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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78화 (678/1,303)

678화 외래 보다가 (4)

응급구조사는 뿌듯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수액이 그야말로 콸콸 들어가고 있었다.

‘잘했다.’

라인을 기가 막히게 잡았다는 뜻이었다.

노인 라인 잡는 게, 그중에서도 혈관이 안 좋은 마른 노인 잡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얼마든지 칭찬을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일단 한시름 놓긴 했는데…… 그래도 몰라요. 최대한.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

“네!”

하지만 아직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살려서 병원까지 데려다 놓아야 했다.

부우웅.

올 때도 빠른 거 같았는데 돌아가는 길은 거칠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달렸다.

앞자리는 모르겠으나 뒤에 탄 이들은 삽시간에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환자도 안대훈도 통통 튀고 있었다.

묶어 둔 환자만 안정적이었다.

애초에 튀어도 모를 터였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후.”

그럼에도 환자는 전혀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아찔해서 그랬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묻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바로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나온 김에 좀 콧바람이나 쐬다가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그 교수님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혁의 반응이었다.

보통 그렇게까지 반응해 줄까?

사실 묻는 입장에서도 그냥 괜찮아요. 라는 말이나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나 수혁은 그런 환자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고, 여기까지 보냈다.

의사와 응급구조사를.

그 결과, 엄마가 아직 살아 있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 이거…… 하.”

그사이 대훈은 환자의 양말을 벗기고 있었다.

끈적한 고름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아니, 그보다는 이미 손상되어 있을 피부가 걱정이었다.

이럴 때 무턱대고 벗기다가는 그대로 싹 날아가는 수가 있었다.

‘조심…… 조심…….’

다행히 안대훈은 외모에 비해 굉장히 섬세한 편이었다.

이것도 다 수혁 덕이었다.

수혁이 잘하는 게 단지 진단만이 아니지 않나.

수혁은 술기도 잘했다.

그걸 배우기 위해 아니, 따라 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더랬다.

“으…….”

마침내 양말이 다 벗겨졌을 때, 옆에 있던 환자가 오만상을 썼다.

단지 싫어서만은 아닐 터였다.

어머니 발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뭐 했나 싶을 터였다.

“이게, 이게 왜.”

“당뇨가 심하면 작은 상처도 쉽게 낫질 않아요.”

대훈은 발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쩌면.’

잘라야 할 수도 있단 생각을 하면서였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훈은 자신도 잘 모르는 미래의 일을 함부로 떠들 만큼 부주의한 성격이 아니었다.

원래도 신중했는데 팔자에 없던 주교 노릇을 하면서 더 신중해진 마당이었다.

“고혈당 자체가 혈관을 망가뜨리거든요.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렇게 작은 혈관들이 망가지면 감각이 둔해져서 잘 다쳐요. 다쳐도 모르고. 생각보다 통증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이 크거든요.”

“네…….”

해서 질환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미래가 아니라 그저 이 질환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 상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훈은 지금 이 환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주 잘 알았다.

보지 않았어도 과거를 꿰뚫어 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다치면…… 이제 망가진 혈관 때문에 면역 체계의 작동이 늦어지거나 혹은 아예 작동 자체가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럼 상처가 낫질 않죠. 망가진 피부 틈새로 균이 들어와 증식합니다. 그럼…… 이렇게 되죠.”

안대훈은 환자의 발을 가리켰다.

연신 시계를 돌아보면서였는데, 올 때는 그렇게 빨리 오는 거 같더니 갈 때는 느리게만 느껴졌다.

분명 더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이 환자의 상태는 안대훈에게 부담이었다.

“이것만 해도…… 위험합니다. 낫지 않는 감염은 그 자체로 위험해요. 근데 이렇게 염증이 생기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어……. 모르겠습니다.”

“혈당이 올라갑니다.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에 대응하기 위해 혈당이 올라가요.”

“아, 네…….”

대훈의 심각한 얼굴과는 달리 환자의 얼굴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혈당이 올라간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안대훈은 그런 환자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미 어머님은…… 혈당이 올라가 있습니다. 당뇨가 있으니까요. 이거 보이세요?”

“981……?”

“네. 이게 현재 당 수치입니다.”

“어……. 이거 엄청 높은 거…… 같은데.”

환자는 자신의 당 수치를 떠올렸다.

200인가?

그랬는데도 검진했던 의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거 이대로 두었다가는 난리 난다고.

근데 981?

이거 괜찮은 건가?

“당연히 높죠! 너무 높죠! 원래도 당 조절이 안 되는데, 감염이 생겨서 당이 더 오른 거예요. 이렇게 되면…… 정도 이상의 당이 올라가 버리면…… 우리 몸의 삼투압이 망가지게 됩니다. 체내의 수분이 다 피로 빨려 나가요. 그렇게 되면 그리고 신장을 통해 당이 나갈 때 수분을 달고 나가요. 탈수가 일어납니다.”

“아…….”

“수분이 줄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모르겠어요.”

“혈당이 더 올라갑니다. 왜냐면 당이 빠져나가는 것보다 물이 더 나가니까요. 농도가 더 오르는 거예요. 그럼 더 탈수가 가속화됩니다. 의식을 잃게 되고, 결국엔 이렇게 되죠.”

대훈은 이 상태에서 사망률이 20%에 육박한다는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이건 통계일 뿐이지 않나.

