자들이 나가면 나갈수록 군 병원의 존재 의의가 많이 옅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환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병사들은 웬만하면 민간 병원으로 외진을 가길 원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제일 큰 것은 역시 군 의료에 대한 불신이었다.

‘이번에도 알포트 같은 거면 좀 실망인데.’

[뭐가 되었건 간에 노티가 온 상황입니다. 그것도 우하윤이 직접 한 거예요. 신도 관리하시죠.]

‘아니, 뭔 신도 관리야…… 미친놈아. 너까지 이래?’

[신도들이 요새 점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거 못 느낍니까? 저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겁니다.]

‘음.’

때문에 사실상 군 병원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아주 가벼운 환자들도 민간 병원에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다고 보통의 의사가 불만을 갖는 일은 없겠지만.

수혁은 예외였다.

이미 어려운 병 보는 데 맛이 들어서 그랬다.

따지고 보면 다른 누군가에게 미쳤다느니 돌았다느니 하는 말을 하기엔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였다.

누구보다 미쳐 버린 인간이 이수혁이었다.

바루다가 판단하기엔 그랬는데, 그렇다고 해서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열심히 봐주시죠. 혹시 압니까? 어려운 환자일지?]

그저 꼬실 뿐이었다.

‘하긴, 그렇지.’

이게 잘 먹힌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그렇게 수혁은 하윤과 함께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연락 온 게…… 사실 저 환자랑 거의 동시였거든요? 그래서 30분 정도 기다렸을 겁니다.”

수혁이 방금 바루다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길이 없는 하윤은 그저 여상한 말투로 환자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수혁은 그런 하윤의 설명을 느긋하게 들었다.

급한 상황이었다면 눈치 좋게 먼저 빠져나갔을 거라는 걸 알아서이기도 했고.

또 어차피 수혁의 걸음걸이가 느리다 보니 말없이 걷는 데만 집중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다.

“일단 주된 증상은…… 콜라 색 소변입니다.”

“응? 콜라 색 소변? 거기도 횡문근 융해증이야?”

“네, 아마도요.”

“요새 뭐 훈련 시즌인가 보지.”

수혁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군대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건 바루다와 우하윤도 마찬가지였기에 섣부른 예측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해서 우하윤은 수혁의 말에 맞장구만 쳐 주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증상이 생긴 건 오늘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증상은? 콜라 색 소변 나온다고 냅다 이리로 오진 않았을 거 같은데.”

“아, 네. 그게…… 노티가 좀 이상했습니다.”

“이상해?”

“네.”

노티가 이상하다니.

이 말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군의관은, 심지어 외진을 결정하는 군의관은 보통 대위이지 않겠나.

그 말은 곧 전문의라는 뜻인데 노티를 이상하게 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다른 과 전문의라…… 말이 이상했다는 뜻인가.’

[알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최근에 다녀온 조태진의 말을 떠올려 보면 그것도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상대가 우하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너 뭔 소리 하니 하는 얼굴로 들여다봤을 텐데.

그래도 하윤은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해서 애써 좋게 해석하고 있었다.

그사이 하윤이 말을 이었다.

“그…… 저희 병원 선배라고 했습니다.”

“응? 환자가?”

“아뇨, 노티 한 사람이요.”

“오, 누구지?”

“김진용 선생님이라고 하던데, 혹시 아시나요?”

“아, 그 새끼…… 아니, 그 선생님.”

그랬더니만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김진용이라니.

정말이지 까맣게 잊고 있던 이름이지 않나.

어지간하면 본교 출신이 펠로우 원하면 다 받아 주는 것이 태화의 전통인데, 김진용만은 예외인지 모든 분과 교수님들이 연락을 씹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때가 되면 받아 주기는 하겠지만 하여간 그만큼 밉보였다는 뜻이었다.

‘김진용이 우리 수혁이를 괴롭혔다고?’

‘죽일까?’

‘형, 뭘 죽여…… 그렇다고. 감방 가.’

‘사회적으로.’

‘아, 사회적으로.’

김진용이 암만 미친놈이라 해도 모든 교수들에게 밉보였을 리가 있겠나.

다 신현태와 이현종이 쌍으로 입을 털고 다녀서 그랬다.

하여간 그 덕에 김진용은 잠시 잊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 역시. 별로군요.”

“어? 어, 뭐…… 그랬지. 왜? 노티도 이상했어?”

“네, 뭐…… 콜라 색 나오는 거는 맞는데 완전 뺑기라고. 병사가 힘들다고 구라 치는 거라고 하면서 막 뭐라고 하더라고요.”

“너한테?”

“전화기를 들고 있기는 했는데 저한테 한 말은 아닌 거 같고…… 환자에게 한 말 같았습니다.”

“여전하구나, 그 인간은.”

수혁은 아까 봤던 김인수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대를 가건 어디를 가건 좋은 사람은 계속 좋고, 아닌 놈은 아닌 모양이었다.

꾀병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고 해도, 환자 앞에서 대놓고 꾀병이니 뺑기니 하는 게 온당한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지금 노티 온 환자는 콜라 색 소변이라는 저명한 소견도 있는 상황이었다.

근데 저 지랄이라니.

말도 안 되는 놈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김진용이 그랬다니 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그 외에 정보는 딱히 없겠구나?”

“네. 그냥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외진 원한다고 하면서.”

“거참. 그래, 뭐…… 가서 봐야지.”

“네.”

동시에 수혁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김진용이라는 인간을 봐야 해서는 물론 아니었다.

이제 수혁은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겁먹거나 불편해할 만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심지어 백강혁조차 수혁의 멘탈에는 별다른 흠집을 내지 못했던 바 있었다.

그보다는 그냥 실망이 컸다.

‘별거 아니겠구만…….’

[너무 그러지 마시고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

‘뭐가.’

[어려운 환자만 어떻게 봅니까?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이럴 거면 그냥 집에 가서 잤지.’

[아, 오늘 당직이 아니지, 참. 그럼 인정.]

당직이 아닌데, 심지어 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병원까지 온 상황이지 않나.

근데 김진용이 지 환자 보기 싫어서 그리고 외진 나와서 반 휴가처럼 보내려는 핑계로 보낸 환자를 봐야 한다니.

이보다 더한 실망감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하윤만 내깔겨 두는 일이 생기진 않았다.

아무리 수혁이 좀 이상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선을 넘지는 않아서 그랬다.

“아, 거 더럽게 오래 걸리네. 너 땜에 이게 뭐냐, 새벽에. 외진 나가고 싶으면 아까 낮에 말을 하든가……. 아오.”

하여간 시간은 꽤 지체된 상황이었다.

그사이 응급실이라고 해서 놀고 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태화에 의사가 수혁이나 하윤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김진용은 높은 확률로 여기 펠로우로 올 사람인 데다가, 다른 과는 4년제다 보니 김진용이 치프 그레이드일 때 1년 차였던 4년 차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상황이었다.

해서 환자는 이미 소변줄과 수액 등 필요한 조치를 다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진용이 기분이 상한 건, 우하윤 때문이었다.

감히 자기가 있을 때는 들어오지도 않았던 새까만 후배가 늦장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기만 해 봐. 뒤졌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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