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화 간밤 (1)
주치의는 연신 살았다를 외치고는 있었지만, 말과는 달리 몸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 환자가 죽어 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흔들리고 있는 바이털사인.
그중에서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산소 포화도.
환자의 헐떡거림과 들쑥날쑥한 갈빗대 사이의 빗장근.
파래져 가고 있는 입술 색.
천재니 뭐니 하는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땐 오로지 숙달된 의료진들의 발 빠른 움직임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삽관! 삽관할게요!”
산소포화도는 수혁이 들어서기 전부터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85에서 90 사이를.
산소 주면서 오르고 있었고, 또 환자도 괜찮아 보여서 일단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쭉 미끄러졌다.
이제 70.
곧 60.
그리고 50 밑으로.
“기도 이물인가?”
손정협 교수가 그 꼴을 보다가 돌연 입을 열었다.
사실 숨찬 환자 앞에서, 뭔가 내과적인 원인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는 이비인후과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존나 가만히 있었는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확실히 가능성 있습니다. 삽관 가능한 상황이에요?”
말해 놓고도 아차 싶었더랬다.
왜냐면 이곳에는 진짜 의사들, 그러니까 내과 의사들이 한가득 있었으니까.
말은 안 해도 내과 의사들이 은근히 마이너 과 의사들이 중요해 보이는 의견을 말하면 일단 깔보고 본다는 사실을 손정협도 알았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수혁도 거들고 나서는 순간 마음이 쑥 편안해졌다.
늘어져 가는 환자 앞에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실제로 그랬다.
“혹시 모르니까 칼 줘요!”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혹 내 말이 틀렸을까 불안해하던 이비인후과 의사에서, 기도 폐쇄를 확신하게 된 이비인후과 의사가 된 손정협 교수는 아주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여차하면 째겠단 소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기도 관련한 응급상황에서 이비인후과 의사의 존재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천군만마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하여간 목구멍으로 관을 쑤셔 넣을 줄밖에 모르는 내과계 의사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반칙, 그러니까 없던 구멍을 째고 들어가는 기관 절개술을 쓸 수 있어서였다.
이건 또 이비인후과 의사들도 잘 아는 사실이어서 이런 상황이 오면 갑자기 자존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어……. 이물 없습니다. 삽관…… 합니다.”
그렇게 기세가 등등해진 손정협에게 환자 주치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그를 쳐다본 손정협은 그 즉시 환자 목구멍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플라스틱 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 식도로 넣은 거 아니야?”
아주 부드럽게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실 식도일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반지 모양의 연골들로 인해 원형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기도와는 달리, 식도는 근육의 집합체 아닌가.
먹을 걸 넘길 때가 아니면 그저 쩍 들러붙어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저렇게까지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 아닙니다. 앰부 배깅 시 양측 폐에서 고루 소리가 납니다.”
“환자 포화도 회복됩니다.”
“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음.”
거기에 이런저런 증언까지 더해지자 할 말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이상하단 생각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까…… 포화도 떨어지던 건 확실히 기도 폐색이었는데…… 이상하네.’
산소 포화도란, 쉽게 말하면 우리 피에 산소가 얼마나 충분히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보면 되었다.
보통은 100%로 유지가 되고 나이가 많이 들거나 또는 폐 손상이 일어나게 되면 점차 떨어졌다.
후자의 경우엔 어떤 식으로든 산소를 주면 올라오기 마련인데, 이걸 무한정 코나 마스크 형태로 줄 수는 없어서 삽관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폐 자체의 문제였다면 저렇게 갑자기 떨어지진 않았을 거야. 호흡도 하고 있었고…… 심장도 뛰고 있었는데…….’
이비인후과 의사의 주제넘은 생각이란 판단이 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도 그랬다.
폐가 폐렴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하여간 망가지게 되면 포화도는 서서히 떨어지지 않겠다.
아까처럼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건…….
“기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고 있으려니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안대훈이었다.
가뜩이나 완전히 민머리를 광까지 내고 다니다 보니, 처치실처럼 조명이 밝은 곳에서는 감히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후광이 있네 어쩌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눈이 너무 부셨다.
BTS와 같은 대스타를 보면서 눈이 부시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부심이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네, 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응급의학과 4년 차는 안대훈의 눈이 아니라 목 언저리를 보면서, 그러니까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답했다.
말하면서 살짝 내가 왜 고개를 숙이고 있지?
저 인간은 레지던트 3년 차인데.
아무리 같은 치프라 해도 따지고 보면 나보다 1년 아래인데.
뭐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안대훈은 처치실 조명을 있는 대로 반사시키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증상이 발원한 것부터 해서 사라지는 데까지 모두 기도 폐색의 특징을 고대로 따르고 있는데…….”
녀석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마치 조명 반사판이 움직이는 것처럼 빛이 처치실 이곳저곳을 밝혔다.
