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16화 (716/1,303)

716화 갔더니? (1)

골 전이.

뼈에 전이되었다는 소리였다.

느낌이 딱 올 텐데, 당연히 별로 좋은 소견은 아니었다.

암 종류를 불문하고서 그랬다.

‘하물며…… 횡문근종……. 그중에서도 폐포 타입은 예후가 좋지 않아.’

레지던트는 이렇게 세세한 사항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해서 그저 멀뚱히 있었으나, 수혁은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병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을 정도였다.

죽음.

그래, 죽음이 환자에게 성큼 가까이 다가온 듯한 느낌이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것?

별로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토대로 치료를 하는 수밖에.

‘확실히…… 연구 쪽도 중요한데 말이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애초에 임상용으로 개발된 인공지능이라…… 임상 연구라면 몰라도, 실험 연구에서는 지금과 같은 퍼포펀스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무라는 말이 아냐. 그냥 안타까워서 그렇지.’

[뭐……. 그쪽으로도 인력이나 돈이 엄청 투입되고 있으니까요. 쏟아지는 논문 수를 보더라도 쉬이 알 수 있지 않나요? 결과가 아예 없는 건 결코 아닙니다.]

‘하긴.’

바이오 산업, 그중에서도 의학은 21세기 산업의 꽃이라 할만했다.

몇몇 성급한 학자는 얼마 뒤면 인간은 노화에서 자유로워질 거란 얘기도 하지 않나.

잘 들어 보면 별다른 근거가 없는 얘기라 코웃음을 치게 되기 마련이지만.

마냥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것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예 근거가 없었더랬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아주 미약한 근거라도 생겼으니,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치매나 암에 대한 연구 또한 치열하게 진행 중이었다.

수혁과 같은 임상 의사들이 병원이라는 현장에서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면, 연구진들은 실험실에서 질환 자체를 없애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수혁은 어딘가에 있을 그들을 응원하다가, 이내 전화를 집어 들었다.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어, 수혁아.”

대학 병원 의사들의 특징 중 하나가 언제 전화해도 전화를 참 잘 받는다는 점 아니던가.

특히 혈종과 같이 응급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그러니까 자기 환자들이 언제든지 잘못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조태진은 더더욱 전화를 잘 받았다.

아직 7시가 채 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목소리도 활발했다.

“어, 형. 병원이에요?”

“어어. 병원이지. 오늘 아침에 컨퍼런스 있어서 일찍 왔어.”

“아……. 그럼 연구실이 아니에요?”

“어. 그거 알잖아. 이비인후과 두경부 파트랑 영상의학과랑 혈종이랑 하는 거. 사실 나는 혈액 쪽이라…… 별로 상관없는데, 그냥 시간 나면 와 보고 그러고 있지.”

“그렇구나. 음…….”

컨퍼런스라.

어차피 조태진에게 이 환자는 말을 전달해야 했다.

게다가 눈 쪽은 이비인후과 두경부와도 얘기를 해야 할 터였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눈을 제거해야 할 경우, 두경부외과에서 관여하게 될 테니까.

보통 안과가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안과에서는 얼마 전 공문으로 본인들은 눈을 살리는 사람들이지, 눈 뽑는 사람은 아니라고 밝혀 와서 두경부외과에서 전담하는 쪽으로 결정된 바 있었다.

‘갈까.’

[솔직하게 말하세요. 컨퍼런스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 더 그런 거죠?]

‘아니, 아닌데? 환자 얘기하러 가는 건데?’

[뭐, 그렇다고 해 두죠].

수혁은 바루다의 시비를 뒤로하고 몸을 일으켰다.

시선은 절로 병실 쪽에 가 닿았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 일었으나 잠깐이었다.

진단까지가 수혁의 역할이지 않겠나.

명백한 진단이 나왔다면 해당 전문의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 될 터였다.

아무리 수혁과 바루다라 해도 수술을 할지 말지, 하게 된다면 범위는 어떻게 할지까지는 판단해 주기가 어려웠다.

경험만이 알려 줄 수 있는 영역에 가까워서 그랬다.

“하여간, 컨퍼런스에 있다는데 갈까?”

“네?”

“회진은 이따 돌아도 되잖아. 어차피 그 환자 말고는 다 정리됐고.”

“아, 네. 교수님. 컨퍼런스 위치가 어디일까요?”

“영상의학과래. 이비인후과 두경부 파트랑 한다는데…… 어딘지 알아?”

“아, 알고 있습니다. 본관 1층 영상의학과에서 합니다.”

“오케이, 가자.”

병원이 하도 크다 보니 컨퍼런스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컨퍼런스 하면 강당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텐데, 이만한 병원에서 강당 빌려서 할 정도의 컨퍼런스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침에 하는 간이 회의는 보통 의국에서 이루어졌다.

강당에서는 주로 학회나 간담회가 열렸다.

아마 과 내 행사로는 내과에서 주최하는 모탈리티 컨퍼런스가 유일할 터였다.

띵.

하여간 레지던트가 길눈이 밝아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둘은 곧 영상의학과에 닿을 수 있었다.

보통 컨퍼런스가 7시에 시작하다 보니,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봐야 5분가량 남은 상황이긴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런 환자가 있어서요.”

수혁은 물 흐르는 듯한 언변과 딱 필요한 자료만을 보여 줌으로써, 완벽한 노티를 단 2분 만에 끝냈다.

다 들은 조태진은 일단 한숨부터 쉬었다.

어떻게 보면 환자에 대한 애도라고도 볼 수 있었다.

횡문근종 폐포 타입의 골 전이라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고무적인 건 환자 나이인데…….”

“네, 원래는 거의 10대니까요. 이 환자는 나이가 좀 있어서, 진행이 느릴 거예요.”

