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화 천재의 취미 생활 (3)
듣다 보니 그럴싸하기는 했다.
확실히 모든 증상이 보렐리아증보다는 야토병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명확히 보렐리아증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
근거 중심 의학의 세례를 세게 받은 장덕수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장덕수 교수님.”
“어, 네.”
그때 수혁이 진중한 얼굴로 장덕수를 불렀다.
생각해 보면 이미 교수가 된 지는 오래였으나, 같은 교수가 이토록 진지하게 불러 주는 건 오랜만이었다.
하도 신현태 아니면 이현종과 같은 괴물들하고 가깝게 지내다 보니 자꾸만 애 취급을 받아서 그랬다.
“교수님 SCI 논문 벌써 40점도 넘게 내셨죠?”
“아, 그렇긴 합니다. 근데 그건 왜…….”
이수혁과 같이 떠오르는 신성이 띄워 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굉장히 갑작스럽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상 맞지도 않았지만 하여간 좋았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겁니까?]
‘일단 칭찬부터 하고 제안하면 보통 다 한다니까.’
[어느 세계관에서요?]
‘이 세계관. 이 새끼야.’
수혁은 반발하는 바루다를 억누르고는 말을 이었다.
“감염 학회에서도 한자리하고 계시고요.”
“음.”
“원내 감염 관리에도 바쁘신 원장님 대신해서 고생하시고.”
“으음.”
“임상 결과도 좋은 편 아니십니까.”
“으음. 그렇긴 합니다. 허허.”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좀 이상하다 하고 있기는 했으나.
웃음이 나오고야 말았다.
[이게 되네.]
‘된다니까.’
수혁은 그 미소를 확인하자마자 준비했던 칼을 꺼냈다.
“장 교수님. 그런 장 교수님이 생각하실 때 이 환자 뭐 같습니까? 검사 결과를 떼어 놓고 보면요.”
“그럼…… 음.”
칼이 생각보다 날카로웠기 때문에 장덕수는 잠시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 온 금칠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래. 내가 꽤 우수하긴 해?’
신현태가 칭찬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신현태가 장덕수 나이 때 이룩했던 업적보다 장덕수가 지금껏 이룩한 업적이 더 대단했더랬다.
물론 신현태라는 스승이 무차별적으로 지원 사격을 해 주어서 그렇긴 했지만.
하여간 실력도 굉장히 좋다 이 말이었다.
그런 내가 생각할 때, 이 환자는 뭘까.
놀랍게도 답변은 쉬웠다.
“검사 결과를 배제한다면…… 그러면 야토병에 더 가깝죠.”
“그럼 야토병을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니, 잠깐만요. 검사 결과를 재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금세 대화는 도돌이표를 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대 의학에 있어서 검사 결과가 갖는 의의는 대단한 것이었으니.
“지금 환자 상태를 보죠. 환자분. 두통은 어떻습니까. 입원 당시에 비해서요.”
“음……. 사실 좀 더 아프긴 해요.”
“여기 사타구니는 어떠세요?”
“여기는…… 아우……. 너무 아파요. 전보다 훨씬.”
수혁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현종이 그랬던 것처럼 검사 에러가 정확히 왜 나타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알아볼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
하지만 환자는 어떠한가.
치료가 제대로 되었다면 좋아져야만 했다.
“으음.”
그러나 환자는 명백히 악화되고 있었다.
진단이 맞다는 가정하에, 제대로 된 치료를 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하는가.
“진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상황입니다. 교수님. 지금 보렐리아증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는 검사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마 이 말을 대뜸 던졌다면, 장덕수도 코웃음을 쳤을 터였다.
하지만 온갖 금칠에 더해 환자의 상태 변화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네. 고작해야 검사 하나뿐이야.’
그 검사가 면역학적인 검사 중 끝판왕에 해당하는 항체 검사라는 사실이 잠시 묻혔다.
수혁의 화술에 장덕수가 홀라당 넘어간 탓이었다.
‘오……. 이거 진짜 그러네?’
‘이래서 신자들이 있나.’
물론 레지던트와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역사적인 현장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혁의 목소리 그리고 단어 선택 등이 병실 안을 쓸데없이 장엄하게 만들고 있었다.
[역시 수혁은 천재입니다.]
‘어? 뭐 다 아는 소리를.’
[이쪽으로는 제가 없어도 되겠어요.]
바루다조차 감탄하게 된 순간, 수혁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교수님. 다시 한번 검사를 해 보죠. 야토병에 대한 검사를 해 보는 겁니다.”
“음……. 알겠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죠.”
“보렐리아증이 위양성이었을 수 있으니, 이쪽도 재검하고요. 검사 방식을 바꾸면 될 겁니다.”
“아……. 그건 어떻게…….”
“진단 검사 의학과 쪽에서 알고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재검사가 결정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치료를 잠시 독시사이클린으로 돌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야토병이 맞자면, 치료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리고 환자 상태를 보십시오. 경구 독시사이클린을 쓸 때가 오히려 더 나았습니다.”
“아, 음. 그렇긴 한데…….”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꽝이면 다시 바꾸면 되죠. 어차피…… 잠깐은 같이 써도 되는 약 아닙니까.”
“아,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럼.”
치료법도 변경되었다.
이제 여기서 남은 일은, 이게 과연 맞는 결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모처럼 난 시간을, 그러니까 취미 생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교수님. 돌리시죠.”
