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생각보다 흔해 (3)
조태진 정도 되는 사람이 성화를 부리면, 제아무리 아직 정규 시간이 아니라 해도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게 되는 법이었다.
조태진이 병원 입장에서 볼 때 VIP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학 병원이라면 또 모를까.
기업 병원에서 일개 교수의 힘은 그닥이었다.
오히려 태화 그룹의 임원진들에 대한 예우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였다.
드르륵.
그러나 이송 요원과 레지던트 그리고 인턴까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환자를 옮기고 있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위급하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위력이 있었다.
게다가 조태진이 환자에게는 들리지 않게,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분명히 들리도록 중얼거린 진단명 때문에라도 이래야 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예후는 그닥이죠?]
‘특히 지금처럼 이미 다른 혈액질환의 유병 기간이 길었을 경우엔…… 더더욱 그렇지.’
애초부터 골수이형성증후군의 치료 목적 중 하나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의 이행을 막는 것일 지경이었다.
최대한 약을 쓰면서 버티다가 조혈 모세포 이식을 해서, 질환의 종결을 이끌어 냈어야 한다는 뜻.
다시 말하면 이 환자는 최대한 약을 쓰면서 버티는 과정에서 실패가 있었단 얘기가 되었다.
“제길.”
때문에 환자가 지난 자리를 뒤따라가는 조태진의 얼굴이 무척 어두워 보였다.
따지고 보면 의사로서 뭘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조혈 모세포 이식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가 중 하나였다.
이미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 된 지는 오래였으나, 그 과정이 너무 급했던 까닭에 여러 캠페인이 이를 따르지 못한 까닭이었다.
“제기랄.”
그러니까 조태진이 자신을 탓할 만한 일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조태진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혈액종양내과의 스페셜리스트였기에 그랬다.
“에이.”
그럼에도 조태진의 입에서는 연신 안타까움을 담은 욕설 비슷한 것이 계속 흘러나왔다.
평소의 이현종이라면, 게다가 숙취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의 이현종이라면 무슨 궁상이냐고 한마디 하고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으음.”
그러나 이현종은 조태진을 비난하는 대신 그저 조태진과 함께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이현종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그 또한 성심성의껏 돌봤던 환자를 잃었던 경험이 숱하게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법이었다.
제아무리 현대 의학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하더라도, 어떤 죽음이나 질병의 경과는 피할 수 없는 법이었다.
“으음.”
수혁도 잠자코 뒤를 따르고 있었다.
조태진쯤 되는 의사라면야 혼자 둔다고 해서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옆에 아무 사람도 필요치 않은 건 아니었으니까.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 사람의 걸출한 의사가 아직 어리둥절한 얼굴로 침대에 실린 채 떠나고 있는 환자를 따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무균실이었다.
“여기…… 이거…….”
레지던트의 안내에 따라 안에 들어선 환자는 무균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대강 알아차릴 수 있었다.
늘 외래에서 자신을 향해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던 교수는 유리창 너머에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교수님.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딱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언젠가 이 교수에게 들었던 설명 한 자락이 떠올랐다.
- 골수이형성증에서 1년 이내에…… 25% 정도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이환될 수도 있습니다. 2년 내에는 35%, 전체적으로 따지면 40%죠. 그 안에 조혈 모세포 이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교수는 이 말을 하면서 어딘지 모를 슬픔을 비쳐 보였더랬다.
나중에 알아보니, 자신의 병은 조혈 모세포 이식을 통해서만 완치를 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조혈 모세포를 지닌 사람이 있을 확률은 고작해야 2만분의 1이었다.
이것만 해도 황당할 정도로 낮은 확률인데, 여기서 실제 매칭이 될 확률은 더 낮아졌다.
그리고 매칭이 된 사람이 한다고 할지도 미지수였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해져서, 환자 본인도 무의식적으로 잊고 있던 일이었다.
“환자분, 우선 확실한 건…… 아닙니다. 일단 최대한 빨리 골수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
“가족분들께는 연락을 드릴까요?”
“그…… 결과…… 결과가 나오면요.”
조태진은 환자의 낙담한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었다.
물론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다.
무균실이라는 곳은 있던 희망도 빨아들이는 곳이라 그랬다.
단지 환자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의사에게도 그랬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되는 대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의사는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될 존재였다.
단지 위로만 받을 거 같으면 환자가 대체 왜 병원에 오겠는가.
의사는 환자를 보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병을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 골수 검사 빨리 진행하자고. 무균실에서 해야지. 환자 ANC(Absolute Neutrophil Count, 절대호중구수)가 너무 낮아. 어어. 다행히 열은 없어. 그래, 그래.”
조태진은 병실을 빠져나오면서도 전화를 쉬지 않고 붙들었다.
그 덕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굴이 펴지진 않았다.
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의 특징 때문이었다.
지체되면 암 때문이 아니라, 암의 결과물로 발생한 혈소판 부족 등에 의해 뇌출혈을 위시한 기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조태진은 벌써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
“이봐. 조 교수.”
마음이 급하다 보니 발걸음은 자연히 연구실로 향했다.
그런 조태진을 이현종이 붙잡았다.
“네?”
“일단 밥은 먹지. 너 빈속이잖아. 술 먹고 그러다 몸 상해.”
“아, 아니.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네가 심장내과야? 가서 뚫을래? 일단 기다려야 되잖아. 지금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음.”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네, 형. 밥 먹으면서 차분히 생각해 봐요.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수혁이 가세했다.
