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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722화 (722/1,303)

722화 조태진 돕기(은혜 갚기) (4)

조태진의 신들린 듯한 회진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정말 신들렸다는 표현을 괜히 쓰는 게 아닌 것이,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득 차 있던 혈종 병실 분위기가 그나마 좀 밝아져 있었다.

혹자는 이런 게 무슨 의사의 역할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항암 치료란 것은 결국, 암과 환자가 싸워 이겨야 하는 싸움이지 않나.

의사는 이런저런 조언도 해 줄 수 있고, 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버텨야 하는 것은 환자 본인이었다.

이렇게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치료일 수도 있었다.

‘확실히…… 교수님 보고 나면 환자들 표정이 밝아진다니까.’

무엇보다 매일, 매시간 환자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주치의 레지던트 입장에서 이러한 회진은 구원이었다.

까칠했던 환자가 부드러워지고.

맨날 울던 환자의 얼굴이 밝아지고.

이런 게 기적이지 뭐가 기적이겠나.

‘후후. 그럼 기적을 베풀어 보실까.’

훈훈한 분위기 속에 삭막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있었다.

바로 수혁이었다.

“아……. 여기가 그, 원발 병변 미상의 골 전이 환자가 있는 병실입니다.”

수혁이 하도 문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지던트도 서둘러서 노티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 좀만 더 버텼다가는 이대로 그냥 안으로 들어가 버릴 거 같았다.

그게 아니면 자기한테 화를 내든지.

의외로 수혁의 성격이 부드러워서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응급실인가 어디서 군의관 선배 하나가 개까였다던데…….’

원래 화 잘 안 내던 사람이 화내면 그게 제일 무서운 법 아니겠는가.

듣자니 군의관으로 왔던 선배가 이수혁 교수보다 기수도 더 위라던데.

이 새끼 저 새끼 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렇다면 까마득히 아래인 사람에게는 어찌할까?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 왔다.

“좋아, 들어갈까.”

“어, 네.”

서두른 덕인지 뭔지 수혁은 화내는 기색 하나 없이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조태진은 그런 수혁 뒤를 따랐다.

‘그래, 수혁아……. 병 좀 찾아 주라. 내가 진짜 돌겠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였다.

의사인 주제에 진료가 부담된다는 이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기는 했지만.

원래 대학 병원 교수라는 건 진료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나.

교수는 후학 양성에도 힘을 써야 했다.

그중에서도 태화와 같이 큰 병원 교수라면 후학 양성뿐 아니라, 같은 전문의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어야만 했다.

넘치는 케이스와 그로 인해 몰려드는 자원, 그리고 연구 결과물을 나눠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큰 병원 교수들의 숙명이었다.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어, 어어. 네네.”

수혁은 레지던트를 뒤로하고 환자에게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누가 봐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 의사지만, 직함이 주는 힘이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큰 병원에서 흰 가운이 주는 압박감은 역시 대단한 것이었다.

의사들은 의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막상 환자가 되어 대학 병원에 입원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마주하게 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 환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나마 옆에 아는 얼굴들이 보여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더더욱 놀랐을 터였다.

“걱정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잘 봐 드리려고 온 거니까요. 그렇죠? 조태진 교수님?”

“어? 아, 네. 환자분. 하하. 여기 이수혁 교수님이 워낙에 뛰어나신 분이셔서요. 병원에 어려운 환자가 있거나 하면 꼭 와서 도와주시곤 합니다.”

“아……. 아, 네네. 감사합니다.”

물론 아는 얼굴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있을 만큼, 수혁이 무신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바루다화되고 있다고 해도 천성이 어디 가겠는가.

게다가 바루다도 이런 식의 대화를 종용하는 편이었다.

라포를 쌓아야 더 정보를 빼내기 쉽고, 그래야 더 확실한 진료가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말랐어. 굉장히 말랐는데.’

[네. 암 악액질로도 분류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되었을까?’

[알아봐야죠.]

확실히 직접 보니 차트나 영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는 골격은 꽤 좋았으나 무척이나 말라 있었다.

지나치다 싶을 지경이었다.

“좀 마르셨는데…….”

“네? 아 네. 나이가 드니까…….”

“이렇게 마르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 말에 환자는 즉각 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옆에 있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타박하는 듯한 투였다.

“어유……. 언제부터인가 입맛 없다고…… 맨날 그냥 물에다 밥 말아서 먹는다니까요. 밥을 차려 주면 뭐 하냐고.”

“아유, 고만해.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 앞이니까 이러지. 선생님, 이 양반 이거 밥 좀 잘 먹으라고 해 주세요. 이번에 이렇게 된 것도…… 안 먹어서 이렇게 된 것이지요?”

“그럴 리가 있나!”

보아하니 부인인 모양이었다.

사이는 좋아 보였다.

남편이 말을 좀 안 듣는다는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원래 다 큰 성인끼리 일방적으로 말 잘 듣는 사이라는 게 성립될 수 있던가.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 편을 좀 들어줘야 할 상황이었다.

노년 인구에서의 식사량 부족은, 암은 모르겠지만 정말로 많은 병을 야기할 수 있어서였다.

“근데 환자분. 할머님 말씀이 맞기는 맞아요. 밥은 잘 드셔야 합니다. 이렇게 근육이 쭉 빠져 버리면…… 여러 가지 질환에 노출이 될 수 있어요.”

“잉.”

“거봐!”

“그래도 너무 화내지는 마시고요. 환자분 가뜩이나 아프신데 그러면 쓰나요.”

“어험.”

“아, 네네. 죄송합니다.”

살짝 콩트를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노년 부부의 티키타카라니.

