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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81화 (681/1,303)

681화 요청 (3)

우창윤이 뭐라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이현종은 전화를 끊었다.

이현종의 됨됨이를 아는 우창윤은 굳이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걸어 봐야 받지도 않을 텐데 뭐 하러 건단 말인가.

아니, 받아도 소용없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다.

이현종은 한번 마음먹은 건 잘 바꾸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까.

‘오면…… 달라지려나?’

게다가 기대도 있었다.

이현종이 괜히 학회의 거목으로 남을 수 있었겠나.

성질도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고, 사실상 제멋대로인 인간인데 그럴 수 있었던 건 능력이 엄청나서 그랬다.

누가 뭐라 그래도 이현종의 의학적 재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거기에 수혁까지 더한다?

‘어벤져스가 온다 이거지.’

없는 답도 생긴다는 소리였다.

우창윤은 잠시 고뇌하다가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미 시간이 늦어서 레지던트는 당직을 제외하면 다 퇴근한 상황.

그래도 괜찮았다.

펠로우들은 있을 테니.

“네, 교수님.”

아니나 다를까, 펠로우는 그저 일상이라는 듯 전화를 받았다.

아마 여기서 우창윤이 무슨 일을 던져도 감사합니다란 말만 나올 터였다.

우창윤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시절이 더 험악해져서, 더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불쌍한 놈들…….’

우창윤이 입학할 때도 의사 한물갔다는 말이 슬금슬금 나올 때였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졸업한 우창윤은 개원한 동기들이 벌어 재끼는 돈을 보며, 대체 예전엔 시발 어땠길래 저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요사이 나오고 있는 한물갔다는 말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젊은 의사들은 정말로 개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덕분에 대학 병원으로 수많은 인재가 몰리고 있었다.

그 인사권을 쥔 기존의 교수들은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어, 잠깐 병동으로 올까? 우리 케이스…… 그 양성자 씨.”

“아……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 늦은 시간에 오라 그랬는데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

우창윤이 그렇게 펠로우와 조우해 곧 이어질 진료과 교육에 대비하는 사이 수혁은 이현종과 나란히 앉아 아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야, 차 좋다.”

이현종은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조수석에 앉았다.

차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남들 다 사는 차, 나도 사야겠다고 생각해서 산 외제 차가 한 대 있었다.

하도 운전을 안 해서 이제는 아마 폐차를 염두에 둬야 할 테지만.

“좋죠? 저도 가끔 운전하는 게 좀 아까울 지경이에요.”

“하하, 의사가 환자를 봐야지. 운전을 해서 되나.”

“어……. 그런가요?”

“그렇지.”

수혁도 그런 이현종을 본받아 열심히 차를 썩히고 있었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수혁에게는 아직 신현태와 같은 발이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안대훈을 시키면 무조건 따를 테지만.

녀석은 아직 레지던트다 보니 차가 없었다.

다행히 수혁도 그렇게까지 남 부려먹는 데 도가 트지는 못한 상황이었고.

부웅.

해서 수혁이 몰게 된 차량이 밤거리를 웅 하고 달려나갔다.

서울이다 보니 늦은 시간임에도 막혔으나, 두 병원이 그리 멀지 않은 덕에 아주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현종은 사실 그런 것도 좀 불만이었다.

“뭐 하러 이 큰 병원을 여기다 지었어.”

따지고 보면 태화 의료원이 이리로 이사 온 것이 더 나중 일이었으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그저 우리 병원 주변에 큰 병원이 있다는 게 싫었다.

수혁은 역사를 몰라서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봐도 태화 의료원이 더 신식 건물이라는 건 바루다도 그렇고 수혁도 그렇고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상도의가 없어.”

“그런데도 도와주러 온 우리는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니.”

“그러게요. 와, 우리는 의리파다 의리파.”

“고마운 줄은 알려나. 배은망덕한 새끼.”

둘은 그렇게 우창윤과 아선을 도매급으로 씹으며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시큐리티가 휘리릭 달려와 막아섰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우창윤이 미리 로비에 보내 둔 인턴 덕이었다.

“아, 교수님. 이리로.”

“아……. 네, 실례했습니다.”

늦은 시간 사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모르는 얼굴이면 당연히 막아서야만 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수혁도 이현종도 너무 의사스러운 얼굴이었다.

딴 게 아니라 병원에 들어서면서 너무 자연스러웠다.

제집 드나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네네.”

“허허.”

하여간 둘은 인턴의 안내에 따라 병동으로 향했다.

“아, 오셨어요.”

“혼자가 아니네?”

“네, 우리 펠로우 선생인데. 추론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이야, 우리 우 교수. 많이 기특해졌네. 어? 옛날 같았으면 뒷구녕으로 어떻게 하려고 애를 썼을 텐데 말야.”

“네? 아니, 그런 말은 좀.”

“하하하하. 그래그래. 기조실장이라 이거지?”

“그, 아니, 뭐.”

아닌 게 아니라 우창윤은 마음을 고쳐먹은 참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 시간에 남의 병원까지 와 주는 미친놈들이 대단한 거 아니겠나.

아무리 사명감 투철한 의사들이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이지 환자 보는 데 환장한 느낌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환장한 놈들의 능력이 환상적이란 점이었다.

해서 펠로우를 불러 놨더랬다.

“잘 부탁드립니다.”

펠로우는 방금 전까지 우창윤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둘 다 이상한 새끼들이니까 심기 거스르지 말고, 심기 거스르는 말 해도 참아 넘기라고.

