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93화 (693/1,303)

693화 천재의 취미 생활 (1)

어리둥절한 얼굴들을 뒤로하고, 수혁은 일단 연구실로 향했다.

[어디부터 갈까요?]

‘글쎄.’

보통 취미 생활이라고 하면 운동이나 수집 또는 음악, 영화 감상을 떠올릴 터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독서도 좋을 테고.

하지만 수혁은 이미 살짝 망가진 지 오래인 인간이었다.

그에게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은 취미가 아니라 낭비에 해당했다.

아무리 애를 쓰고 고민해 봐도 그 외에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간만 나면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 또는 유튜브를 챙겨 봤던 사람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놀라운 변화였다.

“아, 교주님.”

하여간 발걸음을 급히 옮겨 연구실에 도달한 수혁은 안대훈과 마주했다.

평소처럼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훈을 여기에 부른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수혁이라서 그랬다.

“어. 하윤이는?”

“아……. 하윤이는 응급 환자 떠서요.”

“아, 그럼.”

“저뿐입니다, 교주님. 흐흐.”

“그렇게 웃지 말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마음에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저토록 음흉하게 웃는 대머리라니?

너무 무섭지 않은가.

하지만 그만큼 쓰임새도 있는 놈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게…… 이거 돌림판이야?”

“네. 그냥 코카콜라 게임 하면 선택지가 너무 적지 않겠습니까. 과별로, 병동 별로 싹 적어 두었습니다.”

“오…….”

수혁은 이미 안대훈의 이상한 미소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정신과 시선 모두 안대훈이 만들어 온 돌려돌려 돌림판에 빼앗겼다.

안대훈의 말대로 과와 병동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바늘을 돌리면 이 중 하나가 걸리게 될 것이었다.

[그럼 거기로 가면 되겠군요. 어떤 케이스가 있을지 아예 미지수로군요. 오……. 랜덤 게임인가!]

‘아, 이게 랜덤 게임이구나! 요새 유행이래.’

[어디서요?]

‘학생들이 그러던데?’

[역시 태화. 태화의 미래는 밝군요.]

술자리 랜덤 게임에 대한 터무니 없는 오해와 함께 수혁은 껄껄 웃었다.

“후후후.”

그 모습이 자못 흡족해서, 안대훈도 껄껄 웃었다.

“후히히히.”

“그렇게 웃지 말라고…….”

“너무 좋아서 그랬습니다. 이 불초의 노력을 이토록 흡족해하시다니요.”

“불초 같은 말도 하지 말고…… 병원인데 자꾸 장르가 바뀌는 느낌이잖아.”

“제게는 이곳이 신전입니다.”

“아후.”

수혁은 되도 않는 소리에 진절머리가 나서 손을 내저었다.

다행히 안대훈은 선을 지킬 줄 아는 인간이었다.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아무튼, 돌리실까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음…….”

수혁도 딱히 안대훈의 오래된 주접에 멘탈이 흔들릴 만큼 나약한 인간은 아니다 보니 이내 돌려돌려 돌림판으로 향했다.

그러곤 더없이 신중한 얼굴로 바늘을 툭 하고 쳤다.

빙글빙글.

그러자 바늘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으음!”

“음!”

두 또라이는 그 바늘을 보며 흥분했다.

딱히 당첨도 꽝도 없는 돌림판인데 그랬다.

“혈액?”

“아니, 그 옆에 소아과……?”

“치과?”

“정형외과?”

“아……. 아냐.”

“오……. 감염.”

둘은 오만 호들갑을 다 떨어 가며 바늘이 닿았던 이름을 마구 주절거리다가 마침내 바늘 끝에 걸린 이름을 읽었다.

“감염내과.”

“감염이네요.”

감염이라.

[꽝일 수도 있겠군요.]

‘그러게.’

감염내과란 이름을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흥분이 피시식 식어 가는 느낌이었다.

감염내과라는 학문 자체가 흥미롭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한때는 감염내과는 이제 축소될 거란 전망도 있기는 했지만, 환경의 변화 및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인류는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감염병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발견이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있겠나.

‘우리 삼촌이 나름 실력이 괜찮은데.’

[장덕수 교수도 괜찮습니다.]

대부분은 원래 있던 감염병의 연속이었다.

물론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인해 감염 내과는 바빠졌지만.

슈퍼박테리아는 치료가 어려운 것이지, 진단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가실까요? 가서 별거 없으면 거기서 돌리시죠.”

“아하. 그래.”

귀신같이 수혁의 생각을 읽어 낸 안대훈은 돌려돌려 돌림판을 등에 짊어진 채 몸을 일으켰다.

꽝일지라도 가서 돌리면 된다는 말을 들은 참이라 수혁도 더없이 가벼운 얼굴로 연구실을 나설 수 있었다.

기분이야 여행이라도 가는 기분이었지만.

그래 봐야 병원 안에서 움직이는 것 아닌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 건 아니었다.

“어……. 안녕하세요.”

그런 둘을 향해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가 인사를 건네 왔다.

‘등에는 뭐지…….’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이제 온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수혁이야 애초부터 또라이로 유명하지 않았나.

한때 이현종부터가 칼로 쑤시네 어쩌네 하고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건 옛날 일이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의 물결처럼 새롭게 떠오른 미친 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안대훈이었다.

‘이, 인사해. 눈은 마주치지 말고. 포교…… 당한다.’

‘포교요? 아, 저 사람이 그럼?’

‘그래. 교주님 모시고 왔잖아. 저런 이상한 행색의 대머리가 또 있겠어?’

