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화 기저질환이 있으면 (5)
색만 이상했으면 그래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 림프절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으로 침윤이…… 있어…….”
외과 교수는 핀셋으로 림프절을 잡아서 이리저리 흔들어 보고는 탄식을 내뱉었다.
침윤.
조직이 다른 조직을 파고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
이런 특성을 보이는 조직이 흔할까?
그렇지는 않았다.
“역시 암이군.”
“그렇구만.”
“역시…….”
외과 와는 달리 내과 팀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자리에서 정확히 비호지킨성 림포마를 의심했던 사람은 오직 하나 수혁뿐이긴 했지만.
다른 둘은 수혁을 아주 굳건하게 믿고 있었으니 결과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여간 이제 수혁은 농양 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가 되어 버린 종양을 향해 다가갔다.
당연하게도 수술 부위에 오염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면서였다.
“우선 조직 검사부터 나가죠.”
“아, 네.”
외과 교수는 저도 모르게 태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면피용으로 가른 배에서 암 덩이가 나오지 않았나.
게다가 에이즈 환자의 림포마였다.
‘이거…… 이거 놓쳤으면…….’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환자가 죽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 때문에?
나 때문에.
‘와…….’
교수야 식겁하고만 있을 뿐이었지만.
그걸 눈앞에서 보고 있던 레지던트의 심경은 조금 많이 달랐다.
‘다시 봐도…… 다시 봐도 암을 의심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
그는 어느새 수술장 한켠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하면서 지속적으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모니터이니만큼, 당연히 환자의 영상이 떠 있었다.
그중에서도 수혁이 지목했던 림프절이 떡하니 보였다.
몇 번을 힐끔거려도 도저히 저기서 암을 떠올릴 수는 없을 거 같았다.
‘대체 어떤 추론을…… 뭘 한 거지? 설마…… 진짜…….’
영상이야 아무리 봐 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이지 않나.
적어도 레지던트 수준의 지식으로는 무리였다.
해서 레지던트는 수혁 자체를 돌아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혁의 눈, 기이한 열기에 휩싸여 있는 눈을 바라보았다.
‘정확한 종류까지 추론이 가능할까?’
[에이즈 환자에서 비호지킨 림프종은 주로 고등급 B-세포 림프종입니다. 그 안에서 의심해 볼 수는 있겠죠.]
수혁은 애초부터 외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백강혁 수준의 외과의가 아닌 이상, 이 진단 괴물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오로지 림프절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버킷 림프종(Burkitt Lymphoma), 미만성 B형 대세포 림프종(Diffuse Large B-cell Lymphoma, DLBCL), 원발성 삼출액 림프종(primary effusion lymphoma, PEL), 형질 모세포 림프종(Plasmablastic Lymphoma, PBL). 여기서 더 있나?’
[그 외에도 있을 수는 있지만 대개 이 네 개 안에서 결정되겠죠.]
본래 에이즈 환자에서 가장 호발하는 암종은 카포시 사코마.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의료계의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면역이 억제된 상태에서 우리 인체가 얼마나 악성 종양에 취약해지는지에 대한 증거, 그 자체였으니.
아무튼, 그 뒤를 잇는 암종이 바로 수혁이 눈앞에 두고 있는 비호지킨 림포마였다.
‘임상적인 특성으로 잡아내는 건…….’
[무리입니다. 에이즈 환자라는 걸 유념하십시오.]
‘하긴.’
면역 체계가 무너진 환자에서 림포마의 성장 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대다수의 혈액암이 원래도 진행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는 분명 우열이 갈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에서는 그런 구분이 쉽지 않았다.
모든 림포마가 어마어마한 진행 속도를 보여서 그랬다.
‘머리…… 이제 보니까 머리가 좀 이상한데.’
[머리? 아. 저거…….]
진행 속도를 떠올린 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환자의 전신을 훑었다.
그리고 마취 기기가 숨을 훅 하고 불어 넣어 줄 때마다, 그러니까 압력이 올라갈 때마다 환자의 좌측 머리가 출렁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개골이 온전하다면 저럴 리가 없었다.
림포마의 영향으로 함몰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아까도 저랬나?’
[마취 상태가 아니었어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습니다.]
‘내가 저런 걸…… 놓쳐? 네가 있는데?’
[쉽지 않은 일이죠. 저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분명 오전에는 저 지경은 아니었을 터였다.
전이가 있기는 했겠지만 저렇게 모양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다시 말해 암이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거…… 검체실로.”
그사이 외과 교수가 림프절을 떼어 내 간호사에게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인턴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수혁이 그걸 막았다.
“아니, 제가 가겠습니다.”
“네? 이 수술 더 안 보시고요?”
외과 교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 환자가 수혁의 지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러니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는 거 아니었나?
아니, 애초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노티도 없었는데 환자를 초진부터 본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지인이 분명했다.
“네? 어차피 절개 배농하시는 거 아닙니까?”
수혁이 살짝 미친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이라면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여간 수혁은 이제 이 환자의 여명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칠 암에 관해서만 관심이 생긴 마당이었다.
남은 수술이 아주 희귀한 수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배를 열고 진행하는 절개 배농은 그리 특별한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진 않았다.
물론 환자의 전신 상태가 워낙에 좋지 못하다 보니 난이도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어……. 그렇긴 하죠.”
