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13화 (713/1,303)

713화 전원된 환자 (2)

수혁이 남들이 보기엔 정말로 소름 끼칠 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에도 레지던트와 이송 요원은 열심히 환자 침대를 끌었다.

이송 요원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이송’을 총괄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앞을 보고 있어서 그랬다.

운전자에게 중시되는 전방주시의 의무가 병원에서는 더더욱 강력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도 오가는 사람들…… 의료진 아니면 보호자 그리고 환자야. 멀쩡히 걷는 것 같아 보여도 아무래도 느리다고. 네가 피해야 해. 알아서 피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이송 요원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선임에게 들었던 가르침을 떠올리고 있었다.

‘와……. 진짜네.’

그에 비해 레지던트는 그냥 침대 끄는 걸 보조하는 데 그쳤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시선을 두고 있다, 뭐 이런 얘기였다.

당연히 수혁의 얼굴을 제일 많이 살피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교수 아닌가.

잘 보여서 나쁠 거 없었다.

‘진짜로 저렇게 웃네……. 이 환자 그냥 갑상선 안병증 같은데…….’

레지던트 또한 선임이라 할 수 있는 위 연차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수혁은 흥미로운 환자가 오거나 생길 거 같으면 소름 끼치게 웃는다고 했다.

소름 끼치는 웃음이 뭘까 했는데.

오늘 직접 보게 되었다.

‘이상하네……. 이 환자한테 특이한 게 뭐가 있지.’

결과론적인 얘기이지만, 하여간 레지던트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수혁을 통해 이 환자에게 뭔가 특이한 점이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드르륵.

그렇게 환자는 마침내 3층 통합진료센터에 도착했다.

이미 환자가 온다는 연락이 있었기에, 센터 내의 병동은 긴장하고 있었다.

이현종의 입김 및 신현태의 주접으로 인해 각 병동의 에이스 또는 베테랑들이 끌려와 구성한 이 병동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입원 준비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수혁 교수님. 이쪽으로. 2호실 준비됐어요.”

“아, 네. 파트장님. 감사합니다.”

파트장.

그러니까 다른 병원 같으면 수간호사 위치에 있는 간호사가 우아한 몸짓으로 2호실을 가리켰다.

담당 간호사가 벌써 문을 열어 놓아서, 말을 듣지 않아도 저기쯤이겠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센터가 짱이야.’

[그거 때문에도 사실 욕 많이 먹지 않았나요?]

‘아빠가?’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바루다는 역시 수혁은 속 편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속 편한 인간인 수혁은 왜 그러냐고 묻는 대신, 이제 병실 침대로 옮겨 가고 있는 환자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가 말했던 것을 종합해서 되돌아보고 있었다.

‘갑자기 시작된 안구 돌출, 그리고 복시……. 생긴 건 딱 갑상선 안병증 같지만, 너무 빨라.’

[네, 확실히 빠릅니다. 물론 갑상선 안병증도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물죠.]

‘그래. 전형적이지 않아. 일단 환자가 들고 온 영상부터 봐야겠는데.’

[동의합니다.]

결론이 아까랑 비교해서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이상하다.

이 감만 왔을 뿐이었다.

남들에게는 하찮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수혁이나 바루다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둘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등록했지?”

그러곤 레지던트를 향해 물었다.

인계 사항만은 철저히 점검해 두었던 레지던트는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교수님. 등록했습니다.”

“좋아. 어디…….”

일단 전원되어 오는 환자가 있으면 무조건 영상부터 등록하라는 인계.

수혁이 영상의학과 교수들 못지않게 영상을 잘 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현종도 수혁을 따라서 공부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곧잘 보았다.

복부 영상 중에서도 골 때리는 영상들 말고는 대부분 한눈에 알아볼 지경이었다.

물론 수혁은 이현종보다도 영상의학 측면에 있어서만큼은 아득히 높은 수준에 있어서, 영상에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가 무척 많았다.

