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04화 (704/1,303)

704화 기저질환이 있으면 (6)

수혁의 호언장담처럼 병리과 교수는 수혁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우격다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몰타 십자가…….’

병리과 교수야말로 수혁의 기적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랬다.

한동안 눈을 감아도 떠도 몰타 십자가를 등지고 서 있는 수혁이 보여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더랬다.

다행히 병리과 교수는 조태진이나 안대훈처럼 종교적인 심취로 빠져들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수혁의 실력이 진짜인 것을 넘어 어마어마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네, 이거 슬라이드로…… 네, 이렇게 해 드리죠.”

말리기는커녕 가져온 검체를 몸소 슬라이드화해서 현미경에 놓아 주기까지 했다.

제아무리 판독 실력이 어마어마하다 해도 현미경 다루는 솜씨까지 병리과 교수만큼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해서 그랬다.

실제로도 그래서 수혁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교주님…… 병리과에는 또 언제…….’

‘수혁아……. 혹시 이 교수랑 친하니? 나보다는 아니지? 그런 거지? 그럴 거야. 서로 이름도 안 부르잖아.’

안대훈은 두 콤비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고, 조태진은 불안감을 느꼈다.

물론 잠시뿐이었다.

수혁이 보고 있는 현미경이 곧 화면에 떴기에 그랬다.

시대가 어느 땐데 옛날처럼 거, 검체 하나 보겠다고 머리를 현미경에 다 같이 들이밀어야 한단 말인가.

첨단의 첨단을 달리는 태화 의료원은 이미 죄 전자화를 마친 지 오래였다.

해서 모두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혁 또한 화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점막하 조직에 비정형 세포가 꽤 관찰이 되네요. 크기는 크고…… 고형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맞나요? 교수님?”

“네? 아, 네. 음. 확실히…… 네. 비정형 세포가 맞습니다.”

병리과는 그런 수혁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판독이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네.’

병리과는 현대 의학의 진단에 있어서 양대 산맥을 차지하고 있는 과였다.

물론 기기의 발달로 인해 영상의학과가 곧 단독 선두로 나서게 되기야 하겠지만, 여전히 확진은 병리과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날마다 새로운 질환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이만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공부할 것이 더럽게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리과 하나만 들이파도 평생이 모자랄 것 같다는 뜻이었다.

한데 저 인간은 내과 주제에 어찌 저럴 수 있을까.

“비정형 세포 사이로 조직 부스러기를 탐식한 대식세포들이 드문드문 관찰되네요.”

“아, 네.”

“이거…… 꼭 밤하늘의 별이 떠 있는 듯한 모양새네요.”

“아…… 네.”

밤하늘의 별.

진료하다 말고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병리과 의사들은 종종 저런 경험을 하곤 했다.

슬라이드화된 인체 조직은 온 세계와 닮아 있어서 그랬다.

인간의 몸은 우주라는 표현이 적어도 이들에게는 은유가 아닌 묘사에 가까웠다.

‘이 말은…… 진짜 스승님 같은데…….’

병리과 교수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저 여상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에 맺히고 있는 상은 오직 슬라이드밖에 없었다.

“구성 세포를 조금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일단 형태는 난원형…… 세포질은 중등도 정도로 짙고. 호염기성이네요.”

“음……. 음……. 네, 음.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다소 핵이 한쪽으로 치우쳐 보이는데, 맞나요?”

“어…… 어디. 아, 네. 그렇네요.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만큼 수혁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판독은 정확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병리과 전문의가 된 지도 20년이 다 되어 가는, 그야말로 시니어 교수가 보기에도 그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까지 했다.

솔직히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는 지점도 있었다.

이미 말이 되나 따위의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사람은…… 진짜 대단하구나…….’

그저 경탄과 경이만이 남아 있었다.

“핵을 보면…… 크고 원형이네요. 하나의 핵소체(세포핵 안에 있는 작은 구형이나 막대 모양의 부위)가 매우 뚜렷합니다. 이상의 소견을 종합해 보면…… 아직 정확한 종류를 특정할 수는 없어도 비호지킨 림포마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맞나요?”

“네, 그렇습니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세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중에서도 형질 모세포종일 거 같은데…… 이건 면역 화학 염색을 해 봐야 더 정확해지는 것이죠?”

“네? 어…… 그…….”

모양만 보고 형질 모세포종이라는 걸 알았다고?

아까까지만 해도 이제 다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여전히 수혁에게는 놀랄 만한 점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었다.

‘옳지! 우리 교주님 잘한다!’

‘역시…… 이름 한번 안 불렀어. 나랑 더 친하다……!’

아쉽게도 안대훈, 조태진은 이 경이를 병리과 교수만큼 뼈저리게 느끼진 못했다.

아무래도 머릿속의 지식과 경험이 병리과 교수에 비하면 일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프로즌 결과는 비호지킨 림포마로 주시죠. 어차피…… 지금 당장 특정한다고 해도 항암할 수 있는 건 아니니. 대신 결과 완전히 나오면 제게도 알려 주세요.”

수혁은 그렇게 결론을 내어 버리곤 교수에게 슥 하고 명함을 들이밀었다.

직함 따위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이름과 이메일만 있을 뿐이었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병리과 교수는 그 명함을 받아 들고는 다시 화면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는 수혁이 말하는 것을 그저 따라잡았을 뿐 아닌가.

