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요청 (2)
수혁은 레지던트들을 총동원해서 관련 자료를 서칭 하고 있었다.
이미 절반은 자발적 노예를 자처하고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수혁은 이따금 밥도 먹고 물도 마시라고 채근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야, 밥은 먹어.”
“불초 소생이 어찌…… 이것만 찾아보고 먹겠나이다.”
“말투가 이상하잖아, 너. 밥을 먹으라고.”
“성은이…….”
“지랄 말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안대훈이었다.
녀석은 그야말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느낌으로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우하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누가 오늘 이거 못 찾으면 죽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심이었다.
실은 우창윤이, 그러니까 자기 아빠가 요청한 건인데 저러고 있다니.
우창윤이 알면 복장이 뒤집어지지 않을까.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 나오네…….]
‘그러니까. 돌겠네?’
마냥 그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본능이기도 하고 또 이현종을 보다 보니 자꾸만 남 놀리는 데 재능을 개화하고 있지만.
또 다른 본능이 망령처럼 수혁을 환자에 대한 고민에 붙들어 놓고 있었다.
‘몇 시간 지났지?’
[6시간이요. 사실 애들 다 퇴근했어야 합니다.]
‘오, 이런.’
시계를 돌아보니 정말로 오후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수혁이 레지던트일 때는, 그러니까 작년까지는 이래도 되었다.
주 120시간 일하는 사람이 쌔고 쌨으니까.
하지만 올해부터는?
법적으로 전공의 보호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첫해였다.
주 88시간.
“야야. 집에 가. 집에! 당직은 당직실로! 나머지는 집으로!”
“교수님, 잠시만요. 이게.”
“잠시 하다가 나 시말서 쓴다!”
“아, 네. 알겠습니다.”
누군가에겐 주 88시간도 꽤 많은 시간이긴 할 터였다.
하지만 주치의 제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대학 병원에서 88시간은 사실 좀 칼같이 지키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환자를 보는 집단이라서 그랬다.
생각해 보면 24시간 돌아가는 집단이 딱 병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텔도 그랬고, 일부 식당도 그랬다.
주유소나 편의점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24시간 내내 책임자가 일을, 그러니까 환자를 붙들고 있어야 유리한 직종은 거의 없지 않을까?
“가라, 가!”
“네.”
그러니까 88시간이라는 건 일종의 합의점이었다.
환자를 잃지 않기에 유리한 주치의의 업무 시간은 당연히 주 168시간.
하지만 그러다 의사가 죽을 수 있기에 깎고 깎아서 만든 것이 88시간이었다.
“저는 그럼 집에서 더 찾아볼게요.”
“그건 알아서 하시고. 일단 집에 가.”
“교수님은요?”
“나는 해당 사항 없잖아. 괜찮아.”
아직은 전공의만을 대상으로 집행되고 있었다.
그 덕에 원래도 펠노예라고 불리던 펠로우들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보호법의 사각지대에서 레지던트가 올리는 업무와 교수가 내리는 업무를 모두 짬 처리당하고 있다고 할까?
통합진료센터에는 펠로우가 없으니, 그걸 감당해야 하는 건 교수뿐이었다.
애초에 의사란 노동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직종인데 전공의에게만 예외를 둔 것이니 억울해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긍정왕 이수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수혁아, 혼자 뭐 하니.”
또 다른 예외자, 이현종이 센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통합진료센터가 바쁠 땐 여기서 환자를 보지만.
요즘처럼 한가할 때는 손 푼다고 심혈관 센터에 드나들어서 그랬다.
실제로 여전히 이현종이 보는 환자 절반은 심장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아직도 대한민국 최고의 심장내과 전문의였으니.
“아, 아빠. 이것 좀 봐줄래요?”
“어어. 뭔데.”
그리고 동시에 수혁이 도움을 요청해 볼 만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 거의 유일할 터였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수혁이 이현종을 뛰어넘었다고 바루다는 판단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이현종이 여태 쌓아 올린 경험과 그것을 토대로 한 직관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거 아선 병원 우창윤 교수님이 요청한 건이에요.”
“오, 우리 학술이사.”
하여간 이현종은 수혁의 요청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사실 오늘 시술했던 것 중에 너무 어려운 것이 있어서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모처럼 아들이 도움을 요청해 오고 있지 않나.
게다가 그 대상이 우창윤이야?
이건 참기가 어려웠다.
이현종은 급히 물을 떠다 마시며 슥 케이스를 훑었다.
‘이상하네. 확실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역시나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케이스 안에 논리가 깨져 있었다.
케이스 안에서 합당하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 추론을 그 케이스가 부정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 녀석이 이렇게 초조해하는 이유가 있네.’
이현종은 고개를 돌려 수혁을 바라보았다.
실로 보기 드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최근 들어서는 아마 처음일 거 같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있을 게 뻔했다.
혹 내 번뜩이던 머리가 수명이 다한 건가부터 해서 내 전성기가 지났나 등등.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아냐면, 이게 다 이현종이 겪어 온 길이라 그랬다.
‘옆에서 천재다 천재다 하니까 저도 모르게 과도한 부담감에 휩싸인 게지. 나부터가 그랬으니.’
어찌 보면 이현종 때는 수혁보다도 더했다.
그때만 해도 대한민국 의료 수준이 어떠했나.
어떤 말로 치장을 해 봐도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었다.
개발 도상국의 의료 수준이란 대개 그러했다.
지금이야 태화나 칠성, 아선 같은 민간 의료가 최고인 것을 당연시하지만 이현종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군 병원이 최고였다.
나라에서 군 병원에 투자를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거기엔 미군 또는 연합군이 쓰다 버리고 간 것들이 남아 있어서 그랬다.
