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화 내과 학회 (2)
비단 인턴만 그렇게 느낀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신현태도 그랬다.
“어…….”
“걔 변태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을 그렇게.”
“변태 맞아. 막 어려운 거 보면 흥분한다니까? 나도 그래서 잘 알지. 원래 변태끼리는 통하는 법이거든.”
“으음.”
정상인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 대화였다.
신현태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어우, 시발. 이거 뭐야. 뭐야!’
인턴은 아까 힐끔 바라봤던 그 자신감의 원천이 변태 고백임을 깨닫고 머리를 더더욱 엘리베이터 모서리에 박았다.
여기서 자기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 별로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자, 그럼 변태 보러 가 보실까.”
“아니, 같이 가!”
“너도?”
“그래. 진짜 그런지 확인해야지.”
“좋을대로 해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을걸.”
“으음.”
다행히 센터가 3층에 있어서 이현종과 신현태는 금세 내렸다.
“뭐야…….”
인턴은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혹 뒤를 돌아볼까 봐서였다.
“어? 너 우리 과 인턴 아니냐?”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모습을 들켰다.
재활의학과 지망인데, 재활의학과 레지던트가 3층에서 타서 그랬다.
여기 관련 부서도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도 좋을 타이밍이었지만, 그러기엔 정신이 너무 없었다.
“어, 어. 네!”
“뭐…… 혼났어? 왜 그러고 있냐.”
“그게…… 그.”
“얼굴이 빨간데?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이상하네, 우리 과 사람들 다 젠틀한데…… 너 우리 과 지망 아냐?”
“네네. 그렇습니다. 아니, 아무 일 없습니다.”
“횡설수설하니까 더 그렇네. 일단 카페로 가자. 얘기해 봐.”
“네? 아니…….”
변태 얘기를 하라는 건가.
지금 태화 의료원의 중추를 담당하는 교수들이 한낱 변태라는 걸 불라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엄마…….’
나 어찌해야 해.
인턴은 친절한 레지던트의 손에 이끌려 카페에 들어가는 사이, 핑곗거리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곤 멀쩡히 살아 있는 친구 부모님을 팔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돌아가십니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이 발생한 사이에도 이현종과 신현태는 부지런히 센터로 향하고 있었다.
“니들 뭐 하냐.”
그 시각, 수혁은 낯선 광경에 당황하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가 아직 꽤 널널한 파트였는데.
그래서 레지던트들에게 꿀 파트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놀고 있던 애들이 한데 모여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아……. 이현종 센터장님께서 다른 병원에서 케이스 발굴하라고 하셔 가지고요.”
“어……? 그런다고 발굴이 되나……?”
“놀랍게도 됩니다.”
“된다고?”
“네. 오늘 벌써 세 개 전원 문의받았습니다. 찾아보니까 해결 안 되는 케이스들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오.”
정말 쓸데없는 짓거리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효과가 있을 줄이야?
‘아니, 아니지. 원래 레지던트들 중에서는 환자 보기 싫어하는 애들이 있기는 하지.’
[그런 쓰레기가 있습니까?]
‘쓰레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누구나 핀치에 몰리는 순간이 있기 마련 아니겠나.
레지던트 생활에서는 그 순간이 더 잦기도 하거니와 더 가혹하기도 한 법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환자를 나도 모르게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생겼다.
실제로 그 병원 역량에서는 도저히 무리인 경우도 있을 테고.
어쩔 땐 교수보다 레지던트의 눈이 오히려 더 정확할 때도 있지 않나.
‘하여간 잘됐지, 뭐.’
[그건 그렇습니다. 환자 죽이는 것보다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낫죠.]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니까. 우리는 사람 살리는 거야. 즐기는 게 아니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몸은 솔직한 법이죠. 수혁, 지금 웃고 있습니다.]
‘내가? 아. 나 진짜 중증이네…….’
환자를 케이스로 보게 될 줄이야.
아버지 이현종도 그런 성향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는 환자를 환자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화도 내고 안타까워할 줄도 알았다.
그에 반해 수혁은?
최근 감정의 기복이 좀 줄지 않았나 하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마냥 안정적이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에, 그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어, 수혁아!”
더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다.
이현종과 신현태가 찾아온 까닭이었다.
그것도 평소와는 달리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대고 있었다.
이현종 측이 아니라 신현태가 그랬다.
‘어디 아프신가……?’
[그러게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저러네.]
해서 수혁은 바로 둘에게로 관심을 옮겼다.
“네. 아빠. 삼촌. 웬일이에요?”
“어어. 이번에 내과 학회에서 지침이 내려온 모양이야.”
“내과…… 학회? 아, 우리 모학회 말하시는 거죠?”
“어어.”
와…….
내과 학회라니.
정말 아련한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니 최근 내과 학회를 신경 써 본 적이 있던가?
머릿속에는 늘 센터와 통합진료학회 이 둘뿐이었다.
“추계에 초록 수가 모자란다네.”
“네? 그래도 내과 학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몰라. 아무도 신경을 안 써서 그런가.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이현종은 쯔쯔 혀를 차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하여간 아까 들었던 말을 대강 전달은 해야 할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 이게 또 영상이 너무 잘나가니까 문제가 생기네요.”
그 말을 들은 수혁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솔직히 왜 굳이 경쟁심을 불태워야 하나 싶었다.
웃기는 얘기 아닌가.
이미 인기로만 따지면 영상의학과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 지 오래였다.
