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17화 (717/1,303)

717화 갔더니? (2)

등록 번호가 불리고 곧 환자 기록이 떴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환자의 진단명으로 향했다.

비순 낭종.

콧방울 안쪽에 생기는 낭종을 의미했다.

생기는 환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황당할 만한 병이긴 했다.

갑자기 코안 쪽이 아프거나 입술 안쪽으로 뭔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뿐더러, 심지어 코가 부었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증상이 지속적으로 반복하기에 그랬다.

‘음…….’

[그냥 수술 범위 묻는 거 같군요.]

하지만 내과 의사 입장에서는 딱히 흥미로울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저 구조에 문제를 일으키는, 수술로 제거하면 사라지는 병일 뿐이었다.

물론 수술하는 입장에서도 골 때리기는 할 것이었다.

아무래도 수술 부위가 얼굴이지 않나.

그중에서도 코의 정면 부위다 보니, 결손이 생기는 경우 이런저런 방법들을 동원해서 재건까지 고려해야만 했다.

“음……. 우선 환자 기본 정보부터 들어 볼까요?”

“네, 물론입니다.”

수혁의 관심은 좀 식었으나 새로 온 손 교수의 열의는 전혀 식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영상의학과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48세 여자 환자가 4일 전부터 발생한 점액성 비루 및 코를 중심으로 하는 얼굴의 통증을 주소로 내원하였습니다. 이에 더해 작열감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내시경 사진을 보시면…….”

손 교수의 말에 레지던트가 스크롤을 굴려 환자 기록을 움직였다.

그러자 태화 측에서 자체 개발해 낸 전자 의무 기록 차트의 자랑, 사진이 떡하니 떴다.

처음에는 저 기술이 꽤 대단한 것이었다고 하던데.

이제는 거의 모든 의무 기록 차트에서 구현 가능해진 마당이었다.

딱 사진만 보면 그랬다.

“그거 사진 눌러 주세요.”

“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태화가 자랑하는 정신 초격차를 실현할 수 없는 법.

‘이야……. 영상이 들어가네.’

[좋네요. 확실히 사진보다는 영상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러니까. 이거 한번 맛 들이면 다시는 이전으로 못 돌아가겠는데.’

사진을 누르자 5초짜리 영상이 실행되었다.

불과 5초짜리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하나 달랑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여기 보시면…… 우측 비순부에 종물(종기)이 있습니다. 누르면 아파하시고요. 즉 압통을 동반하는 종물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비순부의 종물을 촉진했을 때는 비교적 탄력성을 띠고 부드러운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에 낭종을 확신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손 교수의 설명이 이어지자 모두들 케이스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심드렁해지고 있던 수혁마저도 그랬다.

확실히 영상과 제대로 된 설명은 힘이 있는 법이었다.

[확신한다라…….]

그러나 바루다는 꼭 그렇지만도 아닌 모양이었다.

녀석은 확신이라는 워딩에 불안감을 보였다.

‘왜. 확신할 수도 있지.’

[수혁, 의사는 결과가 확실하게 나올 때까지는 무조건 의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까?]

‘음…….’

수혁도 바루다에게 이 말을 듣자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가르침을 누누이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이 누구던가.

다름 아닌 이현종이었다.

태화가 낳은 영원한 기인 이현종.

하도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그렇게 더 알려져 있긴 하지만.

사실 알고 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 중 하나였다.

[저 확신은 결국 앞으로의 진단 과정에서 오류를 내포하게 만들 겁니다. 딱 이 케이스가 아니더라도요.]

‘하긴…… 듣고 보니까 또 그렇네. 그렇다고 여기서 확신한다고요? 라고 할 수는 없잖아.’

[아, 그건 안 되죠. 분위기 파악 좀 하십시오, 수혁. 그러다가 갑분싸 됩니다.]

‘이상한 말 자꾸 입력하지 말라고……. 용량 부족하다면서.’

[최적의 활용법을 찾았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래 놓고 몰래 내 기억 지우는 건 아니지?’

[솔직히 태반이 지워도 될 기억이라고 판단했으나, 치매를 공부하면서 판단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인격이나 성격은 그 기억에 기반한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진짜 그런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수혁을 실험체로 써서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닙니다.]

여기서 내가 안도를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런 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소름이 끼쳐야 하는 건가.

수혁이 잠시 긴가민가한 사이, 손 교수가 영상의학과 교수를 향해 말했다.

“이제 영상을 보여 주시죠.”

“아, 네. 그럼…… PNS 보겠습니다.”

“네.”

영상의학과 교수는 곧 PNS CT를 열었다.

코 주변부가 중점적으로 보이는 CT였다.

비순 낭종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일 효과적인 CT라고 볼 수 있었다.

“음…….”

영상의학과 교수는 스크롤을 굴려 영상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혁은 그가 왜 그러고 있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영상이 전형적이지 않았다.

“병변 내에 조영 증상이 불균등합니다. 병변 주변의 지방 조직으로의 침범도 관찰되고요. 일반적인 비순 낭종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영상의학과 교수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맨날 영상만 보는 사람이라 그런가, 특징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에 손 교수가 안심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게 좀 이상해서요. 제 생각에는 2차 감염으로 인한 변화 같기는 한데…… 영상의학과 쪽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2차 감염이라.

