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5화 이 새끼들이? (3)
‘거참…….’
안국태는 원장실을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현종이 부족한 정치력과는 별개로 어마어마한 프락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딱히 비밀도 아니지 않나.
틈만 나면 프락치를 통해 정보를 알아냈다고 떠들어 대니까.
막상 프락치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고 보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동향 사람, 같은 학교 선후배라 슬쩍 찔러 주는 정도였다.
그나마 그만한 대가가 은밀한 표정을 지어 가면서 물어보니까 좀 더 성의 있게 알려 준다는 게 차이일까?
‘근데…… 그 건은 무조건 덮어야 되는 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텐데……?’
무슨 막 리베이트 건이 터졌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당장 경찰 수사부터 들어가지 않겠나.
예전에야 그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이곳저곳에서 불법이 만연했다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관행이니 뭐니 떠들어 대다가는 진짜로 철창 신세를 지는 수가 있었다.
‘로열 밀어주기……. 거참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안 밀어주냐고.’
안국태는 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그 또한 이런저런 연유로 로열을 밀어준 적이 많았더랬다.
딱 그때만 면접 100%로 뽑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어차피 과의 일은 교수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별로 문제 삼는 이도 없었다.
간혹 로열에 밀려 떨어진 애가 불만을 품는 경우야 있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의사 할 생각이라면 이 안의 법칙에 순응해야 해서 그랬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얼마로 덮었을까?’
어쩌면 웹소설로 벌려고 했던 돈보다 더 벌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여간 이제야 겨우 봉합되려는데 갑자기 이현종이 나설 줄이야.
그의 정보력이 더 놀라웠다.
프락치, 프락치 하더니 진짜 의미 있는 프락치를 심은 모양이었다.
“어……. 원장님 말씀 따로 있으실 텐데, 하여간 오늘 급하게 미팅 잡힐 거 같으니까. 점심시간 전후로 시간 비워 둬.”
“네? 아니……. 무슨 미팅인데요?”
“전에 그 사건 있잖아. 로열. 그 새끼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병원 사례 싹 정리해서 권익위에 제보하겠다고 했던 거.”
“그거 3억으로 무마된 거 아니에요?”
“3억이나 줬나? 하여간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이현종 원장이 알았대.”
“허.”
인턴 하다가 나가면 소위 말하는 떨턴이 되어 중위 군의관이 되어야 하는데 그걸 찌르겠다고 한 그놈도 신기했지만.
그걸 알아낸 이현종도 신기했다.
그리고 태화도 자유롭지 못할 거, 뻔한 일을 문제 삼는 건 황당했다.
안국태의 전화를 받은 교육수련부 부장은 한숨을 푹 하고 쉬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되나요? 태화도…… 제가 알기로 거기도 비슷했을 텐데요?”
“어……. 근데 사실 이현종 교수님은 자유롭지. 그 양반은…… 로열이고 나발이고 다 자르잖아. 그 사람 때문에 태화 내과는 좀.”
“아……. 아니, 그렇다고…… 거기 마이너 서저리 과는 죄다 문제 있을 텐데? 인기 과치고 로열 안 받은 과가 어디 있다고…….”
“하여간 그거 때문에 신현태 원장이 찾아오겠다고 했나 봐. 별수 있나. 터지면 우리가 제일 크게 터지긴 할 텐데. 그쪽도 또라이 한 분 모시기 힘든 거지.”
“그……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시간 만들어야지, 뭐.”
“그래.”
교육수련부 부장은 전화를 끊은 후에도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하필이면 그가 보직을 맡자마자 이런 일이 터져서 머리털도 죄 빠져나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다음번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환자 보는 곳이다 보니 실수에 굉장히 엄격한 집단이라서 그랬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자기 잘못도 아니긴 한데, 하여간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 일이 더 커지면 난리 나지. 나 진짜 끝날지도……. 그건 그렇고 대체 어떤 새끼가…… 아니, 이거 진짜 사모임이 있는 거야? 프락치가 있는 거냐고. 뭘로 회유한 겨.’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했던 이현종의 프락치가 진짜 나치 친위대 프락치와 같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 언제 갈 거야.”
그 주인공, 그러니까 사실 그런 유능한 프락치 따위 심어 놓은 적 없는 이현종은 신현태를 보태고 있었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아주 한심하다는 얼굴로 돌아보다가, 역시나 그를 보채고 있는 수혁이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친자 검사라도 해 봐야 되나.’
분명 가슴으로 낳은 자식인데.
대체 왜 이렇게 닮았단 말인가.
닮으려면 머리 좋은 것 정도만 닮지.
하필이면 또라이스러운 감성조차 닮아 버렸다.
“기다려 봐요. 아니, 아까 전화 전달했잖아. 이제 시간 조율해야지. 우리 쪽도 아직 확인이 안 됐어.”
“이놈 봐, 이놈. 너 누구 편이야. 칠성에 시간을 주네. 그러다 쓸 만한 케이스 다 숨기면 어쩌려고.”
“형……. 세상에 케이스 숨기려는 의사가 어딨어. 그게 어려운 케이스면 더더욱 숨길 수가 없지.”
“우리는 그럴 건데? 우리만 봐야 되니까.”
“그…….”
신현태는 뭐라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두 사람 아니, 이 두 새끼는 그럴 것 같아서였다.
내기 같은 걸 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다른 병원 케이스 보고 싶다고 원장을 닦달하는 게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네? 그런 일이 있어요? 잘됐네요.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브랜드 이미지에서 최근 칠성과 아선은 태화에 완전히 밀렸어요. 이게 다 통합진료센터 덕분이죠. 저희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제일 문제는 김다현이었다.