이미 절망하고 있는 환자를 더 괴롭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상황이 그리 좋지 않고,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될 일이었다.

“어…… 그럼.”

“위험한 상황이에요. 반드시 치료해야 합니다.”

“네네.”

“지금 어디쯤…… 오, 다 왔네.”

그사이 차량은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입구는 늘 그러하듯 비워져 있었다.

덕분에 앰뷸런스는 곧장 그리로 향할 수 있었고, 대훈은 구조사와 함께 환자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그 중심에 수혁이 서 있었다.

뭘 먹으면서였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된 밥이 아니라 그냥 삼각 김밥으로 때울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 왔네.”

“네! 교수님 예상대로 고삼투압성 저혈당 상태(HHS: hyperosmolar hyperglycemic state)입니다!”

“오.”

수혁은 대훈의 노티를 들으면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론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역시 안대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바루다가 없긴 하지만, 또 수혁만큼 머리가 팽팽 돌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노력해 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보기에 이놈은 정말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처치는?”

“수액…… 오면서 2ℓ 주입했습니다. 촉발 원인으로 보이는 당뇨발에 대해서는 항생제 처방했습니다.”

“좋아.”

“중심 정맥관 삽입하겠습니다.”

“좋아!”

남의 노력에도 보람을 느낄 수 있구나.

제자라서 그런가?

잘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먹고 있던 삼각 김밥을 내려놓고, 처치실로 달려가는 대훈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이따 저녁에 밥 사 줄게. 수고했다.”

“앗……. 아앗.”

그 말과 함께 머리를 감싸 쥐면서 오체투지라도 할 것 같은 안대훈을 보고 있자니 슬쩍 후회도 되긴 했지만.

하여간 잘한 것은 잘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 환자는 안대훈이 살렸다고 볼 수 있었다.

‘말…… 해 줘야겠지?’

[이현종이 그랬죠. 교수는 레지던트를 혼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고.]

‘그렇지.’

그런 주제에 이현종은 맨날 들들 볶는 편이긴 하지만.

하여간 하는 말 자체는 참 배울 만한 편이었다.

심지어 신현태도 그걸 늘 유념하고 있는지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고.

다른 교수들, 특히 이현종 사단으로 분류되는 교수들은 대개 그러했다.

명색이 아들인데 당연히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그로 인해 안대훈이 지금보다 더 분골쇄신 공부하게 된다면. 그래서 또 이 비슷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일 터였다.

톡톡.

해서 수혁은 대훈의 머리를 두드렸다.

어떻게 보면 좀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옆에 있던 기훈은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봐도 나이가 몇 살은 위 같은데 머리를?

그것도 저 머리를?

“네가 살렸어. 잘했다.”

“으어엉.”

하지만 안대훈은 그 행동 그리고 그 말에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했다.

일단 수혁이 다른 사람 몸에 손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그랬다.

“가서 마저 살려.”

살짝 오버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직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수혁은 조금 차가워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보통 사람이 이런다고 감정이 막 한순간에 추슬러지고 그렇진 않을 텐데.

안대훈의 충심은 그 기본이 신앙에 있어서 그런지 가능하게 해 주었다.

“네.”

대훈은 눈물을 훔치고, 분연한 얼굴이 되어 처치실로 향했다.

“중심 정맥 삽입관 삽입합니다.”

“네.”

그러곤 대량 수액 투입을 위해 중심 정맥관을 잡았다.

그사이 수혁은 환자를 불러 물었다.

“보셨죠?”

“아, 아, 네.”

환자에게 수혁은 어머니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단지 그걸로만 만족할 수 있는 위인이 못 되었다.

눈앞에 또 다른 위험군이 있지 않나.

이 환자가 이대로 관리 안 해서 나이 먹으면 또 저렇게 될 것이 분명했다.

뻔한 미래라고나 할까.

“당뇨 무서운 병이에요. 환자분도 열심히 관리하세요.”

“아, 네. 교수님. 근데 저희 어머님은…….”

“의식을 잃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으셨죠. 그리고 오면서 올바른 처치를 했고. 그럼에도 완전히 낙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머님 상태에서는 최적의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뭘요.”

수혁은 그렇게 안대훈이 뻘짓 하지 않나 잠시 살펴보다가 이내 병동으로 갔다.

김인수, 김진용이 데려온 환자를 포함해 다른 환자들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이현종에게 전화해 저녁 약속을 잡았다.

“몇 명?”

“원래는 셋인데…… 아마.”

“왈랑왈랑 따라붙겠지. 그래. 그럼 5명. 근데 나머지 하나는 누구야.”

“안대훈이요. 오늘 되게 잘했어요. 이따 무용담 한번 들어 보세요.”

“오, 그래? 네가 잘했다고 했을 정도면…… 알았어.”

수혁과 그 일당이 낄낄거리며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있을 때쯤, 우창윤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였다.

모니터에는 각종 논문과 케이스들이 떠 있었다.

옆에는 죄지은 표정의 펠로우 그리고 레지던트들이 있었고.

“모르겠냐?”

“네.”

“나도 모르겠다.”

“네?”

“하, 시발.”

천장을 바라보는데 수혁의 얼굴이 보였다.

아무래도 또 도움을 요청해야 할 타이밍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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