적어도 3등 이내 졸업자 중 영상의학과를 단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우하윤뿐일 터였다.
[말세군요.]
‘꼰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환자 안 보는 과가 제일가는 인기 과라니요! 내과가 으뜸이어야지!]
바루다는 AI인 주제에 시대에 역행하는 소리만 하고 있었지만.
환자를 안 본다는 게 어찌 보면 장점이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고생할 일도, 시달릴 일도 없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각종 영상 기기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현대 의학에서 영상의학을 빼면 진단이 어려워진 지 오래였다.
병원의 핵심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거기랑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맞아 죽겠구나.’
1등만 가는 과와 중하위권으로 떨어진 내과가 경쟁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일이었으나, 수혁은 분위기 파악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죠. 뭘 하면 되죠? 논문 써요?”
“어? 어어. 발표도 하고. 근데 퀄을 좀 높여서. 너무 높이지는 말고. 네 수준에서 높이면 왜 국내 학회지에 내냐. 저기 어디야…… NEJM에 내야지.”
말을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현종도 꽤 기분이 상하긴 한 모양이었다.
원래 현실은 냉혹한 법이라 더더욱 그랬다.
그가 내과에 지원할 떄만 해도 이런 분위기라지 않았나.
-내과가 의사지, 딴 게 의사냐? 어? 방사선과? 어휴……. 거기 가서 뭐 해? 내과 가서 사람 살려야지. 외과……? 칼 들고 설치게? 그나마 사람은 살리는 거 같다만…… 그래도 우리 과가 최고야!
다분히 추억 보정도 되어 있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이현종, 신현태 때는 거의 1등은 내과를 가는 게 국룰이었더랬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좋아. 까짓거…… 대출혈 서비스다.’
[네? 뭔 소리예요.]
‘지금까지 썼던 논문 다 뛰어넘을 만한 거로…… 낸다.’
[네……. 아니, 거기 내면 누가 본다고.]
‘찾아서 보게끔 하지 뭐.’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이 사람들이 해 준 것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 않나.
무엇보다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언더독이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법이었으니.
“한번…… 최선을 다해 볼까요?”
“어?”
최선을 다한다.
원래 같으면 되게 자주 들었어야 할 말이었다.
이미 수혁은 레지던트도 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할 말 없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지 않나.
그런데 되게 생경하게 들렸다.
이현종에게도, 신현태에게도 그랬다.
“최선을 다해?”
“어……. 왜 나 이거 처음 듣는 거 같니.”
얼굴이 벌게져 있던 신현태는 자신이 틀리고 이현종이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너무 당황한 까닭이었다.
“은근슬쩍 넘어가지 말고. 내 말이 맞지?”
물론 이현종은 놀란 와중에도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면 짚고 넘어가는 사람이었다.
해서 신현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답을 종용했다.
“아, 알았어. 그래, 내가 아직도 수혁이를 잘 모른다, 됐지?”
“그래. 그래서 내가 아빠고 너는 삼촌 나부랭이인 것이지.”
“하아……. 하여간. 최선을 다한다고?”
신현태는 잠시 한숨을 푹 하고 쉬다가, 즐거운 생각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원장 노릇 하기가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서 또 갈굼을 당해?
이건 안 될 일이었다.
해서 부리나케 수혁을 바라보았다.
“네. 진짜 최고의 논문을 써 보죠. 발표도 그렇고요.”
“오……. 근데 그럼 너무 아까운 거 아냐?”
“아뇨. 국내 학회라고 무시하는 것도 언제까지 하겠어요. 임상은 우리가 최고라고 해도 좋을 수준인데…… 편차를 좀 줄여 봐야죠.”
“허어.”
세상 사람들!
우리 수혁이 세상 똑 부러지는 것 좀 보시죠!
신현태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체통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비단 자기뿐만 아니라 수혁이…….
“형?”
“이런 말을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사람 새끼냐! 들어!”
“어어.”
“어, 아빠, 삼촌. 나 무서…….”
이현종의 리드로 헹가래가 시작되었다.
다른 센터나 병동 같았으면 이렇게 빠르게 이루어지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가끔 이렇게 축하를 하는 편이었고, 인계까지 이루어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레지던트들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달려가 수혁을 하늘로 내던졌다.
‘이렇게 되면…….’
[진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군요.]
옛날의 이수혁이라면 그저 당황하고만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수혁인 이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각오를 다졌다.
“최신 트렌드부터…… 찾아야겠는데.”
“다들 들었지! 최신 트렌드를 찾는다, 실시!”
그뿐만이 아니라 이현종도 그랬다.
“자자. 이따가 내가 피자 쏠 테니까 최선을 다해 보자고!”
신현태도 왜인지 안 가고 여기서 뭉개고 있었다.
덕분에 센터 내 인원 모두가 일단 논문에 매달리게 되었다.
모두들 한마음 한뜻이 되어 펍메드(PubMed,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이 관리하는 검색 엔진)에 들어가 최근 논문 트렌드부터 뒤졌다.
그냥 막 뒤진 게 아니라, 어디가 제일 인용 점수가 높고 또 실제 활용도가 높은 논문이 나오는지를 뒤졌다.
‘좋아. 이번에 학회에서 파란 한번 내가 만들어 본다.’
수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목표는 일단 인용 100회.
말도 안 된단 소리 듣기 딱 좋은 개소리였지만.
어쩐지 자신이 있었다.
이 멤버라면 가능할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