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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697화 (697/1,303)

697화 응급실 취미 생활 (2)

“어떻게 할까요?”

안대훈은 우선 수혁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딱 말을 해 줄 줄 알았으나, 눈을 뜬 수혁의 얼굴에서 무언가 요청할 기색이 느껴졌기에 그랬다.

‘세상에…… 내가 이제 교주님하고 이런 식의 소통이 가능하구나.’

대훈은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수혁은 신도 아니고, 교주도 아니었기에 그런 대훈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저 입 안의 혀처럼 구는 대훈이 기특할 따름이었다.

혀가 좀 징그럽게 생긴 혀라는 게 문제이긴 했으나.

말만 잘 들으면 그게 뭐 대수겠나.

“초음파 보자.”

“네!”

“수술해야 할 수도 있으니…… CT도 연락해 놓고.”

“네!”

“그리고 검사 결과 나오면 바로 말해 줘.”

“네!”

지시 사항은 꽤 많았다.

그러나 동시에 명료했기에 대훈은 삽시간에 네네네를 외치고서는 우선 초음파를 끌고 왔다.

“선생님, 제가…….”

“어허. 무엄하도다.”

“네?”

인턴이 더 어린 데다가, 딱히 할 일도 없이 서성이고 있던 참이었던 만큼 초음파 기기에 더 빨리 닿았다.

하지만 대머리 안대훈의 진노는 대단한 것이어서 인턴은 하릴없이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왜 저러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안 들을 수도 없었다.

안대훈은 명실공히 내과 실세였으니까.

안티도 적지 않게 있다고 들었으나, 추종자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추종자들은 거의 열성 신도들이라고 들었다.

심지어 내과 말고 다른 과에도 있다고 하지 않나.

안대훈의 말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실로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마구 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교수님. 여기 있습니다.”

단순히 취미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뿐인 안대훈은 냉큼 초음파를 대령했다.

수혁도 얼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과정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프로브를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수혁. 환자한테 이제 초음파 할 거라고는 얘기해야죠.]

‘어어. 당연하지.’

[솔직히 할 마음 없었으면서 당연하다고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티 났냐.’

[그냥 진단하고 싶어서 안달 난 상황 아닙니까. 이현종의 가르침을 잊지 마십시오.]

‘어어.’

바루다 덕에 정신을 차린 수혁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환자분. 초음파를 볼 텐데, 살짝 차가울 수도 있습니다.”

“아…… 네…….”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좀 무섭단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세상 무표정한 얼굴로 옆구리 쪽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이런 사람 좋은 미소라니.

마치 카메라 슛 들어가고 나서의 배우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그 외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못했다.

‘수술할 수도 있다고 했지…….’

아까 수혁이 지나가듯 말했던 것이 계속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서 그랬다.

누누이 말했지만, 아직 환자는 만으로 22살.

많아 봐야 24살.

대학생 나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였다.

젊다는 말과 어리다는 말을 혼용해서 써도 좋을 만한 나이의 사람에게 수술이라는 단어가 갖는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 설마 암인가.’

덜컥 겁이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친구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살 빠진다니까 그렇게 부러워했었는데.

그리고 그걸 보면서 뿌듯했는데.

분위기상 그랬으면 안 되었던 듯했다.

‘그러니까…… 내가 초콜릿을 얼마나 먹었는데…….’

먹었는데 살이 찌기는커녕 빠졌더랬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밥맛이 없는 것을 넘어 아예 식욕이 없었다.

그걸 자랑하듯 다이어트약을 처방해 주었던 의사에게 말했더니만 그 인간도 은근 뿌듯해했었다.

“엇, 차거.”

“네, 차가워요.”

후회와 원망으로 머릿속이 얼룩지고 있을 무렵 생소한 느낌이 복부에 일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플라스틱 같은 게 배를 문대고 있었다.

“고개는 편히 두시고요. 그렇게 하면 힘 들어가서 영상이 왜곡됩니다.”

“아, 네.”

근데 보지 말라고 해서 다시 누웠다.

편히 두라고는 했는데 편하지는 않았다.

검사받는 입장에서 어찌 편할 수 있겠나.

아마 이 의사는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표정이 제멋대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오직 영상만을 보고 있어서 그러한 변화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그러했다.

“이게…… 이게 덩이인가?”

“덩이는 덩이야.”

수혁은 그렇게 이리저리 윈도우를 잡다가, 마침내 환자의 병변이 제일 잘 보이는 부위를 딱 잡고 나서야 손을 멈추었다.

화면에는 둥근 무언가가 떠 있었다.

크기는 작지 않았다.

부위는 대장이 아니라 소장인 듯했다.

‘이게 뭔지 알 리는 없겠지.’

[당연합니다.]

‘그래도 물어보고 싶다.’

[갈구려고…….]

답정너였다.

바루다는 뭐라고 하려다 말았다.

사실 그 자신도 이럴 때 약간의 즐거움을 느껴서 그랬다.

아마 숙주인 수혁의 감정이 영향을 주는 것이겠으나, 뭐 어쩌겠는가.

이래저래 바루다는 수혁이 너무 엇나가는 것만 아니면 따라야 하는 운명이었다.

“인턴 샘. 이름이 뭐죠?”

“네! 저는 김지혜입니다!”

“그래요. 그럼 김지혜 인턴 샘. 이거 뭐 같아요?”

질문은 하고 있지만, 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랬다.

인턴은 그야말로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과 지망인 그로서는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덩이……입니다.”

