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734화 (734/1,303)

734화 이 새끼들이? (2)

정치력.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꽤나 중요할 수 있는 요소일 터였다.

특히 독고다이로 해결 볼 수 있는 프리랜서나 작가가 아니라, 어떤 집단 내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이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이걸 어쩌지.’

칠성 병원 원장 오성흠은 그러한 면에서 정점에 선 사람 중 하나였다.

오로지 정치력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지 않나.

딱히 논문을 잘 쓴 것도 아니고, 학회 내에서 학자로서의 평판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원내에서 이렇다 할 적을 만들지 않고 자기 사람이라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을 여럿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은, 다들 잘난 의사 사회에서는 더더욱 드물었기에 그는 원장 자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 순간 평생 그를 따라다니던 정치력 하나로 먹고사는 무능한 교수라는 꼬리표도 떨어졌다.

원장까지 했는데 어떻게 무능하단 말이 따라 나온단 말인가.

‘이걸 어째. 시발……. 신이여.’

그래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더랬다.

비록 칠성 병원은 그 특성상 원장 위에 의료원장이 있고, 그 의료원장은 경영자 출신이 맡기는 하지만.

반드시 수직 관계에 있다고는 볼 수 없어서 더 그랬다.

의료원장은 경영을, 원장은 인사를 맡는다고 보면 되었다.

원래 경영보다는 인사 쪽이 끗발 날리지 않던가.

그래서 더 기세가 등등했는데.

“원장님. 부르셨습니까?”

“어어. 어어어어어.”

“왜…… 왜 그러세요. 아, 설마!”

“자, 자네 왜. 왜 나를 눕혀.”

“말 더듬길래 풍이라도 오신 줄 알았죠. 아닌가 보네.”

풍?

그래, 풍이라도 올 것 같은 기분이긴 했다.

그래도 그건 아니지.

오성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놈인가.”

“얼마 전에 아시죠? 이비인후과 전임 학회장님이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나 풍인 거 같은데? 하고 병원 가서 검사받고 진짜 진단받아서 치료까지 받은 거. 그런 줄 알았죠.”

“아……. 그분.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진짜 학자의 풍모를 갖추신 분이지. 원로라면 응당 그래야지.”

“네네. 근데 어쩐 일로 부르셨어요?”

모난 얼굴에 역시나 모난 눈.

오성흠은 박국진 대신 내과 과장을 꿰차게 된, 말하자면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사람, 안국태를 바라보았다.

‘모난 새끼…….’

말은 잘 들었다.

저변에 깔린 게 충성심이 아니라 앞으로 떨어질 콩고물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하여간 박국진에 비하면 이거저거 많이도 부족한 놈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놈은 특유의 선비 기질 때문에 내쳐 버렸는데.

“이현종이 이리로 온다는데.”

“네? 이현종 원장님이요? 아니……. 여길 왜.”

이현종의 이름은 높고 높은 것이었다.

모난 놈으로 유명한 안국태조차 심지어 이현종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데 원장님이란 호칭을 꼭 붙였다.

그러곤 주변을 부리나케 훑었다.

불안해 보였다.

“그…… 통합진료센터 환자 보내 달라고. 와서 보낼 만한 환자 있는지 보겠다는데.”

“네? 아니……. 말이 됩니까? 우리 병원 일에 간섭하는 거잖아요. 그건 아무리 이현종 원장님이라고 해도 선 넘는 거죠. 안 된다고 하시죠.”

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이니 오지 말라고 해라.

그래, 그 말을 오성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었다.

-영상 올려?

나는 왜 그랬을까.

오성흠은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쉬었다.

안국태는 그런 오성흠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 새끼……. 뭔가 약점이라도 잡혔나.’

전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상하지 않나.

그가 아는 오성흠이라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책잡힐 만한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일이었다.

원장이 되고 난 후의 오성흠은 그가 가진 권력을 종종 휘두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 권력을 과신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근데…… 이현종 원장님이 그렇게 정치력이 좋은 사람은 아닌데……? 뭐지? 윗선에서 뭔가 왔다 갔다 하나?’

그렇다고 오성흠의 잘못으로 밀고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현종 때문이었다.

물론 학자 그리고 의사로서의 이현종은 존경할 만했다.

아니, 지금보다 더 존경받아야 마땅했다.

의사들에게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서도 그랬다.

아직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끼기는커녕 개도국 취급을 받고 있을 때 그들 머리채를 휘어잡는 논문을 낸 사람이지 않나.

하지만 원장으로서의 이현종은 솔직히 좀 그랬다.

덕분에 안국태의 생각은 이리저리 방황만 하고 있을 뿐, 그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봐, 안 교수. 세상엔 정치가 안 통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 이현종 교수님은 그냥 또라이야, 또라이. 근데 그 또라이가 힘이 있어. 무대뽀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잘 봐, 이제 좀 있으면…….”

그에 비해 오성흠은 과연 오성흠이었다.

그의 생각은 이미 이현종을 변수에 낑겨 넣은 채 돌아가고 있었다.

따르릉.

심지어 손가락으로 전화기를 가리키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안국태는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로 오성흠이 전화 받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확실히 오성흠이 자기 머리 꼭대기에 있는 건 맞는 듯했다.

아직은 오성흠 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고……. 오 원장님.”

상대는 신현태였다.

목소리가 굉장히 지쳐 보였다.

좀 미안해하는 듯해 보이기도 했고.

“네, 신 원장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훤히 알 것 같았다.

아마 그 길로 원장실로 달려가 깽판을 놨겠지.

