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화 열정, 열정, 열정 (5)
안대훈의 눈이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런 말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잘생겨 보일 정도였다.
원래 똑똑한 소리하고 있으면 나아 보이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안대훈 정도 되는 애도 그게 가능하다는 걸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이 새끼…… 똑똑한데?’
[그러니까요. 레미에르 증후군은 진짜 드문 병이지 않습니까?]
‘100만 명당 1명…… 발생할까 말까지.’
[그걸 의심할 수 있다는 건 배경 지식이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지금 안대훈의 논리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주 단단합니다.]
‘응. 손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레미에르 증후군.
아주 예전에는 깊은 경부감염의 드물지 않은 합병증으로써, 거의 사신과도 같은 존재였더랬다.
경정맥을 염증이 직접 침범해 그 염증이 혈관 내부로 침입하고 이어서 혈액 흐름을 따라 심장으로 그리고 폐로 감염이 번지는 경과를 밟게 되기에 그랬다.
다행히 이 케이스에서는 아직 폐 색전증까지는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냥 피떡으로 색전증이 생겨도 골 때리는데, 그냥 피떡이 아니라 병균이 가득한 피떡으로 막힌다면 대체 어떻게 되겠나.
“아……. 이거…… 이걸 어떻게 이렇게 바로.”
그나마 항생제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이 질환의 발병률이 크게 떨어진 것이 인류사에 있어서는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드물어져서, 지금처럼 만에 하나 생기게 되면 의료진의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주 예전에라도 보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 안대훈 선생이 이수혁 교수님이나 원장님이 가끔 말씀하시던, 교숫감인가요?”
손정협 교수도 그러했다.
벌써 40 가까운 나이다 보니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긴 했지만.
항생제 사용이 보편화된 지는 한참 되지 않았나.
정말이지 레미에르 증후군 같은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사실 문헌에서 잠깐 본 적이 있어 망정이지, 이름을 정확히 듣기 전까지는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얘가 안대훈입니다.”
수혁은 손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현종이 벌써 사전 작업에 착수한 참이었다.
수혁이 교수 만들 때만큼이야 당연히 아니었지만.
하여간 안대훈이 수혁의 충신이라는 걸 인지한 후부터는 생전 들어가지 않던 교수 회의에도 참석해서 입을 털고 있었다.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도 없었다.
그냥 안대훈이라는 애가 열심히 하더라, 기특하더라, 잘하는 거 같더라 등등의 얘기만 해 주면 될 일이었다.
“아……. 괜히 이현종 교수님이 그러신 게 아니었네요.”
그래도 충분했다.
이현종의 이름값을 여전히 빛이 바래지 않고 있었으니까.
아니, 빛이 바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만 있었다.
심장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천재였더라 하는 소문이 번져 나가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처음에는 흠집 거리였던 숨겨진 아들 수혁의 존재가 이제는 도리어 자랑거리가 되어 가고 있지 않나.
주류 학회에서도 슬금슬금 이수혁 천재설이 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네, 뭐. 보는 눈이 까다로우시죠.”
“그러니까요. 아무튼…… 이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침 주신대로 치료 잘해 보겠습니다.”
“네. 원발 병변은 수술이 필요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미 잡힌 농은 약으로만 마냥 녹이기가 쉽지가 않으니까요.”
“네네. 그렇죠. 그건 저희가 조언을 구해 보겠습니다.”
“네. 저희도 종종 들여다보겠습니다. 혹시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센터에 협진 의뢰 남겨 주세요.”
“네, 교수님.”
해결한 것은 안대훈인데, 감사 인사는 수혁이 받는 약간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책임도 권한도 모두 윗사람이 독박 쓰는 시스템이지 않나.
아마 안대훈이 실수를 한 상황이었다면 수혁이 대신 욕을 먹었을 터였다.
‘교주님…….’
게다가 안대훈은 손 교수가 떠나간 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혁을 보며 이미 울컥한 지 오래였다.
뭔가 눈가에 따스한 빛이 서려 있어서 그랬다.
전에도 종종 저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만큼 진득하게 바라봐 준 적은 단연코 없었다.
“잘했다. 너 이제 진짜 늘었구나?”
거기에 더해 칭찬까지.
“으허엉.”
안대훈은 잠시 울었다.
수혁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 새끼도 어찌 보면…… 일종의 천재 같은 거 아닐까?’
[그럴 수 있죠. 각성의 계기가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하여간 뭐…… 천재는 천재죠. 치프라고 해도 3년 차입니다. 레지던트 수준에서 이런 질환을 진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해해 줘야지. 천재는 원래 이상한 면이 있다니까.’
[그것은 자기 객관화입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이상하지 않은데.’
[그럼 천재가 아니라는 고백입니까?]
‘아니, 나는 천재인데.’
[아, 네.]
수혁 자신은 천재이면서도 정상이지만, 이현종은 아니지 않나.
살면서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처음 봤더랬다.
어떻게 된 게 겪으면 겪을수록 특이했다.
그야말로 기인.
덕분에 수혁은 안대훈도 일종의 기인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일단 가자. 가서 좀 쉬어야지. 오늘…… 여기 분위기 봐라. 또 의뢰 올 수도 있어.”
수혁은 잠시 안대훈이 울도록 내버려 두다가, 이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슬슬 지나는 사람 중에 쳐다보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했을뿐더러 피곤하기도 해서 그랬다.
아무리 환자 보는 걸 몸살 나게 좋아하는 수혁이라 해도 물리적인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나.
