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08화 (708/1,303)

708화 내과 학회 (4)

감각기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바루다는 잠시 침묵했다.

머리를 굴리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바루다에게 머리가 있는 것 같겠지만, 실상은 수혁의 머리를 굴리는 것이었다.

“음.”

반발력으로 인해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어.”

“야, 이거 진짜 생각 깊이 한다.”

“아니, 오신 거라니까요?”

“그따위 소리는 저기 조태진한테나 가서 하고.”

“그래, 대훈아. 너 자꾸 그러면 동호회 지원금 박탈한다?”

“아……. 네.”

신현태의 협박에 대훈은 입을 다물었다.

사실 헌금을 받으면 돈 문제는 없어질 테지만.

대훈은 주교라 불리는 사람인 것에 비하면 굉장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었다.

‘교주님의 허락 없이는 금품 요구 따위는 없다.’

그가 본 수혁은 돈에 딱히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예전에는 분명 안 그랬었다는 기록들과 증거들이 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마도…… 신의 계시…….’

사람이 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안대훈이 특정하는 수혁의 변화 시점은 레지던트 1년 차 초, 그러니까 딱 머리를 다치고 난 후였다.

대훈은 그때 아마 수혁이 기적을 체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수혁이 이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크게 놀랄 텐데, 다행히 대훈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맹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아니면 신의 계시를 받고 있을 수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감각기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있지. 이를 오감이라고 하지. 맞냐?’

[네, 그렇습니다.]

수혁은 바루다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딱히 바루다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꽤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했던 바루다는 이제 수많은 로직을 정립한 나머지, 그야말로 괴수가 되어 가고 있지 않나.

이 때문에 이대로 있다가는 자랑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바루다는 수혁이 입을 열자 반응을 해 주었다.

이상한 욕망이 없기도 하거니와 빨리 답을 듣고 싶기도 해서 그랬다.

‘그런데 그거 말고도 감각기라 할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있지.’

[뭘 말합니까?]

‘체성 감각. 즉…… 근육의 감각.’

[아.]

한때 의학은 근육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물론 ‘근육이 힘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관’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힘이 센 것과 건강한 것을 구분하게 된 이후로는 근육 자체에 관한 관심은 더더욱 흩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남성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원인 중 하나로 남성 호르몬이 지목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어쩌면 많은 근육이 수명을 짧게 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노화의 핵심 중 하나가 근육의 감소야.’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옛날얘기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겼던 근감소를 질환으로 여기는 시대가 와 버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얼마 전 근감소증을 진단명으로 채택했다.

그 말은 곧 질환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근감소증이 발생하게 되면……. 거동이 불편해지지. 특히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넘어질 확률이 커져.’

[노인에서 낙상은 치명적이죠. 근육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뼈는 쉽게 부러지니까…….]

‘그래. 낙상을 겪은 노인에서 3년 생존율이 암보다 낮다는 보고는 이제 꽤 유명해. 근데 그 때문에 우리는 근감소증을 이쪽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었어.’

사실 한국에서도 노인 인구에서의 근감소증에 관한 관심은 꽤 가파르게 늘어 가고 있었다.

특히 내과 학회의 유관 학회로써 출범한 노인의학회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결국, 세계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몸이다 보니 근감소증으로 인한 거동 불편 쪽으로만 집중하고 있었다.

‘근데…… 근육이 감소하게 되었다는 것은 결국, 근육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게 돼.’

[동의합니다. 사실 거동이 불편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근육이 모자라서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기도 하겠지만.

근육이 보내오는 정보가 줄어들다 보니,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서 거동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유레카였다.

“근육.”

기쁜 마음에 수혁은 눈을 번쩍 떴다.

방금 전까지 바루다와 신나게 토론하고 있던 주제를 입에 담으면서였다.

“응?”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당연히 옆에 있던 이들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일 뿐이었다.

한참, 그러니까 거의 7분 가까이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근육?

이게 뭔…….

‘우리가 너무 스트레스를 줬나.’

‘하긴……. 수혁이가 임상만 판 지가 벌써 몇 개월인데 갑자기 논문 내놓으라고 했으니…….’

이현종과 신현태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무슨 소리를 한다 해도 일단은 격려하기로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맛난 거나 사 줘야지.

이현종은 그렇게 다짐하고는 수혁을 기다렸다.

“사람이 늙으면 근육이 줄죠.”

“어어, 그래. 그렇지. 네 말이 옳다.”

수혁은 여전히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에 이현종은 아까 다짐한 대로 옳다, 옳다 하고 있었다.

신현태도 이현종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태도로 옳지를 끊임없이 외쳤다.

“근육이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근육에서 오는 정보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어어……?”

“즉, 우리 뇌를 자극하는 정보가 줄어든다는 것이죠.”

“어…….”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역시 이수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핵심을 푹 찔러 들어오고 있었다.

근육에서 힘이나 움직임 등이 아니라 정보를 들고 올 줄이야.

“뇌에 대한 자극이 준다는 것은 결국…… 치매의 위험성이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

“정리하면 근감소증은 치매의 위험성을 올린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가설입니다. 하지만 다른 자극에서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가설이죠. 아마도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이거 맞을 거 같은데.”

