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87화 (687/1,303)

687화 학회 (4)

[그만 좀 힐끔거리십쇼. 이러다 들키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안 볼 수가 있냐. 칠성 병원 원장님이 분장까지 하고 여기까지 왔다는데.’

[칠성 놈들이 그렇죠.]

‘과연 칠성 놈들만 그런 걸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아냐.’

수혁은 외과 계열의 질환에 대해서도 통합진료센터가 크나큰 효용을 발휘했음을 증명하는 발표를 위해 연단에 오른 참이었다.

이현종이나 박국진의 칼끝이 칠성을 비롯한 외부 병원을 향하고 있었다면.

수혁의 발표는 다분히 내부 총질이었다.

감히 통합진료센터를 불신하고 진료 의뢰를 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엄중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비인후과 환자에 대한 건입니다.”

과별로 돌아가면서였다.

한 과에 집중해서 발표하는 것도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늘.

이렇게 돌아가면서, 다시 말해 중구난방으로 뛰는 질환을 한 사람이 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전혀 딴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완전히 정리한 케이스를 입으로 떠드는 건, 적어도 지금의 수혁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혹시 우리나라 의료계 거두들의 특징이 아닌가 싶어서…….’

이현종이 저기 저러고 앉아 있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거 같진 않지 않나.

아마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거 같았다.

걸리면?

그때도 비슷할 거 같았다.

때문에 이현종의 계획이 잘 먹힐지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현종만큼 이상하려고요?]

‘저 꼴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냐?’

[제가 본 이현종의 모습을 생각하면 저 정도는 기행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음.’

하지만 바루다의 차분하기 짝이 없는 분석을 듣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하긴 이현종이 어떤 사람인가.

불세출의 기인이 아니던가.

의학적으로 쌓은 명성보다도 이 기행으로 쌓은 악명이 더 대단할 지경이었다.

“비뇨 기과에서 의뢰한 케이스입니다.”

하여간 수혁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지 간에 관계없이 발표를 잘 마무리했다.

그사이 안대훈을 위시한 친위대는 검은 얼굴의 칠성 병원 원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일은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음? 발표 시간에 왜…….”

일단 안대훈이 원장 주변에 앉은 사람 어깨를 두드렸다.

이미 머릿속에 칠성 병원 교수들 인상착의는 쑤셔 박은 상황이었다.

고개를 돌렸는데, 일치한다?

“칠성 병원 김학수 교수님이시죠?”

“어, 어떻게…….”

그럼 백 퍼센트 눈알이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어지럼증 환자라도 된 것처럼.

“잠시 저희랑 나가실까요.”

그리고 어느샌가 양옆에 따라붙은 친위대 아니, 레지던트 둘이 팔짱을 끼고 밖으로 향했다.

그럼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레지던트가 앉았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 말이었다.

물론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칠성 병원 사람들이 많이 온 게 아니라 그랬다.

“이현종 교수님께서 잠깐 말씀 좀 나누자고 하시는데…… 괜찮으실까요?”

그래도 괜찮았다.

전권을 위임받은 안대훈은 놀란 기색도 없이 이현종을 팔았다.

“아, 이현종 교수님이? 그럼 나가야지.”

이현종이 아무리 기행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라지만.

그가 지금껏 이룩한 업적이 어디 간 건 아니지 않나.

거기에 더해 나름 제자들에게는 인망이 높아서 여전히 심장내과 학회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최근 통합진료센터의 위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사실 이 안에 있는 이들 중에는 원장이나 이사회에서 가서 비결을 좀 배워 오라고 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좋아…….’

그렇게 칠성 병원 원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치운 안대훈은 원장의 바로 뒷자리에 앉은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수혁의 발표가 끝나면 덮칠 요량이었다.

‘아……. 뒷사람은 코를 고나. 왜 이렇게 숨이 거칠어.’

잔뜩 흥분해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앞자리의 원장은 나름 점잖은 사람이었다.

아니, 인성이 좋은 건 아니니 그저 체면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하여간 무례하게 뒤를 홱 하고 돌아볼 생각은 못 했다.

물론 핸드폰으로 슬쩍 뒤를 보기는 했다.

‘허미 시벌.’

그랬다가 정수리가 벌게진 대머리를 보고는 놀란 마음을 추슬러야만 했다.

‘의사 아닌 거 같지?’

이런 일이 드물긴 해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대충 명찰 거꾸로 달고 다니면 저게 누군지 알 게 뭐란 말인가.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몇몇이 횡재했다고 하면서 제약 회사 부스를 싹 털다가 걸려서 쫓겨난 적도 있었다.

제약 회사나 학회 대행사 입장에서는 아무리 상대가 미심쩍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대범하게 행동했던 듯했다.

하여간 원장이 보기에 뒤에 앉은 대머리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발표 듣는 얼굴이 아니니 확신할 수 있었다.

‘어휴. 그러게 왜 학회를 이렇게 좋은 데서 해서…… 아까 점심도 응? 미쳤어?’

생각이 점심시간으로 회귀한 원장은 아까 찍어 두었던 사진을 바라보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도시락이 떴다.

사실 대강 봐서는 여느 학회에서 나오는 도시락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퀄리티가 수준이 달랐다.

이건 이 호텔 신라에 있는 일식당 아리아께에서 내온 도시락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짓이야.’

대체 어디서 이런 돈이 났을까?

듣기론 학회 회비도 단돈 만 원이던데.

심지어 이번 학회는 공짜였다.

정말 태화에서 대대적으로 밀어주는 걸까.

칠성은 외래동 지어 주고는 이제 한동안 신경 끌 거 같던데.

