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9화 요청 (1)
우창윤은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을 하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이 정도까지 했는데 모르겠으면, 그건 어떤 수를 써도 모르는 문제라는 걸.
학창 시절에도 다 경험해 본 것이지 않나.
시험 시간을 아무리 끝까지 소모하면서 버텨 봐야, 딱 봐서 모르겠는 문제를 다시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아니, 어쩌면 없다고 단정 지어도 될 판이었다.
‘에이…….’
우창윤 교수는, 아선 병원의 기조 실장 우창윤 교수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이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고뇌했던 만큼 수혁의 번호가 떡하니 떠 있었다.
따르릉.
이제 더 고민하는 게 의미 없을 거란 확신이 든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우창윤은 전화를 걸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우 교수님.”
곧 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빨랐다.
“어……. 뭐 하고 있어요?”
“아뇨, 심심해서요.”
“아, 심심.”
우창윤은 힐끔 시계를 돌아보았다.
오후 2시였다.
다른 직장도 아니고 대학 병원에서.
그것도 태화 의료원이라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곳에서 심심이라니.
다른 놈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즉시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외치면서 뭐라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이수혁이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심심해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괴물 같은 놈…….’
쓰레기가 아니라 괴물이라는 뜻이었다.
우창윤은 왜 이런 인재가 우리 아선에는 없나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 별건 아니고.”
원래는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
벌써 이틀째 고민 중인데 모르겠다고.
검사를 반복하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하지만 절로 방어 기제가 발동해 버렸다.
‘별거 아니라고? 돌았냐?’
그 말을 한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일종의 모욕이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내분비내과 애들이 죄 달라붙었음에도 실마리조차 못 찾고 있지 않나.
그 와중에도 환자는 시시각각 안 좋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신장 내과의 푸시였다.
‘아직도…… 몰라요?’
젊은 나이에 단 기조실장 자리.
이제 겨우 50 갓 넘은 우창윤을 시기하는 사람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이상하게 가까운 곳일수록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기조실장에서 밀려 버린 장본인이 있는 신장내과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 건수 잡았다 이거지.’
문제가 있다면 그쪽에 힘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세월의 힘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았으니.
“아니, 별거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건수 잡히는 건 피해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과는 별개로, 환자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가는 대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횡설수설하시네.’
[별거 아닐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수혁은 그런 우창윤의 갈등을 들으면서, 하윤의 말을 떠올렸다.
우창윤도 딸이 프락치라는, 정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번처럼 집에 케이스를 들고 가서 고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민이라는 게 그냥 막 털어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던가.
게다가 환자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그랬다.
[얼굴이 너무 안 좋다고 했죠.]
‘그래. 우창윤 교수님이…… 세상 속 편한 사람인데 그 정도면 아마 큰일일 거야. 그럴 수밖에 없지.’
그렇게 멍하니 있는 것을 우하윤은 조르르 달려와 교주께 고했다.
그렇게나 많은 기적을 접해 놓고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교도 아버지가 괘씸해서이기도 했고.
또 자식 된 마음으로 쓸데없이 고생하고 있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수혁이 우창윤에게 전화를 걸게 된 것 자체가 다 우하윤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그게 말이야.”
우창윤은 사건의 전말이라고는 까맣게 모른 채, 말을 이었다.
수혁은 발군의 연기력을 발휘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식으로 그 말을 받아 주었다.
“네, 듣고 있어요.”
“그래. 그…… 지금 환자가. 여자 62세야.”
“네.”
여자.
62세.
별거 아닌 정보지만, 가능한 질환들이 급하게 좁혀지고 있었다.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하고 있고.”
“아.”
거기에 만성 신부전.
그러니까 ESRD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려운 질환이지……. 여기서 내분비랑 접점이 생기면…….’
[그렇죠. 골 때리는 일입니다.]
골 때린다.
정말로 그랬다.
신장 질환 자체가 어려운 질환이지 않나.
신장 생리를 배워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는 일도 그렇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한 구조도 그렇고.
괜히 망할 놈의 신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거기에 내분비가 더해져?
말 다 한 셈이었다.
“신성골이영양증 평가를 위해 의뢰됐는데…….”
“네.”
신성골이영양증.
만성 신부전 환자는 1,25-디하이드록시 비타민D의 신장 생산 감소와 고인산 혈증이 발생하게 된다.
자세하게 말하면 좀 복잡해지는데, 하여간 결론적으로 두 상황 모두 혈액 내의 칼슘 농도를 낮춘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
우리 몸은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기에, 혈액 내의 칼슘 농도를 다시 높이기 위해 애를 쓰기 마련이었다.
부갑상선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고, 부갑상선 호르몬은 우리 뼈를 녹여서 칼슘을 확보한다.
뼈가 부서지게 된다는 뜻인데 이를 신성골이영양증이라 했다.
“심각한 골다공증이 관찰되었어.”
“네.”
당연한 얘기였다.
만약 관리가 잘 안 되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치료를 해야 할 차례였고, 이는 딱히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치료 방법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호전시키는 것이야 어렵겠지만.
다분히 기계적인 일이라 이렇게 수혁에게까지 전화를 걸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근데 전화를 걸었지.’
