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화 전원된 환자 (1)
“아, 장덕수 교수님.”
응급실인가 하고 있으려니, 레지던트가 화색을 띠었다.
그걸 보면서 수혁은 실망했다.
어려운 환자를 좋아하는 레지던트는 드물어서 그랬다.
드물다는 말도 안대훈이나 우하윤과 같은 변태들이 있어서 사용 가능한 말일 뿐.
사실 그냥 전무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환자가 아니었구만…….’
[그렇습니다. 특히 저 친구가 웃는 건…….]
‘왜 환자 보기 싫어해?’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죠.]
‘몹쓸 놈이로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수혁과 바루다가 지나치게 이상한 잣대로 레지던트를 매도하는 사이에도 레지던트와 장덕수 교수와의 대화는 이어졌다.
“아, 네. 야토병이 맞았다고 전달드리면 될까요?”
그러다 야토병 얘기가 나왔다.
그제야 수혁은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아하. 전에 본 그 환자로구나.’
[역시 맞았군요. 검사실에서의 결과를…… 너무 신뢰하면 안 된다는 방증이 되겠습니다.]
‘이런 거 보면 진짜 우리 아빠가 괴물은 괴물이야.’
[네. 경험 때문에 그렇다고 퉁치기엔 이현종이 지나치게 뛰어납니다.]
바루다도 없이 어찌 저런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을까.
심지어 이현종은 이제 나이도 적지 않은 상황 아닌가.
두뇌의 종합적인 능력은 나이가 들어도 유지된다고, 아니 오히려 향상될 수 있다고 하지만.
번뜩이는 재치는 아무래도 좀 떨어질 수밖에 없거늘.
그의 실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수혁조차 바루다가 없다면 여전히 이현종에게 배우기만 해야 할 터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수혁과 바루다 모두 이현종의 뛰어남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 레지던트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밝은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교수님, 감염내과 장덕수 교수님께서…… 야토병이 맞았다고, 감사하다고 전달해 달라셨습니다.”
“응, 그래. 좋아.”
이미 다 듣고 있던 수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마음 졸이던 결과였다면 반응이 좀 더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에게 그 환자가 야토병이었던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을 뿐.
특별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부우웅.
오히려 특별하다면 전화를 끊자마자 또 울리는 레지던트의 핸드폰일 터였다.
개인폰이 아니라 센터에 비치된 폰이었기에 무조건 환자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번에도 전혀 엉뚱한 용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엔 그만한 우연은 드문 법이었다.
“네, 통합진료센터…… 아, 전원이요? 아……. 그분 오셨구나.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갈게요.”
역시나 이번에는 환자였다.
낮에 여기저기 전화 돌리면서 영업한 결과라고나 할까?
하여간 응급실에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가 왔다는 연락이었다.
“교수님. 환자 와서 제가 일단…… 교수님? 어디 가세요?”
그 말에 수혁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레지던트보다도 빠르게 센터에서 빠져나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안대훈이었으면 벌써 이거 눌렀지.’
[그러게요. 이러나저러나 유능한 놈입니다. 열정도 있고요.]
‘무엇보다 환자 보는 걸 좋아하잖아.’
[네, 수혁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안대훈이 좋아하는 건 환자가 아니라 환자 보는 걸 좋아하는 수혁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뭐가 되었건 안대훈은 어려운 환자가 왔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으니.
하여간 수혁이 버튼을 누르자, 레지던트도 뒤늦게 확인하고는 뛰어나왔다.
‘그래……. 우리 교수님이 이런 분이지.’
인계도 받지 않았나.
통합진료센터에서는 노티가 안 돼서 가슴 졸일 일은 절대 없다고 들었다.
위에서 환자 못 봐서 안달이 난 만큼, 그럴 수가 없었던 것.
그럼 되게 편할 거 같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정도를 지나쳐 버린 명의병은 주변 모두를 힘들게 하는 법이었다.
‘연기라도 하라고 했어.’
게다가 수혁이나 이현종 모두 상대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데 능한 인간들이었다.
심지어 너무 잘난 탓에 그 허들도 높았다.
‘마음에 들게 되면…… 진짜 잘해 주신다고 했지?’
아무튼, 레지던트는 갑자기 열정적인 얼굴로 발을 동동 굴러 대기 시작했다.
어려운 환자를 좋아하는, 그러니까 변태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교수에 대한 열망은 남아 있는 상황이라 그랬다.
딱히 이쪽 센터로 올 생각은 없어도 잘 보여서 나쁠 건 없다고 여겼다.
다다다.
문이 열리자마자 레지던트는 응급실 쪽을 향해 달렸다.
‘인계받았구만.’
[그러게요. 뭐, 잘된 일입니다.]
‘역시…… 한 줄 추가하길 잘했지.’
[그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군요.]
그 인계를 만든 장본인인 수혁은 레지던트의 뒤를 여유 있게 뒤따랐다.
사실 이렇게 열심 내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잘해야지.
물론 열심히 환자 보는 사람이 잘할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것뿐이라 해도 환자를 잘 보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태화의 수준은 이미 그걸 아득히 넘어 버린 마당이었다.
여기선 노력뿐 아니라 재능도 중요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다들 열심히 해. 그럼 우리 입장에서는 싹수가 어떤지도 보기 쉽지.’
문제가 있다면 그 재능이라는 게 주로 극한 상황에서 보인다는 점이었다.
