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32화 (732/1,303)

732화 간밤 (3)

안대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손을 내저으면서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얼굴 때문에 그런가. 되게 재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손정협 교수조차도 끼어들지 못했다.

동시에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느낌도 있어서 그랬다.

번뜩이는 빛 반사와 함께 안대훈은 말을 이었다.

“알코올 중독은 병이죠. 그것도 치료가 아주 어려운 병이죠.”

대한민국은 술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심지어 술 권하는 문화까지 팽배한 상황이지 않나.

의사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볼 때는 이 나라가 혹시 알코올 중독자 양성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했다.

그런데 또 막상 중독되고 나면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냉혹했다.

질환이 아닌, 오직 그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은 분명한 병이었다.

“때문에 개인의 의지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이는 모든 의사들이 인지해야만 하는 사실입니다.”

안대훈은 말을 이어 나가면서, 다시금 환자의 입술을 들춰냈다.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바깥으로 더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환자의 입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앞니가 없었다.

아니, 윗니는 앞니를 포함해서 세 개가 없었다.

“아마 환자도 본인이 알코올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지했을 겁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죠.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아마 이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아까 보니…… 말로리 와이즈 신드롬으로 병원에 온 적도 있더군요. 다행히 간문맥 질환이 없어서 식도 정맥류가 없어 막대한 출혈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말로리 와이즈로 병원에 왔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술 먹고 구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말로리 와이즈.

식도에 갑자기 너무 많은 양의 토사물이 밀려들면서 그로 인한 압력 증가를 못 이기고 출혈이 생기는 질환을 말했다.

아주 드물게 다른 상황에서도 생길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술 때문에 생기기 마련이었다.

술을 먹으면 감각이 둔해져 평소보다 더 먹게 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렇게 위에 부담이 가해지는데 동시에 알코올 때문에 구역감이 몰려들면 바로 말로리 와이즈와 같은 사달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주로는 알코올 중독자나 또는 아직 자기 주량을 모르는 대학생 신입생들에게서 흔히 발생했다.

“위산이 자꾸 넘어오게 되면 당연히 치아에 손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게다가 만취해서 자는 게 일상일 테니…… 양치질 빈도수도 적겠죠. 그래서 앞니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분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멀쩡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의 특징이죠.”

사회 활동을 잘하면서 동시에 알코올 의존 장애가 있는 경우를 일컬어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이라고 불렀다.

혼자 술을 마시면서 중독되는 빈도보다도, 오히려 다 같이 먹으면서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은 대한민국은 그 특성상 이런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의 비율이 꽤 높은 나라다.

이 경우는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일단 본인이 자신은 술을 좋아하는 것일 뿐, 중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다.

멀쩡히 일을 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엄밀한 기준에서 보면 다 중독이었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앞니의 존재는 아주 중요하죠. 생각해 보세요. 앞니가 없으면 누구라 해도 좀 신뢰가 안 가지 않지 않습니까?”

“음……. 근데 그게 지금 무슨…….”

안대훈의 말에 주치의가 끼어들었다.

뭔가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고 있어서 그냥 두었는데, 듣다 보니 이게 좀 방향이 이상해서 그랬다.

알코올 중독 환자인 건 알겠는데 그게 지금 뭔 상관이란 말인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손정협도 그랬다.

‘새끼……. 썰 풀어 나가는 방식 봐라.’

[많이 배웠군요. 이런 걸 감개무량하다고 하나요?]

‘어……. 그런 거 같아. 그래, 이게 그런 거구만.’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직 한 명 수혁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저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일지 다 예상이 가서 그랬다.

“생각해 보세요. 이 환자분이 이러고 다녔을 거 같습니까?”

“어…….”

안대훈은 다시금 환자의 입안을 가리켰다.

아랫니는 멀쩡히 있는데, 윗니는 없었다.

한데 자세히 보니 아랫니도 틀니였다.

이게 뭘 의미할까.

윗니도 틀니를 끼고 있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어……. 그럼 이거…… 이거 어디 갔어.”

손정협은 눈에 띄게 당황한 얼굴로 주치의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까 분명 기관 삽관하면서 뭐가 없다고 하지 않았냐, 뭐 그런 뜻이었다.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주치의도 바로 그의 비난의 뜻을 알아들었다.

짧은 시간 내에 아까 있었던 일을 상기하고는, 주치의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진짜로 없었습니다!”

“근데 이게 없잖아요. 어디 갔냐고 이게.”

“있었으면…… 보였을 겁니다. 놓쳤다면…… 놓쳤다면 지금 이렇게 호전이 되지도 않았을 거구요.”

“그런가? 아, 그렇네.”

손정협은 그의 해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까, 기관 삽관할 때 이걸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쑤셔 박았다면 분명 문제가 생겼을 터였다.

하지만 환자는 지금껏 괜찮은 상황이었다.

확실히 기관 삽관 이후로 좋아졌다.

“음?”

“으음!”

둘의 고개가 다시금 안대훈을 향해 팩 돌아갔다.

야 이건 어떻게 생각하냐, 뭐 이런 뜻이었다.

적잖이 당황할 거라 기대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안대훈은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 이 환자의 호흡곤란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죠?”