그냥 대강 들어도 맞을 것 같지 않나?

이제 남은 것은 이 가설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실험 논문으로 풀려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근감소증이 있는 사람을 방치하고, 관찰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으니까.

게다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었다.

“저체중으로 분류되는 노인 인구에서 치매 유병률을 보죠. 물론 치매가 있으면 저체중이 되기도 하겠지만…… 매년 보고되는 결과를 보면 아마 이것도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할 겁니다.”

“그래, 약점이 있는 논문이 되기는 할 거야. 그래도 의미가 있어. 왜냐면 가설이 너무 그럴싸하잖아.”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와……. 이거 미쳤다. 이거…….”

수혁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종도 확신에 차 있었는데, 약간 성격이 달랐다.

‘이걸…… 굳이……?’

이걸 왜 한국에 내야 하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 될 것 같은 논문이지 않나.

NEJM까지는 모르겠는데, 그 밑으로도 훌륭한 학회지는 수두룩 빽빽이었다.

높은 곳부터 푹푹 찔러 보다 보면 꽤 높은 곳에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약점이 있는 논문이라는 것 또한 어찌 보면 강점이었다.

시리즈로 낼 수도 있는 논문이 될 테니까.

“형…… 형, 나쁜 생각 하지?”

“어?”

“어떻게 알았냐고 하진 마. 형은 뻔하니까.”

그때 신현태가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아팠다.

“어…….”

“이거 약속이잖아. 게다가 수혁이 생각이 아주 확고해. 나도 욕심이 안 나는 건 아냐. 딴 거 다 제쳐 두고, 나 원장이라고. 이 망할 놈의 병원이 얼마나 논문 쪽으로도 푸시 하는지는 형이 더 잘 알지?”

“나는 푸시 안 했어. 내가 많이 써서.”

“하아……. 이 타이밍에도 열 받게 할 수 있다고?”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시벌이라고 중얼거리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네 의견을 말하라는 뜻이었다.

“네, 이건 내과 학회에 낼게요. 잘 만들어서…… 내 보죠.”

“음.”

“아빠, 이거 약속이잖아요. 게다가 우리가 한 짓을 생각해 봐요.”

“한 짓? 우리가 뭘 했는데.”

“솔직히 내과 학회에서 파란이 없을 거 같진 않은데…… 분과 시스템의 약점 쥐고 흔들고 있잖아요. 우리 싫어하는 사람 많을걸요?”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다는 것.

참 찝찝한 일일 터였다.

누구에게라도 그랬다.

심지어 수혁도 남들보다는 덜했지만 좀 그랬다.

“루저 새끼들이 그러는 건데 뭐.”

물론 이현종은 아니었다.

불세출의 기인이자, 태화의 영원한 싸움꾼 이현종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와……. 진짜 소시오패스 그 자체.’

신현태는 얼마 전 오진승 교수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이현종은 사회화가 아주 잘 된 소시오패스일 거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한 형인데 소시오패스 운운해서 기분이 좀 그랬는데, 듣고 보니 진짜 맞는 거 같았다.

일단 자기 잘못도 남의 탓으로 돌릴 거라고 했는데……

‘소름.’

이현종은 신현태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우리 수혁이가 신경 쓰는 건 좀 그런데?”

“아니……. 우리가 계속 영향력 키우려면 내과 학회에 우리 편이 좀 있어야죠.”

“아, 그런 의미야?”

신현태의 입이 좀 더 벌어졌다.

‘소시오가 둘……? 나 설마 소시오 좋아하나……?’

충격과 경악에 빠진 신현태를 뒤로하고 두 소시오는 쑥덕대기 시작했다.

“그렇죠. 잡아먹으려면 프락치가 있어야죠.”

“오오. 그렇지. 프락치가 모든 일의 핵심이야.”

“그러니까요. 학회 쪽에 이런 논문 던져 주면…… 식사라도 하자고 하지 않겠어요? 그때 호감 좀 사 두고…… 정기적으로 논문 던져 준다고 하면 이게 다 현 집행부 업적으로 잡힐 텐데…… 협조 안 할까요?”

“우리 아들…….”

이현종은 잠시 눈물을 흘리다가 결연한 얼굴이 되어 일어났다.

“좋아. 나도 한 달에 하나씩 논문 던진다. 현태야 너도…… 아니지. 음. 너는 일 년에 하나만 해.”

“왜 나는 12분의 1인데?”

“그…… 뭐 꼭 말로 해? 패는 느낌 드는데.”

“와…….”

신현태에게도 당부를 하고는 다시 수혁을 돌아보았다.

“근데 그냥 내지는 말자. 이거 표지 논문으로 실어 달라고 하고. 학회에서 내는 웹진 있지? 거기에 우리 센터 인터뷰 나가게 해 달라고 하자.”

“네? 그렇게까지 해 줄까요?”

“대형 SCI급 논문을 하꼬에 던져 주는 건데 그럼 해야지. 이거 최고 임팩트 팩터 10점짜리야. 학술이사 아니라 학회장도 나와서 꼬리 흔들어야 해.”

“아…….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하네요. 좋아. 그럼…….”

“가자. 일단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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