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화 기저질환이 있으면 (4)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수술실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응급실에서 환자가 올라온 탓이었다.
“으…… 으으…….”
잠깐 사이에 환자 상태는 더 나빠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항생제를 쓴다고 해도, 이미 잡힌 농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일단 병원에 오면 이런저런 검사를 하게 되기 마련이어서 단기간에 체력을 훅 하고 뺏기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저분인가?”
“네.”
“일단 째기는 해야겠네.”
“네. 상태가…… 혈압이 내려가고 있어요. 아까는 150에 110이었는데 이제 120에 80이에요.”
“서둘러야겠네.”
혈압 자체는 정상.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것은 경향성이었다.
저 추세면 곧 환자는 저혈압에 빠지게 될 터였다.
여전히 심장 박동 수는 110을 넘나들고 있는데,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혈관이 확장되고 있음을 뜻하니까.
혈관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은 곧 패혈증을 의미했다.
면역저하자에게서 패혈증은 죽음과 동음이의어처럼 쓸 수 있기에, 환자 주변에 있는 의사들의 얼굴도 좋지 못했다.
“마취과 선생님! 환자 왔습니다!”
“아, 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외과의에게 이미 이 환자는 자기 환자가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마취과에게도 그럴까?
아직 타인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수술장에서 잠시 있다가 다시 외과 병동으로 돌아갈 테니.
이 간극이 수술장 갈등의 원인 중 태반을 차지했다.
“빨리 좀 확인해 주실래요?”
“잠깐만요. 환자 혈압이 노티 할 때랑 다른데요? 이거 괜찮은 거예요?”
“아……. 안 괜찮으니까 빨리 들어가야 된다는 거죠!”
“그래도 이게.”
“그래도는…… 아니, 선생님! 지금 환자 왔잖아요!”
“음.”
게다가 마취과는 테이블 데스를 늘 염두에 둬야만 하는 과였다.
괜히 자신들이 수술장의 선장이라고 자처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외과는 칼로 환부를 도려내는 데만 집중하면 되겠지만, 적어도 수술 시간 동안 환자 전신을 돌보는 것은 마취과였다.
대부분 그랬다.
“잠깐만요.”
오늘은 아니었다.
“네? 어…… 이수혁 교수님.”
“그 환자 제가 같이 들어가서 볼 겁니다. 일단 지금 혈압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고…… 혹 상황이 바뀌게 돼도 제가 볼 거에요. 그러니, 어서 들어가시죠.”
수혁이 나섰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내과는 중환자 보는 데 스페셜리스트들 아닌가.
수혁보다 훨씬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도 하루 이틀 사람 생명 붙여 놓는 데에는 도가 튼 이들이었다.
한데 이수혁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이건 마취과 레지던트 수준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당연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걸 가능케 한 수혁을 보는 외과 의사의 시선이 달라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벌……. 응급실로 돌아갔으면…….’
상상만 해도 눈앞이 시커메지는 일이었다.
일단 환자 생명이 오락가락해졌을 터였다.
게다가 위에서 퍼붓는 비난은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너는 새꺄 대체 Pre OP(Preoperative, 수술 전 검사)를 어떻게 챙겼으면 수술장에 갔다가 환자가 그냥 나왔냐고 지랄지랄 할 게 뻔했다.
‘이래서 종교가 생기나.’
외과 의사는 잠시 수혁을 구세주 보듯 하다가, 침대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대훈이야 애초부터 그 인자한 눈으로 수혁을 보고 있었고, 조태진도 비슷했다.
‘역시 우리 수혁이가 카리스마가 있다니까.’
뭐 이따위 생각을 하면서였다.
하여간 수술장에 들어간 이후로는 마취과에서 더 이상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서둘러 마취를 했을 뿐이었다.
이왕 하기로 했으면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나았다.
“좋아. 여기 이렇게 가자고.”
그사이 교수도 내려와서 CT를 띄워 놓고는 이러쿵저러쿵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슬쩍 수혁을 돌아보면서였다.
‘인마……. 이게 외과다. 근데 조태진은 왜 왔어.’
두 구경꾼을 자부심 어린 눈으로 또 의구심 어린 눈으로 보던 교수는 이내 입을 열었다.
“복강경으로 할 거야. 염증 때문에 워낙에 시야가 안 좋긴 할 텐데…… 그래도 괜찮아. 할 수 있어.”
“네.”
“여기 이렇게 들어가서 따고 석션 하면서 볼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네, 교수님.”
뭔 소리 하는지도 모르겠지?
딴다고 하면 열매 따는 것밖에 오르겠지?
농양 잡힌 곳에 제일 물렁한 곳을 머리 치듯 툭 찌르면 왈칵 고름 새어 나오는 느낌.
그런 건 모르지?
뭐,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혁이 어느새 자기들 사이에 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음.”
“음? 아이, 깜짝이야. 이수혁 교수님. 왜요.”
수혁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딱히 외과에 가르침을 줘야겠다거나 아니면 엿을 먹여야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없어서 그랬다.
그저 이 환자의 림프절이 정말 비호지킨 종양인지 아닌지만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또 만약 비호지킨일 경우 놓치게 되었을 때의 파급력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환자 상태가 이 지경이니 죽게 되지 않을까?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럴 게 분명했다.
“여기 이 림프절을 보세요.”
해서 수혁은 마우스 스크롤을 굴렸다.
그러자 솔직히 별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림프절이 튀어나왔다.
“이거…… 비호지킨성 림포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혁은 돌직구를 날렸다.
당연히 외과는 벙쪘다.
“네?”
“이렇게만 들으면 어리둥절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림프절과 비교해 보세요. 반응성 림프절들하고는 확실히 달라요.”
“으음……. 저는 잘.”