메마른 수혁의 마음도 출렁일 정도의 감흥이 있었다.

‘부럽네.’

[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진짜 영혼이 1도 안 느껴지는데?’

[저는 기계니까요. 영혼이 없습니다, 원래.]

‘이걸 이렇게 받네. 진짜 빡치네.’

[하여간 얼마나 됐는지 아직 못 들었습니다. 조금 컨트롤을 하시죠. 이런 식이면 하루 종일 걸립니다.]

‘아, 오키. 그래.’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진료를 앞두고 있는 수혁은 다른 일에 마음이 쏠리는 일이 잘 없어서 그랬다.

게다가 작은 단서이지만, 심지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수 있는 단서이지만.

그래도 뭔가 실마리를 잡은 상황 아닌가.

“아, 환자분. 얼마나 됐다고 했죠? 이렇게 마른 지가?”

“아……. 그게.”

“몇 년 됐어요. 아니지. 몇 년이 뭐야. 거의 10년? 일할 때는 잘 먹고 그러더니…… 은퇴하고 나서는 사람이 쪼그라들어서…… 이 양반이 왕년에는 진짜 체격이 장사였다고. 덕분에 나도 좀 으스대고 했는데 요새는 이게 뭐야.”

“10년. 음.”

10년이라.

수혁은 조태진을 돌아보았다.

조태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암에 걸려도…… 살이 빠지긴 하지.’

암이 무엇인가.

원래는 우리 몸을 이루는 조직이었다가 변이를 일으킨 종양 아닌가.

쉽게 말하면 적당히 자라다 죽어야 할 놈이 안 죽고 제멋대로 마구 자라는 놈을 의미했다.

심지어 뭔가 의미 있는 형태의 조직으로 분화되지 않고 함부로 자라기 때문에 주변을 마구 파괴하기도 했다.

그 과정이 쉬울까?

그럴 리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10년은 너무 길어. 그랬다면 저기에만 골 전이가 있지 않겠지.’

[네. 10년 전부터 암 덩이가 있었다고 하기엔 환자 컨디션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살이 빠질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마른 암 환자가 마르게 된 원인이 암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 전부터 살이 빠져 있을 수 있었다.

게다가 환자에게는 정확한 진술도 있었다.

물에 밥만 말아 먹었다는 진술이.

‘얼마 전 노인의학회지에서 발표도 했지? 노령 인구 절반 이상이 영양실조라고.’

[영양 결핍이라고 정정하고 싶군요. 하여간 맞습니다.]

‘그래. 아무튼, 그렇게 되면…… 면역력이 떨어지지. 암 발생률도 높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 설마.]

수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라서, 또 노년 인구라서 가능한 가설이었다.

희박한 확률.

그러나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왜냐면 원발 병변 없이 골 전이만 관찰되는 이 상황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잘 안 되기에 그랬다.

“환자분, 혹시 일하실 때는 어디서 일하셨어요?”

“네? 아……. 그냥 뭐. 회사 다녔습니다.”

“이 사람이 나름 상무까지 했어요. 영업으로 들어가서 진짜 잘했지.”

“그럼 현장에서 뛰셨어요?”

“아, 네. 젊을 때요. 근데…… 나중에는 뭐 사무직이었죠.”

“여기는…… 여기는 언제 다치신 거예요?”

말을 하면서도 관찰을 쉬지 않는 것.

바루다와 함께하는 수혁만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이번엔 환자복 틈새로 정말 잠깐 보였던 흉터를 잡아냈다.

그러자 환자는 꽤나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어. 이거요.”

“아유. 이이가…… 전쟁 막판에 월남에 가 가지고. 돈 벌겠다고. 그때 어려웠거든요……. 우리 집이. 하여간에 다칠 일 없다고 그러더니만 떡하니 이렇게.”

“몇십 년 된 얘기를 하고 그래.”

“얘기 안 하게 생겼어?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억장이 무너져.”

두 부부는 또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지만, 수혁에게는 그러한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머릿속으로 전쟁터와 이들이 살았을 열악한 환경을 조립하고 있을 뿐이었다.

‘월남…… 베트남이지. 덥고, 습한 정글.’

[밀집 생활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 논문을 보면 당시 파병군들 사이에서 병들이 많이 옮겨 다녔다는 보고가 있죠.]

‘그중에서도 호흡기 질환은 훨씬 잘 퍼졌겠지?’

[이를 말인가요?]

수혁은 두 부부의 대화를 손을 내밀어 중지시킨 후, 입을 열었다.

다행히 두 부부 모두 이 젊은 의사를 존중하고 있거나, 또는 일정 부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세 조용해졌다.

“환자분. 혹시 결핵 환자가 주변에 있던 경험이 있었나요?”

“결핵이요? 아, 폐병. 그야…… 아유, 수두룩했죠.”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어요? 분대원이라든가. 아니면 가족이라든가. 혹은 그에 준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요.”

“아…….”

수혁은 사실 분대원을 기대하고 있었다.

전쟁터는 늘 열악하지 않겠나.

당시 한국군은 더했을 터였다.

못사는 나라였으니까.

한데 의외로 환자가 바라본 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또한 눈을 말똥거리면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결핵에 걸려서 앓았던 적이 있어요. 한 25년 전? 기침이 계속 나서 보건소에 갔더니…… 결핵이라고 해서. 약을 먹었죠. 아, 거 약 독하더라고요.”

“환자분은요?”

“저요? 전 멀쩡했죠. 결핵이 그거 옮는 사람만 옮고 건강한 사람은 괜찮은 거 아니에요? 이이가 원래 몸이 좀 약했어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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