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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82화 (682/1,303)

682화 요청 (4)

보통 사람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땐, 신뢰도가 푹 떨어져야 정상일 터였다.

그러나 이현종이 저러고 있으니 오히려 신뢰도가 수직 상승하는 느낌만 일었다.

남 놀리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인간이기에 그랬다.

“음. 그럼…… 가 볼까요?”

심지어 우창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았다.

표정이야 떨떠름하기 그지없었으나 하여간 이 인간이 뭔가 알고 있겠단 생각은 든 모양이었다.

‘뭐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현종은 알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하…….’

[곁에 이현종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끝없는 자극이 됩니다.]

수혁이나 바루다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현종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둘 아닌가.

저 얼굴?

100%라고 봐도 무방했다.

“여깁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우창윤과 수혁은 이현종을 진단검사의학과로 안내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들어선 참이었다.

이현종은 제집처럼 자리에 떡하니 앉고는 턱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어, 네.”

“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과 내에는 당직의밖에 없었다.

교수가 당직 서는 과가 아니다 보니 레지던트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나마도 이게 아선급 되는 병원이니까 이렇지, 아마 더 작은 병원이었다면 그저 텅 비어 있었을 터였다.

하여간 눈치 볼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이현종은 나머지 두 사람이 앉기까지 기다린 후 입을 열었다.

어느 틈엔가 따라 온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있었다.

“일단 우 교수.”

“네.”

“아니, 우 이사지. 하하. 우리 우 이사.”

“네…….”

먼저 우창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억지로 학회에 낑겨 넣은 게 생각났는지 껄껄 웃었다.

후다닥.

그래도 혹시 기조실장이 들어왔으니 뭐라도 당장 시킬 일이 있는 건가 싶어서 다가와 있던 진단검사의학과 레지던트가 몸을 숨겼다.

기조실장하고 같이 온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서 그랬다.

“일단 이 케이스 다시 읊어 봐.”

“네?”

“케이스 노티해 보라고.”

“아…… 네.”

정말이지 이상한 상황이었다.

내분비내과 교수가, 그것도 해당 학회에서 어마어마한 명성을 얻고 있는 교수가 다른 과, 다른 병원 사람 앞에서 노티라니.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는 게 힘이었다.

특히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상대가 이현종이다 보니 우창윤도 과하게 억울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 인간은 일종의 재해 같은 존재가 아닌가.

일반적인 인간은 저항이 불가했다.

“여자 63세고…… 만성 신부전증이 있어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골이영양증 워크업을 위해 의뢰됐고 검사 결과 골다공증은 있는데 부갑상샘 호르몬 수치는 정상입니다.”

“더 있잖아. 제일 이상한 거.”

만성 신부전증이 있고 골다공증이 있는데 부갑상샘 호르몬 수치는 정상.

이것만 해도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단서가 서로 상충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현종의 말대로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아, 네. 혈청 알칼리성 인산 분해 효소 활성도는 올라가 있었어요.”

“그래.”

혈청 알칼리성 인산 분해 효소.

일반적으로 고교환성 골이영양증에서 활성도가 올라가는 물질이었다.

부갑상샘 호르몬의 정상 수치와 이것 또한 상충한다고 보면 되었다.

덕분에 우창윤은 말을 하면서도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대체 시발 이게 뭐란 말인가.

아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싸질렀을 거 같았다.

하지만 양옆에 앉은 인간들이 죄다 태화 인간들이다 보니 필사적으로 참았다.

[시발시발 하네요.]

‘우창윤 교수도 사람이지.’

[그러니까요. 게다가 이현종 교수 얼굴 보세요.]

‘아빠는 저 얼굴 할 때 진짜 즐거워 보여서…… 진짜 나쁜 사람 같아.’

그런 우창윤을 한껏 도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연히 이현종이었다.

이걸 몰라?

이걸?

뭐 이런 단어를 얼굴로 말하는 느낌이랄까?

하여간 당사자인 우창윤이 잘도 죽빵을 안 날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상충되는 논리. 이게 뭘 의미할까.”

“네? 아니…… 현상인데 논리가 중요한가요? 우리가 뭔가 놓치고 있었겠죠.”

“자신감이 없네. 자네 누구야.”

“네? 아니, 갑자기 그렇게 물으시면. 저는.”

이현종은 천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다.

물론 남 놀릴 때야말로 그 얼굴이 진가를 발휘하긴 하지만.

하여간 지금은 더없이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현종의 명함, 즉 최연소 심장학회장, 최초의 세계 심장학회장, 태화 의료원 전임원장에 어울리는 얼굴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우창윤도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거 철학적인 질문은 아니죠?”

“병신이야? 너 직함이 뭐냐고. 수혁아, 얘 왜 이러는 거 같냐. 요새 뭐 책 보는 거 있나.”

“아, 죄송합니다.”

너무 선을 넘게 고뇌했는지 이상한 말까지 했다.

하여간 우창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자신의 직함을 읊었다.

“아선 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죠. 내과 학회 교육 이사고…… 기조실장이고요.”

“뛰어나네?”

“네? 아, 네. 뭐 교수님 앞에서 자랑할 수준은 안 됩니다만.”

“너랑 나랑 라이벌은 아니니까 그렇지. 하여간 똑똑한 편이잖아.”

“네.”

“그럼 좀 더 네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믿어야지.”

“어…… 네?”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럼 감히 현상을 부정하라는 말인가?

그건 가르침과 정확히 상반되는 일인데.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아빠 뭐래니?’

[모르겠는데요?]