“그리고 이 환자처럼 이렇게 농양이 깊숙이 생기는 경우가 흔합니까?”
“에이즈 환자에서는…… 그리고 동성애자라고 들었습니다. 가능은 하죠.”
“그렇다고 여기에서 발원한다고요?”
“음.”
벙찌던 외과는 좀 불안해졌다.
상대가 상대라서 그랬다.
이 인간 의견을 짬처리해도 될까?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조태진이 나섰다.
“교수님. 제가 보기에도 타당한 의견입니다. 조직 검사를 해 봐야 해요. 만약 저것이 비호지킨성 림포마라면…… 그걸 놓쳤을 때의 영향을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이거…….”
“복강경으로는 불가능하다고요? 그렇다 해도 제 의견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수술 범위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환자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으음.”
치사하게 사람 생명 운운하면서였다.
이게 그냥 한 명이 이렇게 떠드는 거라면 어찌어찌 뭉갤 수도 있을 터였다.
수혁이 얘기하는 거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조태진은 사람이 가지는 무게감이 좀 달랐다.
‘혈종…… 하필 혈종이야.’
사람이 어디에서 제일 많이 죽어 나가는가.
응급의학과? 중증외상센터?
아니, 혈종이었다.
현대 의학에서 암은 그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거기에 인생을 건 사람이 생명을 얘기할 때는 존중해 줘야 했다.
과별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환자 동의서…… 어떻게 받았지?”
“일단 개복 가능성은 설명했습니다.”
“보호자는 있어? 있으면 따로 설명해야지.”
“없습니다. 알아보니까…… 커밍아웃하고부터는 쭉 혼자였더라고요.”
“아, 그렇지.”
외과 교수는 입안이 쓴 듯 쩝 소리를 내다가, 이내 수혁과 조태진을 돌아보았다.
고요하던 가슴에 돌도 아니고 숫제 바윗덩이를 냅다 집어 던진 놈들이었다.
이 말을 듣지 않았으면 그냥 복강경으로 했을 터였다.
아니, 혼자 들었다면 고집을 부려 보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귀가 너무 많았다.
‘혹시…… 나중에 비호지킨성이 맞으면…… 그땐 나는…….’
노티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 아닌가.
괜히 위 연차들이 아래 연차들에게 사고 치기 전에 물어보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일단 뭐라도 물으면 그때부터는 책임이 분산되거나 오히려 들은 사람에게 온전히 전가되니까.
이 상황에서야 빼박이었다.
수혁과 조태진은 온전히 조언자일 뿐이지 않나.
그렇다면 여기서 외과 교수도 한마디는 해 줘야만 했다.
“이거 개복했는데…… 아무것도 아니면…… 그때는 교수님들도 책임 있는 겁니다?”
순간 조태진의 눈알이 흔들리다가 결국, 수혁의 뒤통수에 박혔다.
‘수혁아?’
맞지?
뭐 이런 심정이었다.
그에 비해 수혁은 자신 있는 얼굴이었다.
[환자 진행 상황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애초에 농양부터가 저 암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좋아. 확률은?’
[95% 이상.]
‘좋아.’
바루다가 95%라고 했으면 최소 90%는 넘는다고 봐야 했다.
게다가 개복했는데 아니라 해도 잘못은 아니지 않나.
해야 할 검사를 했을 뿐이었다.
최대한 위험을 낮추고 가겠다는데, 그게 왜 문제란 말인가.
“네. 저도 그 책임…… 나눠 지겠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입니다.”
“저는 거짓말할 줄 몰라요.”
[와우.]
“그…… 네.”
수혁은 바루다의 와우를 넘기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눈빛이 워낙에 진실돼 보였기에 외과 교수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계획 변경…… 합니다. 복강경에서 개복으로.”
“어, 네.”
그 말을 듣는 이들의 표정은 참으로 다양했다.
복강경 세트 대신 다른 세트를 까야 해서 귀찮다는 반응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절개 배농이 간단한 시술이라 해도 세척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시술이니만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있었다.
애초에 살짝 무리한다는 느낌도 있던 참이었다.
“칼.”
그렇게 준비가 끝나고, 가우닝까지 마친 외과 교수가 배를 열었다.
[저렇게 열면 피 많이 나는데.]
‘지랄 말고……. 사소한 거까지 끼어들면 진짜 싸움 난다.’
[백강혁 데이터와 비교해 보세요. 저게 절개입니까?]
‘아……. 그 사람은…… 그 사람은 대체 뭘까.’
아까도 그랬는데, 지금도 안 해야지 하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백강혁의 수술.
수술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해도 좋을 경지였다.
이현종이나 김승규의 말에 따르면 아마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연락이 올 수도 있을 거라 했는데.
수혁은 애초에 번호도 못 땄다.
의도적으로 피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아빠는 아니까 연락이나 해 볼까.’
[왜요?]
‘수술 영상이나 좀 보내 달라고. 그거 보면 나도 외과 쪽 이해도가 확 올라가지 않을까?’
[오. 좋은 생각입니다.]
둘은 먼 변방에서 이유 모를 소름에 시달리게 된 강혁을 잠시 잊고 다시 수술 장면에 집중했다.
강혁이었다면 벌써 복막 열고 뭐 하고 다 했을 텐데.
아직 살을 가르고 있었다.
‘거 존나 느리네…….’
[그러니까요.]
구시렁거림이 늘어지는 수술만큼이나 심해지는 사이, 드디어 배가 완전히 열렸다.
모두가 환자의 배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
“아…….”
“이거…….”
그리고 탄식이 이어졌다.
정확히 수혁이 가리켰던 림프절 때문이었다.
영상으로 볼 때보다도 훨씬 이상해 보였다.
일단 색깔이 까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