‘가능은 하지. 가능은 한 얘기야.’

수혁은 그럴싸한 가설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지금 환자는 그 주변부로 동통을 느끼고 있지 않나.

게다가 눌렀을 때 압통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2차 감염을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시경 소견을 보면…… 주변부 감염 소견이 아주 명확하진 않았습니다.]

‘그래, 그게 걸려.’

아직 까 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모든 정황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확진 또는 확신을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이 환자에서는 환자의 진술, 증상 그리고 영상은 일치하고 있었지만, 내시경 소견이 엇나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보다 고민을 해 봐야 했다.

아니면 검사를 더 해 보든가.

“아……. 2차 감염. 음. 그럴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저라면 임상 의견을 고려해서…… 비순 낭종에서 병발한 2차 감염 정도로 판독을 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영상의학과 교수는 바로 손 교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영상의학이라는 것도 결국, 임상과 균형을 맞춰서 진단을 내려야 하는 학문이기에 그랬다.

모든 영상이 뚜렷하게 어떤 질환을 가리킨다면 참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그림자를 더듬어 가며 진단이라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잠시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이들의 논리가 썩 괜찮은 편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확신하고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아……. 이수혁 교수님.”

예전이었다면 개가 짖나 하고 무시했을 수도 있을 일이었다.

젊디젊은 의사가, 그것도 해당 과도 아닌 의사가 손을 들어?

당장 혼을 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혁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처럼 추앙받고 있는 존재이지 않나.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도 수혁의 천재성은 십분 인정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저 이현종의 아들이었다.

“2차 감염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증거가 빈약해 보여서요.”

“네? 환자 증상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딱 들어맞는 거 같은데요?”

이번에 답한 것은 손 교수였다.

주니어, 그중에서도 초임 교수의 패기가 딱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사실 수혁도 올해 임용받은 교수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관록의 차이가 있었다.

수혁은 사실 2년 차부터는 거의 교수처럼 살아온 몸이 아니던가.

원장과 과장의 비호 아래 켜켜이 쌓아 온 경험은 수혁으로 하여금 번뜩이는 재치 외에 신중함을 겸비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증상과 영상을 억지로 연결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내시경 소견을 보세요. 그저 종물일 뿐입니다. 저기에서 어떤 염증의 증거가 보이시나요?”

“눌렀을 때 압통이…….”

“압통은 종물 자체의 특성일 수 있습니다.”

“낭종은 그냥 눌렀을 때 통증이 없어요. 염증이 있거나 아니면 크기가 커져서 주변 부위를 압박하고 있을 때나…….”

“낭종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어…….”

손 교수는 지금 이 사람이 시비 거는 건가 싶었다.

어떻게 봐도 낭종인데 낭종이냐는 증거가 있냐고?

할 수만 있다면 환자 데려와서 주삿바늘이라도 쭉 꼽고 싶어졌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할 말을 고르느라 잠시 입을 멈추었는데, 그사이 수혁이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 환자의 종물을 낭종이라고 판단하게 된 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비순이라는 위치. 그리고 눌렀을 때 부드러웠다는 진술. 그렇죠?”

“어…….”

주도권을 확 뺏겼다.

질문 같지만 잘 들어 보면 그저 설명이었다.

그리고 수혁의 설명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잘 주지 않는 편이라, 손 교수는 자기 환자고 자기 전문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비순이라는 위치에 낭종이 흔히 발생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유일한 종물 질환인 것은 아닙니다. 골종, 혈관종, 혈관 섬유종, 비순 낭종, 유피 낭종, 신경초종 등이 발생할 수 있죠. 이 중에서 눌렀을 때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은 혈관종, 비순 낭종, 신경초종이 있겠군요.”

“하지만…… 하지만 혈관종이라고 하기엔…….”

“네, 혈관종은 CT 소견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경초종은 어떠합니까?”

수혁은 손 교수 대신 영상의학과 교수를 바라보았다.

신경초종이 머리 부위에 발생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어서, 손 교수에게는 본 경험이 별로 없을 거라 판단해서였다.

예상대로 손 교수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답을 하게 된 영상의학과 교수 또한 무척 당황한 얼굴이었다.

“어……. CT 소견상 그쪽이 더 적합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극히 드문…….”

“드물다고 해도 정황이 모두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저는 애써 내시경 소견을 무시하고 흔한 질환인 비순 낭종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드물어도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지는 신경초종을 의심하는 것이 더 옳다고 봅니다.”

“그…… 확실히…… 음. 빈도를 제외하고 보면 증상, 내시경 소견, 영상 소견 모두 신경초종에 부합하기는 합니다. 음……. 수술 시에 이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혁은 영상의학과 교수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손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그런 기분이었다.

‘이수혁, 이수혁 하더니……. 나보다 어린 초임 교수가 유명하길래 잘난 아비 덕인 줄 알았지…….’

배알이 꼴리는 마음에 뒷담화도 몇 번 했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진짜 천재가, 심지어 관록까지 붙은 얼굴로 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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