현대 의학은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나머지 그 교수법도 상당히 발달한 마당 아닌가.
그 결과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양질의 실력을 갖춘 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기본적인 질환에서의 어이없는 실수는 없었다.
그 너머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몰아붙여야만 했다.
“네, 환자분은 어떤 상황이죠?”
뒤늦게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 입구 쪽에 선 레지던트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전원오는 환자를 따라온 의료진과 대화 중이었다.
딱 봐도 후줄근해 보이는 것이 높이 쳐 줘야 인턴이었다.
병원마다 인턴에 대한 대우가 천차만별이라지만, 대부분은 그저 잡부처럼 쓰이지 않던가.
저 친구도 예외는 아닌지 환자에 대해서 딱히 뭘 아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의뢰서만 읽고 있었다.
“네, 선생님. 그…… 환자는 50세 남자로 2년 전 왼쪽 비강의 폐포형 횡문근 육종으로 진단받고 4주기의 항암 요법(VAC/IE, Vincristine Adriamycin Cyclophosphamide/Ifosfamide Etoposide)을 시행받았습니다.”
“아……. 횡문근 육종…… 그거 드문데. 그 후로는 경과가 어땠죠?”
“퇴원 후로는 별 이상 없이 경과 관찰하고 있습니다.”
“재발 소견이 없다 이거죠?”
“네.”
“그럼 최소 2년간은 관해 상태(증상이 없거나 감소한 상태)고…… 이번에는 어떤 거로 오신 거죠?”
레지던트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 인턴은 잠시 의뢰서를 훑었다.
딱 봐도 만만해 보이지 않는 케이스였다.
의뢰서부터 한 장이 아니었으니까.
그 병원에서 떼 온 자료들까지 하면 거의 책 한 권이었다.
인턴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니란 얘기였다.
덕분에 답답해진 레지던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전화상으로 듣기에는…… 안구 돌출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레지던트는 환자의 얼굴을 슬쩍 들여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 네네. 맞습니다. 내원 1주일 전부터 갑자기 안구 돌출과 함께 통증이 발생해 3일 전 내원했습니다. CT상 갑상선 안병증(안구 돌출의 원인 중 하나)이 의심되어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하였으나 지금까지는 호전이 없었습니다. 그…….”
“환자분이 연고지 변경 및 상급 병원 전원을 원해서 저희 병원 오신 게 맞죠?”
“네, 그렇습니다.”
꼴을 보아하니 더 말을 이어 봐야 뭐가 나올 게 없어 보였다.
이건 레지던트뿐만 아니라,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수혁은 지체 없이 대화에 끼어들어, 종결시켰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보겠습니다.”
“아, 네. 교수님. 그, 저.”
그러자 인턴이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뭐예요?”
“저…… 실례지만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사인……? 제 사인이요?”
수혁도 당황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인가 싶었다.
“네, 진짜 팬입니다. 학회지 신청해서 다 보고 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허…….”
팬이라.
의사한테 팬이라.
이건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보통 교수는 인턴에게는 그저 불가근불가원의 존재 또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존경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팬은 처음 봤다.
“그래요, 뭐.”
하지만 수혁은 긍정적인데 더해 예스맨이다 보니 곧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사인을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가보로 삼겠습니다!”
그 덕에 희희낙락하고 있는 인턴을 뒤로하고, 수혁은 환자를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나 안구 돌출.
‘이렇게만 보면 그저 갑상선 안병증 같아 보이는데.’
[그렇습니다. 확실히 육안상 관찰할 때는 전혀 특이점이 보이질 않습니다.]
‘스테로이드를 썼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떨까. 보니까…… 음. 어디냐. 아, 여깄네. 250mg 펄스 치료를 했네.’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 250mg.
엄청난 용량을 때려부었다는 얘기였다.
그럼 반응이 있어야 했다.
스테로이드는 그런 약이니.
[이전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호전되었을 수 있습니다.]
‘뭐 사진은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확인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 중에 환자를 돌아보았다.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응급실은 익숙지 않은 사람의 의식을 송두리째 장악해 버리는 마력이 있었으니.
게다가 이 환자처럼 다른 병원에서 엠뷸런스를 통해 전원된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환자분.”
“아, 네.”
의식은 또렷했다.
안구 돌출 때문에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제대로 확인은 어려웠지만.
하여간 발음은 또박또박했다.
“눈 불편한 거 좀 어떠세요? 치료받고 호전이 있나요?”
“네? 아, 아뇨. 눈이 더 아픕니다.”
“아파요?”
“네. 그리고…….”
또 맥락을 아주 잘 따라왔다.
적어도 의식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에게 귀를 기울였다.
드르륵.
그사이 레지던트와 이송 요원은 침대를 끌었다.
빨리 센터로 데려가 이런저런 확인을 하고 입실시키기 위함이었다.
물론 레지던트는 인계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침대를 끌면서도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잘된 일이었다.
나중에 질문 던질 생각이었으니까.
“아까부터 물체가 두 개로 보입니다.”
“두 개로?”
환자의 말은 꽤 중요한 단서를 내포하고 있었다.
“네.”
“아까가 언제입니까?”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것.
달리 말하면 복시.
“그…… 차 타고 오면서?”
“그전에는 괜찮았어요?”
명백한 증상의 진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
“음.”
그것도 몇 시간 만에.
갑상선 안병증이 이럴 수 있을까?
‘아닐 거 같은데…….’
[재밌겠군요.]
수혁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