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00화 (700/1,303)

700화 기저질환이 있으면 (2)

외과에서는 모종의 오해가 쌓이고 있었다.

응급실 환자 중에 VIP가 둘이나 있는데 하필 수혁의 지인이라는 얘기였다.

수혁에 대한 감정이 좋건 나쁘건 간에,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병원 교수의 지인이라면 뭐가 되었건 잘해 주기는 해야 했다.

반대로 도움받을 일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CT실에서 연락 왔습니다. 지하 1층 환자 잠깐 빈다고……. 그리로 오라고 합니다.”

“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모르겠습니다. 연락 주신 거 아니에요?”

“아뇨.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하여간 신경은 쓰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응급실도 아니고 다른 CT실에서 연락이 왔다.

펠로우와 외과 레지던트 그리고 수혁이나 안대훈 모두 어리둥절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품지는 않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빨리 CT를 찍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었으니까.

해서 일행은 지체하지 않고 환자를 데리고 CT실로 향했다.

드르륵.

곧 CT 영상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곧장 판독에 돌입했다.

‘확실히…… 농양이 깊어.’

[네. 아주 깊습니다.]

‘내가 수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기는 한데……. 이거 항문 통해서 할 수 있을까?’

[아뇨. 어려울 거 같습니다. 안 될 거예요.]

‘그렇지? 으음……. 배를 연다……. 음?’

최소 침습이라는 말이 대세를 이루게 된 지 오래였다.

치료를 위해, 또는 환부로의 접근을 위해 가하는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단 얘기였다.

당연히 이 환자에게도 항문을 통한 접근이 좋기는 할 터였다.

많이 쨀 필요도 없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깊으면 좀 어렵지 않나 싶었다.

‘저기 끝에 덩이 보여?’

[림프절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약간 커져 있는 거 같은데…….’

[수혁. 염증이 있으면 원래 림프절은 커집니다.]

림프절.

그러니까 림프노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데려와서 집단 폭행을 가하는 조직이라고 보면 되었다.

바루다의 말처럼 염증이 있으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이 환자의 림프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꽤 여럿 커진 것들이 보였다.

하지만 수혁이 들여다보고 있는 놈은 유독 컸다.

다른 놈들과 구분이 될 정도였다.

‘아니……. 이거. 이거 이상하지 않아?’

[촉이라는 겁니까?]

‘아니……. 모양이나 색, 그리고 크기가 다른 애들이랑 다르잖아.’

[음…….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해 봐.’

물론 구분이라고 하는 게 무슨 확연한 수준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

수혁도 긴가민가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촉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루다의 분석 또한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기존의 반응성 림프절이 보이는 특성과 비교 분석했습니다. 크기가 유별나게 큰 것은 아니나……. 이 환자의 다른 림프절과의 차이를 고려하면 좀 이상하긴 합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에이즈 환자잖아.’

[맞습니다. 에이즈 환자에서 림포마는 꽤 흔하죠. 그중에서도…… 비호지킨 림포마(Non-Hodgkin`s Lymphoma, 림프 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전환되어 생기는 종양)는 빈도가 높습니다.]

‘이거 비호지킨과 비교 분석해 봐.’

[좋습니다.]

수혁과 바루다는 원래도 환자 보는 걸 몸살 나도록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특히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가, 딱 둘의 의견이 합치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수혁은 CT실 벽에 살짝 기댄 채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교주님…… 오셨군요! 이 환자에게 뭔가 다른 게 있군요!’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직 하나, 안대훈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수혁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특히 외과 쪽은 마음이 급했다.

이거 배 열게 되면 시간 엄청 잡아먹게 될 것이 뻔해 보여서 그랬다.

이 정도는 1년 차만 되어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서 1년 차는 동영상으로 CT 영상을 스크롤을 굴려 촬영한 후 위 연차에게 보냈다.

“어…… 받았어. 이거 뭐야.”

“농양이 너무 깊습니다.”

“아…… 일단. 일단……. 하 시발.”

위 연차는 욕설을 내뱉고는 교수에게 보여 주었다.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바쁜 상황이었다.

아까 수혁이 말했던 복부 고치 증후군 수술이 이제 코앞이어서 그랬다.

부끄럽지만 생전 처음 듣는 진단명이었더랬다.

그래서 부리나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 왜.”

“이거…… 지금 응급실에 있는 환자인데요.”

“응급실? 아…… 그 에이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짧은 시간 내에 오해를 풀었다는 점이었다.

아직 남은 오해는 둘 다 수혁의 지인이라는 점일 뿐이었다.

이건 수혁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풀리지 않을 오해였다.

그 누구도 수혁이 괜히 아니, 취미 생활의 일환으로 천금 같은 시간을 내서 응급실에 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네. CT가…….”

“와……. 이거……. 아이구. 어쩌냐, 이거?”

“개복 세트로 준비하라고 할까요?”

“으음…… 잠만.”

수혁의 지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그러니까 VIP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결론은 쉬웠을 터였다.

고민 없이 열었을 테니.

하지만 상대가 다른 교수도 아니고 하필 수혁이었다.

‘이현종 교수님이랑 짝짜꿍해 가지고……. 안 그래도 우리 외과 개무시하잖아?’

여기에도 깊은 오해가 있었다.

무시를 안 하는 건 아니긴 했다.

특히 이현종은 틈만 나면 외과는 좀 무식한 면이 있다고 떠들어 댔으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외과도 내과 무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내과가 대체 기다리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냐는 말은 일종의 밈이 되어 있었다.

