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화 간밤 (2)
호흡 곤란의 또 다른 원인을 알아낸 셈이었다.
‘아……. 심장 질환이 있었구나. 그럼 나는 슬슬 빠질까…….’
특히 손정협 교수는 심장 얘기를 듣자마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마이너 과, 그러니까 이비인후과같이 주로 사람 생명과 관련된 질환보다는 삶의 질과 연관이 있는 질환을 주로 보는 의사들에게 심장은 너무 무거운 주제라서 그랬다.
아마 아는 것도 딱 환자 수준일 터였다.
일반인은 말고, 본인이 그 병에 걸려서 관심이 좀 생긴 사람들 정도?
“이상하네……. 지금도 심장 문제라고 하기엔…….”
해서 아예 모습을 감추려고 했는데 안대훈이 말을 꺼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장은 아닐 것 같다, 뭐 이런 투였다.
‘그럼 기도인가?’
해서 손정협은 문가 근처에서 멈추어 섰다.
혹시 기도 문제라면 이비인후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소 건방진 생각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비인후과는 기도 질환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기관 절개만 해도 그게 어디 단순한 수술이던가.
생각 없이 슥슥 긋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헷갈리게 되고, 그러다 동맥 절단과 같은 크나큰 사고를 칠 수 있는 수술이었다.
심지어 한번 해 놓는다고 끝도 아니었다.
그 후로도 연골 괴사라든지, 또는 경동맥 파열 임박과 같은 여러 합병증이 있어 무조건 이비인후과가 보기는 해야 했다.
“아까 호흡 곤란이 좀 갑작스럽게 진행이 되던데. 이 환자 오늘 온 주소는 어떻게 됩니까?”
“네? 아……. 호흡 곤란이죠.”
“그러니까 그 양상이 어땠냐는 얘기입니다. 심장하고는 달랐을 거 같은데요?”
안대훈은 그런 손정협의 갈팡질팡하는 마음과는 관계없이, 그저 질문을 쏟아붓고 있었다.
살짝 예의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투였으나 응급실 레지던트는 그저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원래 사람 마음이 급하면 이럴 수도 있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그 급해진 원인이 자기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환자 때문 아니겠나.
그렇다면 얼마든지 받아 줄 용의가 있었다.
‘빨리 말해, 새꺄. 우리 교주님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알고 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 목적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대화는 나름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 음.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어서 왔다고는 했습니다.”
“갑자기? 뭐 하다가요?”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음, 그리고요?”
“그때 잠깐 그러다가 말아서 괜찮겠지 하고 있었답니다. 점심때도 그렇고…… 저녁때도. 그러다 밤에 자려고 눕는데 갑자기 숨이 너무 차서 이렇게 왔다고…….”
“흐음.”
안대훈은 잠시 눈을 감았다.
남들은 습관인가 싶겠지만, 그냥 수혁을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실제로 수혁이 간혹 그러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딱거리기까지 했다.
수혁은 그저 바루다와의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비언어적 대화를 억제하기 위해 하는 행위일 뿐이지만, 안대훈은 그 안에 어떤 제의 같은 것이 숨어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수혁의 모방이 아니라 의술의 신과 더 가까워지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점심…… 저녁까지 괜찮았으면 식사도 했다는 얘긴데…… 자려고 누웠을 때 갑자기 숨이 찼다라……. 자세 변화에 의한 숨찬 증세. 이건 심장이랑도 맞닿아 있기는 한데……. 아까 본 환자 증상은 전혀 그런 게 아니고…….’
당연하게도 별 소용은 없었다.
눈을 감았음에도 눈꺼풀 아래로 이리저리 방황하는 눈알이 보일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내과적 추론은 본래 모든 단서를 단 하나의 질환을 가리키도록 정리하는 게 기본이지 않던가.
한데 지금은 전혀 상반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니 안대훈이 당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 대훈이……. 존나 어렵나 보네.’
[어렵죠. 그럼. 이 케이스가 쉬워 보입니까?]
‘하나만 알면 되는데. 그게 어렵긴 하지. 어쩌지?’
[조금만 더 지켜보시죠. 어쩌면 스스로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잘못된 논리 회로로 들어간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요. 기본적인 진료 행위를 하다 보면 또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긴…… 아까 그거 해낸 거 생각해 보면 이건 쉬워야지.’
물론 수혁은 이미 얼추 감을 잡은 지 오래였다.
다른 단서를 잡아서는 아니었다.
아니, 잡기는 했는데, 기본적으로 주치의가 말해 준 단서를 토대로 추정을 쌓아 올린 단서들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주치의나 안대훈이나 이 환자를 진단하는 데 있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다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둘 다 아직은 그런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환자 심장부터 좀 볼게요. EF만 볼 거니까 여기서 보면 됩니다.”
“아……. 볼 줄 아세요?”
“네. 이현종 교수님이 알려 주셔서.”
“와……. 내과는 술기를 금방금방 알려 주네요.”
“제가 좀 열심히 해서요. 그리고 가서 제발 알려 달라고 하면 안 알려 주시는 분들 없으세요. 저 내시경도 얼추 합니다.”
“아…….”
주치의는 하긴 저 얼굴로 들이밀면 거절하기도 어렵겠단 생각을 했다.
