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화 학회 (1)
이현종, 이수혁 콤비가 푸시에 나선 것은 비단 우창윤 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조태진, 박국진 등 정확하게 이현종계로 분류되는 이들 모두가 동원되었다.
세션을 화려하게 채울 수 있었다, 뭐 이런 얘기였다.
물론 이건 둘의 생각이었다.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으니…….’
신현태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센터장실로 들어섰다.
어지간한 과장실보다 더 좋은 방이었다.
그룹 차원에서 밀어주는 센터의 장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널찍한 방 안에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조태진과 박국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신 원장님.
자세히 보니 노트북 하나가 켜져 있었는데, 거기엔 우창윤의 얼굴이 떠 있었다.
조명이 떨어지는 곳에 있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없어 보였다.
신현태는 괜히 자기 정수리를 만지다가 자리에 앉았다.
“어, 우 교수. 어떻게 시간이 났나 보네요?”
-제가 사실 가 보긴 해야 하는데. 지금 회의가 있어서요.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습니다. 하하.
“어…… 그래요. 그럼 나중에 뵙죠.”
-네, 학회에서 뵙겠습니다. 오늘 세션명 결정되면 보내 주시고요. 뭔 비밀이 이렇게 많으신지. 하하.
우창윤은 마지막까지 이현종을 보지 않고 말했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말이 안 통했겠지.
거의 반평생을 같이해 왔다 자부하는 신현태조차 이현종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당연했다.
“자.”
이현종은 우창윤이 아직 인사를 하고 있는데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곤 벽에 떠 있는 화면을 가리켰다.
이건 또 누가 띄우고 있는 건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안대훈이 앉아 있었다.
‘아, 저놈.’
수혁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이니 이 자리에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 녀석의 신분이 레지던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 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여간 이상한 새끼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은 입가를 씰룩거리며, 방금 뜬 학회 진행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행은 일단 대행업체에 맡길 작정이야. 접수, 등록, 안내까지 아주 잘하는 업체래. 사진도 찍어 주고. 영상도 찍고. 기념비적인 행사니 잘하는 곳을 골랐지.”
이현종은 잘했지? 하는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이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지라 수혁도 껄껄 웃었다.
조태진은 그저 수혁이 웃으면 웃는 사람이라 따라 웃었다.
박국진은 칠성에서 버림받을 운명에서 구원해 준 이현종이 말을 하고 있어서 웃었다.
‘미친 사람들인가.’
혹시 저 새끼는 뭐 하나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안대훈은 숫제 얼굴을 붉힌 채 웃고 있었다.
회의를 해야지, 예배를 드리면 어쩌자는 건가.
물론 병원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긴 했다.
특히 이현종처럼 너무 높은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 더더욱 그랬다.
감히 반대를 못 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내가 여기 왔지.’
신현태는 어떤 역사적 사명감에 의해 손을 올렸다.
“어……? 그런 업체 비싼데? 이번에 사람 엄청 불렀잖아. 그럼 하루에 천만 원 깨질 수도 있어.”
우매한 것들에 대해 뭔가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이현종도 학회 활동은 넘치게 해 온 사람이었다.
학회장도 벌써 세 번이나 해 먹지 않았나.
심지어 그중 두 개는 국제 학회였다.
하지만 제대로 했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터였다.
실무적인 것은 정말이지 단 하나도 아는 게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어…… 천만 원이나 하나.”
“가격도 모르고 골랐어?”
“어.”
“와.”
학회 회비라 해 봐야 1년 예산이 천만 원이나 되면 다행일 것 같은데.
그걸 한 번에 태워?
그럼 회의는 대체 뭔 돈으로 한단 말인가.
아니, 아니지.
신현태는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대관은…… 어디지?”
“아, 대관. 신라지.”
“신라. 뭐 경주?”
“뭔 미친 소리야. 돌아가면서 하는 학회 말고 누가 지방에서 열어. 신라 호텔 인마. 아, 다음엔 제주도에서 할까?”