역으로 질문까지 던졌다.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기관 삽관.”

“그 외에는요?”

“그 외에는…… 음.”

생각해 보니 기관 삽관 말고는 한 게 없었다.

손정협, 주치의는 서로 눈을 마주침으로써 서로의 의견에 동의했다.

“한 게 없죠. 근데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그럼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안대훈은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면서, 특히 손정협을 향해 물었다.

기도 관련해서는 전문가라 여겼기에 그랬다.

“기도 폐색의 완화…… 근데 이상하네. 이게 뭐지.”

이 경우에 떠올릴 수 있는 질환은 단 하나, 기도 폐색뿐이었다.

무언가에 의해 막혔던 것을 제거했을 때만이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었다.

만약 다른 원인으로 인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좋아질 수가 없었다.

단지 기관 삽관만 했을 뿐이니.

한데 기도엔 뭐가 없었다?

이게 뭔가 싶었다.

“기도 폐색의 원인을 잘 떠올려 보세요. 뭐가 있습니까.”

안대훈은 혼란에 빠진 손정협을 향해 다시 물었다.

이제 주치의도 혼란에 빠졌다.

기도 폐색은 이비인후과에서뿐만 아니라 응급실에서도 중요한 질환이라 그랬다.

해결만 해 주면 아무 문제 없이 살아날 수 있는 질환이면서 동시에, 그렇지 못하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질환이지 않나.

그야말로 ‘응급 질환’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기도 내 이물…… 이게 제일 흔하지.”

“그리고요. 이비인후과에서는 많이 볼 거 같은데.”

“그다음은…… 암 같은 게 있지. 기도 내에 있지 않다 해도 기도를 누를 수 있으…… 음?”

“네. 누를 수 있죠. 이 틀니가 어디에 있으면 기도를 누르겠습니까. 끼고 있던 틀니가 사라진 것도 사실이고, 이 환자의 증상 변화가 전형적인 기도 폐색이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식도……?”

“네. 식도죠.”

“아…….”

엑스레이에서 이게 왜 안 보였을까?

뭐 이런 소리는 할 필요가 없었다.

식도는 기도 뒤에 있는 장기이고, 그 뒤에는 뼈가 있지 않나.

옆에서도 찍고 했으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루틴 검사인 앞에서 뒤를 찍는 검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벙찐 얼굴이 된 손정협과 주치의를 향해 안대훈이 입을 열었다.

“환자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틀니가 넘어갔는데 인지를 못 할 일도 없었겠지만 혹 그랬더라도 바로 알아차렸을 겁니다. 식사가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아……. 근데 이 환자는…….”

“술만 먹었을 겁니다. 그럼 확인이 되지 않죠.”

“이런 젠장……. 그러다 누웠을 때 위치가 바뀌면서 기도를 눌러 버린 거로군.”

안대훈의 말을 듣다 보니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손정협 교수에게는 되게 낯선 경험이었다.

아무래도 수술하는 과의 의사들은 무언가 확실한 증거를 보고, 그걸 칼이나 기타 도구로 해결하는 데 익숙하지, 이렇게 깜깜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찾아 더듬어 나가는 과정은 거의 겪어 보지 못했기에 그랬다.

“이럴 수가…… 이게.”

그래서 충격이 더했다.

‘새끼……. 잘하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건데……. 확실히 자기 추론 과정을 따라올 수 있도록 해서 이 추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해 줬어.’

[수혁의 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로군요.]

게다가 안대훈의 화법이 화룡점정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수혁을 있게 한 화법이기도 하지 않나.

이미 해결된 케이스를 설명하는 건, 자칫하면 너무 쉽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그간에 있었던 숱한 추론의 과정들을 상대는 그저 ‘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나 수혁은 기가 막히게 추론의 어려움을 상대에게도 주입하는 데 능했고, 거의 모든 추론 과정을 따라다녔던 안대훈은 그 말하는 방식조차 체득한 모양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측면부 찍고…… 경식도 내시경 하겠습니다. 혹시 찢어지거나…… 이미 찢어졌을 수도 있으니 흉부외과 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벙쪄 있던 손정협이 별안간 서두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게 완전히 이비인후과 질환이라 그랬다.

그냥 내시경으로도 작은 이물이라면 제거할 수 있지만, 이 세 개를 커버할 수 있는 틀니는 좀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면 수술방에서 단단한 내시경을 통해 제거해야 했다.

문제는 이게 틀니라는 점이었다.

“날카로운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이거 설마 부러지지는 않았겠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죠.”

틀니는 그 자체로도 이를 대체하기 위한 구조물 때문에 날카로울 수 있을뿐더러 플라스틱 부위가 부러지는 경우 거의 칼처럼 날카로워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들어가거나 제거하는 과정에서 식도를 찢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비인후과만으로는 안 되었다.

흉부외과도 와야 했다.

일이 커진다는 얘기였다.

“하여간……. 안대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환자 이거 이대로 더 허송세월했으면 식도가 터졌을 수도 있겠어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이수혁 교수님께 많이 배운 덕입니다.”

“얘기가 그렇게 되나. 아무튼, 실력이 진짜 보통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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