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화 외래 보다가 (3)
“아니, 이거 좀 놓고! 놓고 갑시다! 사람 연행하는 것도 아니고!”
수혁이 나머지 외래 환자를 보고 있는 동안, 대훈은 다른 신도들과 함께 수혁이 방금 보았던 환자 기훈을 데려가고 있었다.
딱히 인도적인 방법으로 데려가고 있는 건 아니었기에 당연히 반발이 있었다.
아마 이게 어디 길거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기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기훈은 가운을 입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난동 부리나 보다.”
“어휴…….”
“쯔쯔.”
오히려 비난만 받았다.
병원에서 흰 가운이란 대단한 힘이 있는 법이었다.
아무리 의사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해도,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일은 어지간하면 정당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게 맞기도 했지만, 안대훈은 그런 것에만 의존할 생각이 없었다.
수혁을 위해서라면 모자란 머리도 굴릴 수 있는 사람이라 그랬다.
게다가 안대훈은 그리 머리가 모자란 사람도 아니었다.
아니, 모자라기는 한데 머리카락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환자분.”
안대훈은 오늘도 광낸 머리를 앞세운 채 환자를 불렀다.
이미 응급실 입구였다.
앰뷸런스도 도달해 있었다.
부센터장인 수혁의 전화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병원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무도 없어서 그랬다.
하여간에 이제 신도들은 떠나고 안대훈과 환자만 차에 탈 시간이 되었다 이 말이었다.
‘이렇게 비협조적이어서야 교주님 명을 이행할 수가 없지.’
안 될 일이었다.
비장한 각오가 아로새겨졌다.
그래서일까?
눈에 기이한 열기가 돌았다.
환자로서는 도무지 이 빛나는 눈을, 머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네, 왜, 왜요.”
“이수혁 교수님…… 누군지 알고 예약하신 거죠?”
“그…… 그렇죠.”
협진 환자가 아니라 외래 환자라면 무조건 수혁을 알 거라 확신했다.
수혁 본체가 TV에 나오는 경우는 이제 드물어졌지만, 그럼에도 태화 측에서 적극적으로 홍보 마케팅을 하고 있기에 그랬다.
각종 SNS를 활용하고 있었는데 요새는 이게 오히려 더 바이럴이 잘되었다.
“그분 말씀을 허투루 여기시면 안 됩니다. 환자분 어머님……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아니, 그렇게 겁을 자꾸 주시는데…… 아까 아침에 저랑 같이 왔다니까요? 다리 조금 전 게 다예요.”
“그런 사소한 단서가 교수님이 보실 땐 다를 수 있다니까요? 자, 이거 보세요. 아니, 이거 말고. 이거.”
환자 기훈은 대훈이 내민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몰타 십자가가 떠 있었는데, 삽시간에 다른 페이지로 이동했다.
나무위키였는데 수혁의 업적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니, 페이지 이름이 업적일 뿐. 사실상 케이스의 나열이라고 봐야 했다.
이상한 건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끝이 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게 다 교수님이 해결한 케이스예요. 다 엄청 어려웠던 케이스입니다. 이 중에는 전화나 영상 통화만으로 해결한 건도 있어요.”
“아…….”
“그러니까 빨리 갑시다. 환자분도 솔직히 찜찜하시잖아요? 아무 일도 아니었다 해도, 이거 타고 집에 갔다손 치면 되잖아요.”
안대훈은 널찍한 앰뷸런스를 가리켰다.
안쪽에 온갖 기구와 침대가 들어차 있어서 그렇지. 차 자체는 되게 좋은 차였다.
게다가 환자가 없을 땐, 침대에 누워서 가도 되었다.
마침 안대훈의 손가락 끝에 걸린 것도 침대였다.
꿀꺽.
환자는 잠시 고뇌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손해 볼 게 아무것도 없었다.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하여간 공짜 택시 탄다고 생각하면 좋았다.
“그, 그럽시다. 뭐.”
해서 환자는 앰뷸런스에 탔다.
조금 멋쩍은 얼굴로 이렇게 물으면서였다.
“여기 누워도 돼요? 진료 보고 나니까…… 힘든데.”
“네, 물론입니다.”
“네네. 아, 근데 약은…….”
“약이요? 동네 약국 가셔도 돼요. 설령 약이 없어도 요새는 거의 당일 받을 수 있어요.”
“아……. 네.”
정확히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안대훈의 얼굴은 꽤 신뢰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수혁 교수보다도 연차가 훨씬 높아 보이지 않나.
‘와……. 그럼 이수혁 교수가 진짜 천재긴 한가 보다.’
역설적으로 이 시점에서 수혁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올라갔다.
나이 차를 극복하는 천재성이라니?
만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 아닌가.
확실히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구나 싶었다.
부우웅.
그사이 차량이 출발했다.
“저, 근데 선생님.”
안대훈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응급구조사가 그를 향해 물었다.
의아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네.”
“교수님이 갑자기 가 보라고 해서 가긴 하는데…… 뭐 준비해야 할까요?”
“아. 잠시만요.”
사실 대훈도 이게 뭔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혁에게서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환자 의식 없을 시 항생제, 수액 준비할 것. 특히 수액은 풀 드랍할 것.>
여전히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훈은 믿음이 있었다.
이 말이 맞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었다.
“항생제랑 수액이요. 그건 원래도 있잖아요.”
“아, 그렇죠. 그럼요. 아까…… 쌍문동이라고 하셨죠?”
“아, 네.”
응급구조사도 그랬다.
수혁의 명이라면 따르는 게 옳다는 걸 경험으로 또 소문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혹자는 이미 이현종보다도 수혁을 위로 두고 있을 정도이지 않나.
아직 31살밖에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라니.
