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72화 (672/1,303)

672화 군의관 김진용 (5)

어디 가냐니.

김진용은 좀 당황스럽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교수긴 한데 일단은 후배가 아닌가.

경직된 의대 사회에서 후배가 선배에게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적어도 김진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솔직했다.

이미 잘못한 게 많은 데다가, 방금 수혁의 위엄을 체험한 상황이지 않나.

1년 차이던 때에도 남다르던 수혁인데 지금은 교수였다.

느낌이 아예 다를 수밖에 없었다.

“환자 개판 쳐 놓고 어디 가냐고 물었는데.”

수혁은 그렇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멈춰 서서, 수혁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김진용을 마주했다.

뒤에는 우하윤이 마치 호위하듯 서 있었다.

그래 봐야 원래 같으면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해야 맞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 그게.”

“갑상선 중독증과 병발한 횡문근 융해증.”

수혁은 환자가 완전히 병실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말을 이었다.

“죽을 수 있는 병이야.”

아직 21살짜리 훈련병에게 죽음 운운하기가 좀 그래서였다.

하지만 김진용은 의사고 그러니 확실히 해야 했다.

“네가 죽일 뻔했어. 기껏해야 21살짜리 애를…….”

“그건…… 군…… 군 의료가…….”

“핑계 대지 마. 그냥 게을러서 그런 거야. 저 정도는 충분히 볼 수 있잖아. 어디 대대급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단 의무대에 있다며?”

“그…….”

김진용은 속사포처럼 쏘아 대는 수혁에게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중에서 제일 입 안을 거세게 맴돌고 있는 문장은 ‘너는 군대도 안 갔다 왔잖아’였는데, 도무지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후환이 너무 두려웠다.

원장 아들인 것도 무서운데, 교수이지 않나.

암만 펠로우 하면서 내시경만 배우고 밖으로 튈 거라고는 하지만.

펠로우 시절을 지옥처럼 보내기도 싫었고, 태화 의국이라는 든든한 뒷배 없이 강호를 떠돌 자신도 없었다.

“일단 환자 따라가서 어찌 되는지 팔로우 업 해. 부모님께도 직접 전화 드리고.”

“아…… 네.”

“그리고.”

“네?”

“내일 아침에 회진 갈 테니까, 그때 이 질환에 대해 브리핑해. 환자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어…….”

수혁은 두려움과 짜증이 뒤섞인 김진용을 보며 말을 이었다.

조금 치사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수혁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선을 넘는 것도 감수하게 되었다.

게다가 김진용에 대해서는 원래도 감정이 좋지 않았다.

[쓰레기.]

심지어 바루다의 평가도 이랬다.

애초에 의사에 대한 허들이 굉장히 높은 녀석인데 눈앞에서 태화 출신이 이 지랄 해 놓은 걸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만 가는 거 아니니까, 준비 잘해.”

“네? 누구…….”

“일단 이현종 교수님.”

“아.”

이현종이라는 말에 김진용은 자기도 모르게 살짝 안도했다.

물론 높은 사람이고 또 무서운 사람이긴 하지만.

직접 소화기내과와 연관이 되어 있지는 않아서 그랬다.

어차피 이현종에게 까이고 있는 거 다 아는 상황에서 소화기내과 쪽과 얘기가 되고 있으니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태반이 자기 위안이었지만 교수 되는 건 옛날 옛적에 포기한 몸이었다.

‘새끼.’

[질러요. 어차피 오라면 오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수혁이 아니었다면 괜찮았을 터였다.

걸리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김진용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장강명 교수님도 오실 거니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아…… 아니, 장 교수님이 왜…….”

“왜긴. 나랑 친하니까 그렇지.”

“아……. 그럼 그건 너무.”

소화기내과의 장은 장강명이었다.

검진센터장을 맡고 있을 뿐, 소화기내과 분과장은 넘겨 준 지 오래라고 하지만.

병원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게 칼로 나눈 것처럼 딱딱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분과장부터가 장강명의 후배였고 또 제자였다.

다시 말하면 장강명의 말 한마디가 소화기내과 인사권을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원장님 바빠서 못 부르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 그리고 뭔 걱정이지? 지금부터 회진 시간까지 5시간이나 남았는데. 발표 하나 준비하는 데에는 차고 넘치는 시간 아냐?”

“그…….”

“나 같으면 여기서 머뭇거리느니 빨리 가서 환자 보고 발표 준비할 거 같은데.”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진용은 거의 울 거 같은 얼굴로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하윤이 물었다.

“교수님. 너무 무섭게 대하신 거 아니에요?”

수혁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인지 우하윤도 조금은 얼어 있었다.

원래 제일 높은 사람이 화를 내면 이렇게 되는 법이었다.

“응? 뭐…… 의사 같지 않은 인간 보면 화가 나기 마련이잖아?’

정작 장본인인 수혁은 이미 감정을 잊은 참이었다.

원래도 긍정적인 사람이기도 했거니와 요새는 바루다 때문에 이런 성향이 더 강해졌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하윤도 방금 전보다는 살짝 마음이 편해졌다.

‘하긴…… 의사 같지 않긴 했어. 그렇다고 그렇게 화를 내실 줄이야…….’

동시에 수혁에 대한 존경심이 한층 더 깊어지기도 했다.

화를 드물게 내던 사람이 화를 낸 이유가 꽤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확실히 이 사람은 진짜 의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함, 졸리네. 하윤아 너도 대충 끝내고 가서 자. 말은 그렇게 했어도, 밤사이에 별 노티는 없을 거야.”

“아, 네. 교수님. 교수님도 편히 쉬세요.”

“그래.”