“지금 중요한 건 이 검체에서 나올 결과죠. 제가 가서 판독해 드리겠습니다.”
“네……? 판독이요?”
외과 입장에서는 실로 점입가경 그 자체였다.
어째 수혁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중에 제정신인가 싶지 않은 소리가 없었다.
수술방까지 따라 들어오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들어와서 수술 방법을 조언하지를 않나.
이제는 판독까지 해 주겠다고?
여태까지 다 들어맞지만 않았어도 한 대 후렸을 텐데.
‘이게 천재인가.’
왜 수혁과 맞섰던 외과계 교수들이 이제는 데면데면해졌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낙필 교수님…… 이런 거랑 어떻게 싸우시려고요.’
전의가 순식간에 상실되는 느낌이었다.
설령 수혁의 판독이 틀린다 해도 그리 달라질 거 같진 않았다.
오늘 오후는 숫제 수혁에게 홀린 상태로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그럼, 제가 갑니다.”
“어…… 네.”
수혁은 그런 외과 교수를 남겨 둔 채 조태진, 안대훈과 함께 수술방을 빠져나왔다.
조태진은 그제야 참았던 말을 꺼냈다.
“이거…… 분명 저 영상 찍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진행한 거야…… 그렇다는 건 저 영상에서는 진짜 증거가 불분명했다는 거지. 너 대체…… 어떤 과정으로 추론을 한 거야?”
수혁은 그런 조태진을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지금껏 내가 봤던 모든 비호지킨 림포마 소견과 비교 분석했다고 할까.
그럼 어떤 눈으로 볼까.
[존경하지 않을까요? 조태진은 그럴 사람입니다.]
바루다는 이렇게 판단했지만.
수혁은 달랐다.
‘아니. 아냐.’
[질투할 거라고요? 너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거 아닙니까. 조태진입니다. 조태진.]
‘조태진이라서 문제야…….’
또 하나의 안대훈이 탄생할 것이 뻔했다.
레지던트 주교도 힘든데.
교수 주교라고?
이건 통제 불가능이었다.
“그…… 최근에 이 비슷한 논문을 봤어요, 사실. 거기 나온 케이스가 거의 이랬어서.”
“아……. 너 정말 부지런하구나. 언제 또 그런 걸 봤대…… 나도 보내 줄 수 있어? 명색이 혈종인데 몰라서 쓰나.”
“아, 네.”
그래서 대강 둘러댔다.
논문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까먹었다고 하고 대충 뭉개도 될 터였다.
‘교주님…… 거짓말이시군요.’
그런 생각을 하느라 안대훈을 신경 쓰지 못했다.
수혁에 대한 애정이야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그리고 안대훈 모두 비슷할 터였다.
하지만 집착은 달랐다.
안대훈에게 수혁은 이미 신 그 자체.
녀석은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석하고 있었다.
그 결과 얼굴만 봐도 속으로 대강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번 기적은 그만큼 위험한 것인가…….’
안대훈은 이따가 나무위키에 추가할 만한 문장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다.
똑똑.
병리과 검체가 제일 많이 쏟아지는 곳이 수술방이니만큼, 병리과 사무실은 수술방과 아예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 두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성질 급한 외과의들이, 왜인지 모르게 화가 난 상태로 매일같이 들어와서 지금 당장 내 검체부터 봐 달라고 할 것이 뻔해서 그랬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 몇 번 방이에요? 검체 놓고 가시면 됩니다.”
“아니. 안 갈 건데요.”
“네?”
차이가 있다면 외과 의사가 아니라 내과 의사가 왔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보통 내과 의사가 아니라, 이수혁이었다.
병리사는 이게 뭔 개소린가 하는 얼굴로 문에 달린 유리문을 살짝 열고, 창살 너머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음. 뭐지?’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일단 인턴이 아니라 누가 봐도 교수로 보이는 사람 세 명이 서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저 대머리는 연륜이 좀 있어 보였다.
옆에 선 덩치 큰 사람도 그렇고.
“문 열어요. 이 검체 제가 볼 겁니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수혁은 한시라도 빨리 이걸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막무가내였다.
이러면 나머지 둘이 말려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게 진짜 문제였다.
“이것 봐요! 이분이 누군지 몰라요? 이수혁 교수님입니다!”
“어허, 대훈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조태진이 제정신인가 싶었으나, 역시 아니었다.
“소개는 제대로 하자. 이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 통합진료학회의 수련이사, 알 나지르 왕자의 친우, 김다현 사장의 은인…….”
“어…… 일단 들어오세요.”
병리사는 이놈들이 보통 미친놈들이 아니구나 싶었다.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소개를 이딴 식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수혁…… 이수혁 교수가 이 사람이구나.’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수혁에 대한 소문이 이미 병원 전체를 휘감은 지 오래라 그랬다.
처음엔 단순히 미친 사람이었다가, 원장의 아들이었다가, 어느새 병원 역사를 통째로 새로 쓸 천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근데 판독을 직접 하신다는 게…….”
“말 그대로예요. 교수님도 보시겠지만. 저도 보겠습니다.”
“어…… 근데 교수님이…….”
“하라고 하실 거예요. 저 처음이 아니라.”
“아, 처음이 아니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