‘나도 그랬다, 수혁아.’
그러던 와중에 이현종이 등장한 것이었다.
미쳐 버린 실력을 가지고.
또 이론을 가지고.
전 세계 교과서를 뒤바꿔 버렸다.
말이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되어 펼쳐졌다는 얘기.
주변에서 얼마나 이현종을 추앙하고 또 질투하고 부담감을 심어 줬겠나.
제아무리 이현종이 제멋대로고 또 자기 멋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때는 어렸다.
그리고 지금의 수혁은 그때의 이현종보다도 더 어렸다.
“말이 안 되는 케이스인데?”
“어…… 네. 근데 현상이 이러니까요.”
“현상? 아, 환자 상태.”
“네.”
“뭐…… 의학이 결국 통계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현상에 지배당하는 게 맞기는 하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이론과 배치되는 현상이 있으면 의심해 봐야지.”
“네?”
“잘 생각해 봐라, 수혁아.”
이현종은 고개를 들어 스테이션에 널려 있는 컴퓨터를 돌아보았다.
어림잡아 열 명도 넘는 인원이 여기서 머리를 혹사당한 흔적이 보였다.
모니터에 떠 있는 것들이 다 비슷한 자료들이지 않나.
게다가 어떤 놈은 마시던 커피도 그냥 두고 갔다.
아무리 퇴근이 마려웠어도 그렇지.
저걸 그럼 수혁이한테 치우라고 하려고 그랬나.
이현종은 일단 지문 의뢰 또는 유전자 감식이라도 하려는 생각으로 커피잔을 챙기면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심지어 너까지 동원해서 자료를 뒤졌어. 그리고 이거 의뢰 온 거랬지?”
“네. 우창윤 교수님이요.”
“그 인간이 그냥 딱 보고 어 이상하네? 이러고 의뢰했을까? 자존심 빼면 시체인데?”
“아……. 아마 나름대로 엄청 알아보고 줬을 거 같긴 합니다.”
“그래, 맞아.”
이현종과 이수혁이 아는 우창윤은 그런 인간이었다.
이미 이현종과 이수혁 모두 천재라는 건 인정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둘에 비해 자신이 아주 처진다고까지 인정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녀석은 정말 턱도 없는 상황에서조차 승부욕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언제냐 벌써. 그때 우리…… 연수 갔을 땐가?’
모든 학회가 아직 신생아였을 무렵.
이현종은 우창윤과 함께 갔던 연수를 떠올렸다.
거기서 단합을 목적으로 탁구를 쳤는데, 우창윤의 상대는 전국 체전 도 대회 출신이었다.
선수란 얘긴데.
거기서도 눈에 불을 켜고 이기려고 했다.
지고 나서도 좀만 더하면 이길 수 있다고 난리를 쳤다.
이 새끼가 약을 했거나 아니면 만취했겠구나 했었으나 알고 보니 그냥 성격이 그랬다.
“다시 말하면 이 케이스는 아선에서 검증하고 태화에서도 검증했는데 뭐가 안 나왔다는 거야.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이 케이스가 세계 최초일 가능성?”
“그래, 뭐. 그것도 맞아. 논리가 깨지는 케이스가 갑자기 나타났을 수도 있어. 사실 이럴 가능성이 아주 없는 시대는 아니긴 하지.”
옛날 같았으면, 여기서 말하는 옛날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죽었을 사람들이 지금은 그럭저럭 오래 사는 시대가 된 지 오래였다.
당장 이 환자만 해도 그랬다.
신장 기능이 망가졌다?
옛날엔 그냥 죽었다.
투석을 해야 한다?
그래도 오래 살지 못했다.
하지만 투석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면서 환자들은 점차 오래 살게 되었다.
그 결과 의료진은 전에 없던 이상한 현상을 계속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내 생각에 너무 정면으로 배치돼.”
“음……. 그 말은?”
“이 현상이 잘못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단서 수집이 안 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하지. 여기서 무턱대고 자료만 찾고 있을 게 아냐.”
“현상이 잘못되었다……. 음.”
수혁은 이현종의 말을 듣자마자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은 못 해 봐서 그랬다.
검사 결과가 저렇게 나왔다는 건 움직이지 않는 사실, 즉 상수이지 않나.
게다가 아선에서는 검사 결과를 의심해서 벌써 세 번이나 같은 검사를 했고 그때마다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했다.
근데 그럼에도 의심을 한다?
상식적으로는 맞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아빤데.’
[이현종의 말은 가벼이 여길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그럼……?’
[일단 따르죠. 어차피 뾰족한 수도 없지 않나요?]
아마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깔끔하게 무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이현종.
자신에게 해될 만한 얘기를 할 리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차치해 두고서라도 주목할 만한 인간이었다.
이현종은 그야말로 불세출의 천재였으니까.
바루다라는 치트키 없이도 세계 의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사람.
“그럼 어찌해야 할까요?”
“어쩌긴. 역시 현장에 가야지. 자꾸 이런저런 얘기하는 놈들이 많은데…… 하여간에 의사는 환자를 봐야 해. 이런 종이 쪼가리에 자꾸 의지할 생각 하면 안 된다고.”
다분히 꼰대 같은 말이지만 동시에 맞는 말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는 행위는 제대로 된 진료에 있어 항상 유리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들이닥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우창윤이 옛날 우창윤이 아니지 않나.
그는 이미 포섭된 지 오래였다.
학술이사였다.
“어, 나 이현종. 회장.”
“네, 회장님…… 어쩐 일이신지.”
“학술이사 환자가 어렵다고 해서.”
“아, 그거.”
“뭐. 해결했어?”
“아뇨…….”
“그럼 병원이겠네.”
“네? 그렇긴 한데.”
“20분 이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