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694화 (694/1,303)

694화 천재의 취미 생활 (2)

‘너 혹시 폴란드어 할 줄 아냐.’

[폴란드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나.

의학 외에는 바보라 해도 좋았다.

수혁도 전공 바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루다는 그보다 수준이 더했으니 알았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그럼 이 환자분은 어떻게 보고 있지?”

하여간 제아무리 수혁이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하는 상태에서 바로 환자를 볼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해서 일단 방금 따라붙은 레지던트에게 물으려 했는데.

이미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안대훈이 눈에 들어왔다.

“뭐 하니?”

“국제 진료소에 통역을 요청했습니다.”

“어……?”

“교수님은 워낙 영어를 잘하셔서 통역 서비스는 아예 안 쓰시지만 다른 교수들은 제법 요청하시거든요.”

“아……. 우리 병원 이런 게 있어?”

“그럼요.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까지는 아예 상주하는 직원이 있고요. 아마 이분은 입원하면서 입원 기간에만 따로 고용을 했거나 할 거예요.”

“오…….”

마침 햇빛이 대훈의 머리 뒤로 들어오고 있기도 했고.

또 워낙에 기특한 일을 해낸 참이기도 해서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마저 일었다.

대훈은 그런 수혁의 눈에 한층 더 신이 나서 껄껄 웃었다.

“망극합니다.”

“그래, 뭐. 잘했다.

“후하하.”

살짝 주접도 떨어 봤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어차피 교주와 신도 사이의 일이었으니까.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이러고 있었으면 별 상관없었을 터였다.

‘확실히 이상하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그냥 질문 던진 게 다잖아. 분위기가 묘했을 뿐이지…….’

나머지 불신자들에게는 한없이 불편한 장면일 뿐이었다.

얼떨결에 끌려온 간호사와 레지던트는 눈으로 신호를 교환했다.

이런 거라도 안 하면 계속 버티기가 좀 어려울 거 같았다.

“안녕하세요. 통역 요청 주셨죠.”

오래지 않아 통역사가 왔다.

“사실 원래 정해진 회진 시간보다 좀 일찍 와서 무료했던 참인데 잘됐네요.”

“아……. 회진 시간에만 계시는 거예요?”

“네. 제가 계속 있으면 환자분이 그거 다 부담해야 해서요.”

“오, 운이 좋았네요.”

“네.”

알고 보니 상주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폴란드어 통역사는 수혁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정말 맞다는 뜻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수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하필 자신이 왔을 때 통역사가 있던 것.

이게 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이 환자는 좀 이상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그저 느낌일 뿐이었다.

자세한 것은 문진해 봐야 알 터였다.

“그럼 일단 몇 가지 물어볼 텐데, 도와주시죠.”

“네, 물론입니다.”

수혁은 그렇게 환자에게 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선은 아까 레지던트에게 들었던 것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같은 질문이더라도 반복할수록 다른 답이 나오기도 하기에 그랬다.

게다가 나중에 나온 답이 대개는 처음 답보다 더 정제되어 있어서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일단 큰 틀에서 벗어난 것은 없어. 하지만…… 뇌염을 의심했다고 하기엔 당시에 했다는 신체 검진이 좀 미흡했네.’

[네. 경부 강직도 없는데 그냥 고열이 나고 두통을 호소한다는 이유만으로 뇌염을 의심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약은 꽤 잘 들었어.’

[네. 독시사이클린이 환자의 감염에 꽤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단이 빗나갔음에도 치료가 됐다는 게 영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진드기에 의한 감염이라면 그 안에서 세세하게 갈리더라도 비슷한 틀 안에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정말 환자를 완전히 고치기 위해서는 좀 더 들이파고 들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환자분, 지금 어디가 제일 아프죠.”

우선은 열린 질문이었다.

이렇게 하면 답이 중구난방으로 튈 위험도 있었지만.

이미 환자는 의료 기관을 여러 군데 전전한 상태였다.

심지어 지금은 입원 중이기도 했고.

의사와 대화하는 데 있어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아…… 여기요.”

“여기가 아니라요?”

“네.”

“으음.”

환자는 사타구니 근처를 가리켰다.

물린 곳은 종아리 부근이었음에도 그랬다.

‘물린 곳에 궤양이 있는데도 사타구니가 더 아프다 이거지.’

[뭐……. 진드기 감염증은 그럴 수 있죠. 물린 상처야 이제 나을 때가 다 되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해. 하지만 좋은 사인은 아닌데.’

[네. 상처와 별개로 감염증 자체는 그리 호전이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진드기가 무슨 호랑이나 커다란 개는 아니지 않나.

물린 상처 주변으로 염증이 생기긴 할 테지만 아무래도 상처가 어마어마하진 않는 법이었다.

때문에 감염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상처 자체는 호전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 환자도 그랬다.

“그럼 그거 말고 불편한 증상은 없나요? 두통은 어떻습니까?”

“두통은 좋아졌어요. 살짝 아프긴 한데…….”

“열도 없고…… 그럼 사타구니 아픈 거 말고는 달리 불편한 게 없으세요?”

“아…… 아뇨. 여기가 좀 저려요.”

환자가 가리킨 곳은 손과 발이었다.

손발이 저리다.

비특이적인 증상이었다.

‘으음…….’

[아직은 모르겠군요.]

수혁은 환자의 손을 보다가 수액 라인을 확인했고, 들어가는 약을 자동적으로 확인했다.

