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응급실 취미 생활 (1)
여자.
22세.
만 나이니, 아마 대학교 3학년이나 4학년쯤 되었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가. 옆에는 당장 눈에 띄는 보호자는 없었다.
그저 동년배로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더 있을 뿐이었다.
“환자분.”
안대훈은 그런 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태화 의료원 내과 수석 레지던트 안대훈입니다.”
사실 수석이라고 해 봐야 그냥 연차가 제일 높은 레지던트일 뿐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법이었다.
애초에 병원에서 이런 명칭을 만든 것부터가 환자들에게 그럴싸해 보이라는 뜻이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하여간 환자와 보호자 둘 모두 안대훈에게 집중했다.
아마 딱히 직함을 말하지 않았어도 비슷하긴 했을 터였다.
‘와……. 되게 높은 사람인가 보다.’
‘으…… 배 아파……. 그래도 이런 사람이 왔으니…… 다행…….’
안대훈의 외모에는 관록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그랬다.
안대훈도 그러한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남들 같으면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애를 썼을 텐데.
안대훈은 오히려 그걸 자신의 무기로 여기며 쓰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 눈앞에서 대머리라고 놀려도 별 타격이 없지 않을까?
“이쪽은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이신 이수혁 교수님이십니다.”
수혁이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안대훈은 수혁을 소개했다.
어떻게 봐도 안대훈보다는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냥 들이대면 이게 교수라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면 다를 수도 있었다.
태화 생명이나 바이오 측에서 언플을 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어디 TV를 본다던가.
아마 수혁이 유튜브 스타가 되거나 넷플릭스에서 예능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젊은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쌓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아,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여간 대훈의 쇼를 통해 수혁은 보다 부드럽게 진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미 대훈이 인사를 하기 전부터 진료 중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수혁의 진료는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역시 일반적이지는 않군…….’
[네, 육안으로 보기에도 우측 옆구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가뜩이나 살도 없어서 더 잘 보이는데…… 음. 지금 누가 보고 있지?’
[아직 인턴입니다. 초진 후 배정도 안 되었어요.]
‘운이 좋군.’
다시 말하면 환자는 거의 응급실에 들어오자마자 수혁을 만났다는 얘기였다.
운이 좋다는 말이 가히 과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이미 과에 배정이 된 상태라면야 각 과의 전문의들이 조금이나마 더 나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환자가 아직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땐, 수혁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환자분, 혹시 최근에 밥은 잘 드셨나요?”
옆구리가 부풀어 오른 것과 더불어,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특이 소견은 몇 개 더 있었다.
특이 소견은 주로 얼굴에 분포되어 있었다.
눈 밑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고, 입술은 메말라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부는 거칠했고 탄력이 없어 보였다.
나이를 감안했을 때, 이렇게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아뇨……. 식욕이 없어서요. 속도 더부룩하고.”
탈수와 체중 저하.
[역시 그렇군요. 아무래도 저거 그냥 복수 따위는 아닌 듯합니다.]
‘덩이려나.’
수혁은 옆구리에 부풀어 오른 부위를 힐끔거리다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는 암을 포함한 종양 질환들이 온통 떠돌았다.
“얼마나 되셨죠?”
“꽤 오래되었어요.”
“정확히 얼마나?”
“음…….”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느낀 게 얼마나 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환자의 시선이 잠시 수혁도 대훈도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머물렀다.
원래 환자를 보기로 되어 있었던 인턴이었다.
‘뭐냐, 이거.’
환자가 배정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잠깐 다른 환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왔더니 교수님이 내려와 있었다.
어떤 대머리와 함께였는데, 그 대머리는 돌림판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어쩌…… 어쩌지.’
담당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인턴에 비하면 그래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병원 경험이 많이 쌓인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일에 대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병원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쉽사리 벌어질 만한 일은 아니었으니.
“한…… 4달? 5달? 모르겠어요. 오래됐어요.”
“그럼 살이 꽤 많이 빠졌을 거 같은데…… 얼마나 빠졌죠?”
환자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인턴에게서 시선을 뗀 후, 본인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답을 해 왔다.
수혁은 답을 듣자마자 또 다른 질문으로 응수했다.
“거의 10kg은 빠졌을걸요?”
답은 영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보호자 자격으로 같이 와 있던 친구가 그 주인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살짝 질투가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kg이라. 많이 빠졌는데…… 병원은 가 보지 않았나요?”
“네? 아뇨. 저 친구랑 어차피…… 다이어트 중이었어서요. 약도 그런 약을 먹고 있었고요.”
“약이라고 하면 다이어트약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저는 좀 약발이 세다고 느꼈어요.”
“음.”
여기서 10kg을 더한다고 해 봐야 보통 체중이나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거기서 왜 약까지 먹으면서 뺄 생각을 했을까.
[수혁, 지금 꼰대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다이어트약을 먹어서 10kg의 체중 변화가 가려졌던 상황이에요.]
‘악성 종양을 생각하라는 거야?’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면 드물겠지만…….]
‘20대에도 암은 생기지.’
소아암도 있는 세상이지 않나.
뭐가 되었건 의사는 흔하면서도 가장 안 좋은 상황부터 떠올리고, 될 수 있으면 배제해야 했다.