그게 하필 사람 눈을 향할 때마다 비명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서진 못했다.
일단 안대훈 자체의 힘 때문이었다.
비록 이상한 놈이란 평이 지배적이지만, 그 이상한 놈을 따르는 무리가 수십에 이르게 되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 아니겠나.
‘게다가…… 통합진료센터 차기 교수라던데…….’
심지어 이현종이 대놓고 싸고돌고 있었다.
수혁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이런저런 자리에서 안대훈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었다.
이현종급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아랫사람들은 과잉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다.
그리고 이곳은 응급의학과였다.
‘통합진료센터 없어지면 이제 진료 어떻게 하냐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원래 응급의학과의 주된 업무는 두 개로 나뉜다고 보면 되었다.
하나는 당장 처치가 필요한 환자에게 처치를 제공하는 것.
즉, 죽어 가는 환자의 숨을 일단 붙여 놓는 행위를 뜻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넘겨야 할 과를 찾아서 후속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어쩔 땐 이게 사람 당장 살리는 것보다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통합진료센터가 출범하고 나서는 모조리 그쪽으로 넘기면 돼서 일하기가 너무 편해진 상황이었다.
“잠깐 대훈아. 나도 이상하게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삽관이 됐고. 삽관 시도했던 사람이 이물이 없다고 하잖아. 그럼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 봐야 해.”
“아, 네. 교수님. 그렇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해서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수혁이 나섰다.
다행히 안대훈은 수혁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녀석이지 않나.
생각 바꾸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럼 주치의 선생님?”
“아, 네!”
수혁의 부름에 응급의학과 선생이 달려왔다.
하여간 삽관을 한 후엔 환자가 안정적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는 차근차근 이 환자가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주치의는 그 일을 자기 눈앞에 있는 수혁 보다 잘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저 말고 일단은 안대훈 선생에게 얘기해 주세요.”
해서 아까처럼 이제 살았단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수혁이 갑자기 안대훈을 가리키자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 얘한테?’
단지 명성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드문 일이긴 해도, 대학 병원은 일단은 교육 기관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지금처럼 교수들이 레지던트들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막 시키는 게 아니라 일정 기준이 있었다.
아, 이만한 케이스는 이 친구라면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제아무리 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 목숨만큼 중요할 수는 없어서 그랬다.
‘와……. 사람이 어떻게.’
그렇다면 수혁이 이 안대훈이라는 친구에게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얘긴데.
그 믿음과는 별개로 주치의는 안대훈을 보면서 전혀 신뢰가 생기질 않았다.
대머리라서도 아니었다.
애초에 대머리는 뭘 해도 전문가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면 아무 대머리나 피트니스 옷을 입혀 보길 바란다.
그럼 최소한 요가는 잘해 보일 테니까.
‘눈이 이렇지.’
문제는 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눈빛.
응급의학과를 하면서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간혹 보는 눈깔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돌아 버린 자들의 눈알.
그래, 오늘도 사람 하나 살렸다는 보람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인간들의 눈.
“저 선생님. 몇 가지 그럼 좀 묻겠습니다.”
“아, 네.”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던 주치의는 안대훈의 비교적 정상적인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꽤 듣기 좋은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하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사이비 종교 주교라느니 하는 말이 사실일 리가 없잖아…….’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환자에 대한 질문이라지 않나.
답변 또한 진료의 일환이 될 터였다.
게다가 이 답을 듣는 건 안대훈뿐만이 아니라, 수혁도 포함이었다.
‘뭔가…… 뭔가 되기는 할 거야. 이 교수님 내려오고 환자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안 난 적은 없으니까.’
그렇게 주치의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쓰는 사이, 안대훈도 머리를 정리했다.
없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척을 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생각을 정리했다는 얘기였다.
“환자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나이라든지…… 기저질환이라든지 하는 것들요. 아까 얼핏 보니 기록이 오늘 처음이 아니던데, 원래 다니던 환자인가요?”
나름 날카로운 구석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질문의 끝은 주치의가 아니라 수혁을 가리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여간 안대훈은 남들 평판은 어찌 되었건 간에 수혁에게 인정받는 것만이 목표였다.
‘새끼, 기록은 또 언제 봤대.’
[그러니까요. 엄청 정신없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공이었다.
아까 환자 진단을 꽤 잘해 놓은 참이라 뭘 해도 일단은 칭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 네. 환자 52세 남자로 알콜릭스(Alcoholics,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아……. 알콜릭스? 그럼 그거 때문에 응급실을 자주 온 겁니까?”
“아, 아뇨. 저희 병원 응급실이 경증 환자에게는 접근성이 좋지는 않아서요……. 알코올성 확장성 심근병증이 있는 환자입니다.”
“아, 그럼…… 원래도 호흡 곤란으로……?”
“네. 바로 저번에 이로 인한 폐부종으로 내원한 바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내과 선생님들을 콜하려고 했습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