‘등에는 뭘 짊어진 거예요?’

‘몰라. 십자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포교를 시전하는 안대훈의 존재감은 더없이 대단한 것이었다.

대부분은 웃어넘기고 있어 다행인데, 그 종교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보니 반대급부로 이런 소문도 돌았다.

“어려운 환자 있으면 말해 보세요.”

그 와중에 뚜벅뚜벅 걸어온 안대훈이 눈에 기이한 열기를 띤 채 물었다.

아까 인사를 건넸던 시니어 간호사는 눈 깜짝할 새에 몸을 숨겼긴 때문에 답은 온전히 이제 겨우 신규 면한 간호사의 몫이 되었다.

“어…….”

“교수님, 저희가 직접 찾아야 할 모양인데요?”

“음. 뭐, 예상하고 있던 어려움이지. 그리고…….”

“맞습니다. 원래 여행이 여정이 즐거워야 진짜죠.”

“그렇죠.”

다행히 안대훈과 수혁은 지금 지기가 되어 있었다.

눈만 봐도 서로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달까.

하여간 둘은 페어를 이루어 병동을 헤집기 시작했다.

‘하아.’

그 뒤를 방금 마주친 간호사 따랐다.

좋아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이 다름 아닌 감염내과 병동인 것에 주목해야 했다.

수혁에 대한 애정만 놓고 보면 안대훈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신현태가 이곳의 우두머리였다.

- 수혁이 회진 오면 반드시 따라붙어서 무슨 말 하는지 싹 기록할 것.

지엄한 명이 있었다.

처음엔 정말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몇 번인가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으음.”

“없어.”

“없군요.”

그렇게 뒤를 따라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무슨 잠입 액션 찍는 사람들처럼 병실을 하나둘 살피고 있었다.

보통은 이런 식이었다.

안대훈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반가워하는 환자들을 진정시킨 후, 이수혁을 불렀다.

수혁은 병실 중앙에 서서 환자를 슥 훑었다.

아주 장엄한 표정을 지은 채였는데, 하필 해가 창가를 통해 마구 들어올 시간대라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좀 성스러워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없군.”

“이거 꽝일 수도 있겠군요.”

그러곤 실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다른 병실로 향했다.

‘진짜 종교 활동 중인 건…… 아니겠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러고 있으니 정상인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만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이변이 발생했다.

“음?”

음 이라는 말 자체는 이전과 같았다.

하지만 묘하게 말려 올라가는 느낌이 있었다.

“오?”

안대훈이야 당연히 그 이변을 알아차렸다.

“저기 저 환자…… 누구 환자죠?”

수혁은 그런 안대훈과 함께 뒤따라오던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간호사는 이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짓을 해 왔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고 기가 막히는 일이었지만.

상대는 교수였다.

게다가 끗발 날리는.

수간호사라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아, 장덕수 교수님 환자입니다.”

“현재 임프레션은?”

“네? 아…… 그거까지는.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으음.”

하여간 그래서 답을 해 주었더니,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계속 질문이 날아들었다.

아마 수혁만 있었다면 한동안 이런 대치 상태가 유지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유능하기 짝이 없는 안대훈도 있었다.

“어, 일로 와. 환자 얘기하게.”

녀석은 어느 틈엔가 주치의를 부른 참이었다.

그러고 곧 주치의가 나타났다.

2년 차 이진호.

대표적인 불신자였다.

당연히 안대훈 입장에서나 그렇다는 것이고, 수혁에게는 그저 2년 차였다.

“부르셨습니까, 교수님.”

“어. 이 환자…… 보고 있어요?”

“네. 교수님.”

“임프레션이 뭐죠?”

수혁은 어느새 환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자의 종아리 언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단 라임 보렐리아증(진드기 감염병)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근거는? 아니, 아예 노티를 해 봐요.”

“아…… 네.”

수혁은 종아리 언저리에 까맣게 변색된 자리에서 비로소 고개를 떼고 주치의를 돌아보았다.

환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주치의도 그랬다.

한국어는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라 그랬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환자 폴란드 분으로…… 40세 여성입니다. 한국에는 관광 오신 분인데…… 오시기 전 동네 병원에서 진드기 감염증에 대해 아목시실린을 처방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당시 주소는?”

“압통입니다. 종아리랑…… 양측 사타구니 측의 압통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관광 오고 난 후, 그러니까 약 먹고 1주 경과한 후 38도의 고열이 있어 이번에는 서울 소재의 병원 내원하였습니다. 거기서 진드기 감염으로 인한 뇌염으로의 경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독시사이클린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

레지던트는 잠시 하늘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잘못 걸리면 질문 지옥에 빠지게 된다더니.

직접 겪어 보니 무저갱 같았다.

세상에 그리고만 하는데 이렇게 떨릴 일이란 말인가.

사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간단한 문답 중인데도 팔다리가 다 떨렸다.

‘저 눈…….’

수혁의 눈은 무엇이든 꿰뚫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괜히 안대훈을 위시한 여러 레지던트들이 신앙에 가까운 존경을 품게 된 게 아니로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갑자기 회개하는 것도 이상하고 신앙 고백을 하는 건 더 이상한 일이다 보니 묻는 말에나 답을 하기로 했다.

“열은 내렸으나, 동통이 훨씬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본원으로 의뢰되었습니다.”

“본원에서 시행한 검사에서 라임 보렐리아증이 나온 거야?”

“네.”

“흐음.”

물론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의 고뇌와는 별 관계없이 그저 환자의 현 상황과 진단명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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