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화 내과 학회 (3)
“예전 트렌드는…… 만성 질환하고 식이…… 운동. 하여간 수명하고 연관되어 있는 게 많았었는데 말이지……. 살짝 틀어졌네?”
이현종은 레지던트들을 갈아서 얻어 낸 논문 데이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 좀 바빠서 그랬지, 사실 논문 하면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인간이 바로 이현종이지 않던가.
꽤 오랜만에 논문 쓸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가슴이 다 설레어 왔다.
“이건 의미가 있는데? 다른 과에도 다 공유하자고.”
신현태는 이현종에 비하면 정상인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해서 설렌다거나 하는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좋았다.
이 논문들.
이 경향성.
무조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사실……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긴 하지.’
무슨 거창한 빅데이터를 얻어 내고자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만 최근 주요 학회지에서 어떤 논문들을 내고 있고, 또 어떤 논문들이 인용 지수가 높은지 정도를 확인하는 건 당연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논문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유행은 결국, 최근 의사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네, 공유하도록 하죠. 으음……. 아무튼, 트렌드가 좀 달라졌네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오래 사느냐에 관심을 두는 듯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하긴, 건강 수명이 더 중요하긴 하지.”
수혁도 이 자료를 공유하는 데 있어서는 이견이 없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떤 논문을 쓸 것인가이지 않나.
때문에 대화 주제는 곧장 지금의 트렌드로 넘어갔다.
즉 삶의 질에 대해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는 건…….’
셋 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레지던트들까지 포함한 모두가 태화 의료원 사람들이지 않나.
그 말은 곧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픈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환자실까지 갈 것도 없었다.
이들의 외래만 해도 죽도록 아픈 사람들은 많았다.
‘역시 건강 수명에 초점을 맞추게 될 수밖에 없어.’
예전에는 노화에 대한 시선이 훨씬 유보적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노인이 가는 귀가 먹었다고 하면, 그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도 그랬다.
그렇다 보니 ‘치료’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고 늙어서 생기는 변화라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화의 범주를 점점 좁혀 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이현종은 최근 꽤 반향을 일으킨 논문 하나를 슥 앞으로 밀어 두었다.
힐끔 보니, 아까 수혁도 체크했던 논문이었다.
“난청이네요.”
“그래. 노인 인구에서 난청이 많지. 50%가 넘으니까. 별로 신경 쓰고 있진 않았는데…….”
귀는 눈에 비해 굉장히 무시 받던 감각기였다.
아마 지금 당장 눈과 귀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 눈을 고르지 않겠나.
이건 당연한 일, 즉 상식인데……
눈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의학계가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마 전 나온 논문 때문이었다.
“난청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논문이 있죠.”
“그래. 생각해 보면 이거 당연한 건데…… 왜 이걸 생각을 못 했을까?”
NEJM에 실리기도 했지만, 인용 지수가 무려 2,000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논문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논문 쓴 교수는 앞으로 학계에서 무시당할 일은 절대 없지 않을까?
미국에서 나온 논문이니만큼 학교 측에서 인센티브 또한 두둑이 챙겼을 터였다.
수혁은 아쉬운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는 이현종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 논문 이후로 나오고 있는 논문들을 보면…… 대개 보청기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죠?”
“어, 그렇지. 아무래도 난청 자체를 치료할 수는 없으니까…… 난청으로 인한 불이익을 줄이는 방향으로 연구가 나올 수밖에 없지.”
현대 의학이 아무리 많이 발전했네 뭐 했네 하면서 깝죽대고 있지만, 여전히 불치병은 많았다.
난청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청각 신경이 8번 뇌 신경이다 보니 이게 손상되었을 때 되돌릴 수가 없어서 그랬다.
그러니 지금 나오고 있는 논문의 방향도 맞기는 맞았다.
보청기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예방은 어떨까요?”
“예방……? 난청을 예방? 뭐…… 소음성 난청?”
“소음성 난청 예방에 대한 논문은 많지 않을까요? 한번 검색해 볼까.”
최선의 치료는 예방에 있다지 않나.
수혁은 손가락을 놀려 키보드를 두드렸다.
소음성 난청 예방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엔터를 누르자 논문이 주르륵 떴다.
심지어 수십 년 된 사골 논문들도 있었다.
그 말은 이제 와 이거 건드려 봐야 별다른 관심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와……. 너무 많네. 별로 관심도 없던 주제인데.”
옆에 있던 신현태가 겨우 끼어들었다.
천재들이 지들끼리 막 사고 회로 돌려가면서 얘기를 하고 있으면 기회 잡는 것도 어려웠다.
신현태도 수재였지만 여기선 리액션 셔틀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나 그렇지. 이비인후과는 아니지. 걔들은 귀만 보잖아. 시야가 좁으니까…… 아무래도 이런 주제에 파고들겠지.”
“이비인후과 의사 앞에서도 시야 운운하는 건 아니지, 형?”
“운운하는데? 기분 나쁠 게 뭐 있나. 귀 코 목만 보는 건 사실인데.”