외부 병원에서는 독시사이클린을 썼다고 했는데, 지금은 세프트리악손(Ceftriaxone, 광범위한 항균력의 항생제)이 들어가고 있었다.

보렐리아증에 대한 치료라면 합당한 항생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보렐이아증에 의한 뇌수막염이 의심될 때, 세프트리악손은 거의 최고의 약이었으니까.

[방금 환자의 발언을 주목하십시오.]

‘응?’

[머리가 약간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야…… 치료한다고 다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

[아뇨. 이전 진술을 띄우겠습니다.]

그때 바루다가 끼어들었다.

살짝 쓸데없는 개입이란 느낌도 들었지만.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

이 녀석이 이럴 때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던가.

해서 잠자코 있으려니, 바루다가 말을 이었다.

[보십시오. 입원 기록에서 보면…… 이 환자 분명히 두통에 대해 없다고 진술했어요.]

‘그냥…… 대강 한 거 아녀?’

[그게 의사가 할 말입니까.]

‘아니긴 하지. 그래, 이건 확인하는 게 필요하겠어. 약이 바뀌었는데, 증상이 악화되고 있다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네. 그리고 보렐리아증에서 이런 형태가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맞아. 이거 오히려…… 야토병에 더 가깝지.’

보렐리아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 무언가.

바로 특징적인 피부 병변인 이동 홍반(Erythema Migrans, 반지 모양의 발진)이었다.

[이 환자는 어디를 봐도 그런 게 없습니다.]

‘응, 없어. 아예 없어.’

물론 이동 홍반이 없는 보렐리아증도 있을 수는 있었다.

드문 형태의 감염병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장덕수 교수님이 이게 없는데도 보렐리아증으로 확진 내린 근거는 검사지?’

[네.]

게다가 장덕수의 결정에는 근거가 있었다.

라임 보렐리아증의 혈청학(ELISA)에서 IgM(감염 시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항체)에 대해 양성이 나왔기에 그랬다.

IgM의 면역학적 의미가 급성 감염에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증상이 너무 차이가 났다.

수혁은 이게 마음에 걸렸다.

아마 이현종과 아선까지 가서 겪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수혁도 장덕수의 의견에 군말 없이 따랐을 터였다.

‘검사 결과가 틀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지.’

[이현종의 가르침이군요.]

‘그래. 증상이 이렇게까지 힌트를 주잖아.’

[그건 맞습니다.]

보렐리아라고 하면 굉장히 드문 경우를 상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게 야토병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증상이 야토병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환자분.”

“네.”

“혹시 두통 말입니다.”

“네.”

“이거 입원하고 어떤가요. 좋아졌나요? 아니면…….”

“아.”

수혁의 말에 환자는 잠시 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지금 저걸 왜 물으시지…….’

레지던트는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곧 회진 시간이지 않나.

장덕수가 온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가 온다고 해서 분위기가 막 험악해지지는 않을 터였다.

장덕수는 신현태의 부하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고, 수혁은 그런 신현태가 애정하는 교수였으니.

게다가 장덕수는 벌써 여러 번 수혁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앙금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아니라고…….’

물론 위에서 그렇다고 해서 아랫사람이 마냥 마음이 편안하게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다 꽝이면 환자는 또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가뜩이나 말도 잘 안 통해서 라포 형성도 잘 못 했는데.

“사실 머리가 좀 더 아프긴 합니다.”

“응?”

그때 황당한 답이 나왔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답이었다.

독시사이클린에 비해 세프트리악손은 여러모로 우월한 약이지 않나.

굳이 보렐리아증이 아니더라도, 세프트리악속의 뇌수막염에 대한 효능은 이미 입증되어 있었다.

근데 안 좋아졌다고?

올바른 약을 쓰고 있는데?

“역시.”

당황하는 레지던트와는 별개로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렐리아증일 거라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혼란스러운 결과겠지만.

애초에 그게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서 그랬다.

“야토병에 대한 검사를 해야겠는데.”

물론 논리가 좀 겅중 뛰는 느낌이 있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서는 안대훈만이 그의 논리를 따를 수 있었다.

그마저도 신묘한 신앙의 힘이 있어서 가능했을 뿐, 아직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게 무슨 소리죠?”

스테이션에 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홀로 터덜터덜 회진을 돌던 장덕수가 끼어들었다.

수혁은 그를 되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 환자 모든 증상이 야토병을 가리키고 있어요.”

“아니……. 이미 보렐리아증으로 진단이 됐는데요?”

장덕수는 황당했다.

혹시 검사 결과를 몰라서 저러나 했는데.

앞에 들고 있는 탭에 뜬 결과는 분명 이 환자의 검사 결과였다.

그리고 하필 ELISA가 떠 있었다.

그걸 멀쩡히 보면서도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증상과 검사 결과가 너무 상충됩니다. 이 환자에게서 이동 홍반을 찾을 수 있나요?”

헷갈릴 수 있는 소견은 아니었다.

황소 눈과 같이 가장자리는 붉고 가운데는 연한 모양을 나타내는 피부 증상이니까.

심지어 질병 경과 상 이것이 먼저 나타나고 나서야 뇌수막염이나 심장 증상이 나타났다.

“없기는 하지만.”

“게다가 이 환자…… 심장은 완전히 깨끗하던데요. 뇌수막염이 동반되었다면, 심장도 안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동 홍반이 없는 형태의 보렐리아증도 보고된 바 있기는 하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야토병의 전형적인 질병 경과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해 보입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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