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83화 (683/1,303)

683화 요청 (5)

Biotinylated Anti-PTH Monoclonal Antibody.

Ruthenium-Labeled Anti-PTH Monoclonal Antibody.

샌드위치 복합체.

Streptavidin으로 코팅된 미세 입자를 첨가.

Biotin과 Streptavidin을 통해 샌드위치 복합체를 자기적으로 분리함.

‘외계어냐?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샌드위치뿐인데?’

[평소라면 한심하다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래도 과장하는 거죠? 대충은 알아듣고 있죠?]

‘기본적인 면역학 개념을 이용하면 가능은 하지. 하지만 여전히 뭔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어. 다행인 건…….’

이현종도 그걸 다 이해하면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저 그 놀라운 기억력으로, 또 집념으로 해당 문장을 외워 놓았을 뿐인 듯했다.

궁금한 것은 저 논문을 우연히 습득한 것인지, 아니면 케이스를 보고서 따로 검색을 해 본 것인지의 여부였다.

전자라도 대단한 일이지만.

후자라면 사실 더 대단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해결 가능하다는 뜻이었으니.

“해결책은 Immulite 2000을 이용하는 거야. 이건 비오틴과의 간섭이 없거든. 어이, 레지던트 선생.”

그 비슷한 생각을 한 우창윤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내심, 이수혁은 몰라도 이현종은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비록 아직 이현종이 그의 나이일 때 이룩했던 업적을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실력 차이나 재능 차이가 아니라 그저 상황 차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대 의학이 너무 발전하면서, 이전보다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믿었더랬다.

‘미친……. 이걸 이 사람은 왜 알고 있지?’

검사 에러라고?

백번 양보해서 그걸 의심할 수는 있다고 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에러가 왜 났는지,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인지까지 안다고?

이건 절대로 심장내과 교수의 일반적인 상식은 아니었다.

아무리 이현종이라고 해도 평소에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얘기를 듣고 이걸 알아본 거야. 분명…… 이 사람은 이걸 의심한 거야.’

발상의 전환이라는 얘기였다.

쉬워 보인다면 크나큰 착각이었다.

아니, 쉬워 보이는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면 더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여태 그걸 그 누구도 떠올리지 못했단 얘기였으니까.

다시 말하면 우창윤은 이제 일반 교수라면 곧 퇴임해야 할 사람보다 머리가 굳어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 수혁도 낑겨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이 사람은 젊은 교수들보다 머리가 말랑했다.

이건 노력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뭐 하고 있어? 레지던트 선생!”

우창윤이 넋을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동안 이현종은 레지던트를 불렀다.

아니, 불러다 앉혔다.

그러곤 검사를 다시 할 것을 지시했다.

“아, 네.”

레지던트는 이현종을 오늘 처음 봤다.

게다가 힐끔 보니까, 걸치고 있는 가운은 레지던트 가운이었다.

그에 비해 얼굴은 그저 노인.

설마하니 만학도일까?

‘말도 안 되지, 시발!’

양보해서 40대 레지던트는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50대부터는 안 될 일이었다.

법적으로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레지던트는 병원에서 살아야 하는데 50이 넘은 사람이 그런다고?

일을 시키는 사람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너무 죄스러울 터였다.

‘대체 누구야.’

누군데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그리고 대체 왜 우리 기조실장님은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또 저기 앉아 있는 젊은 의사는 또…….

‘응?’

젊은 의사 얼굴은 어디서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는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았다.

“뭔 생각해?”

“아, 네.”

누구지 하고 있는데 이현종이 어깨를 꽉 잡았다.

모르는 사람이고, 교수도 아닌 것 같았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까 했던 말 때문이었다.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렸어.’

논문을 그렇게 외울 수 있는 미친놈도 있을까?

그리고 기조실장이 과연 미친놈 말을 이렇게까지 귀담아들을까?

뭔지는 몰라도 하여간 곡절이 있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레지던트는 이현종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검체 내려오면 Immulite 2000으로 검사해.”

“네, 네. 교…… 네.”

호칭은 모르겠어서 일단 고개만 끄덕였다.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는 레지던트 대신 아까부터 정신줄 놓고 있는 우창윤을 두드렸다.

“야, 야.”

“아, 네.”

“검사 처방 내.”

“아, 네.”

만성 신장 질환 환자를 검사하는 건 누구라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일단 혈관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들이 너무 시달려 온 까닭에 까다로울 때가 많았다.

거기에 했던 검사를 또 한다고?

이번에 하면 4번째인데?

평소라면 안 될 거라고 하지는 않아도 고민은 했을 터.

그러나 이번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이건 아마 맞을 거야. 이런 제기랄. 태화에는 왜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지?’

왜 하늘은 아선에 우창윤을 주고 태화에는 이현종에 이수혁까지 주었나.

치트키 쓰는 것도 아니고.

왜 일세를 풍미할 천재를 둘이나 준단 말인가.

‘신은 없나, 역시.’

있다면 이렇게까지 불공정한 시대를 열었을 리가 없었다.

‘제기랄.’

우창윤이 탄식을 넘어 푸념에 빠졌을 무렵, 검체가 내려왔다.

시간은 이미 열 시를 훌쩍 넘어간 상황.

그 말은 곧 진단검사의학과 레지던트가 퇴근할 시간도 지났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본인도 궁금해진 마당이었다.

게다가 이거, 얘기만 잘하면 케이스 리포트나 논문도 나올 것 같았다.

“얼마나 걸리지?”

“지금 돌려 놔도 내일 아침은 돼야 합니다.”

“아, 그렇구만.”

