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20화 (720/1,303)

720화 조태진 돕기(은혜 갚기) (2)

조태진 또한 수혁의 시선을 따라서 환자 기록을 살펴보았다.

혈변, 가늘어진 변, 그리고 묽은 변.

모두 대장암의 증상이었다.

‘어차피 워크업만 하고 해당 파트로 보낼 거라…… 그렇게까지 신경이 쓰이던 환자는 아니었는데…….’

환자의 나이를 고려해도 역시나 대장암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실제로 고령 환자에서 대장암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 않나.

한때는 서양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대장암이 그리 흔한 암이 아니란 얘기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뭘 놓치고 있고…… 수혁이는 뭘 보고 있는 걸까.’

조태진의 전문 분야는 사실 혈액암.

대장암과 같은 고형암은 그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명색이 혈액종양내과 아닌가.

아무리 상대가 수혁이라지만.

승부욕이 조금 발동했다.

아니, 승부욕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기운이 샘솟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우선 이 환자……. 지금 변을 보고 있잖아요?”

“어, 그렇지. 가늘게 나온대. 아무래도 종괴에 눌려서 그렇겠지.”

“그런데 여기 사진을 보시면 육안으로 보기에는 폐쇄예요. 대장 내시경 시행한 의사분도 여기서부터는 도저히 진입이 어렵다고 되어 있고요.”

“음……. 그렇지. 아……. 근데 변이 밀고 나온다는 건…… 이게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은 종괴일 수 있다는 거로구나.”

“네, 그렇죠.”

암의 특징은 각 암의 종류마다 갈리긴 하지만 대개 단단하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많은 암을 진단할 때 있어, 만져 봤을 때 단단하고 주변으로 고정되어 있는 소견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대장암도 마찬가지.

“그렇게 들으니까 이상하네. 저만한 크기의 종괴가 단단한데 고정까지 되어 있으면 절대 변이 안 나올 것 같은데.”

“게다가 묽은 변도 이 시점에서는 이상해요.”

“그건 왜 그렇지?”

묽은 변이라는 게 결국 무엇인가.

변의 성분 중 수분이 많이 있는 변이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되면 단단한 종괴가 막고 있어서 얼마나 흘러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보통 의사의 생각일 터였다.

조태진도 그랬다.

‘뭐가 또 이상한 거지?’

수혁이는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조태진은 눈을 빛냈다.

하여간 이 똑똑한 동생은 벌써 몇 년이나 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천재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대장은 무엇을 하는 곳이죠?”

그렇게 뭔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으려니 역으로 질문이 들어왔다.

물론 조태진은 딱히 당황하진 않았다.

그저 답했다.

“변이 모이는 곳이지. 직장에서 대부분 버티지만, 대장도 일부 그런 역할을 하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수분을 흡수…… 아.”

“네. 수분을 흡수하는 곳이에요. 이렇게 종괴가 중간에 버티고 있으면 아무리 묽은 변이라 해도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겠죠. 그러면 수분이 흡수돼야 합니다. 변은 단단해지고, 결국, 변이 나오지 않겠죠.”

“근데 반대로 묽은 변이 나왔다, 이거지. 음.”

조태진은 아래턱을 매만졌다.

처음 암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우리 수혁이가 또 병이 도졌구나’ 싶기도 했더랬다.

하여간 이 녀석은 흔한 소견도 드문 소견인 것처럼 꼬아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 않나.

하지만 듣다 보니 과연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서가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교주님…….’

옆에 있던 안대훈은 그저 찬양 또 찬양이었다.

속으로 수혁의 위대하심을 거의 열여섯 번가량 되뇌었다.

‘여기까지 했으면 하나 떠오르는 질환이 있어야 하는데.’

[아…… 아뇨. 너무 나갔는데. 사진을 집중하게 하시죠.]

‘아, 아냐?’

[네, 수혁도 사진을 봤으니까 그 질환을 떠올린 겁니다. 스스로 너무 과대평가하는 건 위험합니다. 수혁.]

‘오키. 알았어.’

[이럴 땐 또 수긍이 빠르네요.]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면 수긍 안 할 때 제가 너무 화가 날 거 같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미 충분히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더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여기 보세요.”

“어, 응.”

“네, 교수님.”

해서 수혁은 일단 사진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면 대장 안의 종괴였다.

꽤 해상도가 좋은 내시경으로 찍었는지 종괴의 모양은 선명했다.

붉은, 어떻게 봐도 깨끗해 보이지 않는 단면을 지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암이라는 게 원래 그런 편이기도 했거니와 이곳은 장이니까.

점막 조직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란 얘기였다.

“여기 잘 보시면…… 붉은 조직이죠?”

“어, 그렇지.”

“일반적인 폴립이나 대장암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종괴의 크기에 집중하지 마시고 종괴의 모습에 집중해서 봐 보세요.”

“음……. 그래, 폴립하고는 확실히 달라.”

폴립은 일종의 혹이라고 보면 되었다.

점막 아래에서 혹이 자라나는 경우에는 표면이 그저 점막 그 자체였다.

설령 더 커져서 좀 밀고 나온 느낌이 있어도 이렇게까지 뭉그러진 붉은 형태를 띠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암이라고 하기에도 모양은 좀 다르긴 한데?”

“네. 대장암 특유의 단단함이 느껴지지 않아도. 단지 증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양만 봐도 좀 뭉글뭉글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뭉개져 있다고 해야 할지. 뭐 그런 모습이죠.”