원래 한 과를 전공하다 보면 자부심이 철철 넘치다 못해, 우리 과가 최고란 생각에 매몰되기에 그랬다.

이번엔 그 주체가 너무 뛰어난 사람들이다 보니 듣는 입장에서 뼈가 아프게 되었을 뿐이었다.

“뭔가 보여 줘야지. 일단 항문으로 해 보고……. 아니면 복강경 하자.”

“네……? 감염인데요?”

“할 수 있어. 항문으로 드레인될 거 아냐. 어차피.”

“그…….”

교수야 자존심이 중요하겠지만.

레지던트는 그저 오늘 빨리 끝내고 편히 자면 최고였다.

솔직히 이수혁 교수 같은 사람이 수술 방법 가지고 뭘 인정할 것 같지도 않았다.

교수들과는 달리 레지던트들에게 수혁은 이미 어마어마한 천재로 소문이 난 지 오래돼서 더 그랬다.

“뭐 인마. 네가 수술해?”

“아, 아닙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 인마.”

“네, 교수님.”

하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게 레지던트였다.

그렇게 환자의 수술은 개복이 아닌 복강경으로 결정이 되었다.

벌써 환자는 병실도 배정되었고, 수술실에서 바로 그리로 가기로 결정이 되기도 했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긴데.

수혁은 여전히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있었다.

바루다의 분석을 기다리면서였다.

[나왔습니다.]

‘오. 어때.’

[확실히 유사성이 있습니다.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조직 검사를 해 봐라, 이거지?’

[네. 그렇다면 오히려 염증이 심해서 개복을 하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그렇네. 음. 아, 서둘러야겠네.’

[갑자기요?]

‘곧 1시야. 수술 그때 잡혀 있잖아.’

[아.]

수혁은 그 분석을 머리에 새긴 채,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말도 없이 그랬으나 대훈은 당황하지 않고 수혁을 따랐다.

수혁의 움직임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게다가 옆에 있어야 케이스가 해결될 때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겠나.

말이 얘기지, 사실상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드르륵.

서둘러 병원 식당에서 점심을 때운 둘은 그 길로 곧장 수술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올라온 여자 환자……. 혹시 방이 어디죠?”

무턱대고 올라오느라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 그 환자분요? 12번 방이요.”

모두가 그 환자를 수혁의 지인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따로 빼서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 주었을 지경이었다.

방 안에 들어서니 이제 막 수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아, 교수님.”

“네, 교수님.”

“절개 시작합니다.”

외과 교수는 수혁에게 눈인사를 한 후, 칼을 들고 환자의 배를 쭉 갈랐다.

“잘 봐라, 대훈아.”

수혁은 그 장면을 보면서 대훈을 불렀다.

대훈은 황송한 얼굴로 그런 수혁을 돌아보았다.

“저게 복부 고치 증후군이야. 막이 부풀어 자라고, 그게 융합이 되면서…… 꼭 고치처럼 소장을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아, 네. 와……. 어떻게 저러죠?”

“아직 이유를 명확히 몰라. 전 세계적으로도 100 케이스 정도나 발표되었나? 아주 드문 상태야.”

수혁은 톡 치면 눈물이라도 터뜨릴 거 같은 대훈을 외면한 채, 설명을 이어 나갔다.

수술실이라는 공간이 커 봐야 얼마나 크겠나.

게다가 수혁은 발성이 꽤나 좋은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의 목소리는 이 방 안에 있는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증상이 워낙에 중요하잖아. 장폐색이니……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해.”

“네, 교수님.”

“게다가 수술 장면도 그렇고 초음파, CT 소견도 특징적이잖아. 수술하는 과라면 더더욱 몰라서는 안 되겠지.”

수혁은 딱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돌려돌려 돌림판을 만들고, 여태 따라다니고 있는 대훈에게 보다 나은 가르침을 주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의 수혁은 이현종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서, 시야가 좁았다.

[잘한다. 설명 좋네.]

게다가 조언을 해 주어야 할 바루다도 그저 깡통일 뿐이었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군요? 몰라서는 안 되는 거군요?”

안대훈도 이상하기로만 따지면 전국구 클라스였고.

‘저 새끼들이 지금 외과 방 들어와서 시비를 터나.’

외과 의사들은 실시간으로 상심하는 중이었다.

내과 의사가 들어와서 이건 외과는 특히 모르면 안 되는 병이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원래 이 병을 알고 있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랬다.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전 세계적으로 여태 100개의 케이스만 발표되었다지 않나?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케이스도 없었을 수도 있었다.

있었다 해도 명확한 진단명을 모른 채 치료가 되었을 수도 있었고.

하여간 장폐색이 있는데 수술도 안 하고 그냥 두고 볼 외과 의사는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존재치 않았으니까.

‘역시…… 다음 수술에서 내가 뭔가 보여 줘야 해.’

해서 외과 교수는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수술은 그리 특별한 거 없는 진단명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전해 듣기로도, 아직 수혁이 그 케이스에 대해서는 딱히 입을 턴 게 없다고 했다.

오로지 외과의 영역이라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 우매한 내과 의사에게 외과 의사의 위력을 보여 줘야 할 차례였다.

어쩐지 전국에 있는 외과 의사를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술 끝나 갑니다. 다음 환자 내려 주세요.”

“어……. 네, 교수님.”

그래서 그랬을까?

목소리에서 자못 비장한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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