“그렇다고 보기엔 지금까지의 경과가 너무 빠르긴 한데…… 그래도 10대보다는 낫겠지. 알았어. 전과해 주면…… 최선을 다해 볼게. 마침 여기 정 교수님도 계시니까 논의해 보지, 뭐.”

고개를 돌려 보니 얌전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생겼다고 방심하면 안 되었다.

수술방에서는 턱뼈 자르고 어디 자르고, 하여간 오만 군데를 다 자르는 사람이니까.

실로 무서운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이쪽은 뽑고…… 이쪽은 살리죠.”

“뽑고 의안 넣을 수 있을까요?”

“아뇨. 지금 여기 보시면 외안근이 다 먹어서, 그랬다간 재발의 단초가 돼요. 그냥…… 플랩(피부판, 얇게 떼어낸 피부 조직)으로 덮어야 될 거 같은데.”

“아……. 허벅지?”

“아뇨. 뭐…… 전완(아래팔)으로도 될 거 같은데요?”

“아, 전완. 그렇네. 음. 그럼 그렇게 하고. 회복 시기는?”

“최대한 빨리 당겨 봐야죠. 2주 이내에 치료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 입원시키고 협진 수술 형식으로 할까요?”

그는 조태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실로 살벌한 대화를 시작했다.

눈을 뽑는다느니, 팔뚝 살을 잘라 그 자리에 붙여 준다느니 하는.

‘이러니까 의사들이 죽어도 두경부암은 걸리기 싫다고 하지.’

[끔찍하긴 하죠. 이쪽은 어찌 되었건 모두 눈에 보이는 기관이니까요.]

‘응. 게다가…… 뭘 하잖아, 다. 기능이 너무 중요한 장기들이야.’

[그렇긴 합니다. 감각에 관여하는 장기들은 없어졌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의사들만 두경부암을 끔찍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두경부 암센터 내의 암 환자들은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실이 우울감의 원인이 되지 않던가.

하루아침에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이 된다는 건, 암과는 또 다른 고통을 야기했다.

어떤 병원에서는 수술 후 잘 회복되고 있던 환자가 계단에서 목을 매다는 바람에, 그리고 그걸 하필 주치의가 발견하는 바람에 PTSD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는 루틴하게 두경부암 환자들에 대한 정신과적인 상담을 하도록 하는 권고안이 생겼다.

태화 의료원은 모든 권고안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열심히 따르는 병원이다 보니, 이쪽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아뇨. 아무래도 수술 후 관리는 우리 병동이 나을 겁니다. 바로 전과시켜 주시고……. 수술 후에 관리가 끝날 때쯤 혈종으로 다시 전과하죠.”

“아, 네. 들어 보니까 그게 좋겠네요. 제가 우리 쪽 교수님들한테는 잘 말씀드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네네.”

수혁이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두 교수 사이에 있던 살벌한 대화가 종료되었다.

둘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영상의학과 레지던트가 자리에 앉더니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금주 두경부 컨퍼런스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등록 번호…….”

다음 주에 있을 수술 환자들을 미리 리뷰하는 시간이었다.

이미 다학제니 뭐니 해서 상의가 끝난 환자들이 태반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또다시 들어 보는 시간이라고 보면 되었다.

외과 계열 과치고 이 시간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과가 없다 보니 이 때문에 영상의학과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불만이 있기는 했지만.

“보시면 경부 레벨 2, 3에 모두 림프 노드 전이 소견이 보입니다. 특히 이쪽 노드는…… 혈관과의 유착이 있어 보여, 박리에 주의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 아, 거기. 네, 수술장에서 잘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경동맥 절제가 가능할지 여부에 대해서 검사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일찍 입원하라고 하시고, 경동맥 발룬 테스트하시죠. 마침 수술 전전날에 검사가 빕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술 과에서는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는 컨퍼런스다 보니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방금도 그렇지 않나.

이거 준비 없이 들어갔으면 수술 중간에 중단하고 나와야 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불완전 절제된 암을 추후에 방사선 또는 항암제로 말려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고.

‘좋은데?’

[네. 외과 컨퍼런스는…… 확실히 색다른 맛이 있네요.

‘두경부라 더 그런 거 같아. 절제 범위가 제한되다 보니까…… 재밌는 고민거리가 있네.’

[그러니까요. 자주 올까요?]

‘좋지.’

모두가 심각하거나 또는 간절한 상황 속에서 수혁만이 홀로 즐기고 있었다.

새로운 지식, 특히 의학적인 지식이 마구 흘러들어 오고 있는 상황이라 그랬다.

“자, 그럼……. 이것으로 금주 컨퍼런스를 마치…… 어, 손 교수님?”

그렇게 알차디알찬 컨퍼런스가 끝나 가고 있던 찰나, 누군가 손을 들었다.

두경부 교수가 아닌, 비과(코) 교수였다.

손정협이라고 얼마 전에 부임한 교수였는데 열심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내과에서도 진균성 부비동염을 의뢰하면 바로바로 처리해 준다고 좋아하게 되었을 정도니, 이만하면 말 다 한 셈이었다.

심지어 수혁의 기억에도 박혀 있었다.

해서 조태진과 수혁은 호감 어린 눈으로 그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비과 컨퍼런스가 다음 주 월요일인데, 이 환자가 좀 헷갈려서요.”

“어……. 비과는.”

“혹시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주니어 스텝의 열정은 시니어 교수들에게도 퍽 기특하게 느껴지는 법이었다.

곤란해하는, 다시 말해 이제 그만 끝내고 좀 쉬고 싶은 레지던트와는 달리 교수는 좋아했다.

“네, 물론입니다. 등록 번호가?”

“네,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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