[뭘까요?]
‘알 수는 없지. 하여간…….’
[기대가 되는군요.]
뭔가 있다는 얘기였다.
수혁과 바루다는 명의병 환자고 동시에 변태인 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검사 수치가 이상해.”
“검사 수치가요?”
“응……. 부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48이야.”
“어…….”
“정상이야. 정상이라고.”
“그건 정말 이상하네요?”
“어어. 어디 사람이 많은가? 갑자기 목소리가 좀 울리는데.”
“아, 아뇨아뇨. 이상해서요!”
“어.”
게다가 방금 우창윤 교수가 말한 것은 전혀 예상외의 이야기였다.
신장 투석을 하고 있는 사람이 골다공증이 있는데 부갑상선 호르몬은 정상이라고?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론적으로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의학은 결국, 통계에 기반한 학문이기에 이러한 일이 아예 발생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 환자가 나타내는 것은 현상이지 않나.
이해할 수 없다고 뻐팅기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고 또 어리석은 일이었다.
때문에 수혁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러한 수혁의 다분히 변태적인 심리를 모르는 우창윤으로서는 그저 전화기를 살짝 멀리 둘 수밖에 없었다.
‘어우, 갑자기 음량이 왜 이래.’
사람보다는 기계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세상에 어려운 케이스를 들으면서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고?
게다가 그 흥분 정도가 목소리가 이토록 커질 정도라고?
누구도 믿지 못할 터였다.
“그 외에 다른 검사 결과는 어떤가요?”
“혈청 알칼리성 인산 분해 효소 활성도는 증가해 있어. 약간이지만.”
“그건 또 이상한 일이네요.”
“그러니까 환장할 일이지…… 검사가 잘못됐나 해서 세 번이나 나갔어. 근데 여전히…… 부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정상이야.”
우창윤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일을 했다.
머리를 박박 긁었다.
‘아차!’
그러다 책상 위로 애처롭게 떨어져 내린 머리카락을 보고 나서야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곤 후회했다.
내가 대체 방금 무슨 짓을 한 걸까.
거울로 본 머리가 괜히 더 비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니, 더 비어 있었다.
‘이거 고민하다가 더 빠졌나? 그런 건가?’
이런 제기랄.
왜 하늘은 이런 환자를 보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나.
우창윤은 원망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수혁이 말을 이었다.
“환자의 임상 상태는 골다공증이라는 거죠?”
“그렇지. 근데…….”
“부갑상선은 정상이고요.”
“그렇네.”
“제가 알기로 이런 케이스는 없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내가…….”
수혁도 당장 답을 떠올리지 못하는 케이스였다.
우창윤이 절로 대머리가 되어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이런 케이스는 없었으니까.
전자 기기 광고라면야 다들 기뻐서 날뛰었겠지만.
케이스인 경우라면 수혁이나 바루다 또는 이현종 같은 사람이나 날뛰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고통이었다.
“정리하면 만성 신부전에 투석을 하고 있고, 골다공증이 있는데…… 부갑상선 호르몬은 정상이다. 이거죠?”
“그렇지.”
“말하면서도 좀 이상하네요?”
“그렇지. 나도 이상해. 그래서 펠로우들 다 조지…… 아니, 다 같이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흐음……. 일단 저도 고민 좀 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혹 정 안 되면 병원 가도 될까요?”
“병원을?”
우창윤은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이전 일을 떠올렸다.
수혁이 술 취한 이현종, 조태진과 이 병원에 와서 사달을 일으켰던 날이었다.
다행히 그때 일은 그저 해프닝으로만 남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기도 했다.
하여간 그 환자는 살았으니까.
그 덕에 우창윤도 명성을 이어 나갈 수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수혁이 막 병원에 온다는 것이 꺼림칙했다.
“네. 가 봐야 할 수도 있죠.”
“음.”
꺼림칙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있을까.
수혁은 천잰데.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필요한 것이었다.
심지어 최근 아주 묘한 소문도 돌고 있었다.
이건 태화 측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믿을 만했다.
‘그 괴물도 이수혁 교수는 뭔가 다르다고 했다지?’
의학적인 기준이 저 하늘 끝에 있는 사람의 평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우창윤도 수재고 일정 부분 천재였으나.
이 둘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필요하다면 와야지…….”
“저도 뭐 꼭 가고 싶은 건 아니고요. 일단 고민해 볼게요. 혹 다른 검사 결과 나오면 보내 주세요.”
“그러지. 성심성의껏 공유할게.”
“네.”
수혁은 우창윤의 답을 듣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통합진료센터의 레지던트들을 소집했다.
의외로 센터에 속하지 않은 놈들도 더러 모여들었다.
“너…… 너네 안 바쁘니?”
안대훈과 우하윤도 당연하다는 듯 끼어 있었다.
“네. 일 다 끝냈습니다.”
“그럼 뭐.”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빵꾸 내는 것도 아니라는데.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될 놈들도 아니지 않나.
“만성 신부전에 투석을 하고 있고, 골다공증이 있고…… 부갑상선 호르몬은 정상이다. 이 케이스 찾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