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74화 (674/1,303)

674화 추계 학회 준비 : 장강명 (2)

장강명은 신이 났다.

검진센터장이라는 자리가 퍽 괜찮은 자리긴 하지만.

아무래도 검진이다 보니 케이스 토론 같은 걸 할 일이 없어서, 무언가 결핍된 느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진용을 갈구기 시작하니까 잊고 살았던 즐거움이 막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 새끼 봐라, 이거.’

‘아까는 툴툴대더니.’

‘역시 교수들은 이런 게 맛이지.’

얼마나 신이 났는지 옆에서 볼 때 다 티가 날 지경이었다.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은 그런 장강명을 딱히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김진용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이런 게 계기가 되어 열정이 되기도 해서 그랬다.

김진용을 장작 삼아 장강명이라는 걸출한 의사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어……. 칼륨.”

김진용은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칼륨이 중요한 전해질이라는 건 알았다.

갑상선 호르몬이 올라가면 빠져나가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근데 왜 하지에 마비가 생기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최대한 안 그런 척을 하려 했으나 별 소용 없었다.

한번 갈구기로 마음먹은 수십 년 짬밥의 교수의 통찰력은 미친 수준이라 그랬다.

“갑상선 항진증이 있으면서 저칼륨혈증이 있어. 이래도 몰라?”

“그…….”

“모르네. 이걸 모르면 얘기가 안 되지.”

그리고 되게 뻔뻔해졌다.

장강명은 자신도 처음 보는 내용이면서 대가인 것처럼 행세했다.

근데 그게 또 아주 자연스러워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분비내과 교순가 싶을 정도였다.

“그럼 가족성 주기성 마비는 알아?”

“어…….”

들어 봤나 싶은 수준이었다.

장강명도 그랬다.

하지만 아는 척은 잘했다.

“그것도 모르는구나. 너 어떻게 전문의 땄니.”

신바람이 났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은 수준이었다.

파일을 보낸 장본인인 수혁조차, 어제 함정을 팠던 수혁조차 이럴 줄은 몰랐다.

‘와……. 장 교수님 여태 어케 참았데.’

[그러니까요. 저러면 알아서 케이스 찾겠는데요?]

‘어, 갈구려고.’

[거참. 사람 겉보기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제 분석 능력도 아직 멀었습니다.]

장강명은 쯔쯔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갑상선 중독증에서 저칼륨혈증이 동반되면서…… 하지 마비가 주로 나타나는 경우. 이거 아주 전형적이라고. 갑상선 중독성 주기성 마비. 못 들어 봤어?”

“그…… 네, 죄송합니다.”

“이게 갑자기 나온 질문이야? 어제 이수혁 교수가 너한테 시간도 줬다며? 그리고 기록해 놓은 거 보니까 아주 힌트를 줄줄 흘렸던데. 왜 몰라?”

“그…… 죄송합니다.”

“이건 무식한 게 아니라 게으른 건데…… 하여간 뭐 교수가 제자 모르면 알려 줘야지.”

머리가 참 좋은 양반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만 자료를 줬다 해도 저렇게까지 아는 척을 하려면 머릿속에서 딱딱 정리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 그랬다.

“일단 환자가 남자지? 이건 전형적인 소견이야. 근데 좀 어리긴 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어느 정도 진행한 다음에나 나타나거든. 하지만 환자는 군대에 가서 아예 케어가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수 케이스라고 봐야겠지.”

“네, 교수님.”

“또 지금이 여름이고, 군에 있잖아. 이러면 촉발될 수밖에 없어. 왜 그럴까?”

“그건.”

“땀을 많이 흘리잖아. 그럼 어떻게 될까?”

“칼륨이…….”

“그래. 그렇지. 원래 기전은 체내의 칼륨 수치는 그대로인데, 세포 외에 있는 칼륨이 세포 내로 밀려 들어가면서 저칼륨혈증이 생기는 거야. 근데 땀까지 흘리면 그게 가속화되겠지.”

“아.”

설명을 되게 잘했다.

덕분에 수혁을 제외한 인원은 장강명이 원래 이쪽으로도 좀 일가견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현종은 저놈도 스카우트를 해야 되나 싶어졌을 지경이었다.

소화기내과 의사로서의 장강명의 실력은 알아주는 것이지 않나.

근데 거기에 내분비내과적인 지식까지 저렇게 훌륭하다면,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수혁이 보기엔 약간 서커스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하네…….’

[그러니까요. 뭐야 이거.]

장강명은 일부러 수혁 쪽은 돌아보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표정이 정말 밝았다.

“거기에 더해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발이 된다고. 이 환자는 이등병이니까 이것도 해당 사항이 있지.”

“그, 그렇습니다.”

“거기에 원래 이 경우에, 그러니까 갑상선 중독성 주기성 마비에서는 상지보다는 하지를 주로 침범해. 아무래도 이쪽이 의도치 않아도 자주 움직이는 근육이라서 그렇겠지? 자, 어때.”

“그…….”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뭔 단서인가 싶은데 모아 놓고 보니까 이 질환을 가리키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나는 그게 잘 이해가 안 가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수혁 교수가 남겨 둔 기록 보면 이런 내용이 다 나와 있는데…….”

장강명의 넋두리를 들으면서 김진용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장강명이 말한 대로 기록에 다 나와 있던 내용이라 그랬다.

여름, 땀, 군인, 하지.

기록은 그러한 것을 아주 상세히 보여 주고 있었다.

다 사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힌트였다.

진단명만 명확히 적어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런 시발.’

이렇게 되면 정말로 김진용은 무능한 것에 더해 게으른 놈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교수치고 이 두 특성이 겹치는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태화 출신인데 태화 소화기내과 펠로우에 못 남게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 어디로 가냐…….’