범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불가해 영역에 닿은 사람이라고 봐야 할 거 같았다.
‘나는 일단 가자. 가서 보자고.’
해서 구조사는 머리를 비우고 액셀을 밟았다.
바로 옆에 앉은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수혁이 어떤 과정을 통해 무엇을 추론한 것인지.
이것만 궁금해하고 있었다.
“요새는 그래도 잘 비켜 주네요?”
“네? 아, 그럼요. 요새는 앰뷸런스 앞에 들이 막는 사람 거의 없어요.”
“다행이네. 쌍문동…… 엄청 먼데. 그래도 금방 왔어요.”
“네.”
앰뷸런스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쌍문동 환자 자택에 도착했다.
다만 너무 골목에 있어서, 차량이 끝까지 진입하지는 못했다.
이런 골목들이 낙후된 지역의 응급 질환 생존율을 낮춘다더니, 이제야 왜 그런지 실감이 좀 낫다.
안대훈도 어려운 집안 출신은 아니어서 그랬다.
“엄마?”
환자는 그런 안대훈보다 앞장선 채 초인종을 눌렀다.
답은 없었다.
해서 엄마를 불렀으나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쌔한 기분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당연히 제일 다급해진 것은 기훈이었다.
엄마가 의식이 없을 수도 있단 얘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 열쇠. 열쇠가 어딨더라.”
그는 잠시 허둥대더니, 현관문 옆에 있던 화분을 뒤집어 비상용 열쇠를 꺼냈다.
대훈이나 응급구조사에게는 조금 충격이었다.
집 열쇠를 여기다 보관하다니.
여기는 특별히 치안이 좋은 곳인가 싶었다.
그렇게 대훈과 구조사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문이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어우.”
대훈은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생긴 건 정말 험하게 자란 사람 같아 보여도 나름 귀하게 큰 사람이라 그랬다.
이런 소리를 거의 생전 처음 들어 볼 지경이었다.
“음.”
하지만 적막한 집과 그와는 별개로 현관에 놓인 오래된 고무신을 바라보고 난 후부터는 인간 안대훈이 아니라 의사 안대훈으로 돌아왔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벌어진 변화라고 볼 수 있었다.
수혁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수혁과의 시간은 혹독한 수련 그 자체였다.
‘냄새…….’
환자가 엄마! 하고 안으로 뛰어간 사이, 대훈은 오래된 고무신을 집어 들어 냄새부터 맡았다.
그 외에 신발에 묻은 흔적을 바라보았다.
노란 고름.
그리고 썩은 내.
이건 그냥 발 냄새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심각한 감염이 발생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다리를 절었을 뿐, 걸었다고 했지?’
일반인 같았으면 아마 걸음을 옮기지 못했을 터였다.
너무 아플 테니까.
발에서 이런 식으로 고름이 나오고 있다면, 감염의 정도가 어마어마하지 않겠나.
그런데 걸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통증은 인간의 행동을 꽤나 심하게 제한할 수 있었다.
‘당뇨일까. 아마 그렇겠지. 그럼…… 아! 이런.’
방치된 당뇨는 극히 위험했다.
사람들은 흔히 당뇨를 만성 질환으로만 생각했지만.
그건 어느 정도까지만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임계점을 뚫은 당뇨는 얼마든지 급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이미 당뇨발에 이어 말초 신경 병증까지 진행해 감각이 둔해졌다면, 다음 스텝도 얼마든지 가능하단 생각이 안대훈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빨리.”
“아, 네.”
안대훈은 그 즉시 몸을 일으켜 환자가 방금 들어간 방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환자는 누워 있었다.
그야말로 죽은 듯이.
“어, 엄마?”
“으으…….”
다행히 진짜 죽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의식을 잃었을 뿐.
“왜, 왜 이런 거예요? 우리 엄마 왜 이런데요?”
“설명은 나중에. 지극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어…… 어어, 네.”
“일단…… 침대로 옮기죠.”
“아. 네.”
안대훈과 구조사는 서로 합심해서 환자의 어머니를 들어 옮겼다.
‘가벼워.’
과장 조금 보태면, 솜털 같았다.
기껏해야 30kg대나 될까?
키가 작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저 체중이 급격히 빠져서일 것 같았다.
대훈은 저도 모르게 원망하는 눈길로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는 그런 대훈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뒤를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잘못이 있겠냐…….’
심지어 의사도 가족의 변고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나.
일반인에게 의사도 간혹 놓칠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환자였다.
“의식이…… 의식이 혼미합니다.”
“네. 탈수 때문에 그래요.”
“탈수요……?”
구조사는 그렇지 않아도 손이 좀 축축하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땀인가, 땀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워낙 응급 환자를 많이 보아 왔다 보니 딱 알 수 있었다.
이건 소변이었다.
환자의 바지를 온통 적시고 있던 건, 다 소변이었다.
“소변을 보는 탈수도 있나요?”
“있어요. 일단 바로 수액 좀.”
“아, 네.”
“그리고 저는 이제 뒤에서 가겠습니다.”
“아…… 네.”
구조사는 즉시 손을 대강 닦아 내고는 수액을 놓으려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인에서, 그것도 탈수가 일어난 노인에서 혈관을 잡는다는 게 쉬울 턱이 없지 않나.
“안 돼요?”
대훈은 여차하면 이 자리에서 중심 정맥관이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아니, 어차피 잡기는 해야 할 터였다.
어지간하면 병원에 가서 잡는 게 안전할 테니 참고 있을 뿐이었다.
푹.
그때 들어간 라인 끝에 슬쩍 피가 비쳤다.
“후. 시발. 아유, 죄송합니다. 일단…… 일단 들어갔어요. 와…….”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가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