‘신현태……. 이 사람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긴 한데…….’

혹 이 양반이 말려 주려나?

그럴 수 있으려나?

오성흠은 그런 기대를 하며 기다렸다.

신현태가 전화를 했으니 용건을 먼저 꺼내리란 생각을 해서였다.

“아, 지금 간다고 해.”

하나 먼저 들려온 것은 신현태가 아니라 이현종 목소리였다.

기분이 팍 잡치려는 순간 신현태도 말을 이었다.

“아, 형은 좀 가만히 있어 봐. 원장단 미팅이 뭐 그렇게 막 잡히는 줄 알아? 일단 원장단 다 시간이 맞지도 않는데.”

“그거 핑계라니까? 난 수혁이랑 가서 환자 볼 거야.”

“지금 통화 중인 거 알지? 그렇게 대놓고 핑계라고 해도 괜찮은 거야?”

“괜찮아. 오성흠 그 새끼 그거 또라이잖아. 증거 영상이 다 나한테 있는데 그럼 뭐 어째. 그거 칠성 들고 가면 일단 오성흠 나가리 되는 건 순식간이지.”

“그건…… 아니, 근데 왜 그러셨대?”

“나도 몰라. 지금 물어보든지.”

오성흠에게 말을 이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이현종과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이럴 거면 지금 전화를 왜 했냐…….’

확실히 이현종은 신현태도 컨트롤이 불가한 인간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대화를 들어 보니, 진짜 미친놈이었다.

‘그걸 칠성으로……? 안 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막아야 했다.

요구 조건이 원장단 미팅이라면 그걸 줘서라도 막아야 했다.

오성흠은 곁눈질로 안국태를 힐끔 바라보았다.

일부러 전화기를 딱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말도 듣지는 못한 듯했다.

그저 대체 뭔 얘기를 하고 있냐는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한다…….’

이미 정치력으로 어떻게 할 수준은 지난 인간이었다.

태화 의료원 원장도 저리 쩔쩔매는데 내가 뭐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신현태와 이현종은 속삭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나야 모르지. 네가 이렇게 하라며.’

‘내 생각인데…… 형이 좌충우돌하는 또라이 컨셉으로 가는 게 제일 잘 먹힐 거 같아서 그랬지. 근데 아마 될 거야.’

‘된다고? 이게? 학자라면 모름지기 좀 더 점잖게 얘기로 풀어야 하지 않나? 전화해서 우리끼리 소리 지르는 게 뭔 소용이야.’

신현태는 갑자기 멀쩡한 얼굴로 멀쩡한 소리를 해 대고 있는 이현종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상식선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인간이 와서 그런 부탁을 했어?

‘내가 진짜 수혁이만 아니었어도…….’

대뜸 와 가지고서는 칠성에서 제대로 된 케이스를 안 주니 조지러 가자고 했더랬다.

수혁이도 같이 왔길래 말리러 온 줄 알았더니, 이 새끼는 한술 더 떴다.

-제가 다 살려 버릴라니까요!

고향이 전라도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갑자기 사투리까지 쓰면서…….

‘수혁아, 내가 이렇게까지 한다.’

이상하게 그 말을 딱 듣자마자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더니, 이 생각이 딱 났다.

오성흠하고는 원래 말을 길게 섞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다 보면 다 설득당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어째야 할까.

우리 진짜 미친놈이라는 걸 보여 주면 될 일이었다.

“그…… 어쩌죠. 우린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이게 진짜 지금 업로드하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지 않습니까?”

해서 신현태는 얼굴은 웃으면서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시발.’

세간에 알려진 신현태는 아까 오성흠이 떠올렸듯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지 않나.

그런 사람이 이렇게 쩔쩔매면서 말하는데 불안해지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게다가 오성흠은 그 영상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잃을 만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알겠습니다. 제가…… 제가 여기는 어떻게든. 그럼 몇 시에 보죠.”

“지금 당장이라도 가겠다는 걸 제가 말리고 있습니다. 2시간 이상은 어려워요.”

“2시간…….”

“해결 부탁드립니다. 어이고, 저도 이 사람 이거. 천방지축이라…… 우리끼리 얘긴데 진짜 미친놈이에요.”

“네네. 미친놈…….”

“미친놈이 무서워서 피하나요. 더러워서 피하지.”

“네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더럽다기보다는 무섭다는 게 맞긴 하지만.

하여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이제 오성흠도 인정했다.

어떻게든 2시간 내에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 시작은 눈앞에 있는 안국태였다.

“전화 맥락을 전혀 모르겠는데…… 지금 두 분이서 이현종 원장님 험담하신 겁니까……?”

그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교수까지 한 사람인 데다가 과장까지 한 사람인데 이게 대체 뭔 대화란 말인가.

“그렇지 뭐. 또라이잖아. 근데 지금 태화에서도 곤란해하네? 그 사람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우리 병원 추문을 들고 있대.”

오성흠은 정치력 만렙답게 이미 얘기를 어떻게 끌어 나가야 할지 정리를 한 참이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칠성에서는 급히 덮어야만 했던 사안이 하나 있었더랬다.

“네? 추문이요?”

“그 왜. 저번에 그.”

“아니, 그걸 어떻게요?”

“이현종이 사조직 이끌고 있잖아. 프락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알아요? 아니, 어떻게……?”

“근데 그거 사실 잘 파고 보면 태화랑 아선도 엮였잖아. 정확히 말하면 엮인 사람이 있지. 그래서 다들 쉬쉬하고 넘어가려는데 이러는 거야. 조건은 단 하나. 원장단 미팅. 받아야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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