명색이 병리과 교수인데 이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본인 눈으로도 완전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수혁은 그런 병리과 교수를 남겨 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조태진과 안대훈도 마찬가지였다.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조태진이었다.

“비호지킨이 맞다는 거지?”

“네? 아, 네. 아직 세밀한 진단은 남았지만…… 하여간 맞아요. 수술 상처 회복될 때면 결과 나오겠죠.”

“그럼 전과 받아야겠네.”

“네. 에이즈 환자니까 삼촌하고도 협진 보셔야 할 거 같아요.”

“원장님? 아냐. 바쁘신데, 장 교수님하고 보지. 뭐.”

“그래도 되죠. 하여간…… 어려운 케이스가 될 거 같아요.”

“음.”

다 맞혀 놓고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게 좀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실 이 말이 맞기는 했다.

앞으로 이 환자가 겪어야 할 치료를 생각하면 미리 애도라도 해 두고픈 심정이 들 지경이었다.

면역이 이미 저하되어 있는 상태에서 현존하는 에이즈 치료제의 역할은 제한되지 않던가.

게다가 림포마에 대한 항암 치료 또한 결국, 면역 저하로 이어질 터였다.

“어렵지. 그래도 그게 내 일이니…… 해 봐야지.”

“네, 형. 형이 있어서 든든하네요.”

“정말? 허허. 저녁 먹을까.”

“아직 3시인데.”

“그럼 슈라도 먹을까! 따라와. 내가 쏜다!”

“어…….”

조태진이 걷고 있는 혈액종양내과의 길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희망이 없어 보이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드문드문 비치는 조각을 찾아 헤매다 보면 우연찮게 살아나는 환자도 적지만은 않았다.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버는 사람이 있었다.

조태진은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그것은 수많은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의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수혁이 어디 갔냐?”

그 시각 이현종은 외래 끝내고 수혁이 볼 생각에 들떠서 센터로 뛰어 들어온 참이었다.

한데 눈에 보이는 것은 하등 반갑지도 않은 레지던트들뿐이다 보니 화가 났다.

더 화가 나는 건 다들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전화해 볼까요?”

“아, 그…….”

그 와중에 의미 있는 제보가 들어왔다.

“뭐야.”

“그…… 안대훈 선생님하고 어디로 가셨습니다.”

“어디로? 그 녀석이 또 환자 있다고 했나?”

“그게…….”

말을 꺼낸 레지던트는 이걸 과연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었다.

등에 뭘 짊어지고 온 레지던트 3년 차와 그 돌림판을 들뜬 얼굴로 돌리던 교수.

그리고 진짜 돌림판 바늘에 걸린 곳으로 향했던 둘.

‘미친놈들인데.’

그걸 이현종이 믿어 줄까?

하고 돌아보니 둘만큼이나 미친 사람이 눈앞에서 씩씩대고 있었다.

“나 빼고 설마 둘이 노는 건 아니겠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면서였다.

모양새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하여간 둘은 진료하러 간 참이었다.

실제로 이어지던 제보에 의하면 환자를 보지 않았나.

자신감이 좀 생긴 레지던트는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뇨,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뭔데.”

그리곤 자세한 정황을 전해 주었다.

그러자 이현종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뭐가 아냐 인마! 나 빼고 놀러 갔구만!”

“네? 아니…… 환자 보셨다던데요? 수술방도 가시고…….”

“그러니까 인마!”

“아니. 뭔…… 왜…….”

일만 뼈 빠지게 하고 있는 것 같고만.

이 사람은 대체 왜 이럴까.

레지던트는 어이가 없어서 눈알을 데구룩 굴렸다.

“이게 다 니들 때문이야.”

“네?”

거기까지만 했어도 어이가 없었을 텐데.

바로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자니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렇게 헐떡대는 모두를 향해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여기가 재미가 있으면, 걔가 그 대머리랑 병원을 싸돌아다니겠어?”

“어…….”

그러니까 그 재미라는 게 대체 뭡니까.

용기가 있었다면 딱 이렇게 얘기했을 텐데.

아쉽게도 아무리 요즘 애들이라 해도 상식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애초에 저 재미라는 것이 뭔지부터가 오리무중이었다.

혹시 은유인가?

아니면 은어인가?

뭐 이런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 되겠어. 이제부터 대오 각성한다.”

“네?”

“내가 봐도 여기가 요새 좀 별로야. 재미가 없다고!”

“그…….”

이현종은 레지던트들이 당황을 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발을 쿵쾅 구르면서 복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그게 천재의 고민 방식이었으나 남들이 볼 때는 그저 지랄 발광일 따름이었다.

어린놈이 저러고 있으면 한 대 후려치기라도 했을 텐데.

나이가 너무 많지 않나.

이제 곧 정년이었다.

‘노망……?’

‘치매……?’

‘오진승 교수님 불러……?’

모두의 생각이 영 좋지 못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쯤, 이현종이 발 구르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싹 가져와요!”

“네?”

상대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인지 잠시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종의 직위 때문인지 아니면 설득이 된 건지는 몰라도 곧 스테이션에 전화기가 무려 8개가 설치되었다.

이현종은 그 앞에 종이를 프린트해서 가져다 두었다.

[다른 대학 병원 케이스 하루 하나씩은 무조건 캐내 올 것.]

거기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한국어이니 이해가 돼야 하는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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