실제로, 지금 자신도 한 연차 위였지만 터덜터덜 걸어 초음파를 끌고 오고 있지 않나.
드르륵.
하여간 대훈은 그렇게 끌고 온 초음파를 들고 환자 앞에 섰다.
잠시 수혁을 힐끔거리고서였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전혀 모르겠네……. 그렇다는 건…….’
수혁은 병원 의료진들이 다들 그러하듯 포커페이스의 달인이었다.
환자 앞에서 안 좋은 소견이 보였다거나 할 때 호들갑을 떨어서야 어디 되겠나.
덕분에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적어도 실시간으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건 오직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의 일일 뿐이었다.
의료진들은 그 와중에도 다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그리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데.’
좋은 일에 포커페이스를 뭐 하러 지키고 있단 말인가.
의사도 사람이라 환자 검사 결과가 좋으면 웃음이 나오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럴 땐 의사가 웃어 줘야 환자도 더 확실하게 ‘아 내가 좋아지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나.
“일단 EF는…… 퇴원 당시랑 비교했을 때 떨어지거나 하진 않았네요. 오히려 증가한 소견…… 음.”
안대훈은 수혁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리며,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그 장면도 남들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세상에 레지던트가 심초음파를 이렇게 금세 해낼 수 있다니.
확실히 차세대 교수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환자가 엄청 말랐네요. 그냥 이렇게 아무리 심근 확장이 있다고 해도 손만 댔는데 두근거리는 게…… 두근…… 아, 잠깐.”
해서 손정협도 주치의도 침묵을 지키며 안대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혁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주절거리는 건 오직 하나 대훈뿐이었다.
“잠깐…… 말랐어. 당연하지. 알코올 중독은…… 밥을 잘 안 먹게 되니까. 잠시 이 환자 기록 좀 볼 수 있을까요?”
약간 사이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혼자 얘기하다가 혼자 깨닫고.
그게 하필 안대훈이다 보니 느낌이 더 이상했다.
하지만 일단 주도적으로 진료하는 사람이 진료 기록을 달라는데 뭐 어쩔 건가, 줘야지.
해서 띄워 줬더니만 바로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래……. 베르니케 뇌병증(비타민 B1 결핍으로 인한 뇌장애) 소견도 있었어. 그렇다는 건 확실히 영양 결핍이 있다는 거야. 오늘도 식사했다는 진술이 있었나요?”
“네? 아뇨. 그건…….”
주치의가 바로 답을 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담당 간호사가 나섰다.
의사의 기록과는 달리 간호 기록에서는 요구되는 게 좀 달라서 그랬다.
“아, 네. 식사했다는 진술은 없었습니다. 술만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무섭다니까요. 술 먹다가 심장까지 망가진 사람이 또 퇴원하고 술 먹고…….”
안대훈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말끝이 혼잣말인지 남들에게 하는 말인지 모호해서 답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아무도 답하진 않았다.
살짝 광기가 느껴져서 그랬다.
‘오……. 이 새끼 뭔가 알아 가고 있는데?’
[네. 정확히 같은 추론입니다.]
오직 수혁만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대훈에게 어떤 확신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좋아. 나는 틀리지 않았어. 이게 뭔가…….’
밥을 먹지 않는다.
술만 먹는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었다.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하겠지만 당연히 지금 현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도 그랬다.
“잠시.”
대훈은 돌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의식이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관이 들어가 있지 않나.
살짝 몽롱한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자발 호흡이 없는 건 아니라, 그냥 이 상태로 두고 있었다.
“어어……. 왜.”
“잠깐 볼게……. 역시.”
하여간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다는 건 환자 앞에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이렇게 반쯤 몽롱한 상태에 놓인 환자들이 나중에 치료 과정에서 있던 일 때문에 일종의 PTSD를 겪는 경우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섬망의 원인이 된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간호사가 말렸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안대훈은 놀랍도록 빠른 손놀림으로 환자의 입술을 들췄다.
그리고 뭔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눈을 감고서였다.
‘뭔가 기분이 좀 나쁜데?’
[원래 사람은 자기랑 너무 닮은 걸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하더군요.]
‘내가 저거랑 닮았다고?’
[놀랍죠. 얼굴 생김새를 뛰어넘는 묘사력입니다. 저 표정…… 정말 흡사합니다.]
‘이런 시벌.’
수혁이 욕설을 내뱉을 만큼이나 수혁과 닮아 있는 얼굴이었다.
안대훈은 그렇게 딱 수혁이 눈을 감고 있던 만큼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 모든 것이 수혁의 평소 모습과 너무 닮아서 이 자리에 있던 모두는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교 신자가 아니라 해도, 적어도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수혁의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도플갱어야?’
‘대체…… 저 사람 정체가 뭐야.’
모두의 수군거림 속에 안대훈이 입을 열었다.
성대모사까지 하면서였다.
“환자는 기도 이물이나 심장 질환 때문에 숨이 찬 게 아닙니다.”
“네?”
심지어 일부러 첫 문장을 좀 충격적으로 내뱉는 것마저 닮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주치의는 깜짝 놀라며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그 두 개 말고 가능한 질환이 있냐,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안대훈은 그 얼굴이 평소 수혁을 바라보던 평범한 민초들의 얼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정말이지 입이 째지게 웃었다.
“하하하. 그리 어려운 진단은 아닙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