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10화 (710/1,303)

710화 이런 논문을요? (2)

“잘한다, 우리 아빠!”

“아니, 수혁아…… 아무리 그래도.”

“조용히 해, 인마! 이게 보통 논문인 줄 알아? 하긴, 이놈이 이거 논문을 써 봤어야 알지.”

“뭐, 뭐라고?”

이현종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수혁의 응원뿐이었다.

신현태가 옆에서 구시렁거리는 것 따위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저 귓가에 윙윙거리는 모기 정도랄까?

하여간 그렇게 신현태를 침묵시킨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학회 측은 숨 막힐 듯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일단 이번 학회 제일 메인 발표에 이거 넣어야지.”

제일 훌륭한 발표니, 제일 훌륭한 시간에 넣겠다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진짜 당연한 일인데, 아쉽게도 학회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지만도 않았다.

너무 커다란 집단인 데다가 심지어 또 너무 오래되어 가다 보니 고여 가고 있어서 그랬다.

그놈의 연공서열이 발목을 붙잡기 시작한 지가 한두 해가 아니었다.

“그게…… 이게 순서가 있는데…….”

학회장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 얼굴들을 생각하며 답했다.

학회 내 서열로 따지면, 그들을 아무것도 아닌 발표장에 밀어 넣는 것은 불가했다.

아무리 그들이 가져온 초록이나 주제가 개떡 같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순서? 뭔 순서? 이거보다 더 나은 초록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이현종도 이러한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심장내과에서는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어서 그랬다.

물론 이현종은 사정이 좀 다르긴 했다.

언제나 최고의 발표를 준비해 갔으니.

논문이야 다른 곳에 낸다고 해도, 최초의 발표는 늘 한국 심장내과 학회에서 했더랬다.

하여간 알면서 찌르는 질문만큼 날카로운 것도 없는 법이었다.

“어…….”

“왜 말을 못 해. 초록 뭔데. 주제만 얘기해 주면 내가 납득하려고 애를 써 볼게.”

“그…… 양배…… 배추.”

“뭐? 뭔 소리야. 전화가 혼선이 있나. 가락시장이야?”

“양배추…… 우린 물의 소화기 증상 개선…….”

“미쳤나. 과학 탐구해? 초딩 숙제야?”

“그…….”

학회장도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새끼들아!’

그렇게 좋은 발표 좀 준비해 보라고 달달 볶으면 뭘 한단 말인가.

정용기 학회장 본인도 양배추 우린 물 운운하는 초록을 보고는 뒷목을 잡았더랬다.

이게 어디 레지던트 논문이었다면 차라리 박수라도 쳐 줄 수 있을 터였다.

이미 양배추의 어떤 물질이 속을 보호하는지도 밝혀져 있었고.

그 물질을 이용한 약도 나와 있는 실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해 보려는 게 기특하지 않나.

‘그러고도 시니어 교수라고 할 수 있냐!’

하지만 정교수씩이나 되는 양반들이 이런 걸 내?

아마 발표도 펠로우한테 짬 시킬 공산이 컸다.

아니, 백 프로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도 부끄러운 줄은 알 테니.

하지만 자존심은 또 염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비키라고 하면, 무조건 지랄할 것이 뻔했다.

“그쵸? 심하긴 하죠.”

“그런 거 때문에 이 발표가 밀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말이 안 된다.

정용기가 보기에도 그랬다.

그래도 아직은 뭔가 부족했다.

한 가지 확답이 필요했다.

“그런데…… 교수님.”

“어, 말해 봐.”

“혹시 이거 논문은 어디에 실으실 겁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약간 말이 꼬였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이만한 논문이면 내는 사람의 의지가 받는 사람의 의지보다 중요할 것 같아서였다.

내가 여기 실을 건데요? 라고 하면 실릴 것 같았다.

내용도 내용인데 이현종의 이름값도 있으니까.

1저자야 아들내미가 가져가겠지만 교신은 이현종이 하지 않겠나.

이현종이 세계 의학계를 뒤집은 지도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학계 이곳저곳에 이현종의 빠돌이들이 산재해 있었다.

“이거? 내과 학회지.”

“네?”

잘못 들었나 싶었다.

SCI에 내면 적어도 임팩트 팩터 10점 이상에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쓰레기……

‘아니, 아니지. 내가 학회장이야.’

여기다 낸다고?

정용기의 목은 급격한 속도로 음 이탈을 내기 시작했다.

“내과 학회 살려 달라며. 살려 줄게. 대신 뭘 좀 해 줘야지.”

“아니…… 진짜로요? 이런 논문을요?”

“고마운 줄은 아나 보네?”

“아니…….”

아직 초록만 본 것이긴 했다.

여기 써 있는 것들이 죄 썰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논문을 보면 이 정도 내용은 아니고, 그저 가능성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치매의 예방에 관한 논문이라면 가능성뿐이라 해도 관심을 받을 터였다.

적어도 지금 내과 학회지의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논문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논문 귀신…….’

이현종이 30년 전 화려하게 국제 무대에 데뷔했을 때의 충격은 가히 어마어마한 것이었더랬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 의학은 변방으로 취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학계 원로 중엔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군의관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볼 때 대한민국은 변방 정도가 아니라 그냥 불모지였다.

88올림픽도 결국, 쇼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프리카나 한국이나 그게 그거라 믿는 인간들도 많았다.

‘그런 편견을 다 뚫은 논문을 쓴 게…… 이 양반이야.’

처음엔 판타지 소설이냐는 얘기도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었다는 얘기.

게다가 당시 한국 의학계는 지금보다도 더 경직되어 있어서, 이현종은 내부 총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현종은 미국 연수를 자비로 신청해서 건너간 후, 자신의 연구가 진짜임을 입증했다.