수혁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선 암을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정리하면 5개월 전부터 입맛이 없었고, 살이 10kg 빠졌다는 거군요.”
“네.”
“그럼 다이어트약은 언제부터 드셨나요?”
“한 6개월 전이요.”
“6개월 전에는 소화 불량이 있었나요?”
“아, 아뇨. 저는 딱히…… 그러다 점점 뭔가 불편해지길래 원래 약이 이런가 보다 했어요.”
참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오래 가는 소화 불량이 흔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걸 다이어트약 때문인 것으로 오인했을 줄이야.
“일단 제가 배를 좀 봐도 될까요?”
“아, 네.”
“그럼 누우시고요. 무릎은 굽히시고. 아니, 아니…… 개구리 자세를 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죠. 그렇게 세우셔야죠. 어우, 놀랐네.”
“죄, 죄송합니다.”
진료의 기본은 시진, 문진, 청진, 촉진, 타진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시진이 끝나야 문진을 하고, 문진이 끝나야 청진을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문진은 진료 과정 중간에 튀어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신체 검진을 통해 알아낸 정보가 문진에 도움이 되어서 그랬다.
‘전체적으로 장음이 감소되어 있어.’
[장폐색 또는 장마비(창자 마비, 창자 안에 가스가 가득 차는 증상)를 시사합니다. 이 경우에는 장폐색을 염두에 둬야겠군요.]
‘그렇겠어.’
사실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 특히 체중이 덜 나가는 여성에서는 장마비가 그리 드문 것은 아니긴 했다.
애초에 뭘 먹어야 장도 운동을 하지 않겠나.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하느라 아무것도 안 먹고 있으면 장이 멈추고,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변비가 생기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환자가 자세를 취하자, 옆구리에 부풀어 오른 무언가가 더 도드라져 보이고 있었다.
“자, 이제 배를 좀 만질 겁니다. 아프면 말씀하세요.”
“네.”
수혁은 일부러 그 부위 말고 다른 부위부터 눌러 댔다.
처음부터 아플 거라고 예상되는 곳을 냅다 누르면 검진에 방해가 되기에 그랬다.
“아파요?”
“약간요.”
“뗄 때는?”
“괜찮아요.”
환자의 복부는 전반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병원에 왔으니 긴장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었고, 젊다 보니 복부에 근육량이 중년에 비해서는 많아서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배가 좀 빵빵합니다. 확실히 저 지점에서 막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여기에 변이 가득 차 있는 느낌이야.’
하지만 진짜 원인은 변이었다.
변도 본격적으로 차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둔중한 통증을 일으킬 수 있지 않나.
옛사람들이 똥배라고 불렀던 게 아주 잘못된 말은 아니라는 걸, 수혁은 잘 알고 있었다.
“자, 이제 진짜 좀 불편할 수 있어요.”
“아, 네.”
“어휴……. 지영아.”
수혁은 이제 대망의 마지막 지점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일반인이 보기엔 그냥 조금 그쪽이 부었나 싶을 정도일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보다 면밀한 분석이 가능한 수혁에게는 영 이상해 보였다.
이 자리에서 제일 뛰어나 보이는 의사가 계속 그 지점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니, 다른 이들도 덩달아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친구가 그랬다.
손을 꽉 잡고 있었는데 잡힌 손이 탈색되고 있을 지경이었다.
‘으음.’
[덩이군요.]
그에 반해 수혁은 세게 누르지 않았다.
혹 진짜 폐색이 있는 경우, 너무 세게 누르다 오히려 부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그것만으로도 수혁에게는 충분했다.
‘단단하지는 않아. 하지만 작지도 않아. 꽤 큰데…….’
[근데 이상하군요. 덩이가…… 이런 질감은 처음입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으음. 좀 더 만져 보시죠. 돌려 가면서.]
‘오케이.’
수혁은 바루다를 통해 진료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을 데이터화하고 있지 않나.
그 때문에 이런 식의 진료를 할 때면 언제나 이전의 감각과 비교할 수 있었다.
벌써 수년이 지났다 보니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은 거의 없어진 지 오래였다.
한데 이건 처음이었다.
“으음.”
바루다와의 대화만 나누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것이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졌다.
사실 젊은 남자가 배를 쪼물딱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살짝 불안해졌기에 그랬다.
설마하니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서, 심지어 간호사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시도할 것 같은 인상은 아니긴 했지만.
워낙에 험한 세상이지 않나.
하지만 지금 수혁의 얼굴은 자못 엄숙해 보이는 면까지 있어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지 못했다.
‘저 사람은 또 왜 저래…….’
심지어 안대훈은 수혁의 바로 옆에서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곱게 모으고서였다.
‘안에서 뭐가 자라 나와서 막은 느낌이 아니야. 겉에 이거 장이라기엔 너무 벽이 두꺼워.’
[벽이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벽이 아니다. 그럼 이게 종양? 장 외벽에서 뭐가 자랐다고?’
[뭘 그리 놀랍니까. 드문 상황이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수단도 있습니다.]
‘아, 그렇지. 그래.’
그리고 수혁이 눈을 뜨자, 안대훈도 눈을 떴다.
잔뜩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