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23화 (723/1,303)

723화 조태진 돕기(은혜 갚기) (5)

결핵.

사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질환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거의 희귀 질환쯤으로 생각되고 있을 지경.

대한민국도 삶의 질이나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지위를 생각하면 그래야 마땅할 터였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결핵 발병률이 1위지?’

[압도적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결핵은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심지어 2020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신종 전염병보다 같은 해에 더 많은 사람이 결핵으로 죽었을 지경이었다.

당연히 보건의학적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의사들이라면 결핵을 결코 등한시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조 교수님.”

“어? 어.”

“환자 CA 19-9가 증가해 있다고 했죠?”

“어. 소폭 증가해 있어.”

“대장 내시경 했나요?”

“아니, 아직. 의뢰만 들어가 있어.”

“일단 그걸 확인하는 게 좋겠는데요.”

CA 19-9는 주요 종양 표지자 중 하나였다.

이게 올라가 있으면 암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이지 않나.

이미 데이터가 많이 쌓인 표지자인 만큼, 의사들도 긴장해서 여러 검사를 해 봐야 할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소화기 계통 암과 연관이 있는 녀석이었다.

당연히 대장 내시경 등을 통해 암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만 했다.

“금식 되어 있나?”

조태진 교수 또한 수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런저런 영상의학과적 검사를 했음에도 뭐가 안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게다가 수혁이 이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으면 하는 게 맞았다.

‘아직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 녀석은 갈피를 잡아 가고 있는 느낌이지 않나.

레지던트 녀석이야 그냥 되는 대로 따라다니고 있을 테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수혁을 관찰해 온 조태진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아까랑 무언가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결핵…… 과거력을 듣고 나서부터였지? 가족의 결핵이라…… 잠복 결핵…… 음. 설마 결핵인가?’

거꾸로 유추를 해 보니 결핵에서 무언가 느낌을 받은 듯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전히 영상이나 기타 증거는 암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 괜히 결핵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건 아닐 터였다.

하여간 하루빨리 수혁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다행히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안 그래도 식사를 잘 못 하셔서요. 그리고 PET CT 찍느라 금식 걸어 놨었습니다. 회진 끝나면 식사 예정이셨습니다.”

병실 밖에 놓인 작은 카트를 가리키면서였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맛없어 보이는 병원 밥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아무리 저래 보여도 굶은 입장에서는 꽤나 맛있어 보일 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 온 이상 검사가 더 급했다.

빨리 뭔지 확인을 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하는 것.

그것이 우선되어야만 했다.

“잘됐네. 그럼 바로 갈까.”

“네? 대장 내시경을…… 예약해야 할 텐데요?”

마음이 급한 조태진이 이렇게 외치자, 담당 레지던트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 되어 대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 내시경은 영상 검사랑도 또 다른 느낌이지 않나.

이건 기계만 돌아간다고 되는 검사가 아니었다.

사람이 있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숙련된 소화기내과 의사가 있어야만 했다.

“아, 그렇지. 아씨. 언제 할 수…… 뭐 하니?”

그 말을 듣고 나니 조태진도 좀 정신이 들었다.

안 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단 얘기.

한데 안대훈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 제 절친 중에 지금 소화기 내시경 센터 펠로우가 있어서요.”

“절친……?”

이상한 일이었다.

안대훈의 얼굴이야, 펠로우가 아니라 교수급으로 나이 들어 보인다곤 해도 실제로는 그런 나이가 아니지 않나.

“어, 안대훈 형제.”

게다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남자였다.

군 면제라거나 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둘 사이에 연차 차이가 3년은 난다는 얘기였다.

근데 절친이라니.

심지어 형제라고 부를 정도라니.

“네, 형님. 다름이 아니라, 급하게 대장 내시경 할 사람이 있어서요.”

“급하게……? 위내시경도 아니고?”

대놓고 이상한 말을 하는데도 반응이 영 나쁘지는 않았다.

말마따나 응급 대장 내시경은 드물지 않나.

위내시경처럼 출혈이 심하게 나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랬다.

“아, 네. 프렙(Prep, 수술 준비)까지는 아닌데 일단 금식은 되어 있어요. 그…… 이수혁 교수님 건입니다.”

“아, 아아아아. 아!”

게다가 프렙도 안 되어 있었다.

즉 관장이 안 되어 있다는 얘기.

아무리 굶었어도, 소용없었다.

이미 넘어간 변은 거기 있을 테니까.

게다가 노인들은 내장 운동이 활발하지 않아서 더더욱 잔류하는 것이 많았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하게 되면 실시간으로 똥을 퍼 가면서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릴뿐더러 제대로 검사가 될지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해야지!”

하지만 상대는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한참 내더니, 이렇게 외쳤다.

‘이야……. 우리 안대훈이가 진짜 능력 뒤지는구나!’

조태진은 옆에서 통화를 엿들으면서 이 걸출한 레지던트를 향해 엄지를 휘둘렀다.

교수가 전화를 한다 해도 어찌 될지 모르는, 사실상 무례한 부탁을 하는데 반응이 이렇다니.

이건 진짜 대단한 일이었다.

‘와……. 우리 대훈이 마당발이네.’

[교세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나 봅니다.]

‘교세라고는 하지 말고…… 영향력이라고 하자.’

[그걸 교세라고 하지 않는다고요?]