변방에서 태어난 작은 동양인이 미국인들의 큰 코를 눌러 버렸다.

‘이런 인간이 이제 와서 별 볼 일 없는 걸 쓴다고?’

당시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계 의사들은 죄 이현종을 주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더독의 신화, 그 자체였으니.

정용기 교수 또한 좋건 싫건 그 영향력 아래 있던 사람이었다.

“이런 논문을 내주신다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야죠.”

때문에 정용기는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다면 무릎도 꿇을 용의가 있었다.

“벌써? 아직 나 다 얘기 안 했는데?”

“네?”

“나랑 수혁이가 매달 하나씩 내줄게, 논문. 이거만큼은 아니겠지만…… 알지? 나 일 년에 한 20개 정도 SCI 내는 거. 앞으로 2년이야. 자네 임기 동안…… 매년 내줄게.”

“허……. 저, 정말입니까?”

용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정용기는 어느새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쿵 소리가 나는 바람에 슬그머니 사라졌던 학술이사 동종헌도 다시 나타났다.

“이사장님?”

그러곤 넋 나간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이사장을 마주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자네도 무릎 꿇게.”

“네?”

어찌나 진지한 얼굴인지 하마터면 진짜 무릎 꿇을 뻔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버텼다.

그러자 정용기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 무릎 꿇으라고! 네? 아니, 동종헌 교수 아시죠. 뻗대고 있어서. 학술이사 주제에 논문 24개가…… 들어오는데 말입니다. 아니, 네네. 지금 꿇었습니다.”

“뭔 일…… 뭔 일이에요. 나 무릎 시큰거리는데.”

“조용히 하고 있어.”

“그…… 네.”

그렇게 두 교수가 무릎을 꿇고, 이현종의 말이 계속되었다.

“뭘 보이지도 않는 데서 꿇는다고…….”

“그래도 이게 예의 같습니다.”

사람이 염치가 있으면 뭐라도 해야 했다.

점수도 없는, 심지어 대학에서 내리는 교수 평가에도 별 도움 되지 않을 학회에 논문을 약조하다니.

구라 칠 사람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꼭 짚어서 현 집행부 기간에 맞춰서 낸다고 했다.

얼굴에 금칠을 해 주겠다, 이 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번쩍번쩍 빛나는 놈으로.

“그래, 뭐. 우리 정용기 이사장. 내가 잘 알지.”

이현종의 입장은 어떠냐고 한다면,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학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심장내과 쪽 교수거나 거기에 더해 제자라면야 신경을 썼겠지만.

솔직히 이름 석 자도 오늘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알았다.

‘형, 정용기 교수는 카톨릭 출신이에요.’

“카대에서 아주 어? 입지전적인 사람이지.”

‘아니, 카대에 있는 건 아냐. 아선에 있어.’

“그래서 아선에서도 큰일을 하고 말야.”

‘얼마 전에 뭐더라…… 그래, 화담상도 받았어.’

“어찌나 훌륭한지 화담상도 받았지.”

신현태가 불러 주는 대로 대충대충 읊어 주었다.

유선상의 대화였기에 듣는 사람은 이 양반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었다.

“허흡.”

때문에 감동이 물 밀듯 밀려오고 있었다.

세상에.

이만한 교수가 실은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이 많았다니.

그간 술자리에서 통합진료센터 욕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회귀라도 해서 그때 그 말을 하던 새끼들 입을 죄 꼬매 버리고 싶었다.

‘운다. 이제 고.’

한편 사람 심리에 있어서만큼은 이현종 머리 꼭대기에 있는 신현태가 마침내 들려오기 시작한 울부짖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아서는 아니었다.

그냥 따라 했다.

수혁은 이쪽에 있어서는 이현종보다도 못하게 된 지 오래라 그랬다.

[자랑인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알면 됐습니다.]

이현종은 그 둘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뗐다.

“자, 우리 조건은 이래. 이번 발표를 황금 시간으로 어레인지할 것.”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와서 듣도록…….”

“그리고 우리 학회 계간지였나?”

“네. 맞습니다. 반기로 바꿀까도 생각 중입니다.”

“그래, 그게 나을 거 같은데? 논문 들어오는 거 다 실어 주면 안 돼. 까기도 해야 사람들이 어? 이거 봐라? 하고 더 달려들지. 지금처럼 문을 죄다 열어 두면 어중이떠중이만 와.”

“네네. 저희가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게…….”

“아니, 미쳤어? 반기로 하라는 게 내 요구 사항이겠어? 생각이 부족한 사람이네.”

“아, 네네. 제가 이런 결례를…….”

정용기는 이러다 논문은 못 준다고 할까 봐 헐레벌떡 사죄했다.

동종헌은 그놈의 명예욕이 뭔지 라고 중얼거리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딱 소리를 배경음 삼아 이현종이 재차 입을 열었다.

“학회지 표지…… 일단 처음은 우리 수혁이. 다음은 나. 그다음은…….”

이현종은 통합진료센터의 신입이 될 얼굴을 돌아보았다.

대머리.

어떻게 봐도 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는.

그 어떤 표지에도 실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얼굴이야말로 실었을 때 임팩트가 크지 않을까?

“안대훈이라고, 우리 군 펠로우 2년 할 선생 있는데, 걔 사진 실어.”

“네……? 저희 학회지 표지는 그렇게 안 나가는데…….”

“요새 트렌드 몰라? 저자 인터뷰도 하고 그러잖아. 그렇게 특집처럼 실어.”

“아……. 그거 너무 SCI급인 척…….”

“그렇게 만들어 줄 테니까 해 봐. 다 자네 공이 될 거라니까?”

“그, 그럼 해야죠. 알겠습니다.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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