그런 수혁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어 낸 안대훈은 복도로 나오자마자, 등에 짊어지고 있던 돌려돌려 돌림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병원에서 무슨 이벤트 하나……?”
“큰 병원이라 그런가 별걸 다 하네.”
“어? 나 저 교수님 아는데. 유명한 사람 아녀?”
“선물 주나 보다.”
오가던 환자,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나 의사와 같은 의료진들도 잠시 멈추었다.
이쯤 되면 안대훈은 몰라도 수혁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정상일 텐데.
수혁의 마음은 온통 뽕으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
‘이번에 좀 아빠 같지 않았냐.’
[맞으면 정말 이현종 뺨치는 거죠.]
‘후후후. 후하하하.’
어려운 케이스를 마주했다는 사실부터가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한데 그 케이스를 해결하는 방식이 얼마 전에 수혁과 바루다를 모두 당황하게 만들었던 케이스 해결과 비슷하지 않았나.
여기서 뽕이 차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혁은 사람이었다.
안에 든 바루다도 좀 이상한 기계였고.
“자, 그럼…….”
해서 수혁은 연신 웃음을 흘리며 검지를 튕길 수 있었다.
빙글빙글.
대훈이 진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돌림판이라 그런가, 바늘은 처음처럼 정신없이 돌아갔다.
지금 빨리 진단 검사 의학과로 갔어야 했던 장덕수조차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걸 지켜보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뭐 하는 거지.’
모두의 공통된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대체 이 두 사람은 뭐 하는 걸까.
처음에는 당연히 경품 행사 같은 건 줄 알았더랬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런 게 아니라, 뭔 과 이름이 잔뜩 적혀 있었다.
‘센터 차원에서 선물을 주기로 했나. 전달받은 사항이 아예 없는데.’
의문이 그득해질 때쯤 바늘이 멈추었다.
“아, 응급실!”
“오. 두근두근하구만.”
바늘 끝은 응급실에 걸려 있었다.
동시에 안대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래 응급실이야말로 비정형 질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랬다.
그럼 그냥 거기로 가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럼 두근거림이 없지 않나.
수혁이 요청에 의해 가는 거라면 응당 응급실로 향하는 일이 많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취미 활동이었다.
남들 같으면 연구실에서 퍼팅 연습하거나 아니면 맛집이라도 갈 만한 시간을 할애한, 그야말로 무의미하게 흘러가면 안 되는 시간.
“그럼 갈까.”
“네!”
이게 우연히 이리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도 그랬다.
수혁이 웃는 낯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녀석은 주섬주섬 돌려돌려 돌림판을 챙겨다가 등에 짊어지고는 홀연히 감염 병동을 떠났다.
“저거 설마…… 돌림판에서 나온 곳으로 가서 진료를 본다는 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나마 수혁과 접점이 좀 있는 장덕수는 이런 추론이 가능했다.
“설마요, 교수님. 그게 말이 되나요.”
“하긴. 그렇지?”
“네.”
하지만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일 뿐이었다.
해서 다들 에이 하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나 그때 장덕수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근데 그럼…… 저 둘이 여기는 왜 왔어.”
“어…….”
“와서 뭐 다른 거 한 거 있어? 환자 본 거 말고?”
“어…… 없습니다. 없어요.”
두려움이 엄습했다.
세상에 돌림판을 돌려 환자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건 한창때의 이현종도 감히 떠올리지 못했던 발상이었다.
아마 범위를 온 세상으로 넓혀도 마찬가지 아닐까?
“일단…… 우리는 이거 맞는지 확인하자.”
“정말로요?”
“너 저렇게까지 환자 보는 사람 본 적 있냐.”
“아, 아뇨.”
“나도 상상도 못 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어려운 환자 찾아다니는 사람이 허튼소리나 하러 왔을까?”
“아……. 그건 아닐 거 같습니다.”
“게다가 이수혁 교수는 천재야. 누가 뭐래도…… 그건 변하지 않아.”
천재는 원래 괴짜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금 장면은 괴짜라고 하기에도 선을 한참 넘은 거 같기는 했지만.
하여간 저건 진짜였다.
진짜 광기……
아니, 진짜 천재.
하여간 장덕수는 이제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저 인간 말이 맞을 거 같다는 생각만이 어느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랬다.
“으음.”
한 사람의 머리를 황폐화시킨 수혁은 대훈과 함께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한 명은 지팡이를 다른 하나는 등에 이상한 돌림판을 메고 있지 않나.
아마 강남 한복판에 가도 시선 강탈이 가능하지 않을까.
병원이 아니라 어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모양새였으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왜 저렇게 보지. 안 바쁜가.”
“그러게요.”
두 기인은 껄껄 웃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렸다.
사실 남들의 시선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기도 했다.
들어서자마자 매의 눈으로 환자들이나 살피고 있어서 그랬다.
“음.”
“교수님, 어딥니까.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저기. 저 사람이 흥미롭도다. 아니, 흥미롭다.”
“네.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그중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다.
복통을 호소하는 여자.
나이는 글쎄.
25살이나 되었을까?
보통 똥배나 좀 심각하면 충수돌기염, 즉 맹장염일 터였다.
보통은 그럴 터였다.
[너무 아파하네요.]
‘그래, 이상하지?’
[네.]
‘편하네, 대훈이 있으니까.’
[길이 그냥 막 열리는데요?]
수혁은 대훈의 뒤를 따라 환자에게 향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대훈과 마주치자마자 이리저리 피해 주어서 굉장히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