‘아니, 사실 그만하면 엄청 밀어줬지…….’

돈을 써도, 심지어 진짜 많이 썼는데도 별다른 성과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칠성과 아선은 현재 태화에게 명백히 밀리고 있었다.

“자,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번뇌하는 동안 수혁의 발표가 끝났다.

몇 차례 외과계 교수들의 질문도 있었으나 정말이지 부드럽게 넘겨 버렸다.

여차하면 지금 지식으로 너네 발라 버린다? 하는 느낌도 주었다.

꽤 호전적인 자세여서, 질문했던 교수들도 꼬리를 말고야 말았다.

일단 방금 발표 자체가 어떻게 외과계 케이스를 박살 냈는가에 대한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음?”

수혁의 발표를 곱씹고 있으려는데 자꾸 앉은 자리에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왜 밖에서 안 모이고 여기서 서성이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예의 그 대머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우습다기보다는 좀 무서운 모양새였다.

누구라도 쫄 수밖에 없기는 할 터였다.

세상에.

학회장에 나타난 붉은 대머리라니?

“이분 맞으시죠?”

대훈은 씨익 웃으면서, 핸드폰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당연하게도 칠성 병원 원장 얼굴이 떠 있었다.

“어…….”

발뺌하고 싶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메이크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 식사하고 입가를 닦으면서 주변 파운데이션이 지워져서 더더욱 그랬다.

“여기 화장 다 지워졌습니다.”

“어…….”

“이거 보이십니까.”

안대훈의 손짓에 다른 레지던트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엔 태화 의료원 유튜브가 떠 있었다.

한때, 저 망할 놈의 뉴미디어를 이용한 홍보가 사도로 분류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이었다.

칠성도 저것과 비슷한 채널이 있었다.

하지만 원장은 정작 저 채널에서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이게 라이브라는 겁니다.”

“라이브……?”

“생방송이라는 거죠. 켜면 바로 저희 구독자들께 송출됩니다. 제목은 ‘칠성 병원 원장, 학회 몰래 잠입하다 검거’ 정도면…… 아주 자극적일 겁니다.”

“아니, 이 사람 이거. 그거…… 그거 불법…….”

“불법은 지금 원장님이 저지르신 게 불법이고요. 하여간 저희 구독자가 그래도 10만 명은 되거든요? 어쩌실래요?”

10만 명이 제대로 된 10만 명은 아니긴 했다.

몇몇 총대를 멘 교수들이 자기 외래에 온 환자들에게 눈물로 읍소해서 쌓아 올린 구독자 수였다.

당연히 조회 수는 그만큼 나올 턱이 없었다.

하지만 원장이 그런 걸 어찌 알겠나.

맨날 정치 유튜브만 보는데.

“아니……. 그럼 내가 어찌해야 하겠나.”

“일단 따라오시죠.”

“하아…….”

곧 칠성 원장은 연행되었다.

다행한 일이라면 주변을 에워싼 레지던트가 너무 많아서, 흉한 꼴을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되었단 점이었다.

‘아유. 이거…… 그러게 여길 왜 오셔 가지고. 그냥 보고만 받으시지.’

그럼에도 알아보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직 검거되지 않은, 칠성 병원의 교수들은 아까 원장을 수많은 사람이 에워쌀 때부터 이미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원장 자리가 텅 빈 것을 확인하자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곧 화장실에 모였다.

신라 호텔이라 그런지 화장실도 좋다는 생각이 들기를 잠시.

누군가의 탄식으로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까 원장님이죠?”

“왜…… 대체 왜 그런 분장을 하신 거죠? 눈에 더 띄잖아.”

“그걸 내가 어찌 압니까.”

“이봐, 안국태 교수. 당신이 원장님 심복인 걸 내가 다 아는데…… 옆에서 말렸어야지. 어찌 아냐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지는 분장 기가 막히게 해 놓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걸렸는데 이걸 어찌해야 할지.”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막말로 우리가 못 올 데 왔어요?”

“밥 공짜로 먹었잖아요.”

“그걸로 문제 삼으면 물어주면 되지?”

별로 생산성이 있지는 않았다.

하나 마나 한 얘기들만 나왔다.

그것도 주로 두 사람의 입을 통해서였다.

다른 교수들은 사실 아예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 새끼들이 뭔 헛짓거리를 하나 하고 왔는데, 듣다 보니 좀 설득이 되는 면이 있어서 그랬다.

‘확실히……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한데……?’

‘그룹 차원에서 사이가 안 좋은 거야 알지. 근데…… 우리는 의사잖아?’

‘원장님이나 이 새끼야 뭐…… 그렇다고 쳐도. 도움이 될 거 같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나?’

누구 하나 말을 세게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인상적이었던 케이스 몇 개를 모두 떠올리고 있었다.

과연 자기가 봤다면.

아니, 칠성이었다면 알아낼 수 있었을까?

아무리 희망 회로를 불태워 봐도 긍정적인 생각이 곧잘 들지는 않았다.

안색이 어둑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가 어디냐…….’

그래 봐야 칠성 원장만큼은 아닐 터였다.

이 사람의 안색은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이게 사람 얼굴은 맞나 싶을 정도로 실시간으로 망가져 가고 있었다.

드르륵.

그리고 그 앞에 이현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신현태를 대동하고서였다.

‘형, 나는 왜.’

‘걍 있어. 전·현직 원장이 다 있으면 더 무섭잖아.’

‘하아.’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무섭긴 했다.

옆에는 우창윤 교수가 다음 세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 칠성 원장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케이스 셔틀…….’

미래가 보여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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