‘일단 CT부터.’

[그쪽에서도 혹시 모른단 생각을 하긴 한 모양입니다. PNS 세팅이 아니라 NECK을 포함하는 세팅으로 찍었군요.]

‘그러네. 하긴 암 환자에게서…… 이런 증상이 생기면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

PNS 세팅이란 주로 안면부, 그중에서도 부비동(콧구멍이 인접한 뼛속 공간)을 포함한 부위를 보기 위한 세팅을 말했다.

안구의 상태나 그 주변부 상태를 보기엔 아주 좋은 세팅이라 할 수 있었으나 아무래도 너무 집중된 세팅이다 보니 경부나 두부의 정보를 대부분 누락하는 편이었다.

담당 의사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경부를 포함한 CT를 찍어 놨더랬다.

그뿐만 아니라 흉부 CT도 동봉되어 있었다.

‘일단 흉부에 재발 소견은 없어.’

[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하얀 부분이 있기는 한데…….]

‘저건 방사선 치료로 인한 흉터로 보는 게 옳겠어. 아까 인턴은 항암 치료 얘기만 하긴 했는데……. 이건 확인해 봐야겠다.’

수혁은 마우스 스크롤을 드르륵거리다가, 옆에 있던 레지던트를 돌아보았다.

레지던트는 그런 수혁을 마주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암만 봐도 질문할 기세라서 그랬다.

-질문? 음……. 안대훈 주교……. 아니, 형님 말고는 제대로 답하는 사람 드물어. 그나마 하윤이 정도? 그냥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존나 어렵고 존나 날카로워.

도움 되는 조언이 있었나 해서 머릿속을 급히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망할 놈들.

갈구기나 하고.

위 연차라는 놈들이 뭐 이렇단 말인가!

“이 환자 항암 치료만 받은 건지……. CCRT 받은 건지 그것 좀 뒤져 볼래?”

“오.”

“오?”

“아닙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잔뜩 긴장하고 있으려는데 튀어나온 질문이 퍽 예외적이었다.

그저 의뢰서와 함께 딸려 온 서류 뭉치를 뒤져 보라는 것뿐이지 않나.

어차피 당직이라 일찍 자기는 그른 참이어서, 솔직히 잘됐다 싶었다.

할 일 없이 교수 뒤를 어물쩍대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았으니까.

하여간 그렇게 레지던트에게 일을 넘긴 수혁은 다시 영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이 하얀 부위는 넘어가고.’

[네, 위로 가죠.]

‘좋아.’

흉부 CT를 종료하고, 얼굴, 목을 모두 찍어 낸 CT를 열었다.

컷이 무척 많았으나 스크롤 굴리면 또 금방이었다.

부릉부릉 내려가던 수혁의 손가락이 멈춘 것은 역시나 환자의 안구 주변에 이르러서였다.

‘상악동 및 비강에 이상 소견은 없어.’

[횡문근 육종……. 그중에서도 폐포형은 비강 쪽으로 잘 침범하죠. 깨끗합니다.]

‘국소 재발은 없어. 그럼 역시…… 아닌가?’

암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영상을 살폈다.

‘우측 외직근 및 좌측 상직근(눈알을 움직이는 근육 가운데 하나)을 제외한 모든 외안근들이 방추형으로 두꺼워져 있어. 음……. 이렇게만 보면 가성 종양이나 진짜 갑상선 안병증하고 비슷해 보이는데…….’

[그러게요. 영상 소견은 그렇습니다. 사실 외안근 암 전이도 드문데 이렇게 양측 외안근으로 암 전이가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하지. 하지만 진행 속도가 이상할 정도로 빠르단 말이지. 확실히 이 영상을 찍었을 땐, 지금 같은 얼굴 모양은 아니었을 거야.’

아마 이 말을 누군가 들었다면 되게 놀랐을 터였다.

CT가 뭔가 대단한 정보를 주는 영상 검사 같지만.