수혁은 그런 하윤을 뒤로한 채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몽골에서 돌아온 이래 계속 움직였더니 삭신이 쑤시는 느낌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환자 볼 때는 힘든지 하나도 모르겠더니 딱 진료가 끝나자마자 맥이 풀렸다.

‘네가 뭐 했냐?’

[네? 아뇨. 아무것도.]

‘아드레날린 분비하다가 끊은 거 아냐?’

[그런 짓 하면 심장이 버틸까요? 가뜩이나 요새 또 운동 쉬고 있는데.]

‘아, 그런가.’

[이래 봬도 수혁의 건강 관리는 제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큰일이니까.]

‘죽는다는 소리 듣기엔 내가 너무 젊지 않냐?’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건강 자신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습니다.]

‘그건…… 그건 그렇지.’

수혁은 바루다를 의심하다가 말고 연구실에 마련해 둔 침대에 누웠다.

습관처럼 당직방으로 가다가 이현종이 언젠가 했던 말을 떠올린 덕이었다.

‘교수가 자꾸 레지던트 있는 데 들락거리면 애들 욕한다. 너는 레지던트랑 심리적으로 가까울지 몰라도 교수야. 착한 교수도 불편해.’

그리곤 자기 전에 교수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회진 같이 돌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수혁아!”

아침이 밝아 오기도 전에 누군가 연구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 이현종이었다.

문자로 불렀으니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뒤에 줄줄이 뭐가 더 붙어 있었다.

“어……. 삼촌? 형?”

신현태와 조태진도 있었다.

“원장님은 어디 가신다더니.”

“회진 돌고 가려고.”

“환자 거의 없으시잖아요.”

“네 회진 돌려고.”

“아. 형은요?”

“나? 나는 그냥 왔는데. 두 분이 낄낄거리면서 가길래 너한테 가는 줄 딱 알았지.”

“아니…….”

이 둘만 보면 사람들이 대학 병원 교수들 할 일 어지간히 없는 줄 알 거 같았다.

세상에 남의 회진 따라 돌러 놀러 올 줄이야.

“자, 그럼 가자.”

“네? 아니 잠깐만요.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괜찮아, 환자는 깼어.”

“장강명 교수님도 가야 하는데.”

“걔? 아까 잡아 놨지. 스테이션에서 대기 중이야. 여기까지 오는 건 좀 그렇다고 하더라.”

수혁은 이현종의 너털웃음을 듣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저 사람이라면 분명 장강명이건 누구건 간에 붙잡아 놨을 것이 뻔해서 그랬다.

게다가 어차피 7시면 일어나야 했을 몸이기도 했다.

아침에 회진 돌고 아침까지 먹고 외래 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아, 수혁아.”

그렇게 여러 교수들을 대동하고 걷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말을 걸어왔다.

왜 그러나 하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제 너네 추계 학회 슬슬 준비해야 하지 않니.”

“아…….”

중요한 얘기가 툭 튀어나왔다.

안대훈을 군 펠로우로 낙점한 상황에서 이걸 그냥 뭉개지지 않게 하려면 학회는 반드시 열어야만 했다.

그것도 일정 숫자 이상의 참여인도 확보해야 했다.

물론 그냥 오라고 하면 올 사람들이 꽤 있기는 했지만.

그건 의사로서, 또 학자로서 도리가 아니었다.

왔으면 무조건 도움이 되었단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 주어야만 했다.

“그렇네요.”

“내가 일단 세션 하나 맡았어.”

“삼촌이요?”

“어. 우리가 의뢰했던 거…… 정리하려고.”

“오, 그럼 너무 감사하죠.”

신현태의 말에 이현종이 또다시 껄껄 웃었다.

복도 걸어가면서 웃었다기엔 소리가 너무 커서 지나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다행이라면 아직 시간이 일러서 의료진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태화 의료진은 이현종의 얼굴을 다 알고, 또 원래 좀 이상하다는 것도 알아서 빤히 쳐다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눈이라도 마주칠까 두렵다는 얼굴로 서둘러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알아서 한다고 하더라고. 하긴 우리 학회 초대 회원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무튼, 세션 하나는 나도 할거고. 여기 조 교수도 할 거야. 할 거지?”

“네? 아유, 당연하죠. 저도 초대 회원이고 수혁이 형인데요. 게다가 암 환자 중에도 의뢰해서 본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 많은 거로 아는데?”

“남은 기간 동안 더 보내면 되죠. 뭔 걱정이 이렇게 많으실까.”

“그래, 분발하라고.”

이현종은 조태진의 두툼한 어깨도 퉁퉁 두드리다가, 이내 장강명을 바라보았다.

검진센터장이다 보니 아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던, 그러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장강명은 퍽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왜…… 저를…….”

돈 잘 버는 센터장이라고 해서 이쪽을 뭉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봐도 그룹 차원에서 밀어주는 사람들 아닌가.

괜히 개겼다가 센터장 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이렇게 다들 하나씩 하겠다고 하는데 너는 가만히 있을 거야?”

“네? 저는…… 저는 검진…….”

“검진은 뭐 모르겠는 환자가 안 와?”

“그…… 아니, 그게.”

“아직 하나도 안 보냈지? 의리가 없네, 장 교수? 이거?”

“아니…… 그.”

검진에서 환자를 보낸다는 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애초에 검진받으러 오는 환자들은 대개 건강한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현종의 눈알이 평소보다도 더 돌아가 있었기에 장강명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러면 자기 눈도 돌아갈 거 같아서였다.

“그래, 우리 장 교수. 하하. 의리남.”

“네네.”

장강명은 후우 하고 남몰래 한숨 쉬면서 생각했다.

‘김진용 발표 보러 왔다가 이렇게 된 거지?’

애꿎은 김진용이라는 새끼를 조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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