탈탈 털린 김진용을 둔 채, 교수들은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기분이 완전히 좋아진 장강명이 주도하고 있었다.

“아침은 제가 쏘죠!”

“아침엔 직원 식당밖에 안 해.”

“그럼 모닝커피!”

“아, 좋지. 좋네.”

이현종은 이 새끼가 왜 이러나 싶은 얼굴이었으나.

하여간 커피를 쏜다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수혁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럴 때 확실히 해야 했다.

아무리 학회가 초창기부터 사람을 꽤 모았다고 해도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겠다.

“아, 근데 장 교수님.”

“어어, 이수혁 교수.”

장강명은 그 잠깐 사이에 회춘이라도 했는지 더 젊어 보였다.

의학 지식으로 사람 갈군 게 그렇게 좋은가.

수혁은 자신이 어이없어할 만한 위치가 전혀 아니란 것은 모른 채, 속으로 슬쩍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속으로‘만’이었다.

겉은 연기자 뺨치는 사람답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케이스 토론 정말 잘하시던데…….”

“아, 뭐. 오랜만이라…… 미흡했지.”

“아뇨, 정말 타고나신 거 같은데요?”

“그, 그런가?”

그에 반해 장강명은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자기가 아는 내용으로 떠든 게 아니라는 걸, 오직 한 사람 수혁만은 알고 있어서 그랬다.

이 양반이 이현종 아들인 만큼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수혁은 이번에는 정말로 호의만 품고 있었다.

“저희 학회가 하는 일이 이런 거거든요. 사실 학회가 아직 작기도 하고…… 학회 업무는 여기 계신 교수님들이 다 하고 계셔서…… 업무가 더 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 그런가? 그래도 케이스 토론 같은 거 참여하려면…….”

“하하. 아까 회의실 못 보셨구나. 저희 화상 회의 시스템 쫙 깔아 놨습니다. 원래는 외국 병원들 때문에 깐 건데…… 요새는 지방에서도 심심치 않게 연락이 오고요. 바쁜 회원분들은 그걸로 참석해도 됩니다.”

“오.”

구미가 확 당겼다.

아닌 게 아니라 간만에 케이스 토론을 해 보니까 너무 재미가 있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이수혁, 이현종이 이끄는 통합진료센터의 케이스 토론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어려운 케이스를 명쾌하게 풀어 준다고.

‘오늘처럼 떠들 수 있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지만 아는 게 있어야 재밌을 수 있는 법이었다.

하나도 모르는 케이스 듣고 앉아 있는 것만큼 비참하고 심심한 일도 드물었다.

“그리고 제가 회원님들께는 미리 자료를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수혁은 딱 가려운 데를 긁어 주었다.

‘시바, 진짜냐. 실화냐, 이거?’

장강명의 눈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낚였네요.]

바루다가 그걸 확인해 주었다.

“그럼…… 음. 할까?”

“대신 소화기내과에서도 케이스를 좀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도 경험이 쌓이고 다른 회원분들도 도움을 받으니까요.”

“아, 암. 그래야지, 그래야지. 알겠어. 어…… 이거 이럴 게 아니라. 커피 먹고 내가 바로. 바로 알아볼게.”

장강명은 들뜬 얼굴이 되어 직원 식당으로 달려 들어갔다.

빨리 먹고 케이스 찾아다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모양이었다.

그런 장강명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이현종이 물었다.

“미리 자료를 준다니? 나는 처음 듣는 소린데.”

그 말에 수혁이 자기 패드를 보여 주었다.

아까 장강명에게 보냈던 자료가 떠 있었다.

“어, 이거?”

“네. 소화기내과 교수님이 그걸 어찌 알겠어요.”

“와……. 그걸로 그렇게 떠들었어? 저 새끼 천재네? 다른 의미로.”

“네, 그리고 엄청 즐기시더라고요.”

“어, 그렇더라. 새끼.”

“그래도 갈구진 마세요. 이제 우리 학회 회원이니까.”

“어어. 그래야지. 내가 원래 또 니 편 내 편 잘 나눠. 하하하.”

이현종은 수혁이 대견한지 어깨를 탕탕 두드려 주었다.

그리곤 장강명 이 새끼 이거라고 중얼거리며 식당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수혁은 추계 학회를 떠올리고 있었다.

확실히 기왕 여는 거 제대로 여는 게 좋을 거 같았다.

[그냥 수혁이 모든 세션 다 해도 되지 않나요?]

‘그럼 원맨쇼잖아. 학회가 아니라 강연이 된다고. 그리고…….’

[귀찮구나?]

‘그렇지. 내가 아무리 빨리 준비한다고 해도 시간 꽤 뺏길걸? 그러다가 환자 못 보면 어째. 아쉽잖아.’

[그것도 그렇습니다. 근데 또 부탁할 사람이 있나요?]

‘있지.’

[누구?]

‘있어 봐.’

수혁은 바루다가 아니더라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잔머리 돌아가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편이었다.

바루다도 그걸 알아서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덕분에 꽤 맛있다고 소문난 태화의 아침을 먹으면서도 딱히 음미하지 못했다.

카페인으로 머리를 적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빨리빨리.]

‘아, 알았어. 진료실 가서 전화할 거야.’

[누구야, 누구지? 우리 병원 사람들은 이미 다 갈궜는데?]

‘꼭 우리 병원만 사람이 있는 게 아니지.’

[하씨.]

수혁은 그렇게 바루다의 애간장을 닳게 만들다가, 이내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주 떨떠름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수혁 교수. 그…… 웬일?”

아선 병원 기조실장 우창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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