이현종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놈의 가오가 뭔지, 내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진단검사의학과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여기서 딱 내 말이 맞고 내가 그 현장에 있으면 기분이 대체 얼마나 좋을까.’

이게 마약이지, 딴 게 마약인가?

게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우창윤은 이제 그만 자신이 갔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부를 땐 언제고 이제 가라고?

이건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기조실장실은 넓지?”

그래서 이렇게 물었고, 우창윤은 앞으로의 일을 직감했다.

‘이 사람이?’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이현종은 사람 놀릴 때 농담할 때가 없었으니까.

“거기서 자고, 나오면 바로 보자고.”

“하아.”

가라고 하면 갈까.

안 갈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우창윤도 너무 궁금해서 집에 갈 생각이 없어진 마당이지 않나.

아내한테 혼날 일이 두려웠으나 세상에 널리 퍼진 명언을 떠올리고 있었다.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

그 와중에 허락도 용서도 구할 필요가 없는 이현종이 가면 어딜 가겠나.

“셋이 잘 수 있을까요?”

고개를 돌려 보니 이수혁도 뻔뻔스레 이따위 말이나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렇게 궁금하면 병원 뒷골목에 있는 모텔이나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어떻게 될까.

‘와……. 우리 우창윤 교수가 나 불러 놓고 모텔에서 재웠어. 불이 빨개…… 자라고 만든 방이 아닌 거 같어. 다른 무언가를 위한 방에 나를 보냈어.’

그날로 내과 학회 단톡방에 이런 글이 올라올 것이 뻔했다.

사람 묻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 아닌가.

“가시죠…….”

우창윤은 한숨과 함께 기조실장실로 향했다.

“와…….”

“우와……. 아선은 왜 이렇게 좋아요? 우리 원장실보다 커.”

이현종과 수혁은 기조실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감탄을 터뜨렸다.

수혁은 거기서 멈췄지만 이현종은 그러지 않았다.

늙기 전에도 뻔뻔하기 그지없던 인간이 나이까지 먹은 덕이었다.

“뭐 내오는 것도 없나?”

“네? 잠자러 오신 거 아니에요?”

“아직 11시도 안 됐는데? 뭐 좀 줘 봐.”

“여기 뭐가 있어요…….”

“우 교수가 요새 위스키 판다는 소문이 있어. 아주 짜하게 돌아.”

“네? 아니, 그건…… 그건 대체 어떻…… 아, 하윤이. 아…… 내 딸.”

우창윤의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왜 내 딸은 프락치 짓을 하고 있을까.

정말 애지중지 키웠는데.

“탈리스커 25년으로 주지.”

“주종도 알아요? 아니…….”

“후후. 내놔 봐. 수혁이도 한잔 주고.”

“하.”

우창윤은 술도 털리고 공간도 털리고, 멘탈도 털리고. 하여간 다 털리고 나서야 소파에 누울 수 있었다.

간이침대도 있었으나 그건 이현종이 뺏었다.

허리 아픈 노인 구박하냐고 하면서.

심지어 편의점 가서 칫솔 치약도 사 줬다.

그건 이현종이 아니라 수혁이 요구했다.

‘이거 순 개새끼들 아니야?’

대체 어쩌다 이런 놈들이랑 이렇게까지 엮이게 되었을까.

우창윤은 한숨을 내내 쉬다가, 그래도 내일이면 오리무중이던 환자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애써 하고 또 하면서 멘탈을 다잡은 후에야 잠들었다.

“일어나, 늦잠을 자?”

“어, 어어. 몇 시인데요.”

“6시.”

“검사 6시 반에 나온다지 않았어요?”

“어, 맞아. 그냥 나 혼자 깨어 있으면 심심하잖아.”

“와……. 왜 이수혁 교수 안 깨우고요?”

“쟤는 한창 잘 때지.”

“뭔 개소리예요? 쟤도 서른 넘었어요.”

“원래 부모가 볼 때 애는 계속 애야.”

“하.”

밤에도 그러더니 새벽에도 말이 안 통했다.

하늘은 왜 이런 인간에게 그런 재능을 주셔 가지고 이 사달을 만들고 있을까.

“아무튼, 자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 틈엔가 기조실장 의자에 앉은 채였다.

주객이 전도된 마당이었으나 이제 반쯤 포기한 우창윤은 그냥 듣기로 했다.

“네.”

“현상에 너무 압도당하지 말라고.”

“아…….”

“우리는 객관적인 검사를 너무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어. 검사가 그렇게 나왔다고 하면 철석같이 믿어 버린다고.”

“하지만…….”

“근거 중심 의학을 부정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다만 그 검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는 걸 얘기하려는 거야. 기계로 하는 검사도 마찬가지야. 기계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거잖아? 아직 현대 의학이 완성되지 않은 만큼…… 그 결과를 맹신하다간 어제 같은 꼴 겪는다고.”

“그러…… 그렇죠. 음. 거참. 그…….”

여태 쌓였던 불만이 싹 날아가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현종은 거목이었다.

여기저기 짜증 나는 구석도 있고 하지만 하여간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오늘도 배움을 얻게 되지 않았나.

우창윤급 정도 되면 사실 어디에서도 이런 말을 듣기란 어려웠다.

“뭐, 할 말 있으면 해.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러고 있지 말고.”

“아뇨, 감사하다고요.”

“좋아. 그럼 가자.”

“응?”

“수혁이 깼다. 내려가서 수치 보자고.”

“아, 네.”

셋은 정신없이 진단검사의학과로 향했다.

그리고 결과를 마주할 수 있었다.

786ng/L.

환자의 부갑상선 호르몬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 말은 곧 일반적인 골이영양증에 준해 치료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우창윤이 허리를 숙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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