“으음.”

조태진은 다시금 아래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렇게 보였다.

듣기 전에는 그저 종괴였지만.

이제는 뭐라고 해야 하나.

뭉개진 덩어리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직 검사 결과를 보시죠.”

“그거 위음성으로 의심해서 보낸 건데.”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 그래. 음……. 염증 조직……. 반응성 염증 조직이었지. 염증……? 염증이 이렇게도 나타날 수 있나?”

“종괴는 잊으시고…… 염증 조직에 집중해 보죠.”

“아, 알았어.”

미로.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미로였다.

그것도 시야가 아주 좋지 못한 곳에 펼쳐진.

그러나 수혁이 말을 할 때마다 눈앞에 환한 빛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잘못된 선택지가 조태진을 유혹했으나, 수혁은 손을 잡아끌어 올바른 답으로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와……. 이런 경험은 정말 오랜만인데…….’

학생 때 이후로 자신을 이렇게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나?

아니, 학생 때에도 이렇게까지 실제 케이스를 가지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지금의 조태진에게도 이런 건 무리였으니까.

“네, 염증에 집중하고. 지금까지 설명했던 소견을 다시 한번 종합해 보세요.”

“다시 한번 종합?”

“네. 염증이라고 생각하고 환자의 증상 및 소견을 종합해 보세요.”

“음, 알았어.”

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질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사실 환자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의사에게도 그랬다.

절대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암은 절대 놓치면 안 되어서 그랬다.

그랬다가는 환자를 잃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암을 한번 떠올리게 되면 오히려 다른 질환을 떠올리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지.’

사실상 많은 의사들의 수련 과정은 흔한 질환에서 암과 같이 중대한 질환을 골라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를 들어 감기와 같은 질환은 사실 치료가 주가 되기는 어렵지 않겠나.

환자들은 흔히 감기를 치료하러 오지만.

의사들은 그게 진짜 감기가 맞는지, 아니면 다른 질환인지 감별하는 데 더 집중했다.

‘그래……. 눈이 흐려져 있었어.’

수혁이 해 준 것은 조태진의 눈꺼풀을 가리고 있던 암이라는 무서운 질환을 치워 준 것뿐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조태진의 머리는 휙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음. 염증이라. 그래, 염증. 이 환자분 고령이시지……. 거기에 혈변을 봤고…… 이제는 없어.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봐야 할까? 그럴 수 있는 염증성 질환이라…….”

“대훈아 너도 추론해 봐. 조태진 교수님처럼.”

“아, 네.”

그렇게 사고의 과정에서 드문드문 내뱉는 말만 들어도 수혁은 대강 조태진이 맞는 길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런 법이지 않나.

뒤늦게 참가한 안대훈도 놀랍지만 그리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아……. 혹시.”

“허혈성 장 질환. 종괴를 제외하고 보면 그것만 떠오르는데……. 허혈성 장 질환에서 이렇게 종괴가 나타나기도 하나요?”

안대훈의 질문에 답한 것은 수혁이 아니라 조태진이었다.

태화에서 살아남았을 만치 우수한 데다가 이제 학회 진출까지 꾀하고 있는 그는 결코 공부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 그래……. 음. 대략 3%가량은 허혈성 장 질환하고 대장암을 오인하곤 하거든. 그래, 여기 보면 염증이 쌓인 느낌이잖아. 종괴라기보다는…… 그저 피가 통하지 않으면서 망가진 점막들이 쌓여 있는 거라고 봐야지. 허혈성 장 질환은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니까 지금쯤 호전이 되었을 수도 있어. 원래 병원 입원하면 수액도 주고 하는데 그게 다 혈류 개선을 시켜 주니까…….”

“아……. 그렇구나. 이게 종괴가 아니라 점막이 쌓인…… 아.”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그렇게 보이네.”

“그럼 환자분에게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안대훈의 말에 조태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좋은 소식은 나쁜 소식에 비해 전하기가 한결 나은 것도 사실이었다.

의사들이라고 왜 맨날 나쁜 소식만 전하고 싶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좋은 소식이 좋았다.

하지만 병원은 주로 나쁜 소식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괜히 교과목 챕터 중 하나를 나쁜 소식 전하기가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랬다가 암이면 큰일 나지. 실제로 허혈성 장 질환의 대략 20%에서…… 대장암을 동반해. 애초에 허혈이 왜 생기겠어. 대장암이 주변 조직을 눌렀을 수 있다고. 지금도 이 종괴 뒤로는 전혀 검사가 안 되어 있는 상태잖아.”

“아…….”

“우선 대증적 치료는 했다고 보고, 대장 내시경을 다시 해 보는 게 좋겠지. 그러고 나서 말씀드려도 늦지 않아. 괜찮아졌으면 퇴원시키면 될 거고. 아니면 예정대로 워크업하면 될 일이겠지.”

“그렇네요.”

그중에서도 조태진은 나쁜 소식의 거의 최전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과 의사들 아니, 내과 의사들 중에서도 특히 신중한 편이었다.

‘오……. 그렇군.’

[역시 혈종은 다르긴 다르네요. 이러한 것은 참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환자를 실망시키는 건 진짜 안 좋은 일이니까.’

[여전히 배울 점이 많군요.]

수혁조차도 깨달음을 얻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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