설마 그런 새끼들일까 싶었다.

아니, 그래도 점잖다 평가받는 내과 의사들인데 그렇다고?

하나 만나자마자 우창윤 교수 씹어 뜯는 폼이 역시나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래, 그래. 모자란 친구한테 배우는 시늉하느라 고생이 많아. 하여간 엄청 노력했는데 소용이 없었다고?”

“어…… 네.”

이현종은 껄껄 웃으며 자연스레 병동에 앉았다.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케이스 볼 수 있을까요?”

“아, 여기.”

수혁은 이현종과 더불어 케이스를 살폈다.

사실 워낙에 자료를 촘촘하게 주어서, 아까 받아 들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우창윤이 건네주었던 자료가 더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역시 환자를 직접 보아야 했다.

“환자분은 혹시 어디 계시죠?”

“병실에. 어디 가지 말고 계시라고 말씀드려 놨어. 사실 뭐…… 어디 다닐 수 있는 컨디션도 아니긴 하고.”

“네, 가실까요?”

“어어.”

수혁은 우창윤을 대동한 채 병실로 향했다.

딱 들어서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났다.

신장 환자의 숨결에서 풍겨 오는 냄새였다.

확실히 이 환자는 투석을 받은 지 오래된 듯했다.

한데 부갑상샘 호르몬은 정상이고, 동시에 골다공증이 있다고?

이상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수혁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충돌하는 논리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먼저 나선 것은 이현종이었다.

아니, 아마 망설이지 않았다 해도 그랬을 터였다.

이현종은 평소보다도 훨씬 서두르고 있었다.

‘설마…….’

[이현종은 감을 잡은 걸까요?]

‘이런 케이스를? 아무도 모르는 케이스를?’

[수혁이 있기 전에는 그런 케이스를 보통 저 사람이 해결했습니다.]

‘아, 하긴. 또 그렇긴 하네.’

환자는 그런 이현종을 마주했다.

아무 가운이나 얻어 입고 들어온 참이었으나, 오랜 의사 생활로 인해 단련된 눈빛과 얼굴은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도 고생을 해서 날카로워지기 마련인 만성 신장 환자조차 마음이 조금 풀어질 지경이었다.

“네, 교수님.”

“그래……. 투석하신 지 오래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어휴.”

“투석 받으시면서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셨어요?”

“어…….”

이건 신장내과에서나 물어볼 만한 질문이었다.

내분비내과인 우창윤은 수치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창윤에게 케이스를 의뢰받은 수혁도 거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하나 이현종은 내분비내과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집중했다.

“투석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수면장애도 잘 생기고.”

“아, 있어요. 잠을 잘 못 잡니다.”

“어떤 식으로요? 단순 불면입니까?”

“아, 아뇨.”

“그럼……?”

불면이라는 말에 우창윤과 수혁의 고개가 모두 모로 돌아갔다.

중요한 증상이기는 했다.

하지만 골다공증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질문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것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한 질문이고, 여기서 잘 답해야 당신의 병이 나을 거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리가 좀…… 떨려서요.”

“하지 불안 증후군?”

“아, 네. 근데 이건…… 오래됐어요. 투석하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게다가 투석하기 전부터 있었던 증상이라는 말이 나왔다.

수혁과 우창윤은 혹시 하는 얼굴에서 다시 아- 하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현종은 여전히 진중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히 의사들이 으레 짓는, 그러니까 환자 앞에서 당황할 수는 없으니 짓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진짜로 그 속에 담긴 뜻이 그래 보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약을 드셨나요?”

“네. 비오틴이라고…… 이건 오래됐어요. 신장이 나빠도 괜찮다고 했어요.”

이현종은 답을 들으며 물끄러미 우창윤을 돌아보았다.

이거 알고 있었냐는 뜻이었다.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환자가 무슨 약을 먹고 있는지 알아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지 않나.

“잘 알았습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다시 뵙죠. 그사이에 또 피를 뽑을 수도 있는데…… 미리 사과드립니다.”

“어유…….”

“죄송해요.”

“아뇨, 뭐…… 제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뭐.”

이현종은 우창윤을 보며 고개를 한번 슥 저은 후 환자의 손을 흔들어 주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쌔했다.

특히 우창윤은 그렇지 않아도 비어 가는 머리통에 바람이 훙훙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방금 대화에 무슨 의미가 있었지?’

전혀 모르겠다.

근데 이현종은 뭔가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다 알고 있던 것을 물었고, 애초에 다 알고 있던 답을 들었다.

‘뭐지?’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럴 수 있지?

‘뭐야. 알겠어?’

[아뇨. 지금 이현종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을 교차 검증했을 뿐입니다.]

‘근데…… 근데 이게 뭐야.’

[저도 잘.]

수혁 또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펠로우야 처음부터 자신이 알아챌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고.

그러니까 나머지 셋은 아니, 인턴도 의사니까 나머지 넷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이현종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현종이 입을 열 때까지였다.

“우 교수.”

“네.”

“진검 어디야.”

“어…… 네?”

그러나 튀어나온 말이 좀 엉뚱했다.

검사는 벌써 세 번이나 반복했는데 뭔 진검이 여기서 또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이현종이 너무…… 너무 뭐라고 해야 할까?

못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는데 니들은 모르지? 뭐 이런 얼굴이었다.

“어디냐고. 가서 얘기해 줄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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