‘나…… 나 나름 천주교 계열 보육원에서 자랐어…….’

[신앙은 없잖아요.]

‘그런 환경에서도 신앙이 안 생긴 사람인데 교주가 어떻게 되냐!’

[아……. 얘기가 또 그렇게 되나.]

수혁조차 감탄하고 있었다.

여전히 수혁교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덕분에 일이 이렇게 되는데.

게다가 소위 교인이라는 애들하고 몇 번 얘기를 해 봤는데, 실제로 교주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약간 아이돌 느낌이라고 보는 게 옳을 거 같았다.

세상에 수혁이 아이돌이라니.

이것도 괴상망측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하여간, 교주보다는 나았다.

“자, 그럼 가시죠. 바로 봐주신다고 합니다.”

“어? 어어. 근데 누구야?”

“이번에 펠로우 2년 차 되신 분인데요. 장강명 교수님이 대놓고 키워 주시는 분이라 실력 좋아요. 손이 진짜 좋은가 보더라고요. 사고도 없었고 속도도 빠르고요.”

“좋네. 좋아. 그럼 가자고.”

“네네.”

하여간 일행은 환자에게 설명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내시경이요?”

“네. 원래 내일이나 모레쯤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하시게 되었습니다.”

“자……잘된 거죠?”

“그럼요. 검사 당기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럼 뭐…… 알겠습니다.”

처음엔 진짜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한 회진이지 않았나.

누워 있다가, 영상 검사 결과를 듣고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시경이라니.

따라오는 할머니의 얼굴에도 당황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뭐가 되었건 이렇게 검사를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드르륵.

그렇게 일행은 센터로 향했다.

“아, 오셨습니까!”

앞에는 펠로우가 서 있었다.

보통 협진 의뢰받으면서 저렇게 앞에 나와서 절까지 하는 경우가 있던가.

조태진도 수혁도 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안대훈은 이게 당연하다는 듯 껄껄 웃었다.

“네, 형님. 여기 이수혁 교수님. 조태진 교수님.”

“아……. 직접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교…… 팬입니다.”

“아, 네…….”

그는 수혁과 악수까지 하고는 환자에게로 갔다.

그러곤 환자의 겉모습을 슥 하고 훑었다.

‘말랐어……. 쉽지는 않겠는데.’

뚱뚱한 것보다는 나았다.

여기저기 눌려 있어서 압력이 거세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마르면 그것도 문제였다.

‘후후, 나는 장 교수님의 제자지.’

물론 평범한 사람일 때의 얘기였다.

태화의 소화기내과 센터는 예로부터 엄청난 양의 내시경을 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유명한 편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인 검진이 아니라, 환자 진단을 위한 검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 대상으로 한 검사가 주라는 얘기였다.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하게 어려웠고, 그 사이에서 큰 사람들은 실력이 아주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옆으로 누워 주시고…… 수면 내시경 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아, 네. 무리 없습니다. 혹시 일 생기면 저나 여기 이수혁 교수가 나설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네.”

게다가 백업도 완벽한 상황이었다.

조태진에 이수혁.

베테랑과 천재 아닌가.

뭔 일이 나도 대응이 가능할 터였고, 솔직히 뭔 일이 나기도 어려워 보였다.

오로지 내시경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자, 그럼…… 주무십니다.”

역시나 베테랑인 간호사가 라인을 통해 미다졸람을 찔러 넣고, 환자는 어?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검사가 시작되었다.

“대장암 의심하시는 거죠? CA 19-9는 올라가 있던데.”

“아……. 일단은 그렇습니다. 주의해서 들어가 주세요.”

“네네.”

당연히 사전에 질문이 있었다.

수혁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끄덕여 주었다.

‘혹시 있는데 막 들어가 보라고 하면 사고 날 수도 있으니까.’

[소화기내과 의사가 막 들어가란다고 막 들어가면, 그게 소화기내과 의사입니까.]

‘하긴 뭐 그렇지.’

대장암과 같은 종양이 대장 내부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스 채워 넣는 것조차 주의해야만 했다.

압력이 훅 하고 올라갈 수 있어서였다.

게다가 종양이 커진 상황에서는 주변부 조직이 괴사하거나 약해질 수 있어서 더 약한 압력에도 터질 수 있었다.

심지어 이 환자는 마른 노인이었다.

“후우…….”

거기에 더해 관장도 하지 않은 상황.

이게 쉬울 리가 없었다.

“석션 막혔어. 잠시만요.”

수분은 석션해서 제거하고, 덩어리는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와……. 나는 다리 멀쩡해도 이거 못 하겠는데…….’

[더러워서요?]

‘그것도 그런데…… 땀 봐라. 저렇게 움직이면 어깨 나가지.’

[하긴…… 한 해에 그렇게 많은 내시경 전문의들이 쏟아지는데 수가 얼추 맞는 게 나이 50 넘으면 어깨 망가져서 은퇴해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죠.]

‘괜히 그런 게 아니네……. 미안한데?’

[보람 있게 만들어 주면 됩니다. 뭐라도 나오면 되죠.]

‘음. 그래.’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십시오. 분석은 제가 할 테니.]

더럽게 고생하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더럽게 고생이었다.

뭐가 자꾸 튀고, 냄새나고, 힘은 들고.

그럼 뭐라도 보여야 할 텐데.

‘뭐 보여?’

[똥이요.]

‘하.’

똥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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