“아니, 형. 이게 뭔…… 뭔 소리야. 신라 호텔 대관이라니. 그럼 점심도 거기서 줘?”
“계약이 그렇다던데.”
“어억.”
신현태는 뒷목을 붙잡았다.
신라라니!
학회라고 하면 다 호텔에서 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통합진료학회는 엄밀히 말해서 소학회였다.
그냥 학교나 병원에 있는 회의실이나 빌려서 하면 될 일이라는 얘기였다.
심지어 내과는 혈액종양학회나 소화기내과학회처럼 일부 돈 있는 학회 말고는 돈이 없어서 호텔에서 잘 열지도 않았다.
근데 신라?
‘나 결혼식에 얼마 태웠더라.’
신현태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면서 돈 생각을 이어 나갔다.
나름 엄청난 결혼식이긴 했다.
연애결혼을 했는데 하필 태화 전자 임원 자제들끼리 만난 참이라 더더욱 그랬다.
선을 봐서 하는 결혼이었으면 양가가 나름 계산을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보니 그냥 기분대로 들이부었다.
그래서 다이너스티 홀을 빌렸고 1억 3천이 하루에 사라졌다.
“왜 그래, 이놈. 심근경색인가?”
그런 신현태를 보면서 이현종이 몸을 일으켰다.
명색이 심장내과다 보니 나름 긴장도 했다.
사실 여기 모인 애들 중에 수혁이랑 대머리 빼면 다들 갑자기 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지 않나.
“야, 괜찮아? 수혁아, 저기 옆에 심전도 있지. 그거 들고 와.”
“네. 근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어? 아, 나 죽으면 안 되잖아.”
“아…….”
그렇다고 센터장실에 심전도를 놨어?
어쩐지 심전도 기기 하나가 손망실됐다고 보고가 들어왔더라니!
“크허업.”
신현태는 분노로 눈을 떴다.
“오, 안 죽었네.”
그리고 태평한 소리나 찍찍해 대고 있는 이현종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 미친 인간아! 신라 호텔을 대관하면 어떡해! 어쩐지 내가 500명 와도 된다고 할 때 알았어. 이거…… 이 학회 공짜라며!”
“어, 공짜. 근데 신라. 간지 짱.”
“간지…… 이거…… 이건 무슨 돈으로 하는 건데, 대체.”
“응? 무슨 돈이긴. 다 후원받았지.”
“후원?”
신현태의 눈앞으로 여러 제약 회사 이름이 지나갔다.
학회 후원은 당연히 합법이었다.
대신 부스를 열고 의사들에게 새로 나온 약을 어필하면 들인 돈 이상의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1억이 넘는 돈을 태워?
이 X도 아닌 학회에?
그런 미친 회사는 없었다.
아니, 있을 수는 있었다.
우리 이현종 교수가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고 미친 짓을 했다면.
“형 감방 가려고?”
“뭔 소리야. 감방을 왜 가.”
“후원금도 다 명목이 있어야 받는 거야, 형.”
“우리는 기부인데?”
“뭔 기부를 해. 제약 회사가.”
“제약? 제약이 왜 기부를 하지?”
“응? 아냐?”
눈을 껌뻑이고 있으려니, 그제야 비로소 모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이 뭔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얼굴이었다.
수혁도 마찬가지라 살짝 마음이 아팠다.
‘수혁아, 이 삼촌은 오로지 너에 대한 걱정에서…….’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었으나, 이현종이 선수를 쳤다.
“우리 두바이 왕자님이 거하게 쏘셨어. 아니, 사실 그보다는 그냥 자기도 한번 올 건데 후진 데는 싫다고 제일 좋은 데 빌리랬어.”
“아……. 왕자님이?”
“어.”
“진짜 통 크시구나.”
“내가 미친놈이냐? 그런 것도 없이 돈을 팍팍 쓰게? 여차하면 우리 안대훈 선생한테 시켜 가지고 레지던트들 쓰면 되는데.”