“어…….”
신현태가 그런가? 하면서 뒤통수를 긁어 대는 동안에도 수혁은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 순간 대화에서 이탈한 수혁은 바루다와 맹렬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치매…… 모든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병이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철학적인 얘기를 기계가 얘기하니까 좀 그런데?’
[저를 아는 수혁과 모르는 수혁을 동일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으음.’
처음엔 그저 치매에 대한 담론이었다.
딱히 지금 목적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수혁은 그냥 이대로 두었다.
바루다도 굳이 수혁을 다시 원래 대화로 복귀시키려 애쓰지 않았다.
이런 대화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어서 그랬다.
‘넘어가고, 치매가 중요한 질환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 없지?’
[없습니다.]
‘그럼 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단 논문이 나오게 되면 주목을 받을 거란 말에는 이견 있어?’
[없습니다. 반드시 관심을 받게 될 겁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있다면?’
[치매의 원인을 어떻게 밝힐 거냐는 것이죠.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치매는 참 무서운 병이었다.
일단 그 결과로써 벌어지는 일이 참 참혹하지 않던가.
세상에 기억을 잃는 병이라니.
그건 곧 나를 잊는 병이라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 무서운 건, 이게 과연 예방이 가능하리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전혀 안 서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하지만 위험 요인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
[통계를 기반으로 한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일단 고령, 여자, 술, 담배 등이 원인이 됩니다. 이번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난청도 그중 하나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 세계적인 관심이 치매에 확 쏠려 있는 만큼 통계 자료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쉽다는 점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온 국민 건강 보험 제도가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러한 자료가 훨씬 많이 있었다.
어떤 논문 기계의 말에 따르면 그 자료들만 잘 취합해도 논문이 뚝딱 나온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논문 쓰는 게 그리 어려운 세상은 아니었다.
특히 임상 논문은 그랬다.
“얘 언제부터 이러고 있어?”
“어……. 나도 몰라요. 야, 대훈아, 언제부터냐.”
이현종과 신현태는 입씨름을 멈추었다.
눈 감고 가만히 서 있는 수혁을 발견한 탓이었다.
경험에 따르면 이럴 때 옆에서 아무리 북 치고 장구 친다고 해도 방해를 받는 거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아빠요, 삼촌인데 방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네, 한 3분 되셨습니다.”
“3분.”
“음…….”
“오신 거 같은데요?”
“넌 좀 지랄 말고.”
“그러니까. 으스스하다고 그런 말은.”
해서 안대훈에게 물었다.
이 새끼는 대화를 하건 말건 수혁만 바라보는 녀석이라 정확한 답을 해 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확한 시간까지 알 수 있었다.
“하여간 조용히 하고 있을까? 얘 이러고 나면 또 뭔가 들고 오잖아?”
“그렇지. 음. 참 내 조카지만 신기한 놈이라니까.”
수혁이 눈을 좀 오래 감고 있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10초 내외는 뭐 노상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분?
이건 귀한 일이었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대훈도 둘만큼 아니, 어쩌면 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입을 합 다물었다.
‘고령. 이건 상수니까 안 되고. 여성도 안 되고. 술이나 담배는…… 뭐 이건 예방 가능한 일이긴 한데, 너무 당연한 소리라 논문거리가 안 되지.’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있다면 논문거리가 되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가치가 아주 높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래도 국내 학회지에서는 실어 주겠죠.]
‘그런 논문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맞습니다.]
수혁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바루다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도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화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뭘까.
‘난청…… 이거야 뭐, 이미 나온 논문이지.’
[네, 그렇습니다.]
‘근데…… 난청이 결국 뭐지.’
[네? 철학적인 문답입니까? 그렇다면 눈을 뜨고 이현종, 신현태와 얘기하십시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던진 말에 바루다는 심드렁하게 대응했다.
뻔히 알고 있는 게 뭐냐고 묻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수혁은 좀 달랐다.
말을 하면서 뭔가 달리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난청은 귀가 안 들리는 거야.’
[그…… 그러니까 그런 얘기는.]
‘아니, 인마. 청각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잖아.’
[그러니까요. 그런 얘기는 눈 뜨고 인간들이랑 하시라고. 나는 바루다. 의료 인공지능입니다.]
‘이 깡통 놈아.’
[갑자기? 뭔 지랄이래?]
수혁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어어. 수혁아. 이거 괜찮은 건가.”
“인마 일단 물 떠 와라.”
“네, 교수님.”
밖에서도 살짝 소란이 일었다.
사람이 눈 감고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이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바루다도 세모 눈을 한 채로 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이상한 놈은 이상한 놈이란 생각을 하면서였다.
하지만 수혁은 더없이 진지했다.
‘청각, 시각, 후각…… 감각기에 대한 자극이 줄어드는 것이 치매의 원인이 된다, 이 말이야.’
[안타깝지만 수혁. 이미 그 사실은 널리…….]
‘감각기가 거기만 있는 게 아니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