이현종은 그렇게 두 불신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의학이 통계에 기반한 것은 맞아. 우리가 얘기하는 건 결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확률일 뿐이지. ‘이대로면 당신은 오늘 죽습니다’라고 말했는데 2주 이상 생존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기반이 통계라서 그래. 맞지?”

“네, 맞습니다.”

방금 전에 맛만 살짝 보여 주었던 충격에 비하면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였다.

이 얘기는 의학도라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렇지가 않았다.

“근데 생각해 봐라. 충분히 축적된 통계가 있어. 그리고 그 통계를 뒷받침하는 생리적인 이론이 있어. 이러면 어떻게 돼?”

“음.”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어. 모르니까 지금껏 이러고 있지.”

“아, 네.”

“한없이 진리에 가까워져. 예외를 상정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음……?”

진리라.

학자란 누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긴 했다.

하지만 사람 몸을 탐구하는 의사들에겐 이 말을 하는 것이 어쩐지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때 저따위 말을 함부로 했던 적도 있었다.

현대 의학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믿었을 때.

‘그거 뒤집어진 지가…… 언젠데.’

[그러니까요. 요새 저런 말은 잘 안 하는데.]

하지만 사람의 몸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현대 의학은 겸손을 같이 깨닫고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진리로 떠받들어지던 이론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는 세상이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이현종도 구세대의 이론을 뒤집으면서 스타가 된 사람 아닌가.

절대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것을 해낸 사람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절대’가 박살 난 참이다 보니, 이제 그 누구도 함부로 ‘절대’란 소리를 안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잘 봐 봐. 이 케이스. 여기서 하나 엇나가 있는 게 뭐야.”

“부갑상샘 호르몬 수치죠.”

“그래, 이게 정말 정상일까?”

“네? 세 번이나 검사를 했습니다.”

“그 검사 방법에는 오류가 없었을까?”

“어…… 아니, 그건 좀. 너무 무리한…….”

혈액 검사에 대한 신뢰는 더없이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의료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인 환자야 느낄 수 없겠지만, 그 서비스 테두리 안에서는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어서 그랬다.

예전보다 더 빨라졌고.

더 정확해졌다.

“무리하다고? 이 검사 어떻게 하는지 알아? 이 부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어떻게 얻는지 아냐고.”

“그건…….”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공학도가 아니라 내과 의사인데.

수혁도 모르는 일이었다.

딱히 여기까지는 공부할 생각을 못 해서 그랬다.

그러나 이현종은 알고 있었다.

“저기 저거 보여?”

이현종은 레지던트가 숨은 곳을 가리켰다.

“헙.”

덕분에 레지던트는 깜짝 놀랐다.

자기를 가리킨 줄 알아서 그랬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손가락 끝이 묘하게 더 위로 향해 있었다.

“보통 다 저걸 써.”

“저거요?”

우창윤도 수혁도 이현종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 대체 뭘 가리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레지던트를 쓴다는 건가.’

[인간을 지칭한다기엔 지나치게 물건처럼 말하고 있는데요?]

‘우리 아빠잖아.’

[아, 그건 그렇죠.]

비단 수혁만이 아니라 우창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레지던트가 수련의라지만 저거라뇨. 게다가 검사를 뭐 교수가 하나 수련의가 하나, 뭔 차이가 있습니까. 해석의 차이가 있는 거지.”

“응? 뭔 소리야. 어떻게 사람한테 저거라고 해. 자네 사상이 아주 불온한데? 기조실장 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어…… 그럼 뭘.”

“저 뒤에 시약.”

“시약……?”

시약?

시약이라고?

‘어……. 뭐라고 읽는지도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이현종의 손가락은 레지던트 위의 박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엔 ‘Elecsys’라고 쓰여 있었다.

“쟤네가 신뢰도가 높아. 높은데, 당연히 에러도 있지.”

“어떤…….”

“환자가 비오틴을 먹는다고 했지.”

“네.”

“저 시약은 비오틴하고 간섭이 있어. Elecsys Intact PTH assay(PTH 분석)에서 PTH, 부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다고.”

“어…… 그게, 그게 정말입니까?”

우창윤도 수혁도 눈알이 동그래졌다.

그뿐만 아니라, 박스 밑에 숨어 있던 레지던트의 눈알도 동그래졌다.

얼마 전에 의국 내에서 시행했던 논문 리뷰에서 이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임상과는 달리 이쪽에서는 검사 에러가 제일 중요한 문제였으니.

“어…….”

“어른 얘기하는 데 끼어들지 말고. 이현종 교수님, 맞아요?”

레지던트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흥분한 우창윤이 그마저도 못하게 손을 내젓고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 맞아. 나도 가물가물한데…… 아마 내용이 이랬어. Biotinylated Anti-PTH Monoclonal Antibody(비오티닐화된 항PHT 단클론 항체)와 Ruthenium-Labeled Anti-PTH Monoclonal Antibody(루테늄 라벨이 부착된 항PTH 단클론 항체)가 PTH와 샌드위치 복합체를 형성한 후 Streptavidin(스트렙타아비딘, 단백질의 일종)으로 코팅된 미세 입자를 첨가하여 Biotin(비오틴)과 Streptavidin(스트렙타아비딘)을 통해 샌드위치 복합체를 자기적으로 분리해. 비오틴 농도가 높은 표본은 샌드위치 복합체가 스트렙타아비딘으로 코팅된 미세 입자에 결합하는 것을 방지하여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어.”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니네 검사 결과 틀렸다고. 이건 알아듣겠지?”

“아, 네. 아니, 이게. 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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