사실은 그림자를 엿보는 것 뿐이기에 그랬다.

심지어 컷을 잘라서 단면을 보는 거라 3D로 재조합해서 생각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숙련된 영상의학과 의사 중에서도 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다.

[네, 저도 그렇게 판단합니다. 확실히 영상을 보니까 이 환자의 진행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유추 가능하군요.]

하지만 바루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말하는 수혁도 딱히 으스대는 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둘에게는 이게 그냥 당연한 일이어서 그랬다.

이미 일반적인 수준은 아득히 넘어간 지 오래였다.

‘MRI를 볼까.’

[좋습니다.]

CT도 좋은 검사이긴 했지만.

근육과 같이 부드러운 조직을 보려면 아무래도 MRI가 진국이었다.

수혁은 곧 손가락을 놀려 MRI를 틀었다.

“교수님.”

“어?”

“방사선 치료 병행했습니다.”

“아, 그래. 좋아. 잘했어. 이 환자 CT 틀고 외안근 어디 어디가 이상한지 한번 보고 있어 봐.”

“어……. 네.”

그동안 의미 있는 정보를 파악해 낸 레지던트가 보고해 왔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숙제를 내주었다.

뭐가 되었건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고 있는 녀석 아닌가.

이 시간에 뭐라도 배워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아……. 외안근이 어디냐…….’

하지만 내과 레지던트 수준에서 외안근이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헷갈릴 수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이런 건 해내야 하는데.’

다행인 일이라면, 태화 의료원의 내과 수준이 전체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안대훈을 필두로 한 수혁교 일당들의 공부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올해부터 다시 실시하게 될 레지던트 평가에서 전국적으로 좋은 성적을 얻을 거란 기대도 과하지 않다는 평이 있었다.

레지던트는 괴짜 동료들에게 배운 것을 십분 활용해 영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양쪽 외안근들……. 모두 T1과 T2 강조 영상에서 주변 근육과 동일한 신호 강도를 보여.’

[정상 근육과 유사한 조영 증강이군요. 이거 이렇게 되면…….]

그사이 수혁은 MRI를 들여다보았다.

‘비대되어 있는 외안근의 경계도 분명해. 주변 지방으로의 침습 소견도 없고.’

[건부(Tendinous Portion, 힘줄)도 침범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왜 갑상선 안병증을 의심했는지는 알겠네. 이렇게 되면 가성 종양보다도 갑상선 안병증이 더 의심되지.’

[네, 그렇게 생각하고 치료한 거죠.]

‘그런데 진행했다, 이거지. 그게 이상한 거야.’

[수혁, 흥분했습니까?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수혁은 빙그레 웃는 바루다를 바라보았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어쩐지 바루다와 비슷한 얼굴일 것 같았다.

확실히 흥분했으니까.

어떻게 봐도 갑상선 안병증 외 다른 질환은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나.

하지만 치료 경과는 그게 아닐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기존의 상식이 부정되는 상황.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겠지만.

수혁에게는 아니었다.

‘어, 너무 좋은데?’

[저도 그렇습니다. 빨리 확인해 보죠.]

‘콜.’

수혁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섰다.

그러곤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레지던트는 그를 따라나설까 하다가 이내 자리를 지켰다.

‘시킨 거나 제대로 하자…… 텐디너스 포션(Tendinous Portion).’

뭐 이런 생각에서였다.

일단 수혁이 시킨 게 너무 어려웠다.

다른 생각이 낑겨들 여기가 없을 정도였다.

“환자분.”

“아, 네.”

“이전 병원에서 시행했던 CT와 MRI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당시에는 갑상선 안병증을 의심하고 치료한 것이 타당했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 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분의 증상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죠.”

“어…….”

순간 환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딱 그 병원에서 들었던 말과 비슷해서 그랬다.

마치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해서 막 뭐라고 하려는데, 수혁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갑상선 안병증이 아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검사를 다시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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