게다가 수혁은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었다.
“아, 네. 가시죠.”
어지간하면 그건 티를 내지 않지만.
안대훈은 적어도 수혁에 대해서만큼은 더없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해서 딱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아, 이 사람이 지금 좀 힘들구나.
슬슬 다리가 아프구나.
“업히실래요?”
“꺼져.”
“네.”
해서 슬그머니 등을 내미는 개수작을 부려 보았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하여간 둘은 센터로 돌아와 잠시 의자에 등을 붙이고 숨을 골랐다.
벌써 10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쾌속으로 진료한 거 같은데도 이랬다.
응급실 진료라는 게 대개 이러한 법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봐야 하다 보니, 검사해 놓고 기다리고 또 유추하고 하는 과정이 있지 않겠나.
시간이 엄청 잘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뭔가 소진된 기분이 들어 쉬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수혁의 폰이었다.
들여다보니, 또 손정협이었다.
“뭐지.”
감사 인사를 하려는 건가? 하고 시계를 보니 11시 반이었다.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가 됐건 뭐가 됐건 하여간 인사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설마 또……?’
[받아 보시죠.]
잘된 일이었다.
원래 같으면 자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당직이라고 생각하면 좀 이른 시간이었으니까.
뭔가 하나 더 보고 자면 딱 좋겠단 생각이 마침 들던 참이었다.
“네, 이수혁입니다.”
“아이고, 네, 교수님. 오늘 이게 무슨 날인지 모르겠는데…… 응급실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
“응급실이요? 아까 그 환자 건인가요?”
“아, 아뇨. 그 환자는 중환자실 올라갔습니다. 약 주면서 지켜보다가, 수술 결정할 생각입니다.”
“아, 그럼……?”
“호흡 곤란 환자인데…… 이게 좀 이상해서요.”
호흡 곤란이라.
응급실에서 급하게 봐야 하는 몇 가지 증상 중 하나라고 보면 되었다.
오죽하면 응급실 진료 빨리 보고 싶으면 가슴을 움켜쥐고 헥헥대며 들어가라는 말이 있겠는가.
진짜 해 보라는 말은 아니고, 그런 환자가 응급이라는 일종의 예시였다.
“네, 그럼 내려가겠습니다.”
“네네. 자세한 얘기는 여기서…… 이게 저만 보고 있는 환자는 아니어서요.”
“네.”
전화를 끊으며 몸을 일으키고 보니, 안대훈은 벌써 센터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가실까요?”
중세 집사라도 된 듯 이상한 몸짓을 보이면서였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저놈은 저게 진심이라는 걸 아니까.
그만큼 이상한 놈이라는 걸 아니까.
‘천재는 다들 미쳤다…….’
[네?]
‘아니,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져.’
수혁은 안대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응급실로 향했다.
내려오느라 시간이 더 지나서 11시 45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라는 얘기.
다른 곳이라면 슬슬 영업이 끝나가고, 거리도 한산해질 무렵이었다.
하지만 응급실만큼은 예외여서 더없이 붐비고 있었다.
“어째 아까보다도 환자가 더 많네.”
“네, 이상하네요, 오늘.”
사실 응급실도 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환자가 조금이라도 줄어야 정상이기는 했다.
활동 인구가 줄면 응급실에 올 만한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니.
하지만 이렇게 유독 바쁜 날도 있는 법이었다.
“야 시발 ST 떴어! 심장내과 콜해!”
“어어, 환자분!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아, 나도 아프다고!”
“여기 환자는 죽어요!”
난리가, 난리가 아주 생난리였다.
아마 처음 오는 사람 같으면 분위기에 압도되어 어버버 하고 있지 않을까?
물론 수혁과 안대훈은 응급실 프로이기 때문에, 지옥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손정협을 찾아낼 수 있었다.
“헉, 헉.”
눈앞에는 헉헉대는 환자를 두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숨이 차 보였다.
이렇게만 봐서는 왜 숨이 찬 것인지에 대한 추론은 불가하지만.
하여간 환자는 그리 좋지 못해 보였다.
일단 안색부터가 아주 오랫동안 앓은 사람 같았다.
‘근데 이 양반은 왜 와 있는 거야?’
[그러게요? 그냥 딱 봐도 내과 환자인데.]
이비인후과가 낄 구석은 없어 보였다.
혹시 두경부암 환자고 그로 인한 기도 폐색이 있는 건가 해서 봤지만, 그것도 아닌 듯했다.
해서 수혁은 너는 여기 왜…… 라는 얼굴로 손정협을 바라보았다.
손정협은 그런 수혁을 마주한 채, 객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저는 그냥 지나가다가 숨찬 환자 있길래 혹시 목 째려나 해서 서 있었습니다.”
“아, 네. 아, 그러시구나.”
이 사람도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집이 없나 싶기도 하고.
‘결혼 안 했나?’
[그랬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혼했거나요. 전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태화 의료원은 유독 미혼 또는 이혼한 비율이 높았습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칠성, 아선까지도 좀 그렇긴 하더라.’
비참한 현실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미쳐 살지 않으면 남들보다 아득한 성과를 낼 수 없는 게 현실 아닌가.
그런데 이 병원들은 아득한 성과를 내는 사람만 원하는 편이다 보니, 고인물들은 죄다 미쳐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럼 원래는 누가……?”
“어? 이수혁 교수님? 아. 살았다. 바로 노티드리겠습니다!”
진짜 주치의를 찾아 두리번거리자마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뛰어나왔다.
정말로 이젠 살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