“아니, 아냐. 형. 이제 그러면 안 돼.”
“아무튼. 그렇게 됐고. 그래서 돈은 그냥 막 써. 돈 많어.”
이현종은 학회 회비 현황을 켰다.
회원들이 낸 것은 정말 얼마 안 되었다.
다 합쳐 봐야 200?
그마저도 몇몇 교수들이 회비보다 더 내주어서 채운 금액이었다.
1년 회비가 단돈 만 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잔액이 5억이야?”
“어. 왕자님이 쏘셨지. 우리 수혁이가 진짜 가서 큰일 했다니까.”
“미쳤네. 내과 학회보다 돈이 많네.”
“우리 수혁이가 걔들 다 합친 것보다 더 나으니까.”
“어…… 어디 가서 그런 말 공개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
“아유, 당연하지. 나도 다 참고 있어.”
“그래. 다행이네.”
돈 얘기는 확실히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금치산자 수준인 이현종이 무슨 짓을 할는지 알 수가 없지 않았나.
수혁이 또한 아쉽게도 돈에 대해서는 무능한 아이였다.
아니,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나?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데다가 여기저기 따로 들어오는 돈이 있다 보니 월급도 얼마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몰라도 된다. 인정.’
신현태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현종을 채근했다.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직 시작도 안 해서 그랬다.
“형. 학회 세션 구성안 좀 봐. 그거 아직도 발표를 안 하면 어째. 음?”
그 순간 박국진의 얼굴이 좀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하고 봤더니, 이현종, 이수혁 그리고 조태진은 그저 아까와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태화 출신이지만 이 세 사람은 정상과는 꽤 거리가 있어서 그랬다.
“형 까 봐. 뭐야. 뭘 준비했어.”
그에 비해 박국진은 더없이 합리적인 사람 아닌가.
아마 여기도 협박과 회유가 없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응? 그래 뭐. 이거야.”
“어…….”
그렇게 공개된 세션을 보고 신현태는 눈을 의심했다.
“이건…… 이건 살생부잖아.”
“살생부라니. 엄연히 통계에 기반한 자료야.”
“아니…….”
일단 첫 번째 강의부터가 남달랐다.
통합진료센터에 의뢰한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과의 모탈리티, 그러니까 사망률을 비교했다.
“이 안에서도 빈번하게 의뢰하는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이 갈려.”
“이거…… 이거 자료는 어디서 구했는데.”
“프락치지, 뭐.”
“형 그러다 진짜 잡혀가! 프락치라니! 형이 무슨 나치야? 히믈러야?”
히믈러.
나치 치하에 친위대 대장으로 정말이지 온갖 나쁜 짓은 다 한 인간이었다.
신현태는 그 인간과 겹쳐 보이는 신현태를 향해 외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현종은 그저 태평했다.
“히틀러?”
“아니……. 친위대 대장도 모르는 사람이 프락치는 왜 이렇게 잘 써.”
“아니, 이게 무슨 비난의 뜻이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나는 그저 학자로서 비교 분석을 할 뿐이야.”
“무슨 놈의 학자가 그따위로 웃어?”
“웃어? 내가?”
“그, 그리고.”
첫 번째 강의만 이런 게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이 칠성보다 나은 이유. 통합진료센터의 존재? 아니, 박 교수님…… 이게…… 무슨 북한 오셨어요? 사상 검증도 아니고 이게 무슨.”
“아, 아뇨. 저는 진짜 이거…… 압박에 의해 하는 게 아닙니다.”
“아니긴 개뿔이 아니야! 지금 얼굴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아요?”
“제가 골프 쳐서 타서 그래요.”
“어둡다는 게 까맣다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이러다 칠성에서 우리 사보타주…… 아. 우 교수도? 이건 얘기가 됐어?”
세 번째는 아선 병원 기조실장도 신뢰하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였다.
신현태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