현장에 있지도 않으면서 이미지니 뭐니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으면서 이현종, 이수혁의 기를 살려 주고만 있었다.
전폭적인 지지라니.
바이오 그룹 회장의 지지를 받는 의사를 대체 어느 누가 막는단 말인가.
‘뭐……. 나도 그 수혜를 받고 있기는 하지.’
그러나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생각해 보니까 신현태가 원장이 되어서 잘나가는 것도 다 이 둘 덕분이라서 그랬다.
사실상 뒤치다꺼리하라고 권력을 쥐여 준 셈이지 않나.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아, 네. 가야죠. 통합진료센터 건이에요?”
“아……. 네네. 이현종 센터장님 건이면 가야죠.”
“걱정 마십쇼. 시간이야 내면 됩니다.”
사실 원장단 소집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미 말 잘 듣는 애들로만 뽑아 놔서 그랬다.
장강명, 홍창기 등등.
앞에서도 딸랑이지만 뒤에서도 딸랑이는 불멸의 충신들이었다.
전화 돌리고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알겠단 소리부터 했다.
뭔 사안인 줄도 모르면서 남의 병원까지 출두하겠다는, 눈물겨운 광경이었다.
“새끼들. 은혜를 아네. 그래, 사람이 이래야지. 오성흠이 그 새끼는 인성이 글렀어. 그때 망신 주려고 했는데 부드럽게 넘어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형……. 오성흠 원장한테 형이 은혜를 베푼 적은 없잖아.”
“그 영상 안 푼 게 은혜지. 너도 봤지? 그거 올려 봐.”
“음. 아니, 근데 왜 그랬대? 뭐 병 있는 거 아냐? 충동 장애라든지, 뭐 그런 거. 의외로 많다며.”
“나야 모르지. 오진승 교수한테 물어보든지. 근데 그러려면 영상 또 보여 줘야 되는데……. 괜찮으려나.”
“오진승은 안 돼, 입이 너무 싸서.”
“어, 그렇긴 하지. 어떻게 정신과 의사는 하고 있나 몰라.”
“환자 얘기 못 하는 대신 병원 소문 다 내고 다니는 느낌이지. 그런 거 보면 용해. 자기 본능을 어떻게든…… 아, 전화 온다. 오성흠.”
신현태는 이현종과 재잘대다가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 톤마저 달리한 채였다.
[정상인인 척하지만…… 사실 신현태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군요.]
‘어……. 어떻게 봐도 아까부터 내내 웃고 계시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 나이 먹고, 이 정도 지위에 오르고 어떻게 이런 장난질을 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상대 병원장을 상대로.
웃음이 낄낄 나오지 않는 게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아, 원장님. 어떻게…… 저희는 일단 일정 조율했습니다. 아, 이거 입 막는 게 쉽지가 않네요.”
“네, 저희도 일단 맞췄습니다. 이거 참. 중간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핑계는 일단…… 제가 문자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얼추 말은 맞춰야 할 것 같아서요.”
“네네.”
“근데 태화 원장단도 제…… 영상을 알거나 하는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저 말고는 모릅니다.”
신현태는 모른다고 하면서, 내과 의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현종이 충신들은 다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장강명, 홍창기 그리고 김문재까지 불러다 영상을 보여 줬더랬다.
이상하게 몇 번이나 본 영상이었는데 그날은 더 재밌었다.
다 같이 봐서 그런가.
중간에 수혁이는 팝콘까지 튀겼다.
“휴……. 다행입니다. 하여간…… 이 건으로…… 네, 이 건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말투라 신현태는 조금 미안해졌다.
“그니까 왜 그런 짓을 하냐고.”
“그러니까요. 아니……. 왜 남의 학회에 분장까지 하고. 그것도 그거…… 약간 외국인 느낌 나게 한 거죠?”
“어. 참……. 그러고 안 들키리라고 기대를 했나. 우리한테는 안대훈이 있는데.”
“대훈이가 진짜 그런 거 광기 넘치게 잘 찾죠.”
하지만 이현종, 이수혁 두 부자간의 대화를 듣다 보니 미안한 마음 대신 그저 재밌단 생각만 들었다.
‘그래……. 이건 오성흠 잘못이야. 나중에 뭐라도 진단되면 그때 가서 미안해하자.’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진 신현태는 전화를 끊었고, 곧 로비에 다들 모였다.
“네? 아…… 로열 밀어주기를 했어요? 그걸 누가. 아 이현종 교수님이 터뜨릴 거라고요? 아, 그런 식으로……. 사실은 그냥 그 영상 때문에 약점 잡힌 거죠?”
“어어. 너무 크게 말하지는 말고. 여기도 뭔가…… 있을 수도 있어.”
“원장님, 이현종 교수님 같은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상대 병원에 프락치라니요. 설령 프락치 있다고 해도 영상 보여 주면 바로 회심할걸요. 그 영상…… 그게 원장이라니.”
“뭐……. 하여간 그렇게 알라고.”
“근데 그럼 이현종 원장님은 어떻게 나가요? 일단 이 미팅의 중심이신데.”
장강명의 물음에 이현종이 씨익 웃었다.
미팅이나 회의 중간에 나가는 것.
그건 이현종이 전문이라서 그랬다.
“깽판 칠 거야. 그다음에 어려운 환자 있으면 다 살려 버려야지.”