‘그래…… 그래.’
마음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두 괴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마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조태진은 어느새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셋은 직원 식당 한켠에 자리했다.
“이제 항암 하는 거지?”
이현종은 밥 먹으면서 체하기 딱 좋은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다행히 조태진이나 수혁이나 이런 상황이 더없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딱히 이현종과 친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병원 사람들은 다 이랬다.
참으로 심심하고도 불쌍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네? 네. 그래야죠. 결과 나와 봐야 알겠지만, 다른 이유일 수는 없어 보여요.”
“그렇구만. 그럼…….”
“일단 히크만(Hickman, 약물 주입을 위해 정맥에 삽입하는 관) 박고. 아드리아마이신(Adriamycin, 항생물질)에 다우노루비신(Daunorubicin, 급성 백혈병 항생물질) 써야죠. 아마 엄청 힘들 거예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 그런데 언제 적 아드리아마이신인데 아직도 써?”
“그러니까요. 세대교체가 일어지는 중이긴 한데…… 아직은 이게 참.”
20세기에 중반까지의 현대 의학은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플뢰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은 인류를 괴롭혀 왔던 전염병에서 구원해 줄 기적의 약이었다.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슈퍼박테리아니 뭐니 하면서 그것마저 옛일이 되고야 말았지만.
그보다 의사들을 절망케 했던 암초는 바로 암이었다.
타임지의 아주 유명한 표지 중 하나가 암 vs 인간인데, 거기서 타임지는 인간이 졌다고 판단했다.
그걸 보면서 욱한 의사는 아마 없었을 터였다.
여전히 암은 현대 의학의 영원한 숙제 중 하나로 남아 있었으니.
“어려운 일이야. 근데…… 혈액질환은 골수이식 하면 되는 거 아냐? 그건 심장 이식처럼 카데바 이식만 가능한 것도 아니잖아?”
머리가 복잡해진 조태진과는 달리 이현종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원래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더더욱 그런 편이었다.
“그러게요. 심장보단 골수가 구하기 훨씬 쉬워 보이는데.”
수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누가 부자지간 아니랄까 봐…….’
조태진은 입안에 넣었던 케첩 묻힌 계란 후라이를 마저 씹었다.
이게 말처럼 쉬웠으면 대체 왜 환자를 잃고 있겠나.
각자의 분야에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어려운 지점이 다 하나쯤은 있는 법이었다.
이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골수 그거 예전처럼 뼈 뚫어서 하지도 않잖아.”
“맞아요. G-CSF(Granulocyte Colony-Stimulating Factor, 당단백질의 일종) 맞고…… 말초에서 채취하지 않나?”
“그럼 다 할 거 같은데.”
“그러게요.”
조태진이 그렇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둘은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이어 나갔다.
워낙에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게 또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어서 더 가슴이 답답해졌다.
조태진은 떠 온 두유를 쓱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그게,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뭔 문제인데?”
“이게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요. 골수이식이라는 거에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으음. 그건…….”
한 수 가르쳐 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뚱한 얼굴 그대로였다.
‘와, 사람 열 받게 하는데 재주가 신묘하시네?’
이현종은 조태진의 말문을 표정만으로 턱 막히게 만든 후 말을 이었다.
“내가 심장학회 이사장이었잖아.”
“어…… 네.”
라떼는 화법이었다.
어지간한 인간이었다면 싹 무시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상대는 이현종.
어마어마한 커리어의 주인공이었다.
“지금 심근경색 유병률이 어떤지 알아?”
“응? 뭐 늘지 않았어요? 서구화되고 있으니까?”
“아니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고 있어.”
“잉.”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는 질환이 뭐냐? 당뇨랑 고혈압이지? 당뇨야 뭐 내분비에서 잘 떠들고 있고, 우리는 혈압을 맡았어.”
“으음.”
“처음에는 진짜 지루한 싸움이었어. 이거 뭐 돈은 돈대로 막 들어가는데…… 변하는 게 보이지가 않으니까. 그래도 확신은 있었는데, 미국에서 고혈압하고 당뇨 캠페인 꾸준히 진행하면서 확실히 관련 질환이 줄었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지금 우리나라 꽤 좋아지고 있어. 아마 지금 젊은 사람들이 늙게 되면 더 줄걸. 요새 그 뭐더라.”
이현종은 이 자리에서 제일 젊은 사람, 즉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이런 종류의 기대를 잘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MZ요. 아빠.”
“아.”
“MZ 세대는 건강에 더 관심이 많으니…… 아마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죠.”
“그래, 그러니까 요는…… 홍보를 더 열심히, 뒤지게 하라는 거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자꾸 환자 죽어 나가는 게 말이 되냐?”
그리고 이현종은 쓴소리의 대가였다.
의미 없는 소리가 아닌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음, 알겠습니다.”
조태진의 마음에도 불길이 일었다.
앞으로는 뭔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였다.
공교롭게도 이제 학회 내에서의 위치도 꽤 올라가고 있으니, 더더욱 제격인 셈이었다.
“일단 가자고. 외래 봐야지. 수혁이는 오늘 뭐 하니?”
누구나 그렇겠지만, 의사들에게도 여유로운 아침이란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무엇이었다.
자리에 앉은 지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다들 몸을 일으켰다.
수혁 또한 둘을 따라 일으키면서 답했다.
“오늘 일정도 없고, 환자도 없어서…….”
“쉬어?”
“아뇨. 취미 생활하려고요.”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