“그건 방금 말한 거고.”

“그…… 역시 종양?”

인턴의 말에 환자가 움찔했다.

종양이라니.

역시 암이로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종양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하지만 이어지는 수혁의 말에는 다시 희망을 얻었다.

아무리 봐도 이 젊은 의사가 이 자리에서 제일 유능한 듯한데, 어째 말하는 투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종양은 아닌 듯하지 않나.

“어……. 그, 모양이.”

“모양이 정확히 어떻게 보여?”

“어…….”

그와는 별개로 인턴은 점점 희망을 잃고 있었다.

교수들이 인턴에게 질문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의 분위기 자체가, 특히 내과는 티칭 마인드가 꽤 강하다 보니 벌써 몇 번이나 이런 시간을 가진 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집요한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대체 인턴의 생각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럴까.

그렇다고 저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대충 뭉갤 수도 없었다.

“그…… 여기 이렇게. 경계가 보입니다.”

“그 말은 경계가 명확하다는 뜻이지?”

“아. 네.”

“방금 인턴 샘이 가리킨 곳의 경계가 어디랑 어디를 나누는데요?”

“어…… 이전의 장과 지금 장이요. 어?”

“말하다 보니까 좀 이상하죠?”

“네……. 근데…….”

이상한 것은 질문에 답하다 보니 아까보다 뭔가 좀 이상한 게 더 보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인턴 수준에서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이미 머릿속은 하얗다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오케이. 인턴 샘은 여기까지.”

수혁은 바루다의 분석까지 이용해서 이 점을 캐치했다.

[이런 걸 현타라고 하나요?]

바루다는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을 고작해야 인턴 몰아붙이는 데 써먹는 수혁을 보면서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뭔가 느끼길 바라면서였다.

별 소용은 없었다.

수혁의 눈은 이미 다음 사냥감을 향해 움직인 지 오래였다.

“대훈아. 이게 뭐 같아.”

“음……. 일단 소장의 덩이입니다. 근데 이거…….”

“말해 봐.”

“소장 내부에서 자라 나온 거 같지가 않은데요? 뭔가…… 텍스처가 좀.”

수혁은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는 취미였지만 남들에게도 그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교수의 질문 받는 걸 취미라고 생각할 수 있던 사람은 오직 하나, 레지던트 시절의 이수혁뿐이었으니까.

게다가 안대훈은 수혁의 신임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 자식…… 진짜 제법인데?’

[그러게요. 어떻게 여기서 텍스처 변화를 알고 있지?]

‘하여간 열심히 하긴 한다니까.’

그와는 별개로 수혁은 제법 감탄하고 있었다.

안대훈의 입에서 정확한 진단명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럴싸한 추론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랬다.

“외부에서 자라난 덩이라면…… 음. 림프절일까요? 아닌데. 융합되면서 합쳐졌다기에는 너무 균일한데. 음.”

“좋아. 대훈이는 여기까지.”

이만하면 합격점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정답을 말할 수 있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솔직히 그걸 레지던트 수준에서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과 질환도 아니지 않나.

“음음.”

수혁은 목을 가다듬었다.

“저…… CT실 가야 된다고.”

딱 자랑을 하려는데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송 요원이었다.

한창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수혁이라고 해도, 심지어 자랑하려고 하던 찰나의 수혁이라고 해도 물러서야만 했다.

“아, 그럼 가면서 할까.”

“네. 교수님.”

해서 일행은 CT실로 향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태화가 자랑하는 응급실 시스템 덕이었다.

그렇게 금세 도달한 CT실에서 수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인턴은 물론이거니와 보호자 그리고 담당 간호사도 끌려온 마당이었다.

“CT를 찍으면 좀 더 명확히 보일 텐데…… 초음파를 보면 아까 인턴 샘이 말한 것처럼 경계가 아주 뚜렷해. 임파절의 융합으로 보는 건 어렵지.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소장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어. 그래서 대훈이는 외부에서 발원한 종양이라고 판단한 거야. 맞나?”

“네, 교수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혁은 꼬박꼬박 대답하는 대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말을 이었다.

“말이 맞아. 외부에서 자라 나온 종양이야. 사실 종양이라기보다는…… 그냥 신생물이라고 보는 게 맞는데. CT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보일 거야. 잘 보면 여기 다중 루프 형태를 띠고 있는 거 보여?”

“아, 네.”

“초음파에서는 뭉뚱그려서 보이던 건데 여기선 이렇게 보이는 거지. 장폐색의 아주 드문 원인 질환이 되는 복부 고치 증후군 또는 원발성 경화 캡슐화 복막염(PSEP, Primary Sclerogenic Encapsulation Peritonitis)이라고 해. 왜 복막염이라고 하냐면, 막상 열어 보면 염증처럼 이리저리 유착을 일으켜서 그래.”

“아…….”

대훈을 비롯한 모두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사실 CT를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질환명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그것도 모르겠는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보니 아까보다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면서 첨언한 설명을 곁들이고 보니 개뿔도 모르는 사람조차 뭔가 알겠단 느낌이 받았다.

심지어 얼떨결에 따라 들어와 있던, 사실 나가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꾹 입을 다물고 있던 보호자도 그랬다.

“외과 콜 하지. 원발성 경화성 캡슐화 복막염에 대한 개복술 요청한다고 하면…… 알아들으려나. 자신 있게 말하기가 좀 그렇네. 인턴 샘. 제가 노티할게요. 괜찮죠?”

“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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